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98화 (98/500)

98화. 찍어보세요(1)

김명중 과장은 거침없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구조가 좀 바뀌었네.”

“예전에 삼성에 계셨습니까?”

“과장 되기 전에 잠깐.”

김명중 과장은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양쪽 복도를 살피더니 곧 소회의실을 발견했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며칠 전 강남 세무서 소득세과에 이상한 게 하나 걸렸다.”

조금의 잡담도 없이 과장은 본론을 꺼냈다.

처음 조사과에 들어가다 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곁가지는 생략하고 다짜고짜 일거리부터 늘어놓는 것이 여전했다.

“유명 뉴튜버의 소득세를 검토하던 중이었는데, 뉴튜브 조회수에 비해서 매출이 너무 적은 것 같더라고.”

요즘 세무서에서도 핫한 주제다.

뉴튜브가 글로벌 기업인지라 우리가 자료를 보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뉴튜버가 제출한 사이트 정산 자료를 보고 세금을 부과한다.

기본적으로는 뉴튜브 계정의 수익 정산 페이지와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비교해 맞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작정하고 숨기면 알아낼 방법이 없긴 하다.

“차명 통장 다 까고 부계정 없는지도 확인해야겠네요. 아이디 여러 개 생성했으려나?”

요즘엔 수익금을 페이팔로 받는 사람도 있던데.

오래 걸리는 작업이긴 하겠다.

그런데 김명중 과장이 서류 끝으로 작게 테이블을 톡톡 쳤다.

“아냐, 그건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어. 의외로 쉽게.”

“응? 혹시 뉴튜브 쪽에서 협조해줬습니까?”

“우리 과 직원 다섯 명이 매달려서 올라온 영상을 다 봤거든. 좀 시간이 걸리긴 했는데 납세자가 영상에서 재산 상황을 거론했더라고. 거기서 수익을 역산했어.”

“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뉴튜버의 모습이 상상이 갔다.

졸린 눈을 비비며 화면을 보다가 신나서 동료 직원들을 소리쳐 불렀을 담당 조사관도.

그리고 실제로 납세자를 불러 솔직히 말하라며 다그치는 김명중 과장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과장님 역시 대단하시네요.”

“내가 아니라 직원들이 고생했지. 그리고 네 활약에 비할 바는 아니야.”

“…….”

놀라서 바라보자 과장의 입매가 미미하게 누그러졌다.

“항상 들리는 소문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야.”

“감사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칭찬은 많이 들어왔지만 방금 들은 조사과장의 말이 더 깊이 다가왔다.

그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훨씬 기뻤다.

“그건 나중에 차차 이야기하고, 어쨌든 그 뉴튜버의 영상을 훑어보면서 발견한 건데 일단 봐라.”

과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황민우도 함께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첫 장을 펼쳤다.

뉴튜브 화면 캡처가 몇 장 인쇄되어 있고 그 밑에는 영상의 인물들이 한 말이 타이핑되어 있었다.

일종의 녹취록이다.

-뉴튜버: 오늘은 존예, 먹방 여신! 진예슬 님과의 합방입니다! 진예슬 님 아시죠? 구독자 100만을 보유하신 먹방계의 여신!

-뉴튜버: 오늘은 그 유명한 진예슬 님이 직접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는데요, 나 주소 보고 깜짝 놀랐잖아. 도곡동이야, 도곡동.

-뉴튜버: 와, 여기 실화냐. 동네 생긴 것부터 달라 보이는데. 여긴 건물이 다 개성 있네.

-자막: 도곡동 클라쓰

이런 식으로 대본처럼 쓰인 글이 족히 3페이지를 되었다.

직원이 일일이 듣고 타이핑했다는 뜻인데, 이 자료만 보고도 그 고생이 전해져 왔다.

“우리 직원이 조사한 바로는 진예슬이라는 이 뉴튜버는 재산이 하나도 없어. 분명 뉴튜브 하면서 상당히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 말이야. 분명 뉴튜브 소득을 차명으로 빼돌리며 소득세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거겠지. 그러면서 겉으로는 가난한 연예 지망생인 척하고 있고 말이야.”

김명중 과장이 손수 서류를 넘겼다.

뉴튜브 화면을 캡처했는지, 막 펜트하우스 현관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찍혀 있었다.

저화질 화면을 인쇄했는지 흐릿했지만, 언뜻 봐도 눈에 남는 인상이었다.

