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69화 (69/500)

69화. 농지냐, 비사토냐(3)

나는 사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침묵했다.

황민우는 내 뒤에 얌전히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둘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사장에게 압박이 될 것이다.

물론 떳떳하면 아무 상관없겠지만…….

“나, 나는 잘 모르…….”

“아뇨, 됐습니다.”

“예에?”

사장이 뭐라 말하려는 것을 잘라냈다.

연신 마른침을 삼키고 식은땀을 닦아내는 사장을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뻔했다.

“정상 참작이라도 할까 했더니……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해명할 시간은 충분히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가 조사하죠.”

“아이고! 잠깐, 공무원 양반!”

막 돌아서려던 나를 사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붙잡았다.

“내가 세금이고 뭐고 그런 걸 아나? 나야 해 달라는 대로 해 준 것밖에 없어요!”

나와 황민우의 시선이 교차했다.

됐다, 하는 눈빛이었다.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런 뜻입니까?”

얼굴에 띄웠던 미소를 지우고 차게 물었다.

사장은 사색이 되어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별문제 없을 줄 알고 그랬지요. 나야 뭐 아는 게 있나? 저기 그 뭐냐, 세무사라는 사람이 괜찮다고 하니까 알겠다고 한 거지.”

“확인서를 자발적으로 쓴 게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시켰다는 증거가 있어요?”

“그럼요! 있죠!”

사장은 핸드폰을 꺼내 문자함을 보여 주었다.

[나중에 조사 나오면 어떡해?]

[아무 문제 없다니까. 지들이 어떻게 알아.]

[나야 써 달라니까 써 주지만…….]

[걱정 마소. 이번 주말에 올라갈 텐게, 좀 부탁해요.]

내가 눈짓하자 황민우가 핸드폰을 꺼내 문자함을 찍었다.

“이거 봐 봐요. 난 해 달라는 대로 해 준 거라니까.”

“잠시만요, 사장님. ‘이번 주말에 올라간다.’라는 말은 뭡니까. 땅 주인 어디 갔었어요?”

“으잉? 그 양반, 자식 집에 같이 살아요.”

“자식이 어디 사는데요?”

“서울 살지.”

황민우가 사진을 찍다 말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사장에게 재차 물었다.

“자식이랑 같이 산 게 얼마나 됐습니까?”

“글쎄요. 한참 됐는데. 한 5년 됐던가.”

조용히 서 있던 황민우조차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확인서 같은 것보다 더 큰 증거 아닌가.

오길 잘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장만갑은 분노에 떨고 있었다.

아들놈이 있는 서울로 옮겨와 살게 된 지 어언 5년.

쓸모없는 땅 하나 묵혀 뒀다가 적당한 값에 사겠다는 매수자가 나타나 겨우 팔아치웠다.

그렇다고 기대만큼 많은 돈을 받은 것도 아니라 세금을 내기엔 너무 아까웠다.

땅 팔아 몇 억 벌었다고 세금을 5천이나 내라니.

그래서 ‘절세’를 선택했다.

고용한 세무사는 이거면 된다고 장담했고, 장만갑은 세무사에게 2백만 원이나 되는 수수료를 냈다.

그런데 이의 신청서가 기각되었다는 통지문이 날아왔다.

“이게 뭡니까! 될 거라고 장담했잖아요! 내가 괜히 그 비싼 돈 주고 맡긴 줄 알아요? 자료는 충분하다면서!”

사무실에 찾아와 분노를 토해내는 장만갑에게 세무사는 쩔쩔맸다.

“100% 확답을 드린 건 아니잖습니까. 저도 기각된 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심사청구 넣으면 분명 됩니다.”

“그래놓고 또 수수료 받아 처먹겠다는 거 아냐!”

장만갑이 노성을 터뜨렸다.

“아니, 일단 들어보세요. 제가 하도 이상해서 다방면으로 알아봤습니다. 이번 일 맡은 담당자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에요. 경력도 반년 남짓이고, 다른 서에 있다가 온 지 1달 정도 됐나 봅니다.”

