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92화 (92/500)

92화. 사람을 모아라

일반적인 공무원들은 모르는 물밑의 정리가 끝났다.

나는 그 얘기를 나중에 서장실에서 전해 들었다.

“그러니까 구성준은 파면이라는 거네요.”

“네. 공무원 경력은 하나도 인정받지 못할 거고 연금도 없을 겁니다.”

사직도 아니고 파면.

생각보다 센 처벌이었다.

그래도 서울청장의 사람이라 지방으로 날려가고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번 일로 국세청장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 어떻게 보면 멀쩡한 직원 하나 꼬드겨서 진흙탕에 담근 거니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하십니다. 예전에 청장님이 국장으로 계실 때, 청장 후보 두 명이 박 터지게 싸웠거든요. 그 과정에서 과장, 계장 여럿이 줄줄이 잘려나갔죠.”

서장실에 나란히 앉은 서장과 이선균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덕분에 승진이 빨랐다고는 하시는데, 동료들이 옷 벗는 게 마음에 남으셨나 봅니다. 지금도 일반 직원들 끌어들이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 계장급이 잘려나갈 정도면 그만큼 대놓고 박 터지게 싸웠다는 뜻이다.

“그때 우리 국장님이 혜성처럼 나타나서 깔끔하게 국세청을 정리했거든요. 그래서 국장 직위인데도 다음 청장 후보로 손꼽히는 겁니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기다.

하긴 지방청장도 아니고 차장도 아닌 국장이 어떻게 서울청, 중부청과 맞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민치호 국장의 과거 이야기라니 꼭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뭘 어떻게 하신 겁니까?”

“그때가 언제더라, 국장님이 본청 감찰담당관 밑으로 들어갔을 때였는데…….”

서장이 생각에 잠긴 이선균을 대신에 말을 받았다.

“그때는 세무대학 출신이 청 내에 카르텔 비슷한 걸 형성하고 있었거든요. 뭔 일을 저질러도 서로 감싸주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근데 그걸 해체하셨습니다.”

“카르텔을 해체했다구요?”

듣고도 귀를 의심했다.

카르텔이 괜히 암적인 존재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서로 허물을 덮어주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과정에서 이어진 끈끈함은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반격할 새도 없이 한꺼번에 소탕해야 가능한 것이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사극으로 치면 사화 있죠? 그런 느낌이었죠.”

“자세히 좀 들려주세요.”

“얘기하자면 길어지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상체를 내밀며 캐묻자 이선균이 슬쩍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정말 길어서라기보다는 깊게 파고드는 걸 꺼리는 것 같았다.

나 때문인지 아니면 서장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 호기심은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국장님이 제안하신 건데.”

나와 서장은 국장과 직접 연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지시사항은 이선균이 정리해서 알려주곤 했다.

“내년에 팀 하나 만들 겁니다.”

서장은 아, 하고 짧게 감탄사를 냈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체납징세과가 이미 신설된 곳 아닙니까? 청장님이 새로 또 뭘 만드시는 겁니까?”

체납징세과로 재미를 봤으니 내년에도 임기에 길이 남을 새로운 도전이라도 하려는 걸까.

“아뇨, 청장님이 아니라 국장님입니다. 체납징세과처럼 전국적으로 과를 설립한다는 뜻이 아니라, 신재현 씨가 믿을 수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을 끌어들여서 하나의 팀을 구성해보라는 뜻입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게 전적으로 인사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많아 봤자 10명 안팎인 팀이라지만 내게 사람을 뽑을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물론 내게 권한을 준다면 해 보고 싶은 것이 많다.

나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꿀꺽 삼키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제가요?’ ‘정말입니까?’ 등의 어리석은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팀은 어디에 설치됩니까?”

조사과냐, 법인세과냐, 소득세과냐.

어디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조사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선균은 그 모든 뜻을 담아 단 한 마디로 대답했다.

“서울청입니다.”