그 밑으로 신문기사 하나가 인쇄된 것이 보였다.

[연예인 지망생의 일탈? 또 마약 투여]

-최근 엔스타와 뉴튜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연예인 지망생 진 모 씨가 강남 모 클럽에서 마약을 구매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제보자에 따르면 해당 클럽에서 진 씨가 마약을 상습 투여했으며 만취하여 클럽 직원을 폭행했다고 한다. 강남 경찰서는 관련 폭행 사건이 접수된 바 없다고 밝혔다.

신문기사는 짧았다.

실명도 적혀 있지 않아 누구를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찾아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잘 모르는 사건입니다.”

황민우를 쳐다보자 그도 고개를 저었다.

그가 사진의 사람과 기사를 가리켰다.

“여기의 진 모 씨가 영상의 이 사람입니까?”

“그래. 요즘 흔히 있는 인터넷 연예인이지. 문제는 이 영상이야.”

뒷장을 넘기자 뉴튜버가 펜트하우스 구석구석을 돌며 구경하는 장면이 보였다.

집에는 고급 식기나 화장품이 그득하고 옷장에는 명품들이 쌓여 있었다.

“확실히 가난한 연예인 지망생이 살만한 집은 아니군요. 상당한 금액을 체납한 거 같네요.”

“그래. 상당히 악질 체납자다. 안 낸 세금이 한 10억 정도 되거든.”

영상을 보아하니 돈도 많아 보이는데 안 내고 있다 이거지?

“문제는 이 체납자가 뉴튜버라는 거야. 잘못하면 안 좋은 구도가 나올 수도 있어.”

“그럼 별거 아니네요.”

과장이 우려하는 것이 뭔지는 이해했다.

광신적인 추종자들이 트집 잡아 언론 플레이하기 딱 좋다.

공무원의 무지막지한 갑질에 연약한 연예인 지망생의 눈물까지.

‘정말 돈이 없어요!’

‘무리한 권력 남용, 이대로 괜찮은가?’

신문 타이틀도 눈에 그린 듯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오히려 복잡하게 얽힌 주주 관계 연결하는 작업보다 쉬운 일이었다.

“맡을 수 있겠어?”

“네. 금방 해결하고 오겠습니다.”

“그럼 믿고 있을게.”

도곡동이면 삼성 세무서의 관할이다.

어차피 우리 과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잡담이나 해 보자.”

과장이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업무 외 이야기를 나누는 건 또 처음이라 나는 오히려 긴장했다.

“용산 서장님은 잘 지내셔. 올해까지만 하고 은퇴셔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지. 은퇴식 할 때 와라.”

“네. 꼭 가겠습니다.”

“이번에 구성준 잡았다며?”

안부 인사 묻는 것처럼 툭, 너무 대수롭지 않게 물어서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예. 파면됐습니다. 완전히 끝냈어요. 일전에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도움이라도 되어줘야지…….”

과장이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가 아차하고 도로 집어넣었다.

어느 때보다 여실히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시원함과 회한, 씁쓸함이 섞여 있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갈 거면서 뭐 하러 그렇게 살았나.”

과장의 말에 묵묵히 바라보던 황민우가 입을 열었다.

“안타까우십니까?”

의외였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황민우가 과장에게 대놓고 물은 것은.

그에게서는 희미한 적대감마저 느껴졌다.

“동기였으니까.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라. 그놈이 거꾸러진 게 안타깝다는 게 아니야. 그따위 인생을 산 그놈의 정신머리가 안타깝다는 거다. 그러니까 눈에 힘 풀어.”

과장이 황민우의 팔을 툭 쳤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구성준은 반드시 쳐냈어야 할 인물입니다. 이렇게 빨리 기회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요.”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구성준이야 당연히 조질 놈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게 당연하긴 하다.

그런데 황민우가 저렇게까지 적대감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네 말이 맞아. 뭐, 나도 동기로서 최소한의 애도만 해준 거다. 내가 설마 진짜로 아쉬워하겠냐?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하다. 고생했어, 너희 둘 다. 그놈 하는 짓이 워낙에 더러워서 쉽게 잡지도 못했을 텐데.”

수단이 좀 더럽긴 했지.

나에겐 많은 공부가 되었고.

“그건 그렇고 황민우, 너는 부모님과 연락 하고 지내냐?”

“…….”

“예?”

황민우는 입을 꾹 다물었고 나는 고개를 홱 돌려 황민우를 바라보았다.

