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주목(2)
[징계는 최고수위로 결정될 겁니다.]
세무사 최용찬이 보내온 문자는 짧지만 강렬했다.
용산지회장인 그가 세무사회 내부회의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미리 부탁을 해놓았던 것이다.
예전에 이선균 과장의 소개로 잠시 알바를 했던 짧은 인연인데도 그는 싫은 내색 없이 부탁을 들어줬다.
경력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배려도 남달랐다.
세무사와 심상치 않은 내용으로 전화하는 공무원은 남의 눈에 띄었다간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다.
방금도 일부러 요점만 간결하게 문자로 보낸 것이다.
“무슨 좋은 일 있나 보네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같은 과 직원이 슬그머니 물어왔다.
처음 납세자 보호실에 들어왔을 때 팀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던 그 직원이었다.
그는 요즘 들어 내게 관심이 생긴 건지 넉살 좋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반가운 소식이 있어서요.”
나는 슬그머니 핸드폰 화면을 껐다.
워낙에 짧은 문장이라 봐도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려져서 좋을 건 없다.
굳이 내용을 알고 싶었던 아닌지 직원 역시 미련을 두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서장님이 갑자기 왜 다들 모이라고 하셨을까요.”
직원은 보란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 역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세무서 2층의 강당이다.
의자를 다닥다닥 붙이고 앉으면 한 서의 인원이 아슬아슬하게 들어가는 규모의 공간이었다.
납세자 보호실 직원들은 얼씨구나, 하고 일찌감치 내려와 중간 자리를 선점했다.
1층 민원실 인원까지 불러들였으니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는 건지 다들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이번 개편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렇겠죠?”
현재 세무서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운영지원과 개편이었다.
무슨 일을 할지는 이름을 봤을 때 대충 짐작은 간다.
하지만 청장의 특별 지시사항인 데다 팀까지 새로 꾸리는 만큼 전 서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 신재현 씨네요.”
“뭐야, 어떻게 10층 사람이 6층보다 더 먼저 내려와 있어?”
익숙한 얼굴이 한 덩어리 무리 지어 들어왔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장세훈이고 바로 뒤에는 윤지성이 서 있었다.
윤지성은 징계위원회에 문영순을 올린 이후로 기피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가세과에서 문영순 관련해서 난리가 난 이후로 오히려 윤지성이 재평가된 듯했다.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하기 싫어서 공지 보자마자 내려온 건 아니지?”
“맞는데요.”
장세훈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의외로 뒤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 무슨 정리를 했는지 처음의 적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여기 앉으면 되겠네. 거기 주르륵 앉읍시다.”
장세훈을 필두로 재산세과의 직원들이 바로 뒷줄에 자리했다.
대열에 뒤편에 서 있던 황민우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조용히 고개만 꾸벅 숙였다.
인사를 나누는 동안 슬슬 강당이 들어차고 있었다.
직원들끼리 빽빽이 붙어 앉자 잠시 후 각 과의 과장들이 들어와 맨 앞줄에 앉았다.
그리고 주인공처럼 가장 늦게 서장이 등장했다.
성큼성큼 들어오는 서장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뒤에 그림자처럼 이선균 과장이 따라 들어왔다.
그의 모습을 본 과장들이 술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서장과 함께 들어온다는 것.
곧 이 서의 실세라는 뜻이었다.
서장이 단상에 오르는 동안 이선균 과장은 통로를 가로질러 맨 앞줄 빈자리에 앉았다.
과장들의 시선이 그에게 따갑게 꽂히고 있었다.
“자, 바쁜데 모여 줘서 고맙습니다. 다들 바쁜 거 아니까 짧게 용건만 말하죠.”
서장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알다시피 내년부터 운영지원과가 개편됩니다. 체납자 징세가 주가 될 텐데 딱 봐도 청장님이 뭘 하고 싶으신지 알겠지요.”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직원이 모인 강당이 조용했다.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대적인 개편이다.
이다음에 나오는 말이 중요했다.
