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70화 (70/500)

70화. 농지냐, 비사토냐(4)

“말도 안 됩니다. 설마 없는 증거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겠죠?”

세무사가 펄쩍 뛰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라니.

확인서만 생각했던 세무사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야 방어할 대책이라도 세우지.‘

간혹 의뢰인 중에는 자신의 치부라 생각해서 일부러 세무사에게도 사정을 숨기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무원에게 공격당하면 방어할 기회도 없이 당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가.

세무사는 곁눈질로 장만갑을 살폈다.

장만갑 역시 당혹스러운 눈치다.

장만갑 씨 본인도 모르는 것 같은데.‘

뭘 어떻게 조사했길래 의뢰인 본인도 모르는 과세 근거가 나온단 말인가.

세무사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일단 근거를 말씀해 보시죠.”

“첫 번째는 확인서입니다. 토목 공사를 해서 지목을 밭으로 바꾸고 거기에 농사를 지었다고 했죠? 제가 거기 직접 갔다 왔거든요.”

“강원도를 갔어요?”

세무사가 당혹스러워하며 되물었다.

‘또라이라더니 진짜 독종이네. 세무 공무원들 일에 치여서 실사 나가기 힘들 텐데.’

그래도 이건 반박이 가능하다.

세무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공사한 사장님이라도 만난 겁니까?”

“네. 실제로 공사한 적은 없다던데요.”

사장이 못 참고 이실직고했구나.

장만갑이 옆에서 주먹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 못돼먹었어요. 여기 장만갑 씨가 공사 대금 일부를 덜 줬거든요. 그래서 앙심을 품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정말로 공사 했습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이미 사진은 제출했고. 아, 그래요. 대금 증빙입니다.”

세무사는 준비해 온 통장 사본을 꺼냈다.

확인서에 쓰여 있는 날짜와 비슷한 시기에 통장에서 현금으로 돈을 뽑은 흔적이 있었다.

실제로는 다른 곳에 썼지만, 어차피 현금 인출이라 어디에 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토목 공사 사장이 솔직히 말할 경우도 계산했지.‘

세무사는 사장을 믿지 않았다.

만의 하나를 대비해 대금 증빙도 만들어 두었다.

실제 업체 사장에게 돈이 갔다는 증거는 되지 않았지만, 확인서에 쓰인 날짜에 맞게 통장에서 거금이 빠져나갔으니 간접 증거는 된다.

물론, 실제 돈을 준 적은 없다.

공사 자체가 없었으니까.

통장 내역을 보고 확인서 날짜를 꾸며 적었을 뿐이다.

“이건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게 증거죠.”

세무사가 반박하려는 순간, 공무원이 파일 가장 위에 꽂혀 있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문자메시지를 확대해 인쇄한 것이었다.

[근데 정말 확인서만 써주면 돼요?]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소.]

[날짜는?]

[세무사한테 물어보고.]

세무사가 번뜩 장만갑을 돌아보았다.

어쩌자고 이런 이야기를 전화가 아닌 문자로 했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장만갑을 다그치고 싶었지만, 공무원 앞에서 말실수라도 했다간 끝이다.

세무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씹어 삼켰다.

“이걸 대체 어떻게…….”

“장만갑 씨!”

장만갑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려던 것을 세무사가 급히 막았다.

아직 괜찮다.

직접적으로 가짜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이 새끼 보게…….’

세무사는 앞서 내린 평가를 수정했다.

검사와 변호사처럼 법정에서 공방을 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눈앞의 공무원은 제대로 된 칼날을 들이밀 줄 알았다.

게다가 공무원이 수집해온 것들은 책상물림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로 뛰고 머리를 써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경력이 짧아 얕봤는데 만만한 놈이 아니다.

세무사는 긴장의 끈을 바짝 잡아당겼다.

“이 문자는 장만갑 씨가 업체 사장에게 확인서를 써 달라고 요청한 내용입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길래 장만갑 씨가 알려준 거고요. 확인서를 요청한 게 잘못은 아니죠.”

잘 받아쳤다.

세무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공무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나올 거라 예상했다는 느낌이다.

‘이상한데.’

공무원이 순순히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장만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세무사는 오히려 식은땀이 흘렀다.

문자메시지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둘은 확실한 증거라는 뜻이다.

