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85화 (85/500)

85화. 삼성 세무서의 사람들(1)

삼성 세무서는 축제 분위기였다.

전국의 서장과 국장급이 모인 자리에서 청장이 직접 지목까지 했다던가.

기자들 있는 앞에서 노골적인 칭찬도 있었다고 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오를 대로 올랐다.

“쟤들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 하겠어?”

“까짓거 우리도 열심히 해보자!”

사람은 보상이 따를 때 가장 의욕적으로 변한다.

돈이나 물질적 보상은 아니었지만, 청장이 직접 언급했다.

그것 자체도 공무원에겐 명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세무공무원들을 자극했다.

바로 승진이다.

“그 팀은 다음 정기 때 웬만하면 서울청 가겠죠?”

“최소가 지방청이고 그중에서 공을 세운 사람은 본청 갈 수도 있겠죠.”

“안 그래도 청장님이 자기 임기 중에 업적 내세우려고 만들어둔 팀인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요. 청장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을걸요?”

“청장님 정말 여의도 가시려고 저러나?”

“실적에 목매는 걸 보면 아마 그러지 않겠어요?”

체납징세과가 아닌 직원들은 반쯤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부러움과 질시가 뒤섞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른 팀 이야기다.

열심히 하면 우리도 주목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반면에 같은 과인 체납2팀은 분위기가 달랐다.

“크, 나도 청 가고 싶다. 500억, 1000억짜리 과세권 다루는 놈들은 대체 어떤 심정일까?”

“우리랑 똑같죠, 뭐. 자료 분석하고 납세자랑 싸우고 고지서 날리고.”

“그게 같나요? 적어도 청에는 100원 깎아달라고 전화 오는 납세자가 없잖아요.”

“쩝. 그건 그렇네요. 세금이 몇십억 왔다 갔다 하는데 100원 갖고 전화 오진 않겠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이들이 1팀과 다른 것은 팀에 붙은 숫자뿐.

자신들도 같은 체납징세과이고 충분히 기회가 있다.

잡기만 하면 1팀처럼 일약 폭풍의 중심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저 중에서 몇 명이 청에 갈 거라고 생각하세요?”

체납2팀의 직원 둘은 슬쩍 파티션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직 5시밖에 안 됐는데 직원들이 부산했다.

회식하러 가기 위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는 못 가겠지만 최소한 한 명은 알겠습니다.”

순간 두 직원의 머릿속에 같은 이름이 떠올랐다.

입 밖으로 그 이름을 내지는 않았지만 둘은 직감했다.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그 증거로 둘의 시선은 동일한 인물에 꽂혀 있었다.

“어디까지 올라갈까요? 저 사람.”

“그건 모르겠지만 나중에 취임사 뜰 때 함께 적힐 인터뷰나 기사에 뭐라 쓰일지는 예상이 가는데요.”

“말단 직원일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이런 거요?”

“네, 그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직접 그 인터뷰를 하게 될지도 모르죠.”

두 직원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터뷰의 주인공이 되실 생각은 없고요?”

잡담을 듣고 있던 앞자리 직원의 말에 대화를 나누던 둘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우리도 가만있을 순 없죠. 다음엔 2팀이 주목받을 겁니다. 두고 봐요.”

“쉽지는 않을걸요.”

“아, 왜 의욕 넘치는 사람한테 찬물을 끼얹고 그러십니까.”

대화에 끼어들었던 직원이 슬쩍 2팀의 다른 직원들을 가리켰다.

“다들 그런 생각이에요. 출세와 가깝다, 하면 된다. 그걸 눈앞에서 직접 보여준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동안 적당히 시간만 때우던 공무원들도 눈이 뒤집히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나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동안 서장이 일부러 실적이 최고다, 라는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도 직원들의 향상심을 유발하기 위해서다.

체납1팀에서 벌어진 일은 거기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삼성 세무서의 전체적인 실적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런 가운데 딱 한 명, 이 분위기에 낄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석민 씨, 회식 안 가요?”

“아, 예…… 일이 남아서요. 다녀오세요.”

체납추적1팀 직원들이 예의상 박석민에게 물었다.

박석민이 거절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두 번 되묻지도 않았다.

다들 뿌듯하고 보람 가득한 표정이다.

저들도 알고 있었다.

박석민은 실제로 회식에 못 갈 정도로 일이 바쁜 게 아니다.

저 자리에 낄 만큼 뻔뻔하지 않은 것뿐이다.

조사에 빠졌던 또 다른 직원은 자기 생각이 짧았다며 일찌감치 사과하고 무리에 따라갔지만, 박석민은 그러지 못했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겨우 한 번의 실수다.

단 한 번 선택을 그르쳤다고 이렇게 패배자처럼 지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두고 봐라. 다음엔 입장이 역전되어 있을 테니까.’

박석민은 이를 으득 갈며 업무에 열중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대로 끝날 수는 없어.’

지난 며칠간 필사적으로 명단을 뒤지고 야근을 하면서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그도 알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100억의 임팩트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걸.

게다가 그는 팀원들이 힘들 때 가망 없다며 배를 버리고 탈출한 사람이 아닌가.

사람은 사소한 것만으로도 원한을 품는다.

그런데 이건 사소한 게 아니었다.

다 같이 고생하던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매몰차게 버리고 나간 팀원.

박석민의 취급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제길. 지들도 그냥 따라갔을 뿐이면서.’

들뜬 기색도 없이 자리에 앉아 일하는 ‘그놈’과 그 주변에 파리 떼처럼 들러붙은 1팀 직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겨우 2미터 남짓한 거리인데도 그사이에 깊게 파인 절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웬만한 일로는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고 싶었다.

