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가치 증명(3)
중부서장 서승원.
예전에 황민우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1~2년마다 로테이션을 돌다 보니 경력이 길어질수록 여러 서를 가게 되는데, 황민우가 3년 전에 있었던 곳이 바로 중부서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소시민, 아니 일반적인 공무원이었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때로는 야근도 하고, 민원인과 충돌하기도 하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평온하고도 지루한 공무원 생활에 돌멩이가 던져졌다.
황민우는 평소처럼 세금을 매기기 위해 해명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바로 과장이 호출했다.
영문도 모르고 욕을 대판 얻어먹은 후 처음엔 반발심이 들었다.
굽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그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작게는 단체 회식에서 그를 뺀다거나, 신입보다도 말석에 앉힌다거나.
그도 아니면 1층 민원실 지원에 황민우의 이름이 매일같이 올라가 있다거나, 고의로 승진에서 누락된다거나, 골치 아픈 일이 계속 떠밀려와 진상 민원인에게 시달린다거나.
하나하나 따져보면 조금 불편할 뿐,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일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악성 민원인이 뱉은 침에 맞고 세수하고 들어와, 텅 빈 사무실에서 저녁 12시까지 야근했을 때.
처음 이 사태의 원인이었던 납세자가 직접 찾아왔다.
그리고 심신이 한계까지 지친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100만 원의 돈을 쥐여 주었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서장님이 너무 지나치셨습니다.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이 돈은 그간 야근 수당이라고 생각하시고 마음 푸세요.’
어느 선과 닿아 있는지 대놓고 드러내는 말이었다.
잔뜩 지친 황민우는 비몽사몽간에 그 돈을 받아들고 집 앞에서 내렸다.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우며 멍하니 생각했다.
‘나 하나 반항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일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단 하나 바뀐 게 있다면 황민우의 태도였다.
시키는 것이 있으면 조금 부당하다 해도 눈을 감았다.
꺾인 것이다.
황민우는 담담히 이 모든 일을 고백하며 그렇기에 날 존경한다고 말했다.
따라가겠다고.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보여 달라고.
그 너머에 함께 가게 해 달라고.
그래서 말했다.
“지금은 안 되지만 기회가 닿으면 가장 먼저 형에게 보여 줄게요. 중부서장, 그런 놈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반드시 눈앞에서 조져 주겠다고.
***
나는 눈앞의 중부서장을 노려보았다.
“서장직에 계실 때도 이랬습니까? 외부인들 우르르 몰려오면 그래, 손님이니 잘 모시라 했습니까? 사무실에 다 들어올 수도 없는 저 많은 사람들 데려와서 뭘 보여 주고 싶었던 겁니까? 어디 패싸움이라도 하러 오셨습니까?”
“무, 무슨 소리야. 야, 적당히 해라.”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웠는지 유명진이 안절부절못하며 말렸다.
사무실 내부가 정적에 휩싸였다.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한 침묵이다.
“자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실력으로 왔습니다.”
“1년 차가?”
“예.”
그는 내가 뭘 믿고 날뛰는지 가늠해 보려는 눈치였다.
내가 봐도 이렇게 막 나가는 건 둘 중 하나다.
뒤에 거물이 있든가, 미친놈이든가.
단순히 미친놈이라면 잡아 족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지만, 뒤에 거물이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잘못 건드렸다간 자신의 선에서도 해결 못 할 일이 터질 수 있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각을 잡아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둘 다에 해당한다.
“자네 이러는 거 자네 서장도 아나?”
뒤에 서장이라도 있냐는 뜻이다.
나는 대답 대신 뒤를 돌았다.
법인세과 사무실 입구에 북적북적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구경 온 다른 과 사람들이다.
나는 그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슬며시 웃으며 지목했다.
“황민우 서기님. 가서 서장님 모셔오세요.”
“네. 주사보님.”
나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가 깎듯이 고개 숙이고 나가자 전 서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웬만한 서장, 과장은 이렇게 아랫사람들이 일 벌이는 걸 싫어한다.
