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농지냐, 비사토냐(2)
팀장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서류를 뚫어져라 들여다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 안 되겠는지 아예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고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팀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땐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이 건은 저도 검토를 했던 건입니다. 인용이기도 하고 다툼의 여지가 있어서.”
팀장의 시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사진들에 닿았다가 내게 향했다.
단순히 의아해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의심과 불신이 날카롭게 나를 꿰뚫었다.
“어떻게 과세 근거를 찾은 겁니까?”
아무리 뛰어난 변별력을 가진 공무원이래 봤자 결국 손에 쥔 자료를 갖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정보를 알고 있다면 그건 곧 납세자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다는 뜻이 된다.
“따로 조사한 게 있습니까? 아니면 납세자나 주변인과 연결고리가 있습니까? 혹시 탈세 제보라도 받은 겁니까?”
제보라면 멀쩡히 인용 결정된 자료를 다시 검토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팀장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새삼 이선균 과장이 그리워졌다.
날 믿고 데려와 준 이선균 과장이라면 내게 전권을 쥐여 줬듯이 순순히 보내줬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지원해 주는 상사의 존재가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제가 뭘 했다거나 제보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단지…….”
팀장이 눈을 빛냈고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감이네 뭐네 하는 말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제 성격이 그렇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끝까지 파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팀장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위화감이라.”
팀장이 다시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나야 그냥 그럴듯하게 던져 본 말이지만 그게 먹힌 모양이다.
팀장 역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정확히 설명드리긴 어렵습니다. 자료는 언뜻 보면 완벽해 보이지만, 세금을 취소하자니 무언가 머릿속에 걸립니다. 아닙니까?”
“그런 점도 있긴 합니다만…….”
팀장이 말꼬리를 늘렸다.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밀어붙일 때다.
“이대로 넘어가면 두고두고 생각날 겁니다. 시간을 허비하게 되더라도 제 눈으로 보고 오고 싶습니다.”
“직접 다녀오겠다는 겁니까?”
팀장이 놀라서 되물었다.
해당 과세 토지가 있는 곳은 강원도.
안 그래도 일이 많은 세무 공무원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 가며 그 먼 강원도까지 나간다?
과세 건이라는 확신이 있어 조사를 나간다면 모르지만, 갔다가 허탕이라도 치면 서로 난감하다.
“네. 국가의 세입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일말의 불안감이라도 남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제게도 큰 경험이 될 것 같구요.”
팀장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옛날 생각나네요. 옛날엔 전산 자료가 아니라 다 종이라서 직접 갔다 오고 그랬거든요. 지금이야 전산화가 잘되어 있어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팀장은 말하다 말고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엔 이런 말 하면 꼰대라고 하죠?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젊은이들 몰아세운다고. 그래서 아무리 부하직원이어도 함부로 나가라, 마라, 말 못 하는데.”
팀장이 멋쩍게 웃길래 맞장구를 쳤다.
“어떤 말씀이신지는 압니다. 게다가 납세자와 모종의 거래라도 생기면 위험하고 말이죠.”
“설마 그럴 생각으로 나가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어차피 세무서에서 인용으로 결정 난 건인데 제가 나간다고 납세자에게 유리한 게 있겠습니까.”
팀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네, 압니다. 알아요. 그냥 해본 말입니다. 좋아요. 다녀오세요. 나대지란 게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직접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팀장의 허락이 떨어졌다.
아까 의심하던 것과는 달리 기분도 좋아 보였다.
나는 가볍게 묵례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보고 오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가지지는 말고요.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갔다 와요. 아, 혼자 나가면 안 될 텐데 우리 팀에서 같이 갔다 올만한 사람이…….”
“다른 과 직원이랑 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른 과요?”
팀장이 되물었다가 바로 납득한 얼굴을 했다.
“아, 원래 재산세과에 있었죠. 그럼 더 이해가 가는군요. 양도세 건이면 관심이 있을 만하지. 혹시 재산세과 직원하고 갈 생각입니까?”
“네. 함께 손발을 맞추던 직원이 있어서요.”
어차피 혼자 나갈 생각은 아니었다.
사고 칠 생각은 아니었지만 처음 가는 곳에서 무슨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황민우가 신신당부한 것도 있었다.
팀장은 안심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건이 결국 인용이 났군요. 넘길 때부터 불안하긴 했는데.”
내 설명을 듣자마자 이선균 과장은 바로 어떤 건인지 떠올려냈다.
과연 매일매일 바쁜 이유가 있었다.
재산세과를 거쳐 간 신고서는 대부분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직접 보고 오고 싶다 이겁니까?”
“네.”
“그러세요. 황민우 씨와 나갈 거죠?”
이선균은 역시나 순순히 허락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필요한 만큼 데려가서 쓰십시오.”
이선균은 고개를 들어 황민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내가 재산세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내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던 황민우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듯이 과장의 자리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신재현 씨가 강원도 간답니다. 같이 다녀오세요.”
“준비하겠습니다.”
무엇 때문이냐는 말도 없다.
황민우는 부리나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주섬주섬 서류를 정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가 정리하는 동안 이선균이 잠시 손을 멈추고 펜 끝으로 황민우를 가리켰다.
“신재현 씨가 사람 보는 눈도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내가 다른 과를 도는 동안 황민우는 이선균에게서 배우겠다고 했는데.
내가 바쁘게 돌아다니는 동안 황민우도 바쁘게 움직였던 모양이다.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시키는 건 잘 합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요. 아랫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다 꿰고 있어요.”
