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주목(1)
서초동 세무사회관.
대로변에서 한참 떨어진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5층짜리 건물.
강남구에 즐비한 고층 빌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담했다.
그러나 외견과는 다르게 이곳은 2만 6천 명의 세무사가 소속된 협회였다.
세무사는 개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세무사회에 소속되어야 했기 때문에 협회가 지닌 권한은 막강했다.
-웅성웅성
그런 세무사회의 회의실에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였다.
원래라면 수습 세무사들 교육이 있을 때 빼고는 항상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면 제명으로 가닥을 잡죠. 징계위에 그렇게 올리겠습니다.”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선언하듯 말했다.
그는 잠시 시간을 두고 주위를 슥 둘러봤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무사 최성덕에 대한 징계 요청 건 회의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친 남자, 감리팀장이 자료를 정리해 회의실을 나갔다.
세무사 회관에 모인 가장 큰 이유는 끝났다.
그러나 회의실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답답하다는 듯한 남자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의 시선이 질문자가 아닌 끝자리로 쏠렸다.
강남지역 회장이 모여드는 시선을 느끼고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강남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한 말이지만 오늘은 사과를 아낄 날이 아니었다.
자칫하다간 세무사라는 전문 자격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총회장이 분노한 것도 이해할 만했다.
“강남지회장님이 잘못하신 건 없지요. 사과하신들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궁금한 건 대체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가 하는 겁니다.”
질문했던 남자는 성격이 급한지 답변을 재촉했다.
그러나 강남지회장도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애초에 그가 이번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세무사 회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강남지회 소속의 세무사 하나가 탈세를 조장했다.
-세무사라는 자격증의 신뢰가 떨어지기 전에 우리 세무사회에서 자정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니 징계위원회에 가장 엄중한 징계를 요청하겠다.
세무사 회장의 어조는 담담했으나 그 뜻은 명료했다.
그러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렇게 수면 위로 드러날 정도로 일이 커졌으면 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 벌어지고 있는데 정작 그는 아는 것이 없었다.
적어도 무슨 일이 터진 건지는 알아야 자신도 뭐라 할 말이 있을 것 아닌가.
“그게…… 저도 여러분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본회가 발칵 뒤집힌 걸 보면 뭔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인데.”
강남지회장이 말끝을 흐렸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이 건에 대해 아시는 분 없습니까?”
답답한 마음에 성질 급한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 질렀다.
회의실에 모인 지회장들은 하나같이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러나 그중 한 명, 반백의 머리칼을 한 노신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들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에 홀로 초연한 그는 확연히 눈에 띄었다.
성질 급한 남자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용산지회장 최용찬 세무사님. 뭔가 아시는 게 있나 보군요.”
지목을 당한 최용찬은 평온하게 고개를 들었다.
주변의 지회장들이 번쩍이는 눈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회의 중에 다 나왔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이미 기분이 상한 강남지회장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따지듯 물었다.
“무슨 얘기가 나왔다는 겁니까? 탈세 조장 증거랑 위원회에 올릴 징계요청서에 징계 수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밖에 더 있었나요?”
“잠깐 진정하세요.”
강남지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옆에 앉아 있던 서초지회장이 뜯어말렸다.
‘지금 화를 낸다고 해결이 되나. 딱 봐도 뭘 아는 티를 내고 있는데 캐물을 생각을 해야지.’
서초지회장은 억지로 장내 분위기를 진정시킨 후에 은근한 목소리로 최용찬에게 물었다.
“이번 일은 강남지회 세무사의 일인데 용산지역 회장님께서 아신다는 건 의아한 일이군요. 그래도 고견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그래도 서초지회장 역시 얕보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네까짓 게 뭘 아느냐는 속마음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용산지회장 최용찬은 같잖다는 듯 피식 웃었다.
“세무사회 총회장님이 분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일이 알려지면 세무사의 명예가 실추될까 두려워서였죠. 게다가 징계 수위를 최고로 하자고 우리 세무사회에서 선수를 쳤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라는 생각 들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히 일반 국민들이 알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겠죠. 기사라도 타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게 될 텐데, 자정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탈세 조장이 처음 있는 일입니까?”
최용찬의 따끔한 말에 주변의 지회장들이 일순 입을 다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다.
2만 6천 명에 달하는 세무사 중에는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전문자격사라고 해도 쓰레기는 섞여 있는 법이다.
가짜 경비를 넣어 세금을 줄이다 걸리는 세무사도 1년에 몇 명씩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 최고수위 징계를 받는 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겁니까?”
“국세청입니다.”
“응? 국세청이 왜요?”
최용찬은 꼬박꼬박 대답해 주고 있었지만, 답변을 들으면 들을수록 미궁에 빠졌다.
그동안 이런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국세청의 눈치를 봐야 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소식이 느리시군요.”
“뭐요?”
강남지회장이 다시 발끈하며 일어섰다.
이번엔 서초지회장도 말리지 않았다.
“뜬구름 잡는 얘기는 그만하시죠.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 둘입니다. 용산지회장님이 우리도 모르는 그런 정보를 갖고 있다고요?”
대놓고 무시하는 투였지만 주변의 지회장들은 눈치만 볼 뿐이었다.