구설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단 직원인 내가 먼저 서장을 부르다니, 공무원 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허억, 서장님.”
“진짜 오셨네.”
복도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호통 소리도.
“세무서에 무슨 외부인이 이렇게 많아!”
모세가 홍수를 가르듯 직원들이 슬금슬금 벽으로 물러나 길을 틔웠다.
마치 병사들을 사열하듯 서장이 당당히 사무실에 입성했다.
그는 스윽 주위를 훑어보더니 전 서장 서승원을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허어, 한 서장.”
유명진이 ‘서장급은 나와서 막아 줘야 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원하던 서장이 직접 왔는데도 유명진의 얼굴을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무죽죽하게 죽어 갔다.
“명색이 현 서장이라는 사람이 7급 직원 말에 한달음에 달려오나? 요즘 세무서 위신이 말이 아니구만.”
“무슨 말씀을요. 선배님이야말로 애들 데리고 이렇게 오시니 완전히 세무사 다 되셨습니다. 세무서는 척지기로 결심하신 겁니까?”
“이봐, 한대윤이.”
“이런 말씀 하려고 저 부른 거 아니죠? 우리 직원이 한번 설명해 봐, 무슨 일이야?”
삼성서장의 눈에 흥미가 반짝였다.
혹시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는 이제 아예 이쪽 라인에 타기로 결심을 했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날 수도 있는 이런 막싸움에 순순히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 서장님께서 힘자랑 좀 하시길래 패싸움이라도 하실 생각이냐 했더니, 너희 서장님도 너 이러는 거 알고 있냐더군요. 그래서 직접 보여드리려고 모셨습니다.”
“아. 그래?”
삼성서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빈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재밌겠네. 어디 해봐.”
“감사합니다.”
“아니, 이건 뭐…….”
전 중부서장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느그 서장’ 들먹였을 때 진짜 서장을 불러온 것도, 직원이 대놓고 들이받겠다 선언하는 것도, 거기에 서장이 진짜로 허락하는 것도 아마 처음 봤을 것이다.
“말세네 말세야. 요즘 세무서는 다 이런가?”
전 서장이 혀를 찼지만, 우리 서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낄 뿐이었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이왕 모셔왔으니 좋은 걸 보여드려야겠지.
나는 전 중부서장에게 말했다.
“예전엔 전 서장님 오시면 바닥에 기어서 버선발로 맞이했나 봅니다. 그렇게 세금 줄여드리면 전 서장님은 몇억 땡기시고, 저희는 감사팀에 불려가서 깨지고. 그렇죠?”
“자네 눈에 보이는 게 없구만? 지금 너희 서장 믿고 까부나? 한 서장도 내 후배야. 내가 한 서장을 무서워할 것 같나? 그리고 어디서 배워먹은 싸가지야? 지금 일부러 ‘전’ 서장이라고 꼬박꼬박 붙이는 거지? 이 늙은이 위치를 깨달으라 이거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런,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전 서장’님이 아니라 ‘세무사’님이시죠. 서 세무사님. 우리 본격적으로 과세 얘기를 해볼까요?”
“이 새끼가…….”
노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상대를 꺾으려면 압도적인 힘을 보여줘야 한다.
처음엔 겁을 주려 사람들을 우르르 데려왔으나 통하지 않았고, 그다음엔 위계로 누르려 했으나 오히려 서장을 불러왔다.
무력행사를 할 수도 없으니 전 서장은 더 까볼 패가 없었다.
더 윗사람, 본청을 불러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상관없다.
칼에게 힘을 쥐여 주면 이렇게 되는 법이다.
“레일컴퍼니 측의 주장은 이거군요. ‘본사가 중국에 있으며 매출 집계는 본사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의 현지 법인은 중국 본사의 사정으로 법인세 신고가 이루어지는 3월까지 12월 말 매출 집계를 정확히 받지 못한다.’ 이거 맞습니까?”
