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79화 (79/500)

79화. 1년 차의 마지막 사건

“자세하게 얘기해 봐. 세금 내는지 안 내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고지서가 안 날아오니까!”

“아, 그래…….”

굉장히 간단한 사고방식이었다.

세법 모르는 사람은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도로 물었다.

“세무사사무실에 의뢰하는 것 같디?”

“그 아줌마가? 음, 그런 얘긴 못 들었는데. 잘 모르겠어.”

“5월이나 11월에 국세청에서 뭐 날아왔어?”

5월이면 종합소득세 신고 안내문이고 11월이면 중간예납 고지서다.

“그건 확실하게 알아. 국세청에서 뭐 날아온 거 없었어! 다 같은 우편함 쓰는데 그런 거 본 적 없거든. 그 집 아들이 무슨 사업해서 아들 앞으로 온 건 봤어도 아줌마 앞으로 온 건 없었어.”

꽤 자신 있는 말투다.

우편함이야 못 볼 수도 있으니 정황증거일 뿐이다.

그럼 다음 질문.

“세입자한테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끊어주디?”

“세금계산서? 그거 사업자만 끊어주는 거 아니야?”

으으음, 내가 팔짱을 끼자 신수정이 시무룩해졌다.

“아줌마가 주택임대는 세금 안 낸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나 봐.”

“응? 아닌데.”

“세금 안 낸다던데?”

주택임대가 비과세인 건 맞다.

세입자야 완벽한 을의 입장이니 세금을 물리면 세입자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세가 1년에 2천만 원 미만이면 세금을 안 냈다.

그런데 그건 1년 전 얘기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주택 몇 채 갖고 있어?”

“한 3채? 단독주택인데 옥상도 불법 증축해서 올렸더라. 거긴 월 15만원이야. 그냥 건축법인가 그걸로 신고할까? 아참, 우리 임대차계약서도 안 썼어. 전입신고도 안 했고. 이거 무슨 민법 뭐에 걸리지 않아?”

“아니, 잠깐만. 그 아주머니 명의로 세 채 맞아?”

“아닐걸.”

칫, 이것도 틀렸나.

쏘는 족족 에임이 빗나가는 걸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정말 신수정 말대로 건축법 위반밖에 답이 없는데.

그때 수정이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있는 집은 뭔가 달라도 다르더라. 한 채는 아들, 한 채는 남편, 한 채는 자기 명의야.”

“응? 아들이 같이 사는 거 아니었어?”

아까 우편함 얘기 하다가 아들 앞으로 날아온 고지서를 봤다고 들은 것 같은데.

“같이 살지. 아줌마네 가족이 1층에 사는데 아들이 사업하는 족족 말아먹어서 아직도 얹혀 살아. 나이가 몇인데.”

“1세대 3주택!”

“으악, 깜짝이야.”

신나게 집주인 아들 욕을 하던 신수정이 화들짝 놀랐다.

“수정아. 너네 집주인 탈세 맞는 것 같다.”

“어! 진짜?”

나는 눈을 반짝이는 신수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한 나는 문제의 하숙집 앞에 와 있었다.

“급하게 나가시길래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어김없이 옆에 따라붙은 황민우가 퀭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어제 저녁 자리에서 가장 직급이 낮다 보니 부어주는 대로 받아마셨는데, 그 여파가 숙취로 돌아온 듯했다.

“저는 또 이동하기 전에 남은 건을 깔끔하게 처리하시려는 줄 알았는데 일을 새로 가져오셨군요.”

비꼬는 것처럼 들리지만 나름 감탄한 말투다.

“남은 일이야 거의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탈세 제보를 받아서요. 그럼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관할 아닌데 괜찮을까요?”

“작년부터 교차조사 생겼잖아요. 조사과 애들은 관할 아니어도 과세권 행사하던데요.”

“아, 그럼 위에서도 큰 문제는 없겠군요.”

내가 워낙 막 나가다 보니 황민우는 간혹 이렇게 브레이크를 걸어주곤 했다.

절차상 문제는 없는지, 후폭풍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인지 가늠해 주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나온 것도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탈세 제보라고는 해도 제보서를 받은 것도 아니고, 명확한 증거를 잡은 것도 아니며 관할도 아니다.

그렇다고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지.

이 정도라면 윗선에서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다.

-띵동.

허름한 3층짜리 단독주택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대문이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할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다.

