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83화 (83/500)

83화. 100억을 향하여(3)

눈이 휘둥그레진 경찰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경찰 뒤에 숨어 있던 임석환이 움찔했다.

“아니, 지금 정당한 공무집행 하는 사람들한테 수갑 채우라고 신고한 겁니까? 예? 우리가 호구로 보여요?”

경찰이 경멸 가득한 눈으로 추궁하자 임석환이 되레 당당하게 소리쳤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말이야! 강도단이랑 똑같이 행동하고!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다 똑같은 도둑놈이구만!”

어이없어진 경찰이 대꾸했다.

“도둑놈은 당신이겠지. 세금이 한두 푼도 아니고 100억이나 밀려놓고 민중은 얼어 죽을…….”

“반장님, 말 좀 가려서…….”

어려 보이는 경찰이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경찰들이 잠시 입을 다문 사이 임석환이 앞으로 박차고 나왔다.

“아니라고! 여긴 내 집이 아니라니까! 그래, 내가 체납했다 쳐. 근데 이 나라가 연좌제야? 왜 처제 집을 뒤지냔 말이야!”

아까는 분명히 ‘내 돈’이라고 해 놓고 이제는 발뺌을 하시겠다.

어이가 없어져 빤히 쳐다보니 경찰이 곤란한 얼굴을 했다.

“정당한 공무를 방해하긴 죄송한데, 저 말이 사실이면 확인은 해야 됩니다. 여기가 이 도둑놈, 아니 체납자 재산 맞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나는 가방을 열고 준비해 온 서류를 꺼냈다.

임석환이 인정 못 하고 발악할까 봐 준비해 온 자료다.

지난 한 달간 야근해가며 정리한 것으로 체납과 직원들의 피땀이 서린 것이기도 했다.

“임석환 씨가 부인이라 하는 분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김현숙 씨를 뜻합니다. 그분의 여동생이 비영리법인을 하나 세웠거든요. 거기에 전 재산을 출연했더군요.”

“응? 저는 그런 어려운 얘기는 잘 몰라서요.”

경찰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의 앞장을 넘겼다.

PPT 형태로 보기 쉽게 정리한 도식도가 있었다.

[체납자 임석환 - 비영리법인 - 처제]

“원래 남한테 공짜로 재산을 주면 증여세를 내죠?”

“당연하죠.”

“비영리법인이 뭔지는 아시죠?”

“그…… 장학금도 주고 좋은 일 하는 단체들 아닙니까.”

가장 앞에 서 있던 경찰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내는 재산은 증여세를 안 내요.”

“아! 알겠다!”

뒤쪽에 서 있던 젊은 경찰이 소리쳤다.

“증여세도 안 내니까 재산 빼돌려서 자기가 슬쩍 다 썼다는 거네요!”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야!”

경찰들이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임석환이 답답해하며 삿대질을 했다.

“처제 집이라니까 여기는! 다 처제 재산이라고! 대체 내 세금이랑 무슨 상관인데!”

“상관있습니다. 정작 그 처제가 백혈병으로 병원에 계시잖습니까. 성년 후견인으로 임석환 씨의 지인이 등록되어 있구요.”

“그야 처제가 아프고 바깥 생활이 힘드니까 친구가 재산 관리를 해주는 거지.”

나는 서류뭉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교묘하게 잘 숨겨두셨더군요. 처제 이름으로 비영리법인을 만들어 증여세를 회피하고 그 재산을 백혈병 아이들 지원한답시고 후원했죠. 재단 대표자가 제대로 된 활동이 불가능하니 친구분, 엄밀히 말하면 친구분 이름을 빌린 임석환 씨가 다 휘둘렀고. 실제 후원한 것이 아니라 여기 이곳, 처제분의 집으로 흘러들어온 건 여기 다 조사해뒀습니다.”

게다가 말이 처제지 그녀와 임석환은 서류상 아무런 관계도 없다.

부인과 혼인신고도 하지 않아 그야말로 주변인을 이 잡듯이 뒤지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도 어렵다.

-부스럭.

임석환이 거친 손길로 종이를 잡아챘다.

한 장 두 장, 종이가 넘어가고 그의 얼굴도 자연히 와락 일그러졌다.

“이. 이걸 대체 어떻게…….”

“많은 시간과 사람을 갈아 넣었습니다. 저희도 많은 노력이 있었죠.”

“아니야. 이럴 리 없어! 내가 몇 년을 피해 왔는데! 안 돼, 내 돈!!!”