나는 보란 듯이 서류철을 펼쳤다.
서승원은 연신 혀를 차더니 듣는 척도 안 했다.
“위계질서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요즘 젊은것들은 예의를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할 말을 했다.
“저희 세무서 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세법상 귀속 시기는 발생주의를 채용합니다.”
“쯧쯧.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는지. 책임 못 질 행동은 하지도 말아야 하는데.”
“실제 매출 집계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저희는 모릅니다. 납세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칙을 뒤엎을 이유는 못 됩니다. 천재지변이나 화재, 사고 등의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저희는 귀사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객기야, 객기. 젊다고 오만해. 사람이 굽힐 줄도 알아야지. 그러다 지방으로 날아간 놈이 한둘이 아닌데.”
서로 제 할 말만 이어간다.
여전히 기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희 세무서는 2017년 12월 귀속 매출액 100억 원을 매출을 누락했다고 보고, 법인세 및 가산세를 부과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탁, 서류를 덮으며 서승원의 눈을 직시했다.
이런 대우는 처음일 것이다.
그는 겉으로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우고 있었지만, 그것이 허세라는 걸 알았다.
흘끔흘끔 나를 엿보다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미 들켰다.
그냥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빠를 거다.
눈이 마주치자 그도 느꼈는지 대놓고 나를 응시했다.
“너무 과세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야. 기업도 이 나라 국민인데, 세금 누가 안 낸다고 했나? 같이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서장으로 있을 때도 이런 식으로 넘어갔겠지.
그리고 뒷돈을 챙겼을 것이고.
“누가 부당하게 과세했습니까?”
“갑자기 100억에 세금 물린다고 하면 어느 기업이 세금을 내겠냔 말이야.”
“그래서 100억 번 게 없던 일입니까?”
“아니, 낸다니까? 근데 2017년이 아니라 2018년 매출로 봐서 내겠다고. 회사 처지가 그래요. 자네가 공무원으로 일만 해서 실무를 잘 모르나 본데…….”
“저 일반 회사 총무팀에서 일하다가 들어왔습니다.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잘 압니다.”
서승원이 곧바로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12월 치 매출을 잘 모른다고.”
“회사가 모르면 누가 압니까? 어느 회사가 자기 회사 매출액을 모릅니까? 일부러 한 달 치를 다음 연도로 이월시켜서 한 달 치만이라도 늦게 내겠다는 꼼수 아닙니까.”
“어허, 꼼수라니! 이렇게 꽉 막혀서 어떻게 사나. 무조건 원칙 따진다고 좋은 게 아냐.”
“저라고 무조건 과세하는 거 아닙니다. 명확하고도 납득가는 사정이 있다면 인정합니다. 지금 회사 측 이유는 딱 하나 아닙니까. ‘모른다’. 어디 국회 청문회 나오셨습니까?”
“아니, 진짜 모른다니까!”
서승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내밀 패가 없을 때 나오는 특징이다.
소리 지르며 압박하기.
네가 안 해주면 어쩔 거냐는 식의 막무가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회사로 직접 실사 조사를 나가겠습니다. 모든 기록 다 까보죠. 과연 그래도 모르나 한 번 봅시다.”
“이, 이 싸가지 없는…….”
“인정해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증명을 하세요.”
서승원이 입가를 푸들푸들 떨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번호를 눌렀다.
“내가 이것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자네 보니까 안 되겠어. 한 서장, 자네도 각오해야 할 거야. 아랫사람 간수 못 한 건 윗사람 책임이야.”
그는 전화기를 양손으로 붙잡고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아, 국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국장이면 최소한 본청이다.
청장을 두고 경쟁하는 사람들.
즉, 과세기관의 톱에 가까운 자들이다.
자랑스럽게 날 흘끔거리며 쳐다보던 서승원이 본론을 꺼냈다.
“민치호 국장님. 제가 지금 삼성 세무서에 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