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81화 (81/500)

81화. 100억을 향하여(1)

나와 황민우가 세무서에 들어온 것은 퇴근 시간 직전이었다.

하루 종일 찬바람을 맞고 돌아다니다 보니 녹초가 다 되어 들어왔다.

직원들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징세했어요?”

“아니요.”

그럼 그렇지, 박석민이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도 어디선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지금…….

“고생 많았습니다.”

과장이 앞서서 인사를 건네자 직원들이 입을 다물었다.

벌써부터 견제가 한창이다.

과장으로서는 직원들끼리 힘을 합쳐도 모자란 판국에 쓸데없이 힘 빼는 건 보고 있기 곤란할 것이다.

간혹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주는 걸 보면 확실히 노련하다.

“이 추운 날 지금까지 돌아다닌 겁니까?”

“체납자와 주변인 명의로 된 것들 사전 조사 좀 하느라 늦었습니다.”

“그래서 좀 건졌습니까?”

“귀신같이 숨겨놨습니다. 체납자 명의 중에 징세할 만한 건 하나도 없어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간 괜히 세무서에서 놔두고 있던 것이 아니다.

적은 숫자의 공무원이라지만 그래도 고액체납자 건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큰 건입니다. 서두를 필요 없어요.”

“예. 섣불리 건드려서 숨게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말을 덧붙이자 이선균 과장이 눈을 반짝였다.

기대감이 어린 눈빛이다.

어려울 걸 알면서도 그는 항상 내게 이런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다면 부응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예 손 놓을 순 없죠.”

“생각해둔 방법은 있습니까?”

말만 해라, 지원하겠다.

그런 말이 들린 것만 같았다.

나는 이선균 과장에게서 눈을 떼고 새 동료가 된 직원들을 돌아보았다.

미우나 고우나 이제 한솥밥을 먹는 식구다.

“오늘 하루 체납자의 흔적을 찾으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살고 있어요.”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은 사고 회로가 정상인과 차원이 다르다지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함은 있는 법이다.

양심이나 도덕의 문제는 아니다.

걸리면 나라에 빼앗긴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데 정신상태가 온전할 리 없다.

스트레스를 받든 예민해지든 결국 겉으로 표출되는 것은 명확하다.

남을 믿지 못한다.

“남의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아 세금은 내지 않지만 그렇기에 이 사람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명의자가 들고 튀면 장땡인 거죠. 최소한의 안전장치야 해놨겠지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하는 표정이 일부.

그리고 작년에 삼성서에 있으면서 날 지켜봐 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지한 얼굴로 경청했다.

적어도 이젠 어리고 경력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단번에 무시하지 않는다.

내가 지난 반년간 해온 것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한마디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장세훈의 반응에 힘입어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남을 못 믿는데 절대 먼 사람에게 재산을 맡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에게 명의자는 그저 하나의 금고일 뿐입니다. 징세권 소멸시효가 지나면 재산을 되찾으려 할 테고, 항상 눈 닿는 곳에 ‘금고’를 뒀을 겁니다.”

용산 세무서에 있을 때 쳤던 백혜영도 그랬다.

전 지검장이자 잘나가는 변호사.

자신의 재산을 시어머니와 시누이 등 가까운 친인척 명의로 돌리고 항상 감시하듯 지켜봤었다.

이 체납자 역시 재산을 그리 먼 곳에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맡겼겠죠. 하지만 증명이 어려우니 이 지경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누군가가 한탄하듯 말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의아한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내가 무언가 설득하려 한다는 것을 느낀 이선균 과장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100억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세무서의 짐이자 부끄러움입니다. 어렵다고 뒤로 돌릴 일이 아니라, 이것부터 파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다른 고액체납자들에게도 경종이 될 거예요.”

“거참,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 봐. 방법이 있긴 한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거 보면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장세훈이 답답해하며 끼어들었다.

나는 추적팀의 직원들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저 혼자서는 힘듭니다. 하지만 도와주신다면 할 수 있어요.”

방향은 잡았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히 물량의 싸움이었다.

닥치는 대로 조사해야 했고, 수백 건의 통장계좌를 뜯어봐야 했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진 게 있어서는 안 된다.

촘촘히 포위망을 좁히듯 주변인 전부를 털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탈세 금액을 눈으로 본다 해도 지금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순수한 경험과 경력의 눈이 필요한 때다.

“체납징세과 추적팀, 출범 첫 달 만에 100억 고액체납자 징세. 어떻습니까,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몇몇 직원들의 눈은 명예욕과 승진욕으로 번들거렸고 몇몇은 긴가민가한 눈치였다.

“징세할 수는 있습니까? 괜히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어요. 당장 윗분들은 성과를 원하십니다.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분명한 이상, 전 인원이 매달려야 합니다. 자칫하다간 전국 유일 무실적 세무서가 될 수도 있죠.”

팀장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나는 그 매서운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받았다.

“때로는 어려운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합니다. 세금 안 내도 문제없다는 여지를 줘서는 안 됩니다.”

내 말을 듣고 고심하던 팀장이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당장 지금 실적이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해야 한단 뜻이죠?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법은 어떻습니까. 가능성이 보여야 저희도 지원을 할 것 아닙니까.”

1팀장은 과연 공으로 이 자리에 앉은 게 아니라는 듯 거세게 추궁했다.

확답을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시간도 걸리고 복잡한 작업이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방향성도 잡아 왔습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방에서 두꺼운 종이뭉치를 꺼냈다.

“체납자 임석환의 인척, 과거 직장 동료, 친구, 지인 등 관계자를 깡그리 적은 명단입니다. 이 중 현금으로 오간 것도 있고 증여나 양도로 재산을 위탁한 것도 있죠. 그래도 현대사회에서 어떻게든 흔적은 남을 겁니다.”