불같이 화를 낸 임석환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간 종이뭉치를 주운 경찰이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 내게 건넸다.

“저 반응을 봐선 사실인 것 같네요.”

“그럼요. 무려 두 팀이나 동원된 장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여기에 매달려서 아무것도 못 했거든요. 관계자만 50명은 조사한 것 같습니다.”

“저희랑 비슷하네요.”

경찰이 동질감을 느꼈는지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저희도 범인 한 명 잡으려고 수십 군데를 파고 잠복하거든요.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이런 게 저희 일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씨익 웃었다.

-쾅!

-쨍그랑!

“꺄악!”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팀의 여직원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체납자분이……! 선생님! 잠시만요, 그건 내려놓고 얘기하세요!”

“다들 꺼져! 내가 이걸 어떻게 모았는데! 내가 두 눈 뻔히 뜨고 뺏길 것 같냐!”

임석환은 손에 들고 있던 골프채를 공중에 휘둘렀다.

센스 있게 차려입은 옷자락이 구겨져 있고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딱 봐도 이성을 잃었다.

하긴, 몇 년만 버티면 징세권이 소멸한다.

그걸 못 버티고 재산을 눈앞에서 빼앗기게 생겼으니 눈이 뒤집힐 만하다.

황민우가 긴장한 얼굴로 여직원과 임석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임석환을 막을 적임자는 따로 있었다.

“드디어 저희가 나설 일이 왔군요.”

대문 앞에 서 있던 경찰들이 순식간에 내 옆을 스쳐 갔다.

그들은 요령 좋게 임석환 주위를 둘러쌌다.

“임석환 씨. 골프채 내려놓으세요.”

“이 개새끼들아! 너희나 그거 다 내려놔!”

여직원이 든 보석함을 골프채로 가리킨 순간, 슬그머니 뒤로 돌아간 경찰 하나가 임석환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이거 놔!”

임석환의 난동은 5분도 안 되어 마무리되었다.

제압은 순식간이었다.

“그럼 수고하십쇼.”

임석환을 질질 끌고 나가며 경찰이 경례를 했다.

“체납자 본인의 입회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모두 철저하게 사진으로 자료 남겨두세요. 절차에 하자가 있어선 절대 안 됩니다!”

우리 중 가장 징세 경험이 많은 징세팀 직원들이 굳은 얼굴로 외쳤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어! 금괴다!”

거실 바닥 카펫을 들어내자 나온 비밀 금고에서.

“달러 나왔습니다!”

옷장 속 깊숙한 곳에 들어 있던 여름옷 주머니에서.

“이거 다이아 같은데요.”

심지어 청소기 안에서도.

“금품은 거의 수거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다음 장소로 가죠.”

오늘 우리가 들릴 곳은 여기만이 아니었다.

***

-달달달.

고요한 사무실에 다리 떠는 소리가 방정맞게 울렸다.

체납추적1팀.

원래는 10명의 직원들이 북적여야 할 곳이었지만, 지금은 박석민과 또 한 명의 직원만 남아 있었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박석민은 초조하게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화면에 무언가 띄워놓긴 했지만,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온 신경이 귀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떻게 그걸 진짜로 조사하냐고. 미친놈들.’

불가능한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빠져나왔다.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는 게 더 바보짓 아닌가.

자신은 항상 합리적인 선택으로 이 자리까지 왔고,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오늘 정말로 징세하러 나가 버렸다.

‘아냐. 허탕 치고 올걸. 지금까지 못 잡은 걸 지들이 무슨 수로 잡아.’

생각해보면 조사만 완료되었을 뿐 징세를 완료한 건 아니다.

그 전에 징세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빈손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저놈들이 실패하고 돌아오면 나는 선견지명을 가진 게 되는 거야. 합리적이고 판단 정확하고. 그래. 차라리 이건 기회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추락하는 건 자신이다.

반드시 저들은 실패해야 했다.

체납자가 부당하게 재산을 숨겼든 말든 이젠 아무 상관 없었다.

박석민은 속으로 체납자를 응원했다.

‘지금까지 잘 버텼잖아. 이번에도 잘 넘어가라고!’

그렇게 하루를 꼬박 불안함 속에서 잡히지도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해치우고 있던 박석민은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기다렸지만 기다리지 않았던 자들이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박석민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들의 손을 훑었다.

들고 나갔던 서류철만 보일 뿐 돈이나 귀금속은 보이지 않았다.

박석민은 휴,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이젠 당당하게 나갈 때였다.

“이제 겨우 들어왔네.”