“그래서요!”

세무사는 슬쩍 닫힌 문밖을 내다보며 말을 낮췄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다.

“그놈이 또라이랍니다. 귀신같이 물고 늘어져서 과세하는데 아주 악랄하대요. 원래 이런 건은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데, 이번엔 아주 잘못 걸린 것 같습니다.”

“담당자가?”

분노로 숨을 몰아쉬던 장만갑이 한결 진정된 목소리로 답했다.

“예. 그러니까 불복을 넣으면…….”

여전히 얼굴은 붉었지만, 장만갑은 세무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세무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설득해서 다음 불복을 준비하면 된다.

스스로도 이번 건은 분명 세금이 취소될 거라 자신하고 있었다.

어떤 또라이에게 걸려서 기각되었는지는 몰라도 심사청구에서는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수수료도 더 받아먹을 수 있고.’

차라리 잘됐다며 세무사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해 왔던 의뢰에 비하면 이번 건은 껌이었다.

안 될 것 같으면 이쯤에서 끝내고 보내겠지만, 이 건은 더 진행할 가치가 있다.

다음엔 불복에 성공한다.

그 정도의 자신이 있었다.

세무사는 의뢰인을 달래기 위해 입술에 침을 바르며 운을 뗐다.

“말씀드렸듯이 제가 삼성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이번엔 특별히 힘을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특별 소개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추가해서 받으면 완벽하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똑똑.

한창 중요할 때 방해라니.

세무사가 와락 찌푸리며 문을 노려보았다.

막 들어선 막내 직원은 세무사의 눈빛에 움찔하더니 울상을 지었다.

“삼성에서 전화 왔어요.”

“상담 중이잖아.”

“그…… 이 분 건을 담당하신 조사관님 전화예요.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세무서에서 전화가 오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기각이 난 건에 대해 전화하는 것은 이상했다.

“돌려봐.”

장만갑이 눈을 부릅떴다.

자신과 연관된 일이니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여기서 말실수라도 하면 물어뜯을 기세다.

세무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하세요. 삼성 세무서 납세자 보호실의 신재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장만갑 씨 건을 담당했는데요.

세무사는 흘끔 기각 통지서를 바라보았다.

담당자 신재현.

7급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 조사관님.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이미 기각 내보내신 것 아니었나요?”

-네. 그렇긴 한데 왠지 또 불복 넣으실 것 같아서요.

말투를 보아하니 불복 넣지 말라는 뜻으로 전화한 것 같았다.

이놈이?

경력도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 이런 당당함이라니.

세무사는 좀 더 강하게 나가보기로 했다.

“그야 가능성이 있으면 납세자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저희 세무대리인의 업무 아닙니까.”

-납세자를 위해서라…… 인용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야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전화기 너머의 조사관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비웃음인가?

-불복하셔도 소용없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시간 낭비예요.

세무사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롭니다. 납세자의 돈을 뜯어먹겠다는 거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조사관님,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세무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인지 장만갑의 분위기 역시 불안해졌다.

세무사는 표정 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장만갑이 세무사의 손에서 수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이보세요. 내가 장만갑입니다. 지금 무슨 얘기가 오가는 겁니까? 당사자인 나한테 말을 해요.”

-납세자 본인이십니까?

장만갑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본인이 아니라서가 아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너무 어려서였다.

공무원이 된 지 얼마 안 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어린놈이 또라이 소리를 들으며 악랄하게 과세한다고?

-장만갑 씨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그러니까 뭔 얘긴지 말을 해보시죠.”

-세무사 사무실에서 심사청구나 심판 청구 넣자고 하던가요?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억울하니까 불복을 넣는 거죠.”

-억울하다라…….

“이봐요. 당신이 기각한 거 맞아요?”

-네. 인용될 뻔한 걸 제가 막았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죠.

처음부터 기각도 아니고 인용될 뻔한 걸 막다니.