“요즘 로드뷰는 아주 고화질이더군요. 간판에 전화번호까지 보일 정도죠. 게다가 2년마다 갱신을 해요.”

공무원은 테이블 위에 세 장의 사진을 늘어놓았다.

“순서대로 1년 전, 3년 전, 5년 전의 사진입니다. 일부러 로드뷰 회사에 전화해서 받아 왔죠. 어떻습니까. 이게 밭으로 보입니까?”

사진을 보자마자 세무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사진은 명백했다.

아무리 도로를 지나가며 찍은 사진이더라도 작물이 자라는 땅과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은 확연히 다르다.

‘일부러 사진까지 찍어서 증거로 첨부했는데.’

이의 신청서에 붙은 사진은 세무사가 지시한 것이었다.

양도 직후 아직 새 주인이 공사를 하기 전에, 부랴부랴 달려가 빈 땅의 일부에 식물을 심고 사진을 찍었다.

절대 조작인 걸 알 수 없었을 텐데.

“이건…… 그러니까 이때 잠시 휴경 중이었던 때라…….”

궁색한 변명인 건 세무사도 알았다.

하지만 뭐라도 말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세무사가 더듬더듬 말을 쥐어짜 내고 있자 쉴 틈도 주지 않고 공무원이 다음 서류를 꺼냈다.

이번엔 두툼했다.

‘아 또 뭔데…….’

세무사는 족히 수백 장은 되어 보이는 서류철을 건네받아 살펴보았다.

“카드 내역서네요.”

단순히 카드대금 고지서에 따라오는 명세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사용한 시각과 사용한 곳의 사업자 등록번호, 그리고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음식점, 술집, 당구장…….

대부분이 서울시였다.

“지난 5년간의 카드 내역입니다. 누구의 카드일지 맞춰 보시죠.”

공무원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웃었다.

“설마…….”

세무사는 앞장으로 돌려 명의자를 확인하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장만갑]

“내 카드네?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상관이에요?”

세무사와 공무원 사이에서는 뭔가 일이 끝난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중 상황을 모르는 건 장만갑뿐이다.

“둘이서만 이해하지 말고 나도 좀 같이 압시다!”

답답해진 장만갑이 소리쳤지만, 세무사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조용해진 세무사 대신 공무원이 설명했다.

민원인이라도 대하는 듯한 친절한 말투다.

“양도세 감면의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일정 기간 이상 직접 근처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을 것. 이건 로드뷰만 봐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직접 거주? 내 주민등록이 강원도에 있는 건 공무원 양반도 알 테고. 농사? 내가 직접 지었는데?”

장만갑은 일단 시치미를 뚝 떼기로 했다.

“주민등록만 강원도에 있으면 안 됩니다. ‘직접’이라고 했잖아요. 서울에 있는 아드님 댁에서 계속 살면서 어떻게 강원도에 있는 땅에서 농사를 짓습니까?”

그제야 장만갑은 세무사가 왜 체념한 것인지 알아차렸다.

자신의 카드 내역.

사용한 곳이 대부분 서울이었다.

“이 정도 증거면 충분할 것 같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만. 장만갑 씨, 원하시면 경찰에 요청해서 아드님 댁 근처의 CCTV도 수거해 올 수 있습니다.”

장만갑은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도와달라는 뜻으로 옆자리에 앉은 세무사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장만갑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니면 순간이동이라도 해 보시겠습니까? 서울에서 살면서 강원도에 있는 땅을 매일같이 경작할 수 있다면 직접 보여 주시죠.”

겉보기에 젊은 청년으로 보이는 공무원이 이제는 노회한 능구렁이처럼 보였다.

왜 또라이라고 불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장만갑이 아무 말도 못 하자 세무사가 종이 다발을 돌려주며 얼굴을 구겼다.

“제대로 걸렸네.”

***

사무실로 돌아온 세무사와 장만갑은 한참을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뭐라 할 말은 많았지만 입을 열자 한숨만 나왔다.

“하…… 세무사님. 이건 잘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장만갑이 힘없이 물었다.

“그 땅 팔아서 뭐 많이 남은 줄 알아요? 내 손에 떨어진 게 3억이야, 3억. 그중에서 세금을 5천만 원이나 내라고? 말이 되나?”