경칩이 떨어져 나가 조금만 건드려도 덜컹덜컹 했다.

이러다 부술까 싶어 얼른 손을 뗐다.

-누구세요.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세무서에서 왜요.

여성의 목소리가 단숨에 뾰족해졌다.

왜 다들 세무서에서 나왔다고 하면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는 걸까.

“공무집행입니다.”

-……잠시만요.

이럴 땐 정부를 파는 게 최고지.

사실이기도 하고.

중년 여성은 말꼬리를 늘이더니 한참 후에야 문을 열어주었다.

몇 번의 현장조사 경험으로 보건대, 이건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의 반응이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이 부러질 듯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대문 너머에서 잔뜩 경계한 중년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우릴 안으로 안내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온 뒤 오히려 대문을 탁 닫았다.

“세무서에서 왜 나왔죠?”

“선생님. 현재 이 주택에 몇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남편, 나. 이렇게 둘이요.”

여기서 거짓말을?

눈치는 빠른 사람이다.

세무서에서 사람 숫자를 물어봤으니 뭔가 세금과 연관될 거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미리 뉴스나 인터넷에서 보고 조사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집주인의 태도로 봐서는 본인이 탈세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그럼 더 악질이지.

“정말 두 분이 사십니까?”

내가 한 발짝 물러나 집을 훑자 여성의 표정이 변했다.

둘이서 3층 집을 다 쓴다고?

게다가 신수정의 말대로 옥상엔 옥탑까지 있다.

“근처 학교 다니는 친척들 몇 명 얹혀살고 있어요.”

“정말 친척 맞습니까?”

이럴 땐 다 알고 왔다는 식의 당당한 태도가 도움이 된다.

집주인은 뜨끔한 얼굴이 되었다.

“예, 예. 좀 먼 친척이에요. 아는 사람…….”

친척에서 좀 먼 친척으로, 그리고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대체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조사하면 다 나올 텐데요. 당장 제가 집에 들어가서 사시는 분들 성함하고 주민등록번호만 알아도 조회 가능합니다. 한번 해볼까요?”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집에 누가 사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중요하죠. 집을 임대하고 계셨다면 엄연히 주택임대업이고, 월세를 받으면 그건 소득입니다. 세금을 내셔야죠.”

집주인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

“한 달 월세가 얼마나 한다고 그걸 세금을 받아가려고 그래!”

“아, 그러니까 월세를 받긴 받으시는 거죠?”

“윽…….”

조금만 건드려도 자진 납세가 술술 나왔다.

말실수를 눈치챈 여성이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늦었다.

“현재 몇 명이 입주해 있고, 한 달에 얼마를 받으시는지 말씀해 주시죠.”

“얼마 안 받아요. 한 사람당 10만 원? 우리 부부 먹고살기도 벅차다니까요.”

“음, 제가 본 것과는 다르네요.”

나는 핸드폰에 미리 깔아둔 앱을 켰다.

방 구하기 앱이다.

하숙집 탭으로 넘어가 GPS를 켰다.

앱은 충실하게도 근처 나온 하숙집을 잡았다.

바로 여기다.

“방 내놓으신 거 보니까 월세 50만 원이라고 되어 있네요.”

“아니에요. 그런 데는 원래 주변 시세에 맞게 내는 거예요. 싸게 내놓으면 주위 다른 하숙집들이 가만 안 있는다고요.”

그래서 10만 원짜리를 50만 원에 올렸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실제로 학생들 오면 10만 원~20만 원 선에서 해줘요.”

“그럼 증거를 보여주세요.”

“즈, 증거요?”

“월세 송금받는 내역 있습니까?”

“다 현금으로 받아서…….”

“그럼 임대차계약서는요?”

“학생들이 하도 자주 바뀌어서…….”

“없다는 말씀이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집주인 여성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요즘 누가 임대차계약서를 써요. 언제 들어와서 언제 나갈지 자기들도 모르는데.”

“세입자 대부분이 학생 아닙니까? 그러면 학교 다니는 동안 살 테니 기간은 명확할 텐데요.”

“아니, 그러니까…….”

여성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난데없이 집안에서 큰소리가 났다.

“누군데 이렇게 큰 소리야!”

박차듯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였다.

딱 봐도 남편이다.

그 뒤에는 무슨 일인가 구경나온 청년이 하나 보였다.

저게 아들이로군.