대부분의 세무사들이 모인 강남 3구의 힘은 그만큼 막강한 것이다.
‘저 사람 좋으신 최용찬 세무사님을 아주 잡아먹으려 드는구만.’
회의에 참석한 지회장들이 안타까운 눈길로 최용찬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평온했다.
“그럼 더 잘 아시겠군요. 국세청의 세 파벌 중 단독으로 치고 나오는 유력한 파벌이요.”
“알다마다요. 다음 청장에 가장 가깝다는 본청 조사국장 아닙니까.”
“그 오른팔이 누굽니까?”
“뭐 서울청 운영과장하고…… 중부청 개인납세과장이던가요.”
“한 명 더 있을 텐데요.”
최용찬이 날카롭게 말을 잘랐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듯한 매서운 눈빛이었다.
부끄럽게도 인맥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여기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망신이다.
강남지회장은 팽팽 머리를 돌린 끝에 가까스로 하나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 삼성 세무서 과장이 하나 있었죠.”
“근데 과장급이 무슨 오른팔씩이나 됩니까. 굳이 기억할 이름은 아닌 것 같던데.”
옆에서 서초지회장이 거들었다.
최용찬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이번 탈세 걸린 세무사가 어느 세무서랑 다퉜죠?”
“삼성…… 세무서죠?”
서초지회장이 엉겁결에 대답하자 회의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설마. 말도 안 됩니다. 겨우 과장급한테 잘 보이겠다고 세무사 회장님이 저 난리를 치신다고요?”
“아직도 잘못 짚었습니다. 과장급이 아니에요.”
“과장급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탈세로 걸린 세무사가 당시 다루던 건이 양도세였잖습니까. 그 건을 조사 담당한 7급 직원이 조사국장의 아끼는 칼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강남지회장이 얼굴에 비웃음을 띄웠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뭔가 최용찬 세무사님이 음모론에 빠지셨나 봅니다. 어떻게 7급 직원을 아끼고 말고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세무사님들?”
그는 주변의 지회장들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조용히 싸움을 지켜보던 세무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요. 저도 그 자료는 봤습니다. 경력 1년도 안 된 신입 조사관 아닙니까?”
“과세통지서 담당자에 한 명 적혀 있긴 했는데 그건 말 그대로 담당자죠. 실권자는 따로 있는 것 아닙니까.”
세무사들이 강남지회장의 눈치를 보며 한두 마디씩 거들었다.
다음 세무사 회장이 될지도 모르는 유력 후보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강남지회장이 흡족한 얼굴로 회의실을 둘러보다가 눈썹을 꿈틀했다.
이런 광경이 불편한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노원지회장과, 여전히 평온한 얼굴의 용산지회장이 눈에 들어왔다.
“자자, 그만하시죠. 최용찬 세무사님이야 워낙 조용한 골목에 계시니 조금만 시끄러워져도 크게 느껴지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음모론에 빠지는 것이지요.”
강남지회장이 장내를 정리하려 할 때였다.
“세무서 과장과 계장, 현직 검사, 전 지검장, 제1야당의 비상대책위원.”
“……이제 와서 인맥 자랑하시는 겁니까?”
못마땅해 하는 강남지회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최용찬이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지금 무시하시는 그 7급 직원이 썰어낸 모가지들입니다.”
최용찬이 덧붙인 것은 단 한 문장이었지만 파급력은 컸다.
무거운 돌덩이 같은 침묵이 회의실에 내려앉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지회장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침묵을 깬 것은 서초지회장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뒤에 팀장이나 과장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 직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 납세자를 대면했습니다. 그 자리에 동행한 과장이나 팀장은 없었고요. 모든 고지서가 그 직원의 이름으로 발부되었습니다.”
“말도 안 돼!”
강남지회장이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공무원 사회가 어떤 사회인데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의심 가는 분들은 용산과 삼성 세무서에 전화해 보세요. 이 두 서에서는 유명합니다.”
허세면 이렇게까지 당당할 수 없다.
확인해보면 금방 들통날 일 아닌가.
지회장들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강남지회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세금을 때려 맞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같이 지위와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인사를 겨우 7급 직원이 과세 때렸습니다. 그 뜻이 뭐겠습니까.”
최용찬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그의 눈은 열망에 가득하여 있었다.
“납세에 성역은 없다. 탈세가 있으면 조진다! 국세청의 다음 세대를 책임질 유력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세대의 길잡이가 바로 그 직원인 겁니다.”
“크흠…….”
강남지회장이 도로 자리에 주저앉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과세는 더욱 공격적이 될 것이다.
탈세와 절세를 넘나드는 줄타기는 줄이 아니라 칼날 위를 타게 될 것이다.
관습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해왔던 그들만의 ‘절세’가 이젠 그들의 목을 조이게 될 것이다.
“세무사 회장님이 바보는 아닙니다. 괜히 최성덕 같은 이름도 모를 세무사를 제물로 바치는 게 아니에요.”
최용찬의 말에 회의실에 모인 지회장들은 서늘한 칼날이 목 아래로 드리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 칼날을 잡고 있는 묵직한 인상의 한 중년 남자가 환상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조금이라도 구린 구석이 있는 세무사들은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다가올 폭풍의 예고였고,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