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부가세과의 소문난 진상(2)
“실수 좀 했다고 제가 뭐하러 귀찮게 이런 난리를 피우겠습니까? 나도 할 일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무슨 감사과도 아니고 직원 오점이나 들추고 다니겠습니까.”
남자의 말투는 조곤조곤했다.
몇몇 부가세과 직원이 듣다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영순은 그렇지 않았다.
“말 잘했네요. 감사과도 아닌 직원이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같아요?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요?”
-나왔다!
-누구긴 누구야. 그냥 직원이지.
-나랑 똑같은 8급이면서 혓바닥은 길어요.
반박할 말이 없으니 배경으로 몰아붙인다.
그것은 문영순에게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도 실제로 승진에 영향 준 건 사실이잖아요.
누군가의 말에 채팅창이 숙연해졌다.
부당하지만 사실이었다.
직원들은 눈앞의 남자가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졌다.
“……문영순 씨가 누구냐가 아니라 아버지가 누군지를 말하는 거겠죠?”
“그게 그건데요.”
“당신하고 아버지가 어떻게 같습니까?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버지 타령이에요? 문영순 씨, 착각 좀 그만 하세요. 당신은 본청 고위 공무원이 아니고 일선 세무서 8급입니다.”
-캬! 말 잘한다!
-그래! 저거지!
채팅창이 폭주하듯 새로운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문영순 바로 옆자리의 직원들만 빼고 다들 대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근데 괜찮을까요?
-저 직원 나름 능력 있는 사람인 것 같으니 문영순 따위한테 밀리진 않을걸.
-아니 아버지가 본청에 있잖아요.
“그래서 당신 아버지한테 말해서 삼성 세무서의 직원 하나 훅 날려달라고 할 생각입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정말로 다치기 싫으면.”
“이유는 뭐라고 설명하시게요? 당신의 실수를 언급했다? 면박을 줬다?”
“나한테 모욕감을 줬잖아요! 여기 직원들 다 보는 데서!”
문영순이 뒤를 홱 돌았다.
흘끔흘끔도 아니고 대놓고 고개를 빼서 구경하던 직원들은 눈이 마주치자 딴청을 부렸다.
거기에 화가 난 문영순이 빽 소리를 질렀다.
“구경났어요? 일 안 해요?”
남자는 이제는 경멸의 눈빛으로 문영순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모욕으로 보입니까? 당신 정말 구제 불능이네요.”
“뭐, 뭐예요? 당신 뭔데 진짜…… 이제는 안 봐줄 거예요.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끝났네
-마지막 경고까지 나왔으면 이제 진짜 아빠한테 이른다는 뜻인데
-재밌었는데 여기서 끝인가 보네요.
-주민승 씨, 가서 저 직원 좀 구해 줄래요?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넵.
부가세과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 직원이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과에서 가장 덩치 있고 험악하게 생겨서 그나마 문영순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과 직원들과 문영순이 붙게 되면 말리는 역할을 주로 맡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격화되는 말싸움의 현장은 바로 옆에서 보니 박력이 더했다.
특히 문영순을 몰아붙이는 남자 직원의 눈빛은 차고 매서웠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바로 옆에서 보니 문영순이 거의 울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문영순 이러는 건 처음 봤는데. 더 지켜볼 걸 그랬나?’
그러나 바로 옆까지 온 이상 이미 늦었다.
주민승이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때였다.
부가세과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주사보님. 누굴 조지고 계십니까.”
“어? 형. 어떻게 알고 왔어요?”
신나게 문영순에게 퍼붓던 남자, 신재현이 반가워하며 맞이했다.
새로 등장한 직원은 유리문을 열어둔 채로 고정했다.
복도에 한가득 다른 과 직원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었다.
“온 서에 다 퍼졌습니다. 워낙에 두 분 다 유명 인물이시다 보니.”
“아, 그래요?”
‘그걸 납득해?’
이제 난감해진 것은 주민승이었다.