“공지에 썼듯이 각 과에서 인원을 차출할 예정입니다. 다만 선발에 시간이 걸릴 테니 기준을 미리 말해 두려 합니다.”
서장은 강당을 슥 둘러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청장의 시선이 정확하게 내게 와서 꽂히더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서는 강남의 중요 1급 관서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과세 금액도 많고, 케이스도 복잡한 건이 많죠. 고액 체납자도 많아요. 웬만한 경험으로는 안 될 겁니다. 게다가.”
서장이 말을 끊고는 직원들의 긴장 어린 표정을 훑었다.
나야 서장을 본 지 얼마 안 됐으니 잘 모르지만, 왠지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청장님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유의미한 결과를 내려면 유능한 직원들로만 구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대놓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인가.
앞줄에 앉아 있던 팀장이 머리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 보였다.
아, 안 되는 게 맞구나.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가세,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납세자 보호실, 조사과에서 각 2명씩 차출합니다. 실무에서 직원들과 가장 가까이 한 각 과 과장들이 그 선정을 맡을 거고요.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제가 직접 뽑을 겁니다. 과의 명예를 걸고 선정해야 할 겁니다.”
당부는 앞줄에 앉은 과장들에게 한 것이었다.
“자, 그럼 관심 있는 분은 분발하시고 나머지는 일하러 가십시오. 납세자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속사포처럼 본론만 늘어놓은 서장은 왔을 때처럼 바람 같이 휭, 강당을 나갔다.
문득 통로를 지나가던 서장과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는 웃고 있었다.
“맞네. 결국 그 얘기네.”
“서가 뒤숭숭하겠네요.”
“저는 그런 거엔 관심 없는데. 그냥 하던 대로 일하는 사람도 많을걸요?”
서장이 나간 후에도 직원들은 남아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평소 만나기 힘든 다른 과 직원들도 한데 모인 자리다.
아예 판을 깔아 준 셈이었다.
“신재현 씨는 관심 있겠네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이 떠보듯 물었다.
당연히 관심은 있다.
애초에 이선균 과장이 내게 내린 지시가 저 팀에 뽑히라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그걸 대놓고 떠들 필요는 없다.
“글쎄요.”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직원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같은 납세자 보호실의 직원들이 한참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근데 꼭 이렇게 모을 필요가 있었나요? 공지사항으로 해결될 얘긴데.”
“에이, 명색이 서장님 말씀인데 그깟 공지사항으로 되겠어요? 전 인원 딱 모아놓고 기깔나게 훈화 좀 하고!”
“서장님이 훈화할 성격은 아니시잖아요. 오늘도 할 말만 딱 하고 가셨는데.”
옆자리의 직원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긴 해요. 원래 저렇게 과시하시는 분은 아니거든요. 아, 신재현 씨는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겠군요.”
직원은 내게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의 관심을 못 이기고 입을 열었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서장님의 계획은 대충 알겠습니다.”
“계획이요? 개편하는 거 말고 다른 계획이 있나요?”
“서장님은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능력을 따집니다. 능력만 된다면 어느 정도 일탈도 봐주시죠. 서장실도 빌려주신 분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분이 일을 크게 벌리고 싶어 합니다. 결론은 하나죠. 경쟁입니다.”
나와 옆자리 직원의 대화에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내게 주목하고 있었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은 대놓고 뒤를 돌아보았다.
“보통 과가 1과 2과로 나뉘고 그 안에서도 1팀 2팀으로 나뉩니다. 각 과에서 2명. 많은 수가 아니죠. 이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필사적이 될 테고, 그럼 자연히 삼성 세무서의 실적도 올라가는 겁니다.”
“에이. 설마요.”
그리고 아마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재미.
이렇게 불을 붙이는 것이 훨씬 재밌을 테니까.
그러나 이건 이 자리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따가운 시선 속에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당신 이름이 뭡니까?”
질문한 것은 앞줄에 앉아 있던 남자였다.
“신재현입니다.”
“아, 그…….”
내 이름을 듣자마자 흥미로 가득 찼던 그의 눈빛이 단숨에 적대적으로 돌아섰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남자 역시 체납팀에 뽑히고 싶어 한다.
