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82화 (82/500)

82화. 100억을 향하여(2)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왜 과장이나 팀장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먼저 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도 아닌데.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윤지성은 매우 당연하다는 듯 나를 응시했다.

“저야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지요. 안 그래도 일거리가 넘치는 상황이라서요.”

나는 잔뜩 무언가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들어 펄럭여 보였다.

이 중 반 정도에 형광펜이 칠해져 있고 그 옆에는 1팀 직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누가 조사를 맡았는지 써둔 것이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저도 요즘 소문이 어떤지는 들었거든요.”

이번 건은 좀 무모했다.

작년에 날고 기던 직원이 올해는 기고만장해서 악수를 두었다.

대충 그런 평가였다.

우리 체납추적팀이 재산을 찾아내 넘기면 징세팀이 회수하러 다니기 때문에 아직은 한가하겠지만.

그렇다고 남의 팀을 도와줄 정도로 노는 것은 아닐 텐데.

지금 우리 팀에 끼겠다는 건 책임도 함께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실패할 경우의 책임을.

“남의 소문은 신경 쓸 게 못 됩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나는 아차 했다.

윤지성은 문영순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세무서 내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해 왔다.

그리고 따돌림 당하는 동안 늘 그의 뒤로 안 좋은 소문이 따라다녔었다.

사실과 전혀 무근한 소문까지도 말이다.

그러니 소문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지금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때다.

“저야 대환영입니다. 그런데 제가 결정하긴 좀 어려울 것 같군요.”

나는 1팀원들과 그 너머의 팀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당연히 다른 분들의 허락도 받아야죠.”

윤지성은 그렇게 말하고 한창 바쁜 1팀원들에게 돌아섰다.

“들으셨죠? 저희 징세팀이 같이해도 되겠습니까?”

장세훈이 벌게진 눈을 모니터에서 떼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신재현이 오케이 했으면 나도 오케이야.”

윤지성을 무시한다기보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장세훈이 작년에 윤지성에게 ‘이 고발자 놈이!’라고 악담을 한 뒤론 어쩐지 마음의 빚이라도 있는 듯했다.

윤지성은 다른 직원들도 둘러보았다.

제각기 하던 일을 잠시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 가져온 건 신재현 씨니까요. 신재현 씨가 결정하면 되죠.”

“저는 불만 없습니다! 도와주면 좋죠.”

딱 한 명만 빼고.

“가지가지 하네.”

발령 첫날부터 날 견제하던 박석민이다.

그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자료를 탕, 내려놓았다.

“모 아니면 도인 도박을 팀원 전체에게 시키더니, 이젠 다른 팀을 끌어들여? 제정신입니까?”

일에 열중하던 직원들이 멀뚱히 박석민을 쳐다보았다.

왜 저러냐는 시선이 모이자 박석민이 더욱 짜증을 냈다.

“다들 미쳤어요. 이성을 잃은 겁니다! 다른 서에서 이런 짓 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어떻게 믿을 사람이 없어서 아무거도 모르는 2년 차 7급 주사보를 믿고 따라가냔 말입니다!”

박석민은 참아온 울분을 터뜨리듯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지금까지 같이 조사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말이에요?”

작년에 삼성 세무서 복도에서 오며 가며 마주쳤던 여직원이 뚱하니 물었다.

“다들 한다고 하니 어떻게 되나 두고 본 것 아닙니까. 애초에 이렇게 한 팀 전체가 매달릴 일이었습니까? 다른 팀 보세요. 벌써 실적 올렸잖습니까.”

박석민이 파티션으로 구획만 나눠 둔 옆자리, 2팀을 가리켰다.

책상이 조금 띄워져 있을 뿐 서로 무엇을 하는지는 다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어깨를 으쓱했다.

1팀이 100억짜리를 파고드는 동안 2팀은 자잘하게 1억, 2억의 징세에 성공했다.

그렇게 쌓인 금액이 벌써 10억이다.

“전 여기에 이런 도박 같은 짓이나 하려고 온 것 아닙니다. 다들 정신 좀 차리세요!”