대놓고 판이 깔리다 보니 지금 말리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게다가 이참에 잘됐다는 듯이 신재현의 기세가 한층 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문영순이 정신 좀 차리면 좋지.’
주민승은 슬쩍 뒤로 물러나 핸드폰을 켰다.
-뭐야 뭐야! 다른 과에 소문 다 났나 봐!
-나도 타과에서 문자 왔다. ‘팝콘각? 구경 가도 돼?’
-나도 과장님한테 문자한 거 답장 왔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과장님이 모르시면 어쩌죠.
주민승이 슬쩍 과장의 책상을 돌아보았다.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과장은 머리를 감싸 쥐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문영순 씨 말씀은, 과세 때리면 납세자는 알아서 돈이나 내야 한다 이거죠?”
“나는 세무 공무원이고 과세할 권한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실수가 나온 것뿐인데!”
“아하! 그렇군요!”
신재현이 과장되게 손뼉을 치더니 파일을 보란 듯이 집었다.
문영순의 책상 위로 던졌던 파일들이다.
그는 뒤에서 아주 잘 보이도록 양손으로 파일을 들어 올렸다.
“경력이 5년이나 되신 분이 부가세 환급 금액을 잘못 계산해서 추가환급을 해 줍니까? 500만 원이나 더 환급해서 납세자가 초과환급가산세를 70만 원이나 냈어요!”
-아, 저 사건.
주민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은 반년에 한번 부가세 신고를 하지만 법인은 3개월에 한 번 한다.
대신에 환급은 6개월 치를 한꺼번에 몰아서 해준다.
지점이 6개인 대형 법인이었는데, 1~3월 치와 4~6월 치를 계산하면서 계산 실수로 500만 원을 더 환급해 준 것이다.
환급이 나가기 전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미 납세자의 통장에 국고가 찍힌 후라서 어쩔 수 없이 가산세를 때렸다.
‘그때도 과장님 개빡쳤었는데.’
어쩌면 그래서 지금 가만히 두고 보는 걸지도 모른다, 주민승은 그렇게 생각했다.
타과까지 소문이 퍼진 상황에서 타과 직원과 자기 과 직원이 싸우고 있다.
그것도 자기 과 직원의 실수로.
지켜보는 눈도 많은데 어쩌면 부가세과 과장의 책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장은 머리만 부여잡을 뿐 말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환급 신청서를 잘못 작성한 납세자 잘못이죠. 국고에서 돈을 더 많이 받아 갔으니까 가산세 낸 거고.”
“환급 검토한 건 문영순 씨 아닙니까?”
“아니 그러니까 나한테 따지지 말고 당신 일이나 신경 쓰라고요. 당장 내일부터 삼성에 자리 없을 테니까.”
“이거 협박이죠?”
신재현의 반문에 문영순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려다보기 위해서였지만 키 차이 때문에 문영순의 자세만 이상해졌다.
“진작 알아서 물러났어야죠. 이젠 나도 그냥은 못 넘어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용서 안 할 거니까.”
문영순은 모두들 들으라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소문은 들어봤을 테니 이렇게 된 이상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신재현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
“크흡…….”
살얼음판 같던 긴장감을 깬 것은 황민우였다.
문가에 서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난데없이 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하나둘 시선이 모이자 그가 입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그러나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큽, 푸흐하하하핫!”
“뭐, 뭐야.”
갑작스러운 박장대소에 문영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웃겨서.”
“내 말이 웃겨요? 실감이 안 나나 보죠?”
“아, 그게…… 죄송합니다, 주사보님. 제가 망쳤네요.”
눈가에 눈물이 맺히도록 웃은 그는 신재현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문영순도 아니고 협박을 듣던 신재현에게 사과라니.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어리둥절해진 상황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웃겼으니까.”
신재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까의 차가운 독기가 빠진 얼굴이었다.
-뭐야? 뭔데?
-무슨 일이야?
단톡방이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커다란 느낌표 모양의 이모티콘을 띄웠다.
