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농지냐, 비사토냐(1)
공지사항이 뜬 것은 오전 업무가 끝나갈 때쯤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가깝다.
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국 세무서 체제를 다 바꾼다고?”
“저기 모이는 놈들은 부담감 엄청나겠네.”
“그러니까 잘나가는 놈들만 모으겠지.”
흘끔, 알게 모르게 엿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요즘 우리 서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일으켰고, 그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다.
내 목표가 체납징세팀인지, 아니면 아무 관심이 없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나야 당연히 들어가는 게 목표긴 한데.
청장의 특별 지시로 개편되는 팀인 이상 경력 1년도 안 된 직원이 들어갈 만큼 녹록한 곳은 아니다.
그렇기에 계속 내 실력을 증명해온 것이고.
삼성에 온 지 두 달 남짓.
그 안에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제 남은 건 큰 거 한 방.
이선균이 말했듯 결정적인 계기가 될 한 방이다.
내가 새로 생기는 체납팀에 들어가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정도로.
‘큰 게 뭐가 있을까.’
처음 삼성에 왔을 때처럼 금액이 수십억 하는 덩치 큰 사건?
아니면 상대가 거물이라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는 사건?
‘말이야 쉽지…….’
상대가 누구든 가릴 생각은 없지만 막상 필요한 때가 오니 그럴듯한 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없는 건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조건 큰 것만 찾느라 자그마한 건들을 소홀히 하는 건 더더욱 싫었다.
원래 목표를 잃어버리고 위만 쫓는 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결심했다.
하던 대로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배정된 건들을 훑어보던 때였다.
[51,319,680]
이제는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자연스럽게 숫자가 떠올랐다.
문제는 숫자가 보이는 건이 끼어 있던 곳이다.
내 옆에는 빈 책상이 하나 있었다.
6명뿐인 납세자 보호실 직원들이 공통으로 쓰는 책상이자, 인용 건을 모아 쌓아 두는 곳이다.
인용.
한 마디로 납세자의 주장이 일리 있음을 인정하고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이다.
당연히 세무서가 질 수도 있고 과세에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런데 인용 건만 쌓여 있는 서류 뭉치에서 숫자가 보이는 건 이상하다.
내 눈에 보이는 건 탈세액뿐이니까.
기각 쪽에서 탈세액이 보인다면 이해한다.
납세자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인용 쪽에서 탈세액이 보인다?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때 잽싸게 파일을 꺼내 내 책상으로 가져왔다.
-팔락.
서류가 한 장 두 장 넘어가고 이윽고 마지막 장이 되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내 눈이 잘못되었다고?
적어도 지금까지 겪은 것들 중에서 이 눈에 보인 숫자가 빗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눈에 잘못되었거나 단순히 내가 서류에서 발견 못 한 거거나.
둘 중 하나라면 후자가 더 확률이 높다.
나는 서류를 덮고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청구인은 강원도에 소유한 토지 1,339제곱미터를 양도하였다. 쟁점 토지는 공부상 나대지로 등록되어 있으나 용지 변경을 위한 공사 후 지목을 답으로 이용하여 왔으며 이에 양도세 신고 시 자경농지 감면을 적용하여 신고하였다.]
납세자의 주장이 근거를 붙여 한참을 이어진 끝에 과세관청, 즉 세무서의 부당함을 성토하는 문장이 나왔다.
[과세관청은 쟁점 토지가 명목상 나대지라는 이유만으로 비사업용 토지의 세율을 적용하여 양도세를 부과하였다. 이에 청구인은 원 처분을 취소하는 처분을 구한다.]
청구문 빽빽이 들어찬 특유의 말투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처음 보는 것이 아닌데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조금 쉽게 써 두면 보는 사람도 편하련만, 문장을 해석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결론.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 처분 양도세 49,313,811원을 취소한다.]
결국 이의 신청은 납세자의 승리로 끝났다.
나는 결론 부분까지 읽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공터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평범한 땅을 나대지라고 한다.
이 나대지를 놀려 두다가 팔면 세율이 높다.
종합소득세율에 무려 10%를 더 매기게 되는데, 납세자 입장에서는 무척 큰돈이다.
우리나라가 땅이 좁아 부동산 투기가 심하니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정책상 세율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땅을 팔면 무조건 세율이 높은가?
그건 또 아니다.
정부가 억제하고 싶은 것은 부동산 ‘투기’다.
꼭 필요해서 땅을 사고, 거기에 사업을 하거나 농사를 지으면 세금을 낮춰준다.
투기가 아니라 필요해서 갖고 있던 거니까.
문제는 ‘필요’냐, ‘투기’냐의 구분에서 다툼이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구분 하나로 세금이 몇 천만 원씩 널뛰기하니 기를 쓰고 ‘실제 필요해서 쓴 토지’라고 주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증거를 보자.
-팔락.
뒷장으로 넘어가자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아마 이 땅의 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았다.
여러 방향에서 여러 각도로 찍힌 땅에는 구황작물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실제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농사지었으면 감면이 맞는데…….’
게다가 뒷장에는 공사 확인서도 첨부되어 있었다.
나대지, 즉 공터에 토목 공사를 해서 땅을 갈아엎고 밭으로 재구성했다는 내용이다.
이 정도 증거라면 확실히 세무서가 인정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 숫자는 대체 뭐란 말인가.
[51,319,680]
당초 과세되었던 양도세가 약 4900만 원이니 거기에 가산세까지 더하면 딱 맞는 금액이다.
금액까지 신빙성이 있으니 더더욱 그럴듯했다.
그럼 대체 뭘까.
정말로 이번엔 내 눈이 잘못된 정보를 보여 주고 있는 걸까.
