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91화 (91/500)

91화. 실패한 사냥개

[청장실]

구성준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자꾸만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만회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다 잡은 고기였다.

이런 짓을 하루 이틀 해 본 것도 아니다.

특별히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그저 평소 하던 대로 함정을 파고 어긋남이 없도록 신경을 기울였을 뿐이다.

그리고 보통은 이렇게 하면 항상 성공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구성준은 항상 승승장구했다.

방해되는 것이 있으면 가차 없이 치워 버렸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지방국세청장의 눈에 들었다.

지난번 용산 세무서에서야 제대로 맞붙은 것이 아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패배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구성준의 방식으로 덫을 놓고 사냥을 했다.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붙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졌다.

‘어디서 그런 놈이 나온 거야……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구성준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미 기회는 날아갔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머리를 쥐어짜 내야 할 차례였다.

들어가서 싹싹 빌 것인가,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그간 서울청장이 해 온 일을 쥐고 협박할 것인가.

셋 다 최선책은 아니다.

그러나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해 온 일이 얼만데 설마 나를 버리겠어? 이 정도로 깔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과를 하나 통째로 날리고도 뒷말 나오지 않게 처리한 것도, 서울청장이 못마땅하게 여기던 과장을 썰어버린 것도 그였다.

애초에 감사관이라는 자리는 내부에서 감찰하기 위한 것.

서울청장의 눈이자 칼이 바로 그였다.

‘문책은 있겠지만, 아예 버리진 못할 거다. 한배를 탄다는 건 그런 거니까.’

구성준은 생각을 마쳤다.

객관적으로 상황 분석을 해 보고 나니 거짓말처럼 떨림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실패하고 돌아온 입장에서 너무 당당하게 보일 순 없다.

구성준은 살짝 긴장을 끌어올리며 청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너른 청장실.

이 방의 주인이자 서울 모든 세무공무원의 정점인 지방청장 오낙현이 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원래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긴 했지만, 역광이 드리워지자 인간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쉽지 않겠다.’

구성준은 더 다가오지 않고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

청장에게선 반응이 없었다.

구성준은 말이 끊길까 무서워 재빨리 변명을 이어나갔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제 계획은 완벽했습니다. 다만 현장의 ‘실행자’가 어설펐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지시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현장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제 선에서의 실수는 없었습니다.”

일견 버릇없어 보이는 말투였지만, 이것이 통상적인 보고 방식이었다.

서울청장 오낙현은 부하직원이 제 분수를 알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파악해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함정을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대상의 경력이 짧아 감사에 올릴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 실패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구성준은 뒷말을 삼키고 조용히 청장의 말을 기다렸다.

망부석이 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청장이 저벅저벅 구성준에게 다가왔다.

“구성준.”

“예, 청장님.”

“너는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 했군.”

구성준은 눈이 번쩍 뜨였다.

자기반성도 끝냈고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어필도 했다.

그런데도 청장은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까 계획이 완벽했다고 했지? 그 말은 틀렸다.”

구성준 앞까지 다가온 청장이 빤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평소 대외활동을 할 때 짓는 미소가 사라진 청장의 얼굴은 기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표정했다.

“첫째로 너는 이선균을 간과했다. 일개 과장이라지만 그는 민치호가 신뢰하는 오른팔이야. 그 민치호가 설마 아무나 심복으로 두진 않겠지?”

청장의 말투는 환담을 나누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청장의 양손이 구성준의 어깨에 올라오고 곧이어 거세게 내리눌렀다.

“둘째로 너는 자만했다. 계획이 완벽하다고? 정말 완벽했다면 실패란 단어가 있을 수 없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주제 파악 못 하고 날뛰는 것들이야. 그런데 너는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꾸욱.

어깨를 누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구성준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청장이 누르는 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

그러나 청장은 멈추지 않았다.

“셋째로 너는 신재현을 간과했다. 작년 용산 건이야 그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그럴 수 있다 치자. 이번에는? 그간 그놈이 처리해온 건만 공들여 훑어봤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구성준이 바닥에 손을 짚고 꿇어 엎드린 자세가 되고 나서야 청장이 손을 뗐다.

구성준은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이 가득한 얼굴로 청장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껏 청장을 모시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놈은 너보다 하수가 아니야. 일 처리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지. 너는 전력을 다해 민치호의 사냥개보다 네가 낫다는 것을 증명했었어야 해.”

“하지만, 청장님!”

청장은 빳빳하게 치켜든 구성준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천천히 고개가 꺾이고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처박은 모양새가 되었다.

분노와 초조함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구성준 머리 위로 청장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건은 투견장이었다. 사냥개와 사냥개가 스스로의 이빨이 더 날카롭다고 짖어대는 판이었지. 나는 너에게 판돈을 걸었고, 그 자리엔 중부청장도 있었다.”

“헙.”

구성준이 숨을 들이켰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서울청장은 신재현을 치면서 중부청장과 손을 잡으려 했다.

앞서가는 한 명을 끄집어 내리기 위해 다른 두 명이 손을 잡는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패를 보여 줘야 했다.

잠시 동맹을 맺는다고 해도 결국은 적.

기세 싸움에서 밀렸다가 자칫 한쪽이 다른 쪽에 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가 요리해서 징계위로 넘기면 징계위에서 중부청장이 처리한다. 그게 계획이었어. 너는 그 간단한 걸 실패했고.”

-덜덜덜.

구성준이 눈에 보이도록 떨기 시작했다.

그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켰다.

변명도 보고도 필요 없었다.

구성준이 실패한 시점에서 이미 결과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성준은 청장의 얼굴에 먹칠을 했고, 청장이 정적에게 트집잡힐 명분을 제공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해 온 정이 있어서 네가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꿇고 빌면 거둬 주려고 했다. 나는 주제 파악할 줄 아는 놈은 싫어하지 않거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보다, 청장의 저 말이 더 싸늘했다.