“서울청……!”

이번에야말로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무서에서 서울지방국세청으로 옮겨 가는 데다가, 거기에 팀을 만든다?

심지어 서울청은 적의 소굴이다.

국장을 적대하는 서울청장이 수장으로 있는 곳이다.

“당연히 깊은 뜻이 있으시겠지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청장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구성준 한 명의 파면으로 나머지를 덮어주기로 한 대가입니다. 그리고 그 외 자질구레한 것들도 거래를 했지요.”

국장도 나름대로 서울청장을 공격하기 위한 재료를 모아 놨을 텐데, 그걸 이번에 썼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번 일에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반드시 서울청이어야 했어요. 본청으로 가기에는 명분이 부족한데, 서울을 벗어나는 것도 곤란합니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특히 서울에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으니까 기업체든 뭐든 다뤄 보려면 서울 관할이어야 경력 쌓기도 좋거든요. 물론 신재현 씨가 팀원 꼬시기에도 편할 테고.”

그야 다짜고짜 ‘저 밑에 지방청 가자. 좋은 자리 줄게.’ 하는 것보단 ‘같이 서울청 가자.’ 하는 것이 더 보기 좋긴 하다.

“몇 명까지 데려갈 수 있습니까?”

내가 고른 사람은 모두 다 함께 서울청으로 갈 수 있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내게 팀원을 고르라고 했다.

내가 아는 사람은 결국 용산 세무서와 삼성 세무서의 사람뿐이니 그 안에서 고르는 것은 뻔하다.

국장은 그것까지 계산해서 서울청에 자리를 마련했을 것이다.

“신재현 씨 포함해서 최대 6명입니다.”

6명이라…….

굉장히 작은 팀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무서에서 서울청으로 올리는 급행 티켓이나 다름없으니, 6명만 해도 국장이 얼마나 힘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니, 반대로 생각하면 차라리 잘됐다.

이제 겨우 1년 근무한 내 인간관계는 얄팍하다.

어차피 데려갈 만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전적으로 제게 맡기셔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국장님 지론이 그거잖습니까. 한번 맡기기로 마음먹었으면 아예 확실히 밀어준다. 어설픈 시험 같은 건 없습니다.”

이선균은 평소처럼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작 불안해하는 것은 서장이었다.

“이 과장, 근데 정말 괜찮겠어요? 서울청에 그쪽 파벌 수두룩할 텐데.”

“서울청이라고 서울청장 파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공무원이 자기 마음대로 근무지를 골라갈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선균이 말하다 말고 잠시 나를 바라보며 사족을 덧붙였다.

“아, 특수한 경우는 빼고요. 어쨌든 서울청에도 국장님 부하직원이 있습니다. 대놓고 수작 부리지 말라는 엄포도 있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 그 음흉한 서울청장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연신 걱정스러워하는 서장에게 이선균이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내년엔 저도 서울청으로 갑니다.”

“드디어 가나?”

“그럼요. 원래 올해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남은 것 아닙니까.”

“그럼…… 안심이지.”

“나중에 커리어에 적힐 한 줄을 생각하면 서울청은 꼭 거쳐야 합니다. 적이 있다고 피할 이유가 없어요.”

일부러 적지에 뛰어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나와 이선균은 마주 보며 웃었다.

이선균도 나도, 함정이든 외압이든 가만히 앉아서 당할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재현 씨 눈을 믿습니다만, 혹시 조사가 필요하다면 제게 말해주세요. 깔끔하게 털어드리죠.”

계속 함께 갈 사람이라면 누구와 커넥션은 없는지 뒷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게도 조사할 수단은 있었다.

아는 검사 하나씩은 원래 갖고 있는 법 아닌가.

“필요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전달사항 다 얘기했고, 당부도 했고…… 아, 중요한 걸 잊어버렸군.”

이선균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졌다.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수작질이 또 있었나?