같은 과라면 아마 그와 나는 지금부터 경쟁 관계일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세법을 잘 본다면서요?”
“조금 봅니다.”
정확히는 세금을 보는 거지만.
남자는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다.
“1년도 안 됐으면서 자신감이 넘치네. 지금은 운 좋게 넘어간다지만 그러다 큰 사고 칩니다. 원래 자신감 붙을 때가 위험한 법이거든.”
남자의 충고 아닌 충고에 발끈한 것은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장세훈이었다.
“야, 유명진. 네 앞가림이나 잘 해. 신입보다 과세도 후달리면서 무슨 충고야.”
“낙하산이라고 제일 싫어하던 장세훈이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을까?”
“실력 있으면 낙하산이 아니라 스카우트지. 그리고 얘는 실력을 증명했고. 너는 그만큼 증명을 했어?”
“그동안의 내 실적이 증명한다. 지금 네가 내 실력을 논할 처지냐?”
장세훈과 유명진의 대화는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각 과의 직원들이 둘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둘 다 다혈질이라 그런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디 그럼 그 잘난 실력, 나한테도 증명해 보든가.”
“소문 못 들었어? 얘가 뭘 했는지? 네 앞가림도 못 하면 동료들하고 좀 어울리고 소문도 듣고 그래라.”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 인간적으로 1년 차가 그런 실적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누가 도와주고 실적 몰아줬겠지. 그니까 낙하산이 싫은 거라고.”
“지금 내 말을 못 믿는다는 거지?”
정작 당사자인 내가 가만히 있는데 상관없는 둘이 싸우고 있다니.
게다가 내 편을 들고 있는 것은 그 장세훈이다.
날 때려눕히려 했던 장세훈.
왠지 기특한 마음이 들어, 나는 팝콘을 씹는 심정으로 둘의 싸움을 구경했다.
그러다 난데없이 장세훈이 내게 손가락질을 하자 깜짝 놀랐다.
“그러면 보여 주면 될 거 아냐!”
뭐를?
“그래. 천하의 장세훈도 한물갔다 이거지. 이런 새파란 신입을 밀고. 나야 좋지. 어디 한번 해 보자고.”
그러니까 뭐를?
“가장 어려운 건으로 해결해 보자고. 어디 얼마나 실력이 좋은지 한번 보자.”
난데없이 싸움판 위에 올라온 느낌이다.
나는 손을 들어 둘의 시선을 모았다.
“지금 누구 맘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겁니까?”
내가 따지자 울컥한 것은 장세훈이었다.
“아니 그럼 가만히 있어? 지금 이 자식이 너더러 남의 실적 슬쩍 가로챈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러니까 제 일인데 장세훈 주사보님이 열정적으로 나서시길래요. 제 동의 없이 제가 증명하는 자리가 돼 버린 거 아닙니까.”
“그야…….”
장세훈이 눈동자를 굴렸지만 할 말이 없었는지 말을 흐렸다.
당사자인 내 싸움을 멋대로 정한 것이니까.
장세훈이 멋쩍은지 작게 툴툴대며 한발 물러섰다.
유명진은 거보란 듯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거지? 자신 없어?”
어느 샌가 사위가 조용했다.
강당에 모인 직원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나 했더니 반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앉아 있었다.
큰소리를 내며 싸우자 구경 중인 것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심하며 고개를 돌리자 시선 끝에 이선균 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과장들 역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선균의 얼굴은 여느 때처럼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미소에서 예전에 했던 과장의 말이 들렸다.
-큰 건을 처리하세요.
과장님, 큰 건을 처리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렴. 저는 아직 1년 차니까요.
실적만 쌓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소문은 진짜라는 것을.
나는 작게 심호흡하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여기 계신 삼성 서의 직원분들이 증인입니다. 원하신다면 제 능력, 증명해 드리죠.”
나는 도발적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일부는 놀라고 일부는 재밌어하는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처리하기 곤란한 건, 어려운 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똑똑히 보여 주마.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