일전에 용산 세무서에 있을 때 황민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랫사람은 관심이 많아선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 언뜻 기억났다.
“좋은 사람입니다.”
“예. 같이 일하게 돼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인연은 아껴야 합니다. 단순히 부하라고 생각하지 말고 열과 성의를 보여 주세요. 먼저 따르고 싶게 만드세요.”
이것은 이선균이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부하직원이라도 눈치는 있다.
쓰다 버릴 말로 취급한다면 마음이 떠나는 건 당연하지.
솔직히 처음엔 이선균이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폭적인 지지와 믿음을 보여주는 지금은 나 역시 그 신뢰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선균이 그리했듯이 나 역시 황민우를 파트너로 취급할 생각이고.
지금 내가 잡은 라인이 어떤지 잘 모르니 말을 못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된 모든 것을 말할 생각이다.
내가 무엇을 보는지까지.
“그런데 이 건으로 되겠습니까?”
이선균이 슬그머니 물어왔다.
큰 건 하나 더 해결하라고 했는데, 지금 이 건을 선택한 것이 의아하겠지.
“과장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크기만을 보고 골라서 해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있어선 모든 건이 중요해요.”
내 대답에 이선균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 말이 맞습니다. 제가 초심을 잃었나 보군요.”
이선균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저도 권력 싸움에 많이 물들었군요. 어느 샌가 과세 건의 경중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신재현 씨 덕분에 눈을 떴습니다.”
자책하는 목소리였다.
내가 보기엔 이런 걸로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깨닫고 돌아오는 것도 대단한데.
“신재현 씨 하는 대로 놔두면 될 것을 괜히 제가 참견했군요.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이선균의 이런 점도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다.
단순히 권력에 눈이 먼 중간 관리자가 아니라는 것.
“너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저도 사실 생각은 했거든요.”
나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근데 제가 싫어하던 족속들처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요. 까짓 거 갔다 와서 또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이선균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사이 정리를 마친 황민우가 다가왔다.
우리 둘이 웃고 있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지워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죠.”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투였던 납세자 보호실의 실장과 달리 이선균은 한가득 기대감을 드러냈다.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
고속버스로 두 시간.
터널을 여럿 통과한 먼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한숨을 토해냈다.
“명절에는 정말 어떻게 다니나 모르겠군요.”
“주사보님은 명절에 시골 안 내려가십니까?”
“저희 집이 큰집이라서요. 그래도 친척끼리 왕래가 없어서 명절에 모이질 않습니다.”
잡담을 나누며 등기부 등본상 적힌 주소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또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털털거리는 마을버스에서 내려 지도 앱을 보며 걸어가니 목표하던 땅이 나왔다.
“벌써 공사 중이네요.”
황민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팔린 지 몇 달이나 지난 시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땅을 산 사람은 필요해서 샀을 텐데 몇 달을 빈 땅으로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이미 땅 고르기는 끝났고, 철골이 3층이나 올라간 후였다.
“이전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땅이 밭이었냐 아니냐만 알아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해둔 것은 있었다.
나는 신고서에 함께 첨부되어 있던 확인서를 꺼내 들었다.
토목 공사 전문 업체.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요?”
토목 공사 업체 사장은 다짜고짜 찾아온 두 세무 공무원을 보더니 잔뜩 겁을 먹은 눈치였다.
“확인서 쓰셨던데요. 저 땅, 나대지를 밭으로 일궈준 것 맞습니까?”
“예? 예…….”
“공사가 있었던 건 10년 전인데, 어떻게 지금 와서 확인서를 써 주신 겁니까?”
“아, 다 아는 동네 사람인데 도와줘야지. 근데 어떻게 서울 공무원 양반들이 여기까지 왔대…….”
나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세무사가 그러던가요? 직접 나오지 않을 거라고.”
“아, 아니…… 꼭 그렇다기 보단.”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설마 했는데 가짜 확인서인가?
내 눈이 맞다면, 탈세가 맞다면, 가짜일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이 확인서였다.
나는 강하게 밀어붙여 보기로 했다.
“사장님. 확인서에 인감 찍으셨죠?”
“그렇죠. 세무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인감까지 찍힌 거면 법적 효력이 있는 문서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세요?”
“……무슨 뜻인데요.”
사장의 표정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을 경우 사장님이 처벌받으신다는 거죠. 단순 사문서 위조가 아니에요. 탈세 혐의에 공범이 되시는 겁니다.”
“타, 탈세요?”
“솔직히 왜 일부러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왔을 것 같습니까?”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그 먼 길을 왔을 리가 없지.
굳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말하지 않는 것이 공포를 만들어낸다.
“땅 주인이 그랬죠?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고. 공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공무원이 알 방법이 없는 데다, 나중에 조사 나온다 해도 이미 양수인이 건물 올려 버리면 증거가 안 남는다고.”
변명거리를 내가 먼저 말해 버리자 사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조사할 방법은 많습니다.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고 다녀도 되고, 몇 년 치 로드뷰를 뒤져도 되구요. 요즘엔 지도 앱에서 현장 사진 보여주는 거 아시죠? 몇 백 명이나 되는 동네 사람들 입을 다 막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한 명이라도 ‘그 땅 주인 농사 안 지었는데’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탈세 확정입니다.”
원래라면 이런 협박에 가까운 말투는 나도 싫어한다.
하지만 탈세를 도운 공범을 곱게 대우할 생각은 없었다.
“땅 주인과 얼마나 친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사장님. 정말 공사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