나는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대로 넘어가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지금 그냥 넘어간다면 앞으로 나는 내 눈을 믿지 못할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강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아니, 눈이 맞든 틀렸든 반드시 확인을 해야 했다.
맞았다면 탈세 현장을 하나 더 찾아내는 것이니 다행이고, 틀렸다면 눈을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것이니 그것도 괜찮다.
납세자 보호 담당실의 총 책임자는 과장이다.
그 밑에 납세자 보호실의 책임자인 팀장이 있다.
내가 지금 찾아가는 것은 같은 사무실에 있는 팀장이었다.
“팀장님. 조용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요? 지금 여기서 그냥 말하면 안 되는 건인가요?”
워낙에 몇 명 없는 사무실이다 보니 팀장에게 말을 거는 순간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시선을 끄는 입장인데 이미 다른 직원이 검토한 건을 내가 다시 보겠다?
삼성 세무서에 처음 왔을 때 장세훈의 상속세 건을 손댔다가 크게 붙은 적도 있다.
분명히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예. 죄송하지만 둘이서 얘기했으면 합니다.”
“허어.”
나와 직원들을 번갈아 보던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사무실 옆에 딸린 작은 회의실에 들어가 문을 닫자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뭔가 곤란한 일이라도 있나요?”
팀장은 굉장히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하긴, 화제의 직원이 갑자기 1:1 면담을 요청하면 온갖 상상이 다 들 것이다.
사실 내가 지금 하려는 요청도 조용히 넘어갈 주제는 아니었다.
“이 건 말입니다.”
손에 든 파일을 건네자 팀장이 빠른 속도로 종이를 넘겼다.
한 장을 읽는 데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 기억납니다. 인용된 청구였죠. 이게 무슨 문제 있습니까?”
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끝난 건.
말을 꺼내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러나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비사업용 토지 구분은 명확한 기준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다툰다는 게 이해가 잘 가질 않아서요.”
대놓고 조사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슬며시 운을 띄우자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궁금해서요? 그것 때문에 불러낸 겁니까?”
“사무실에서 여쭤보자니 이미 다른 직원분이 결론 낸 업무에 이견을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부끄럽기도 해서 그랬습니다. 바쁘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팀장님.”
살짝 고개를 숙이자 팀장이 나와 서류를 번갈아 보더니 뒤통수를 긁었다.
“뭐…… 죄송할 것까지야.”
팀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내 어깨를 퍽퍽 때렸다.
“이런 태도 좋아합니다. 현재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태도 정말 좋아해요. 사실 공무원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세법은 매년 바뀌고 복잡해집니다. 매일매일 공부해도 모자라죠.”
“맞는 말씀입니다.”
한결 풀어진 기색의 팀장이 회의실 테이블 위에 서류를 놓더니 펼쳤다.
“알다시피 이 사례에서 다툰 주제는 하나입니다. 자경농지 감면이 해당되느냐 아니냐죠. 자경농지로 인정받으려면 조건이 두 가지 필요합니다.”
손가락을 두 개 펼친 팀장이 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한번 대답해 보라는 제스쳐다.
“재촌과 자경입니다. 풀어 말하면 8년 이상 농지 근처에 거주하면서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죠.”
“잘 알고 있군요.”
“책에 나와 있는 단순한 내용이라면 압니다만, 이게 어떻게 다툼의 여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기준은 명확한 것 아닙니까? 저 두 조건을 갖춰야 감면 대상인 거니까요.”
“음,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팀장은 철해 둔 종이를 떼어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공부상, 즉 토지대장에 쓰여 있는 땅의 종류가 ‘나대지’이기 때문입니다. 세법은 명목상 어찌 되었든 실제 용도에 따라 과세하잖아요.”
“실질과세의 원칙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실질과세, 말은 좋은데 우리가 보는 건 결국 서류상 문자입니다.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문건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납세자가 공사 자료를 제출한 겁니까?”
나는 널려 있는 자료 중 공사 확인서를 쿡 짚었다.
모월 모일, 토목 공사 업체가 밭으로 바꿔주었다는 확인서다.
인감증명서까지 붙어 있어 증명은 확실했다.
“공사 자료와 현지 땅 사진으로 실제 용도가 밭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납세자의 주소지는 밭 근처에 있고요. 그래서 납세자의 청구를 인용한 겁니다.”
“그렇군요.”
나는 납득한 척 서류에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유심히 날 바라보던 팀장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알고 있었죠?”
“예?”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팀장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다 아는 눈치로 설명을 듣더군요. 신재현 씨가 그동안 맡은 건들 봤습니다. 말, 비상장주식평가, 지분이 복잡하게 얽힌 부동산들. 하나같이 다 직원들이 꺼리는 것들이었어요.”
“그건…….”
내가 뭐라 말하려 하자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남들 하듯이 과세 때린 게 아니었어요. 책만 보고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세법을 보고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한 과세였습니다.”
팀장이 그 정도로 나에 대해 관심이 많을 줄은 몰랐다.
내가 문영순의 과거 과세 건을 들춰봤듯이 팀장 역시 내가 맡은 건들을 살펴본 것이다.
“그러니까 서론은 집어치우고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날 불러내서 이 양도세 건을 보여 준 이유가 뭡니까?”
팀장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웠다.
어떻게 보면 내가 팀장을 시험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충분히 기분 나쁠 일이고 오해를 풀고 넘어가야 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이 건이 인용이 아니라 기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류상으로 이상한 점은 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내가 본 숫자들을 믿었다.
만약 내게 보인 탈세액이 틀렸다 하더라도, 팀장에게 밀어붙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과세 근거를 봤다고요?”
팀장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