분명 국세청장이 엄포를 놔서 당분간은 움직이기 힘들 거라 했는데.

덩달아 내가 심각하게 집중하자 이선균이 빙그레 웃었다.

“휴가는 잘 썼을 거고…… 상여금은 들어왔죠?”

“아, 네. 오늘 월급하고 같이 들어왔습니다.”

엉겁결에 대답했다.

100억 징세를 성공한 대가로 청장이 준 것은 휴가만이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월급에 떡하니 더해서 들어온 것은 특별 상여금이었다.

“오늘 금요일이잖아요. 일찍 들어가요. 어머님한테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선균은 내 뒷조사를 했기 때문에 가족 사항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이선균의 따뜻한 눈빛에 나는 긴장을 풀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안 그래도 퇴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이제 진짜로 전달사항 끝입니다. 오래 붙잡아서 미안합니다. 얼른 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이선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자 푸근하게 웃는 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침 7시 조금 넘은 시각.

주말인데도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열었다.

어제 사촌 동생과 메신저를 하다 잠든 터라 화면을 켜자마자 대화창이 떴다.

-신수정 : 오빠, 갑자기 맛집은 왜? 여자친구 생겼어? 데이트 가게?

-그런 거 아니다.

-신수정 : 아, 왜! 갑자기 맛집은 왜 찾는데! 누구랑 갈 건데? 썸 타는 사람 있어?

-어머니랑 갈 거야, 인마.

-신수정 : 아.

잠시 몇 분간의 침묵이 흘렀다.

어제 저녁 이 몇 분을 기다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신수정 : 숙모 뭐 좋아하셔?

-신수정 : ? 왜 안 읽음?

-신수정 : 자냐?

-신수정 : 아오씨.

-신수정 : 숙모 드실 만한 거로 내가 추천해 줌. 일어나서 읽어라.

-신수정 : 역에 이거 세 군데 괜찮음. 내가 직접 가 본 곳만 추천한다. 양식도 괜찮으신가? 혹시 모르니까 2개 더 추천함. 그리고 카페는 옆 골목에 주르륵 있는데 다 필요 없고 세 번째 가게 들어가셈. 밑에 링크 누르면 주소 다 나온다.

그리고 폭풍처럼 메신저 창이 온갖 식당과 디저트 가게로 도배되어 있었다.

다 처음 보는 가게였다.

용산에 이런 곳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신수정 : 그리고 숙모랑 데이트하면서 찐따 같이 입고 가지 마라. 얼굴 아깝다.

이놈이…….

어이가 없어서 메신저를 닫으려는데 사진 몇 장이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름 남자 패션이랍시고 코디를 추천해 준 것 같았다.

뭐, 매일 정장만 입고 다니느라 내 감각이 죽었을 수도 있지.

나는 조용히 사진을 저장하고 방을 나왔다.

“아들, 일찍 일어났네?”

주방에서 국을 끓이던 어머니가 돌아보았다.

문득 어머니의 낡은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시장에서 3장에 만 원 하는 싸구려 티셔츠였다.

그마저도 몇 년을 입었는지 소매가 닳아 올이 터져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가 오늘만 이 티셔츠를 입은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보면서도 나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

목이 메여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어디 안 좋아?”

내 걱정이 우선인 어머니를 보자 가슴께에서 울컥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엄마, 놀러 나가자.”

“으응? 갑자기 왜?”

“내가 요즘에 너무 집하고 회사만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서. 엄마도 바람 좀 쐬고, 옷도 사고.”

“얘는. 그런 데다 무슨 돈을 쓰니.”

어머니는 대번에 정색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미덕인 시대의 전형적인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더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자신을 위해 뭘 쓰는 것이 어색한 분이었다.

“사실 이따 드리려고 했는데…….”

나는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책장 사이에 끼워 두었던 봉투를 꺼내 왔다.

그것을 조금은 멋쩍게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특별 상여금 받았어. 엄마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드시고 싶은 것도 드시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