박석민이 답답한 듯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세훈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하지 말든가.”

“뭐예요?”

장세훈은 눈을 한차례 비비더니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윤지성이 말할 때도 보고 있던 모니터다.

“하지 말라고. 누가 억지로 하라고 했나? 빠져.”

“당신이 내 상사에요? 어디서 반말로 빠지라 마라 명령 질이야!”

목소리가 커지자 내가 급히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장세훈은 다혈질이라 같은 말을 해도 역효과가 났다.

내 편을 들어주는 거야 고맙지만, 이러다 또 주먹다짐이 일어나도 곤란하다.

“박석민 주사보님 말씀도 맞습니다.”

“아, 넌 또 왜 그런 말을 해!”

장세훈이 버럭 소리치려 하자 나는 한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내가 수습할 테니 가만있으라는 뜻이다.

장세훈은 도로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내 뜻을 알아들은 황민우가 잽싸게 다가가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팀원분들이 투자해온 시간은 확실히 무척 귀중한 시간입니다. 그동안 다른 건을 했으면 징세를 상당히 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니 지금 이 건을 도전이 아니라 도박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억지로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다들 여기에 매달려 있는데…….”

“아뇨, 1팀의 다른 분들께도 드리는 말씀입니다. 혹시라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시면 다른 건 잡으러 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건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박석민에게서 눈을 떼고 1팀을 돌아보았다.

눈치를 보던 직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들었다.

“저도 좀…….”

“네. 괜찮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빠지겠다고 말한 것은 서초 세무서에서 넘어온 직원이었다.

어차피 강요할 생각은 없다.

어렵겠다고 판단한다면 빠지는 게 옳았다.

“더 없으십니까?”

나는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빠지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박석민이 혀를 찼다.

“참나, 다들 단단히 홀렸어. 난 여기까지 하렵니다. 차라리 착실하게 작은 건 손대는 게 낫겠어. 여러분, 나중에 후회해도 모릅니다.”

박석민이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자료들을 들고 와 테이블에 턱 올렸다.

그동안 그가 조사한 것들이다.

협박하듯 말하는 그에게 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후회하는 게 누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죠.”

박석민은 눈썹을 꿈틀하더니 대꾸도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밀린 체납건을 훑어보기 시작하는 그를 놔두고 나는 1팀장에게 말했다.

“이렇게 됐습니다. 징세팀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됩니다.”

팀장이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대망의 날이 밝았다.

두 명의 직원을 뺀 체납추적1팀의 직원 8명과 징세팀의 5명.

총 13명에 달하는 대가족이다.

우리는 실사 조사를 나가듯 각자 승합차에 나눠타고 체납자의 집으로 향했다.

“후, 긴장되네요.”

한 여직원이 기도하듯 양손을 쥐었다.

“우리가 그동안 한 조사를 보세요. 이걸로도 부족해 보이나요?”

내가 묻자 여직원이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기울였다.

이윽고 긴장된 표정에 자신감이 서렸다.

“아니요.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100억은 충분히 징세해요.”

같은 승합차에 타고 있던 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드르륵.

우리가 멈춰선 곳은 단독주택이었다.

일전에 황민우와 갔던 고급 빌라는 아니다.

그 빌라만 해도 13억은 되는 고가였지만, 그것은 보여주기식 빈집에 불과했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애인 명의인 고급 빌라.

거기는 우리 이전에도 징세팀에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사전 고지 없는 기습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혹시나 싶어 천장을 뜯고 벽장 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금품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여튼 있는 놈들이 더 약아빠졌어.”

여직원이 전투력 충만한 듯 기세등등하게 중얼거렸다.

세무서는 당연히 애인 명의 집에 금품을 숨겨뒀을 거라 생각했다.

부인도 아니고 사실혼이니 숨기기에도 딱 좋았고.

그게 함정이었다.

“근 1달 동안 13명이 들러붙어서 판 결과입니다. 분명 여기다 숨겨놨어요.”

우리 1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직원이 비장하게 말했다.