장만갑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뭐야? 당신이 뭔데 억지로 세금을 물려!”

-억지로가 아닙니다. 근거가 있어요.

“근거라니 무슨 근거!”

-전화상으로는 좀 이야기가 긴데.

젊은 공무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잠시 오시겠습니까? 세무대리인과 함께 오시죠. 복잡하게 청구니 뭐니 하지 말고 깔끔하게 끝내죠.

***

삼성 세무서 10층.

장만갑과 세무사는 기세등등하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민원인들로 북적거리던 1층과는 달리 10층 복도는 한적했다.

그 분위기 자체가 방문자를 주눅 들게 했다.

물론 잔뜩 약이 오른 이 둘에겐 해당 없는 일이었다.

“세무사님. 잘하십쇼. 공무원한테 밀리지 말라고요.”

“걱정 마십시오. 차라리 잘됐습니다. 이 기회에 언쟁을 끝내 두면 다음 불복은 편안하게 진행될 테니까요.”

납세자 보호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기껏해야 예닐곱 명이 앉아 있는 책상은 온갖 서류로 넘쳐났다.

바빠 보이는 분위기에 잠시 움찔한 장만갑 대신 이런 일에 익숙한 세무사가 나섰다.

“신재현 조사관님!”

“아, 예.”

작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구석에서 들려 왔다.

잔뜩 쌓인 서류에 얼굴이 가려 보이지 않던 남자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세무사와 장만갑이 동시에 흠칫했다.

목소리에서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어렸다.

이제 기껏해야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뭔가 잘못 알고 온 것 아닌가?’

‘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악랄하다고?’

세무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고개를 드는 사람은 저 젊은 공무원뿐이었다.

다들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느라 바빴다.

“이리로 오시죠.”

쐐기를 박듯 젊은 공무원이 사무실 구석의 빈 테이블로 둘을 안내했다.

세무사와 장만갑은 엉겁결에 따라가 앉았다.

“전화 드렸던 7급 신재현입니다.”

테이블 앞에 명함 두 장이 놓였다.

거기에 쓰인 이름은 틀림없이 신재현이었다.

‘이놈이 맞나 보군.’

세무사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어찌 되었든 눈앞의 상대는 적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조사관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근거 없이 무조건 과세하시면 안 됩니다.”

신재현은 말해 보라는 듯 조용히 팔짱을 꼈다.

세무사는 기세를 몰아 퍼붓기 시작했다.

“공무원이 된 지 얼마 안 되셔서 감이 안 잡히신 것 같은데 권한 밖으로 마음대로 과세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번엔 조사관님이 경험 부족이셔서 실수하신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저희 세무대리인과 세무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닙니까.”

막힘없이 술술 몰아붙이는 세무사를 본 장만갑이 고개를 끄덕였다.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미 기각 통지서까지 날아온 마당에 이제 와서 인용하는 건 어려우실 테고. 조사관님, 메모 남겨 주시죠. 어차피 인용될 거 다음 담당자분이 시간 쓸 필요 없잖습니까.”

프로그램상 신고서에 담당자가 메모를 남길 수 있었다.

다음 달에 얼마를 납부하기로 했다, 납세자가 까다롭다 등등.

담당자가 워낙 자주 바뀌기 때문인데, 내부자만 볼 수 있는 메모를 언급하는 것은 신재현을 얕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신재현이 팔짱을 풀고 피식 웃었다.

“정당한 근거로 과세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절대 인용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럴 리가 없다고!

장만갑이 답답함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들킬 리가 없다는 뜻입니까? 확인서는 완벽하다. 사진도 완벽하다. 토지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장만갑과 세무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설마?’

‘아니, 알 리가 없는데. 가도 모를 텐데.’

서로 마음속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재현은 옆의 빈 책상을 손을 뻗어 파일철을 가져왔다.

-펄럭.

“증거는 세 가지입니다.”

“세 개나 된다고요?”

세무사가 기겁하며 소리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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