장만갑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처음엔 신세 한탄이었지만, 이제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공무원 놈도 문제지만 세무사님도 그래! 나 같이 없는 사람은 좀 잘 도와줘야 할 거 아니에요! 세금 내고 나면 뭐가 남아?”

세무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부동산으로 3억이나 남겨 먹었으면 됐지, 그게 없는 사람이냐?’

처음에야 듣기 좋게 ‘그럼요, 그 5천만 원 안 내셔도 됩니다’하고 맞장구를 쳤지만, 지금은 저런 불만조차 징징거림으로 들렸다.

이미 사건은 끝났다.

더 이상 수수료를 받아먹을 수도 없으니 고객도 아니다.

“세무사님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왜 이렇게 됐어요? 나 5천만 원 내야 돼요?”

이젠 아예 세무사 탓으로 돌리겠답시고 발판을 까는 게 아닌가.

세무사는 어처구니없어하며 장만갑을 바라보았다.

“장만갑 씨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기 싫다고 해서 제가 편법으로 해 드린 것 아닙니까.”

“될 것처럼 말했으니까 그렇지! 애초에 처음부터 냈으면 가산세도 안 물었고, 세무사 수수료도 안 나갔을 것 아니야! 이게 뭐야, 돈은 돈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게 왜 제 탓입니까. 장만갑 씨가 당연히 냈어야 하는 세금입니다. 저는 의뢰하신 내용대로 도와드린 것뿐이죠.”

“난 시키는 대로만 했어! 세금 못 내. 당신이 내!”

장만갑이 불같이 화를 내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세무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처음 장만갑이 자료를 갖고 왔을 땐 쉽다고 생각했다.

나름의 증거 자료를 갖춘 시점에선 99% 먹힌다고 직감했다.

그동안 그런 식으로 ‘절세’해 준 경험이 있으니까.

분명 이번에도 먹힐 것이라고 믿었다.

“그놈. 그 공무원 놈이 문제야.”

세무사는 이를 으득 갈았다.

자신이 한 것이 탈세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세금이야 내는 사람도 많고, 의뢰인 한두 명 안 낸다고 나라가 망하지도 않는다.

의뢰인은 세금을 안 내서 좋고 자신은 수수료를 받아서 좋고.

“그놈이고 뭐고 세무사 양반, 수수료나 돌려줘요!”

“계약서에 불복 실패 시 수수료를 반환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알 게 뭐야! 당신이 실패했으니까 돈을 돌려줘야지!”

“계약서에 쓰여 있는 대롭니다. 불만이시면 법대로 하세요.”

법을 들먹이자 장만갑의 말이 턱 막혔다.

“이…….”

그래도 억울하게 세금을 낼 수는 없다.

장만갑이 끈덕지게 입을 열 때였다.

“잠시 조용히 해 주시죠.”

진동으로 바꿔 둔 핸드폰 액정에 떠오른 것은 강남 지역 세무사회의 회장이었다.

세무사회 총회장이나 서울지회 회장보다야 끗발이 떨어지겠지만, ‘강남지역’의 지회장이다.

다른 지역보다 받들어 모셔야 하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어떻게 전화를 다 주시고…….”

-자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가?

“예?”

세무사회 행사가 있을 때 몇 번 인사만 한 사이다.

전화도 1년에 한두 번 안부 인사나 할까 말까다.

그런데 다짜고짜 혼내는 말투라니.

“저, 회장님. 전화를 잘못 주신 게 아닌지요.”

자신이 이런 꾸지람을 들을 리가 없으니 잘못 걸린 전화가 틀림없다.

대충 정리하고 끊으려고 했을 때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노호성이 터졌다.

-내가 번호도 잘못 보고 전화했을 것 같은가! 자네, 최성덕! 세무사 이름에 얼마나 먹칠을 하고 다니는 거야!

최성덕.

분명 자신의 이름이다.

세무사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먹칠이라니요?”

-본회에 연락이 왔어! 탈세를 조장하고 다닌다면서? 지금 우리 회가 얼마나 중요한 시점인지 알기나 해? 회장님이 얼마나 분노하셨는지!

“세무사 회장님이요?”

-자네 각오하고 있어. 징계위원회가 곧 열릴 테니까. 최소 영업 정지야. 어디서 감히 대놓고 자료를 조작해서 탈세 질이야, 탈세 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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