2팀과 과장, 팀장들의 시선도 그들에게 꽂혔다.

사무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박석민은 그 속에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들을 몰아세웠다.

“큰소리치더니 꼴이 이게 뭡니까? 그러게 사람은 판단을 잘 해야 하는 법이에요. 이 추운 날 하루 종일 나가서 허탕이나 치고. 아니, 하루 종일이 아니지, 한 달 내내였지. 남들은 다 실적 올렸는데 우린 어떻게 할 겁니까?”

찬바람에 얼굴이 튼 1팀의 직원들이 조용히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박석민은 더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에휴, 그럴 줄 알고 내가 5억짜리 하나 추적해서 걸어놨습니다. 당신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합니다.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요.”

이 정도면 잘 알아들었겠지.

박석민이 내심 흡족함을 느끼며 돌아서려는데 1팀 직원들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피식.

비웃음?

아니다.

가소로운 걸 본다는 표정이었다.

“뭡니까? 누가 방금 웃었어요? 체납과가 만만해 보입니까?”

불안해진 박석민이 큰소리를 치자 두 번째 줄에 서 있던 여직원이 너덜너덜한 종이를 들어 올렸다.

[징세 물품 목록 - 체납징세과 체납추적1팀]

-체납자 임석환

찬바람과 손때를 타 꾸깃꾸깃해진 종이에는 손글씨로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정갈한 여직원의 글씨.

이들이 현장 나가기 전 했던 대화가 생각났다.

‘징세품 리스트는 누가 쓸까요?’

‘글씨 제일 예쁜 사람이 써야죠.’

‘그럼 저네요?’

그땐 속으로 비웃었는데.

여직원 손에 들린 리스트는 한 장이 아니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힘들었네요. 정원까지 다 뒤지느라.”

“그, 그럼 징세품은 어디에…….”

왜 빈손이란 말인가.

박석민은 흔들리는 눈길로 직원들을 훑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온 것은 1팀의 직원들뿐이었다.

“아. 징세팀에서 금고에 넣으러 갔어요. 여기로 들고 올 수는 없잖아요. 외부인도 출입 가능한데.”

현금도 아니고 귀금속 종류라면 감정해서 처분할 때까지 따로 보관해야 했다.

그러니 징세팀이 보관하러 갔겠지.

박석민은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그걸 징세했다고요?”

“네.”

“어, 얼마…….”

“100억 다는 못했고요. 부동산까지 포함해서 한 80억?”

“80억!”

박석민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목소리를 높였다.

2팀 곳곳에서 억!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처음엔 우리도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따라가니까 되더라고요. 그쵸?”

여직원이 1팀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하자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굴 말하는지는 뻔했다.

가장 먼저 100억짜리 체납자를 맡자고 제안하며 자료를 가져왔던 그 직원 얘기다.

“어, 어째서 성공한 거야.”

머릿속이 혼란해진 그는 본심을 말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맨 앞에 서 있던 신재현이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이러려고 세무서에 들어온 것 아닙니까?”

“맞는 말만 골라서 하시네요.”

1팀 직원들이 후련한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그들은 단순히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힘을 합쳐 이루어냈다는 것에 고무적이었다.

만족감과 약간의 흥분.

무용담을 얘기하듯 현장 조사 일을 풀어놓기 시작하는 직원들.

그러나 박석민은 같은 1팀이면서도 거기에 낄 수가 없었다.

“리스트 정리하고 사진 뽑아서 보고서 올리죠.”

“그 영광스러운 역할은 신재현 씨께 맡기겠습니다!”

활달한 분위기의 여직원이 장난스럽게 두 손으로 받쳐 리스트를 넘겼다.

“덕분에 보람 있고 재밌었어요. 그래도 이 건 담당자는 신재현 씨잖아요. 우리가 날름 할 순 없죠.”

“우리 강혜원 씨가 아주 옳은 말씀만 하십니다.”

“아, 그래도 우리 이름 적어주긴 하실 거죠?”

활달한 여직원, 강혜원이 밝게 웃었다.

거기에 신재현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모두 함께 고생해서 성공한 일이잖습니까. 세세하게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와! 우리 그럼 보고서 끝나는 대로 회식이라도 해요! 그래도 되죠, 과장님!”

“네.”

과장이 흡족한 얼굴로 답하고 팀장도 그 매서운 얼굴이 훈훈하게 풀려 있었다.

‘저기가 내 자리였어야 했어.’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멀다.

박석민은 밝은 얼굴의 그들을 보며 처음으로 후회를 느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