부모님과 연락이라니.

평소엔 연락을 끊고 지낸다는 뜻인데.

그러고 보니 나는 황민우의 집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일할 때 집안이야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하고, 능력만 좋으면 장땡이지 굳이 집안이 좋네, 나쁘네 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으레 평범하게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가 가족 얘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너 신재현한테 집안 얘기 안 했냐?”

과장이 팔짱을 끼더니 나와 황민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약간 한심해 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너 쟤 오른팔 맞지?”

“당연합니다. 저는 주사보님을 위해…….”

“어, 됐고. 자세한 충성 맹세는 굳이 안 해도 돼.”

뭘 묻느냐는 듯 발끈해 하는 황민우의 말을 잘라 버린 과장이 이번엔 나를 향했다.

“넌 얘 네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맞고?”

“당연합니다! 세무서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 이 형이에요!”

“어, 그래. 됐어. 너도 자세하게 말할 필요 없다.”

이번엔 내 말도 깔끔하게 잘렸다.

나란히 억울해하는 우리 둘은 본 과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근데 아직도 사정 몰라? 설마 신재현 너희 집 사정도 얘한테 얘기 안 했냐?”

“그야 우리 집 일을 알려서 쓸데없이 폐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너도 마찬가지고?”

“예. 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과장이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이것들아.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데 서로 사정은 공유해야지.”

“저는 능력과 성격을 보고 황민우 형이 믿을 만하다고 여긴 겁니다. 집안은 상관이…….”

“이 미친놈아.”

-따악!

“악!”

과장이 서류를 들어 내 팔뚝을 후려쳤다.

과장에게 맞아 본 것은 난생 처음이다.

“너 여기서 끝낼 거 아니잖아. 위로 같이 올라갈 거잖아. 그럼 네 사람 챙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이선균 과장이 그렇게 가르치디?”

“이선균 과장님은…….”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 잠수교에서 만났을 때 이선균 과장은 내게 아는 세무사를 소개해 주며 실무 경험도 얻고 알바비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후로도 자주 찾아와 밥을 사주거나, 무슨 일이 있는지 귀띔해 주거나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었다.

“자, 잡담 끝. 훈수가 길어지면 좋은 말도 귀에 안 들어오는 법이니까. 나머진 잘 해결하리라 믿는다. 너희 둘 다 바보는 아니니까. 그럼 간다.”

“아, 예. 들어가십쇼.”

“안녕히 가십시오, 과장님.”

왔을 때처럼 찬바람을 날리며 과장이 휙 사라졌다.

폭풍 같은 쓴 소리가 지나가자 남은 것은 멍한 침묵과 어색함이었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남자 둘이 소회의실에서 야자 타임을 갖는 것도 웃긴 일 아닌가.

나는 머쓱해져서 엉거주춤 서류를 챙겨 들었다.

“이, 일단 급한 것부터 할까요? 얘기는 시간 될 때 하고.”

“그러죠.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회의실을 뛰쳐나와 체납징세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아까 계획했던 대로 큰소리로 외쳤다.

“체납자 연예인 잡으러 갑니다! 실수하면 포토라인 서고 언론에 까일 수도 있는데 함께 하실 분!”

김명중 과장이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었다.

상대가 까다로우니 먼저 하겠다고 덤벼드는 놈은 나랑 비슷한 과의 인간이다.

대상이 어떤 놈이든 상관없이 들이받는 놈.

탈세범은 조지겠다는 놈.

물론 슬쩍 내 실적에 묻어가려는 놈이 있을 수도 있다.

까다로운 놈 건드리고 살아남은 전적이 화려하니까.

그건 앞으로 같이 일하면서 천천히 알아보면 될 일이다.

“없으세요?”

연예인 정도면 덤벼 볼 만하지 않나?

아쉬움을 애써 감추는데 건너편 자리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섰다.

전화를 하고 있던 장세훈이었다.

“예에, 잠시만요. 일단 끊어 보시면 제가 잠시 후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는 온몸으로 전화 중이라는 것을 피력한 후 잽싸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같이 해! 상대가 뭐든 일단 같이 해!”

“오케이 콜!”

내가 콜을 외치자 문가에 앉아 있던 강혜원이 따라서 일어났다.

“7급 두 명이면 8급도 두 명인 게 딱 맞겠죠? 저도 낄게요.”

마침 눈여겨보던 두 명이었다.

나는 서류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받고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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