바닥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구성준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청장님. 제가 잘못 판단했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바로잡겠습니다.”

“그 말은 작년에도 하지 않았나?”

“저는 더러운 일에도 거리낌이 없고, 청장님에 대한 충심이 투철합니다. 어느 정도 눈치와 머리도 있다고 자부합니다. 물론 감사관 자리는 내어놓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받아들인 구성준이 얼른 말을 이었다.

“청장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어떤 명령도 감수하겠습니다. 처음 청장님을 모셨을 때처럼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구성준, 네가 써먹을 만하긴 하지.”

이 정도면 성공이다.

구성준은 다시 희망의 끈을 쥐었다.

이 자리까지 올라오기 힘들었던 만큼 감사관 자리를 내놓긴 아쉬웠다.

그러나 그것 또한 눈앞의 서울청장이 내준 자리다.

자리가 아닌 청장에 대한 집착을 보여 줘야 연명할 수 있었다.

“네가 적당히 유능해서 내린 결정이다.”

“예?”

“청장님이 화나셔서 말이야.”

여기서 말한 청장이 눈앞의 서울청장 오낙현이 아니라는 건 금세 알았다.

서울청장이 ‘청장님’이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국세청장.

모든 세무 공무원의 수장.

“두 번 다시 물 위에서 수작질했다가 들키면 측근들 모조리 해남으로 보내 버린다고 하신다. 책임질 놈도 하나 필요하고.”

국세청장이 여의도나 청와대를 노린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 때문에 자그마한 소동만 있어도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한다는 것도.

그렇다면 이 책임이라는 말은…….

“저를 이렇게 버리실 수는 없습니다. 청장님, 제가 그동안 얼마나 충성을 다했는지 아시잖습니까!”

구성준은 다급히 일어나 무릎걸음으로 청장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청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둘 중 하나 선택해. 스스로 옷 벗든가 파면되든가.”

“청장님! 이건 아닙니다! 제가 그간 해온 모든 것들은 다 청장님을 위한 거였습니다. 저를 버리시면 그 모든 게 다 세상에 드러나는 겁니다!”

뒤로 슬쩍 물러나려던 청장이 구성준의 외침에 우뚝 멈췄다.

구성준은 순간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다.

“꼭 조용히 나갈 기회를 줘도 이렇게 협박하더라. 구성준, 네가 한 모든 일을 까발리면 잡혀 들어가는 건 날까, 널까. 너 하나 묻히게 하는 건 일도 아닌데. 너도 잘 알잖아.”

“…….”

나지막한 목소리였는데도 가볍게 들을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청장은 말을 잃은 구성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곧 손님 올 시간이니 나가 봐. 짐 정리할 시간은 줄 테니까.”

청장이 책상으로 돌아가 자리에 걸터앉았다.

명백한 축객령이었지만, 구성준은 차마 일어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수많은 피와 땀이 서렸다.

물론 구성준의 것이 아니라 그에게 밟힌 세무공무원들의 것이었지만.

그것이 미치도록 아까웠던 구성준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발악해 보기로 했다.

“청…….”

-똑똑.

“들어와.”

구성준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삼성 세무서의 서장 한대윤이었다.

“……!”

눈을 부릅뜬 그는 충격적인 광경에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자세 그대로 멈췄다.

“들어오라니까.”

“……예.”

한대윤은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구성준을 훑었다.

그 시선을 느낀 구성준이 무참히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일인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청장님. 항의하러 왔지요.”

한대윤은 능글맞게 웃어넘겼다.

일개 서장이 지방청장실에 직접 항의하러 쳐들어온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때문인지 한대윤은 느물거리며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했다.

“제 체면도 좀 생각해 주셔야죠, 청장님. 부하직원이 저한테 얼마나 따지는지. 귀가 따가워 죽겠습니다.”

“이선균이 따졌겠지.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이 과장도 제 부하직원입니다. 저는 거짓말 안 해요.”

“쯧.”

청장의 손짓에 한대윤이 소파에 앉았다.

마치 이 방에 둘만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구성준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것이 구성준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제가 과한 반응은 아니지요? 항의할 만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주제를 잘 알아서 마음에 들어.”

“과찬이십니다.”

“내 밑으로 들어오랄 땐 무시하더니, 하필 거기로 갔어.”

청장이 다시 혀를 찼다.

“그야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그렇죠. 당장 지금만 해도…… 보십쇼.”

한대윤의 시선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구성준에게 닿았다.

청장은 눈에 띄게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그가 지은 표정 변화 중 가장 격렬한 것이었다.

“칭찬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선을 넘나.”

“이제 적인데 이 정도는 해야 저도 저어기 세종시에 계신 분한테 낯은 서지 않겠습니까.”

한쪽은 담담한 어조로, 한쪽은 웃으면서 하는 대화였지만, 방 안은 칼바람이 치는 듯했다.

“그래도 온 목적은 달성했으니 됐습니다. 그만 기어오르겠습니다.”

한대윤은 구성준을 노골적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청장의 생각이 어떠했든 간에 그의 팔 하나가 잘려나가는 것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했다.

“아직도 있었나? 나가라고 했을 텐데.”

구성준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눈앞이 핑핑 돌아 지금 서 있는 곳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습관적으로 걷다 보니 자신의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알던 사무실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이거 뭡니까?”

“아, 청장님이 방 비우라고 하셔서요. 감사관님 어디 이동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책상이고, 자료고 할 것 없이 깔끔하게 비워진 방 앞에서 왠지 모르게 그간 자신이 밟고 올랐던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경력, 명예, 직위.

그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먼 곳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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