-복도에 서장님도 오셨대요!
근처에서 지켜보던 주민승이 슬쩍 고개를 빼고 유리문 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직원들 틈에 섞여 있었다.
그는 주변의 직원들을 보더니 검지를 들어 올려 입술에 갖다 댔다.
“쉿, 조용히 지켜봅시다.”
말리기는커녕 흥미진진한 얼굴이다.
주민승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아마 다른 직원들도 다들 비슷한 심정이겠지.
“맥이 빠지긴 하는데, 이대로 넘어갈 순 없죠. 문영순 씨, 아까 저한테 경고하셨듯 저도 경고하겠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문영순이 코웃음을 쳤다.
“말 한 마디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 인생 끝장내 왔으니 똑같이 해드리지요. 당신이 잘난 아버지에게 날 조져 달라고 말하는 순간, 당신 커리어는 끝장날 겁니다.”
남자의 말은 진지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딱 한 명, 황민우뿐이었다.
심지어 부가세과의 직원들마저도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무슨 뜻이지?
-음, 아버지한테 사주 안 하면 봐주겠다. 아버지한테 사주하면 가만 안 놔둔다?
-그건 알아들었는데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요.
-그야 저도 모르죠.
-다 모르겠고 이 기회에 문영순 나갔으면 좋겠네요, 제발
-저도요. 옆자리인데 맨날 부려먹어요. 너무 힘들다.
-지가 하기 싫은 일은 저한테 떠넘긴다고요.
부가세과 곳곳에서 한숨이 들려 왔다.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흉내라도 내나 본데. 그런다고 내가 겁먹을 것 같아요? 어디, 납세자 보호실의 신재현 씨랬나? 두고 봐요. 어떻게 될지.”
“재밌겠네요.”
여유로운 태도의 신재현은 파일을 정리하고 뒤로 돌아섰다.
황민우가 어느새 다가가 파일을 건네받았다.
“아, 벌써 끝인가요?”
복도에 서서 구경하던 서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신재현에게 말을 걸었다.
“……서장님도 와 계셨습니까?”
“이런 재밌는 구경에 내가 빠질 수 없죠.”
“서장님…… 직원들이 보고 있습니다.”
곁에 있던 타과 과장이 말렸지만, 서장은 괜찮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우리가 못한 걸 부하직원이 대신해준 것 아닙니까. 멱살 잡고 주먹다짐한 것도 아니고 직원들 간의 ‘토론’은 좋은 일이죠.”
“아, 맞습니다. 토론이었죠, 토론.”
풍채 좋은 과장이 손수건을 꺼내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머리를 팽팽 굴리는 듯했다.
“우리 삼성서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만 모인 곳입니다. 모토는 ‘능력’이에요. 능력 있는 사람이 옳은 말을 하면 당연히 우리가 맞장구를 쳐 줘야죠.”
“그래도 서장님, 상대는 본청 과장님의 따님…….”
“그러니까 재밌다는 겁니다. 높으신 분들의 싸움은 멀리서 보면 코미디거든요.”
‘불똥이 튀니 문제인 겁니다,’
과장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서장을 말렸다.
그러나 서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기대합니다.”
서장은 흡족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서장실로 향했다.
“아, 뭣들 해요? 일 안 합니까? 어서 들어가요!”
남은 직원들도 과장의 성화에 눈치를 보며 하나둘 흩어졌다.
과장이 직원들을 해산시킨 후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작은 키의 남자였다.
재산세과 윤지성.
문영순과 법인세과에 있었던 사람.
갑질 아니냐며 문영순을 징계위원회에 올렸다가 문영순 아버지의 눈 밖에 나 승진이 누락된 사람.
그는 시원함과 씁쓸함이 섞인 얼굴로 멍하니 부가세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신재현이 뚜벅뚜벅 걸어와 윤지성 앞에 서자 그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신재현 씨가 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윤지성이 고개를 들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듯 한껏 잠긴 목소리에는 회한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