“당신 뭔데 남의 집 와서 이거 내놔라, 저거 내놔라야? 당신이 경찰이야?”

“세무서 공무원입니다.”

뒤에 있던 청년이 아버지를 밀치고 나와 손을 내밀었다.

“공무원증 줘 봐요.”

“여깄습니다.”

공무원증 뒤에 써 있는 소속 세무서를 본 아들이 흠칫했다.

사업한다더니 세무서 이름값은 아는 모양이다.

“여기가 삼성 관할은 아닌데 왜 여기까지 와요?”

“교차조사입니다. 관할이 다르더라도 명백한 탈세의 혐의가 있으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나왔던 청년은 단 몇 마디 만에 침몰하고 조용히 아버지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그래도 세무서에서 연락도 없이 이렇게 쳐들어와도 되는 거예요? 원래 사전에 통지라도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숫자가 많아져서인지 집주인 여성의 목소리가 도로 커졌다.

“맞아! 당신들 이거 막무가내로 나온 거잖아! 갑자기 쳐들어와서 자료 내놓으라는 거 월권이야!”

“그러면 돌아가서 해명요구서를 보낼까요? 세무사 대동하고 세무서로 직접 들어오시겠습니까?”

“세무서를……?”

세무서래 봤자 별것 없는데 청년이 지레 겁먹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편할 대로 하세요. 그런데 굳이 비싼 돈 주고 세무사를 고용한다고 해도 세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 주택이에요. 주택임대는 면세라고!”

남편이 으르렁대듯 주먹을 쥐었다.

평소에도 욱하면 쉽게 주먹이 올라가는 사람인가.

나 혼자 왔으면 싸움이라도 났을 기세다.

황민우가 내 뒤에 있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남편은 아차 하며 주먹을 내리더니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한 달 월세 얼마 안 받는다니까! 세금 낼 것 없다고!”

“그러면 제가 계산할 수 있게 근거를 주시면 다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한 달에 얼마 받으시는지 증거를 주세요. 저는 세법을 따릅니다. 비과세면 당연히 비과세라고 말씀을 드리죠.”

불만이면 증거를 내놔라.

그렇게 말해도 남편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돈 뜯어내려는 그쪽이야말로 근거를 대야지!”

“그러죠.”

“으잉?”

내가 쉽게 대답하자 남편이 주춤했다.

“1세대 1주택은 월세 비과세가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1세대란 같이 사는 사람들을 얘기하거든요. 대충 보아하니 부부와 아드님, 이렇게 세 분이 사는 것 같군요. 주택 몇 채 갖고 계십니까?”

“그…….”

“주민등록번호 조회하면 다 나옵니다. 등기하셨잖아요.”

“남편 하나, 나 하나, 아들 하나…….”

“좋습니다. 1세대 3주택이니까 월세에 보증금까지 과세네요. 문제는 월세 금액인데.”

나는 흘끔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 2층과 3층, 그리고 옥탑에서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들이 보였다.

방 하나씩 쉐어하는 구조인가, 세입자가 꽤 많다.

“저분들께 물어보면 쉬울 것 같군요. 아니면 통장 내역을 까봐도 되고, 방 구하기 앱에 올라온 계약 체결 내역들 봐도 좋고, 여기서 사셨던 세입자들 찾아가서 물어봐도 되고. 어떤 게 편하시겠습니까?”

미리 말을 맞춰둔 것도 아니고 물어보면 월세가 얼마인지 바로 탄로 난다.

게다가 현금으로 주는 사람도 있지만, 통장으로 이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세 가족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댔다.

“현장조사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이제 세무서로 들어가서 과세예고통지를 보내드리죠. 월세 금액은 앞서 말한 방법을 동원해서 사실대로 잘 산정하겠습니다. 아니면 해명할 자료가 있으신가요?”

상대가 누구든 해명의 기회는 준다.

그러나 세 가족은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럼 서에서 뵙겠습니다.”

나는 하숙집을 뒤로하고 골목을 돌았다.

계속 밖에서 얘기한 탓인지 추운 바람에 귀가 얼얼했다.

“신년 맞기 전에 한 건 깔끔하게 추가했네요. 대체 어디서 이런 건을 물어오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황민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에 탈세범이 너무 많아요. 눈만 돌리면 이런 게 나오더군요.”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곧 신년.

인사이동이 머지않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탈세 잡아내 봅시다.”

내 다짐에 황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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