현금을 쓴다 해도 애초에 그 현금을 얻기 위해선 은행에서 지폐를 뽑아야 한다.

모든 금융거래가 기록되는 사회다.

짜 맞추기야 힘들겠지만, 기록은 있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지워서 포위망을 좁히면 됩니다. 명의대여가 아니라 스스로 돈 번 게 확실한 사람을 소거법으로 지워나가는 겁니다.”

직원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런 명단을 어떻게 손에 넣은 겁니까.”

물론 세무공무원이 얻긴 힘든 자료다.

그래서 지현석 검사의 힘을 빌렸다.

핸드폰 통화기록까지 조회 가능한 검사실에서 관계자 명단 작성은 자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기에 간단히 대답했다.

“발품 팔았습니다.”

“그게 하루 발품으로 될 리가…….”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과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과장님. 가능할까요?”

이 정도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장은 평소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저야 중간관리자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하고자 한다면, 그 뒷수습은 제가 맡겠습니다.”

뒷수습에는 윗선의 ‘실적 압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팀장은 직원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흘끔, 명단을 본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할 수 있을까?”

“해 볼 만하지 않나?”

“귀찮을 것 같은데.”

“그래도 100억이잖아.”

곳곳에서 중얼거림이 들려오고 누군가의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나는 씨익 웃으며 명단을 내밀었다.

“네. 100억입니다. 한번 해봅시다.”

탐욕, 정의감, 준법정신.

그 모든 것이 섞인 뜨거운 열기가 레이저 같은 눈빛이 되어 내게 꽂혔다.

해 보자.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말은 없었지만, 모두의 표정은 같았다.

***

체납추적1팀이 전부 들러붙은 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체납자 파산한 게 언제였지?”

“3년 전이요.”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체납자 통장 제가 보고 있어요.”

“그럼 그전 거는?”

“저요! 5년 전 파고 있어요.”

“법인 통장 제가 볼게요~”

“상속된 재산들 추적 중인데 누구 한 분만 도와주세요! 상속인들 뜯어보게요.”

“잠깐만요. 사실혼 배우자 명의 재산 다 정리해가니까 금방 갈게요.”

10명의 직원들이 서로 일감을 나누어 조사하는 모습은 흡사 잘 맞춘 톱니바퀴를 보는 듯했다.

이선균 과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틈틈이 1팀을 곁눈질했다.

1팀의 팀장이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지휘를 맡았으나 주도권을 쥔 것은 한 2년 차 직원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건을 가장 처음 맡은 것도,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 것도, 그리고 힌트가 될 자료를 가져온 것도 그다.

재료만 갖춰진다면 100억 징세.

이제 막 2년 차가 된 7급 주사보가 팀 전체에게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1팀 열심이네.”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기님은 저런 짓 할 수 있겠어요?”

“아뇨. 시켜도 못 하죠.”

2팀의 직원들은 의욕에 불타오르는 1팀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실적이 목말라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윗분들이 지켜보는 신생 과다.

성공하면야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이건 도전이 아니라 도박이었다.

적어도 2팀의 팀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성공 못 할 거야.”

“그럼요. 우린 차근히 밟아 올라가죠. 한 달 후에 누가 웃는지 두고 봅시다.”

2팀은 1팀에게 괜한 경쟁심을 불태웠다.

정작 1팀은 일에 치여 2팀에게 관심도 없었지만.

그리고 이런 1팀의 기행은 삼성 세무서 전체에 퍼져나갔다.

“작년에도 삼성에 바람 잘 날 없지 않았어요?”

“요즘 세무서가 무척 시끄럽네요. 언제부터 이랬지.”

“그 직원 오고 나서요!”

‘그 직원’

삼성 세무서에서 자세한 묘사 없이 그 직원이라 말하면 신재현이라고 알아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1팀 직원들이 자청해서 야근을 이어가던 어느 날, 윤지성이 찾아왔다.

작년 재산세과에 있던 7급 주사보.

부당한 갑질을 하던 부가세과 직원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된 직원이었다.

올해는 갑질 직원 아버지의 영향력이 사라져서인지 체납징세과의 징세팀으로 발령받았다.

“요즘 재미있는 일 한다면서요.”

테이블 위에 잔뜩 늘어놓은 재산 정리표를 본 윤지성이 다짜고짜 말했다.

원탁 앞에 앉아 있던 1팀의 직원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지만, 신재현은 기분 좋게 웃었다.

삼성서에 소문이 퍼지고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떠돌지만, 윤지성이 비꼬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요. 하루하루 재밌어요.”

“힘들진 않고요?”

“당연히 힘들죠.”

이번엔 1팀의 직원이 찌릿 눈을 흘겼다.

당연한 걸 입 아프게 뭐하러 묻느냐는 얼굴이다.

윤지성은 종이 하나를 들어 대충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끼워주시죠.”

“저희라 하심은…….”

“징세팀 직원들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듣던 1팀 직원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2팀 너머, 사무실 가장 안쪽.

파티션으로 가려진 책상들 사이로 대여섯 명의 고개가 빼꼼 튀어나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입을 떡 벌린 1팀원들과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숟가락 얹겠다는 건 아닙니다. 대형 프로젝트니까요. 저희 징세팀원은 다들 예전에 징세 업무 해본 경력자들입니다.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윤지성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승진 누락까지 당해가며 갑질 공무원을 징계위원회에 올렸던 사람이다.

단순히 명예욕 때문이 아니라는 건 명확했다.

“신재현 씨가 헛된 공상으로 일에 덤벼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제가 잘 압니다. 실현할 능력도 있죠. 도움이 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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