준비를 마친 1팀원들이 우르르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금액 제한 없는 회식에 내일부터 이틀간 휴가.

청장님의 특별지시로 내려온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박석민은 없었다.

그것 또한 박석민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정공법으로는 안 돼…….’

평소라면 할 수 없었던 온갖 불법적인 상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스로 자초한 고립 속에서 박석민은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었다.

-드르르.

박석민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발신자 표시 제한.

딱 봐도 수상하다.

잠시 고민하던 박석민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박석민 씨.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입니다.

“예…… 예?”

-아직 사무실이죠? 잠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주차장으로 내려오겠어요?

마침 지금은 1팀 직원들이 나가고 없었다.

2팀이야 박석민이 어딜 나가는가보다, 하고 말 테니.

지켜보고 있던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박석민 씨에게도 나쁜 얘기는 아닐 겁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청이다.

그것도 청장 직속국의 감사관.

까짓거 들어보고 불리하다 싶으면 나오면 되겠지.

“금방 가겠습니다.”

박석민은 흘끔 2팀의 눈치를 보고서 코트를 챙겼다.

자신에게 온 또 다른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박석민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

1팀과 징세팀이 다 함께 들러붙은 건이 드디어 끝났다.

어렵다기보단 시간과 인력을 갈아 넣은 싸움이었다.

함께 오랜 시간 고생했고, 거기다 결과가 좋으니 팀원들의 사이는 한층 더 돈독해졌다.

힘들 때 곁에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했던가.

직장 동료도 마찬가지다.

지금 회식 자리에서 인사이동 직후의 서먹서먹함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쨍!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오늘은 서로를 다독이고 회포를 푸는 자리다.

평소라면 격식을 차리느라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술을 마셨겠지만, 오늘은 그런 예의도 벗어 버렸다.

선배 직원이나 윗 직급에게 술을 따라주지 않아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소주, 어떤 사람은 맥주, 어떤 사람은 막걸리.

술 취향도 제각각이었고 먹는 속도도 달랐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주제는 하나였다.

“이야, 내가 말했잖아. 된다니까?”

식당이 떠나가라 외치는 것은 장세훈이었다.

그는 물 마시듯 벌컥벌컥 맥주 한 잔을 비우더니 누가 따라주기도 전에 스스로 자기 잔을 채웠다.

“내가 멍청이가 아니에요. 이건 가능하다, 각이 잡히니까 따라간다고. 얘랑 일하면 절대 후회할 일이 없어. 봐봐, 힘들긴 해도 무지 재밌지 않았냐?”

“예예, 주사보님. 일단 안주 좀 드시죠. 벌써 얼굴이 벌겋습니다.”

“뭐, 어때! 내일 휴가인데! 이런 날 먹어 줘야 되는 거야!”

“제가 못 먹고 있잖습니까! 태진아! 주사보님 좀 데려가라!”

“에이, 장세훈 주사보님은 제가 감당 못 하죠.”

장세훈 근처에 앉은 직원들이 서로 상대에게 장세훈을 떠넘기고 있었다.

물론 장난이다.

장세훈도 재밌어하며 받아주고 있었고.

내가 장세훈 주량을 안다.

겨우 저 정도로 취할 사람은 아닌데.

슬쩍 둘러보니 벌써 꼬부라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술이 들어가서가 아니라 분위기에 취한 것 같았다.

“제가 맡은 게 배우자 친인척 통장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자금 흐름이 이상한 거예요. 잘 짜 맞추긴 했는데 위화감이라고 해야 하나. 뭔지 아시죠? 그래서 여동생 통장을 한 줄 한 줄 대조했더니 글쎄 거기서 뭐가 나왔는지 아세요?”

자신의 공로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

“집에다 돈 숨겨놓은 장소 참 창의적이더라. 겨울 점퍼 두꺼운데 안감 뜯어서 바느질해놓은 거 봤냐? 내가 옷장 뒤지면서 느낌이 쎄하더라고. 캬, 바느질 뜯으니까 다이아 나오는데 어우!”

징세하러 나갔을 때 발견한 것을 말하는 사람.

저마다 이야깃거리는 많았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한몫 거들었고, 모두의 노력이 모여 100억이라는 징세를 이루어냈다.

할 말이 없어서, 거든 것이 없어서 끼지 못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조사 중간에 자기는 못하겠다며 박석민을 따라 빠졌던 직원뿐이다.

그는 얼굴 가득 부러운 표정을 띄운 채 무용담을 듣고 있었다.

“근데 진짜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걸 조사할 생각을 했을까요. 솔직히 전 제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조사 중간에 빠졌던 직원이 술의 힘을 빌려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1과 직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움찔하면서도 소주 한 잔을 시원하게 비운 뒤 목소리를 높였다.

“신재현 주사보님이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그렇잖아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에요. 지금 와서는 제가 안목이 짧았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집에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는 빈 잔을 들어 그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똑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과연 100억을 징세하러 갔을까? 하고 저 자신에게 질문해 보니까, 나온 대답은 NO란 말이에요.”

직원은 잔을 내려 거기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소주잔을 통해 그의 형체가 일그러져 보였던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솔직히 열등감도 들고 혼자 자괴감도 느껴졌어요. 왜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끝까지 믿지 못했을까?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요.”

직원은 다시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들이켰다.

그렇게라도 풀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가끔 뉴스 나오잖아요?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진 아이를 받아낸 사람, 도망가는 범죄자한테 달려들어서 잡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 인터뷰 보면 ‘무의식적으로 손이 나갔다, 해야 하니까 했다.’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런 거예요.”

술이 들어가서인지 논리정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위의 직원들은 왠지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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