“일단 체납자 부르겠습니다.”

50살 가까운 나이에 합격해 지금 8급인 그는 목소리도 낮고 굵직해 체납자와 통화하기엔 제격이었다.

그가 체납자를 부르는 동안 우리는 대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기다렸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저 멀리에서 스포츠카 한 대가 나타났다.

담 옆에 거칠게 주차한 그가 내리자 순간 역겨움이 치솟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가관이다.

숫자를 무슨 액세서리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콤마가 하도 많아서 도대체 얼마인지 한눈에 읽을 수도 없다.

다리 많은 벌레를 보는 듯한 본능적인 혐오감마저 들었다.

“갑자기 뭡니까? 당신들 뭐예요. 여긴 왜 온 겁니까?”

“임석환 씨 본인 맞으시죠?”

“당신들 뭐냐고.”

“삼성 세무서 체납징세과에서 나왔습니다.”

장세훈이 날 툭툭 쳤다.

억지로 표정을 푼 나는 반듯하게 접힌 서류를 꺼냈다.

처음에 맡았던 담당자니 들고 가라며 팀장이 준 통지서다.

“여기 조사 통지서입니다. 상황의 심각성과 납세자의 그간 행적에 의거하여 사전 예고는 생략하였습니다. 임석환 씨, 대문 열어주시죠.”

내가 손짓하자 임석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 우리 처제네 집이야!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집에 와서 무슨 짓이야!”

“협조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시죠?”

나는 임석환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뒤를 향해 말했다.

“부수시죠!”

“옙!”

“갑니다!”

손에 각각 망치와 절단기를 든 건장한 직원 둘이 앞으로 나섰다.

기겁한 임석환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두 직원이 대문의 잠금장치를 부쉈다.

-깡!

“아악! 당신들 주거침입이야! 고소할 거야!”

“조세포탈범의 은닉재산을 추징할 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소하고 싶으면 하세요.”

대문이 열리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직원들이 우르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임석환이 허둥지둥 쫓아 들어오더니 전화기를 들었다.

누군가를 부르려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정원과 집 안을 샅샅이 들어 엎기 시작했다.

정원에 핀 꽃을 엎고 장독대 항아리를 들어냈다.

집 안 주방 싱크대 아래쪽 합판을 뜯어내고 환풍구와 변기 안까지 뒤집었다.

“목걸이다!”

“여기 달러 뭉치요!”

“와, 노다지네.”

직원들이 신나서 사진을 찍고 가져간 가방에 금품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물 만난 물고기다.

-위이이잉!

골목에서 사이렌이 울린 건 그때였다.

귀청을 꿰뚫는 높은 사이렌 소리가 집 앞에서 멈추더니 네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그들은 집안 행색을 보더니 기겁해서 소리쳤다.

“모두 멈추세요! 멈추고 신원을 밝히시죠!”

“아.”

주거침입이네 뭐네 하더니 진짜로 경찰을 부를 줄이야.

“이 사람들 강도가 따로 없어요! 저것 좀 봐요! 내 돈을 다 쓸어간다니까!”

“잠시만요. 저희 뒤로 오십쇼.”

이쪽은 13명이고 경찰은 4명이다.

그들은 긴장한 얼굴로 신분증을 요구했다.

“삼성 세무서 체납징세과의 공무원들입니다. 고액체납자의 미납세액을 징수하던 중이었습니다.”

공무원증과 주민등록증, 그리고 조사 통지서를 내밀었다.

경찰은 힘이 탁 풀린 얼굴로 직원들을 가리켰다.

“싹 뒤집어 놓으시니까 강도단인 줄 알았습니다. 대낮에 간덩어리 부은 놈들이 당당하게 집을 터나 했네요.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세요.”

경찰이 목소리를 낮춰 조언했다.

“이런 사람은 민원 때려 넣어요. 얼마나 골치 아픈데요.”

직접 당해본 건지 경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샅샅이 뒤져야 해서 그렇습니다. 체납액이 100억이거든요.”

“배, 백억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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