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64화 (64/500)

64화. 부가세과의 소문난 진상(1)

법이라는 게 세법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다들 그렇다.

말이 어렵다 보니 해석에도 차이가 있고, 토씨 하나 차이로 적용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당장 20세 미만 자녀가 있으면 세금을 깎아주는 자녀 세액공제를 보자.

분명 법에는 20세 미만의 아이가 있으면 15만 원의 세금을 빼준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예외 규정이 있다.

7세 미만의 자녀는 자녀 세액공제가 안 된다.

이유가 뭔고 하니 7세 미만의 자녀는 아동수당을 받기 때문에 세액공제 혜택에서 제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결론은?

아동수당을 받지 않으면 7세 미만이라도 자녀 세액공제가 되는 것이다.

모든 법이 이랬다.

A는 AA다, 라고 정해 놓고 거기에 B라는 예외가 있다.

그런데 C의 경우에는 예외를 적용하지 않는다.

세금을 과세하는 입장인 이상 나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건 뭐 파면 팔수록 엿 같았다.

그렇다고 문영순이 다룬 세법이 어려운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이건 세법 중에서도 초보적인 수준의 해석이다.

게다가 몇 년 일한 경력이 있다.

그런 사람이 이걸 몰라서 틀려?

설마 싶어서 자료를 들고 일어섰다.

원래 이 건을 담당했던 직원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벌써 왔어요?”

땅딸막한 직원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와 내 손에 든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포기가 빠른…… 어? 아까도 이 말 했던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직원의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제가 선배님에게 뭐라 하는 건 아닙니다만.”

혹시나 기분 나쁠까 싶어 조심스럽게 서두를 뗐다.

“이 사람 대놓고 실수 같은데, 아닙니까?”

“아…….”

직원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용케 파악했네요. 맞아요, 이 사람 실수입니다.”

대답을 듣자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 굳이 자료를 달라고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세법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게 아니라서 분명히 인용될 텐데요.”

직원은 멋쩍은 듯 옆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추궁하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한 마디 더 덧붙이기로 했다.

“제가 사실 작년에 시험 붙어서 공무원 생활 시작한 지는 1년도 안 됩니다. 송무에 대해서는 처음이기도 하구요. 정말 몰라서 여쭤보는 거니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년이 안 됐어요?”

직원이 주목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그는 나와 서류를 번갈아 보더니 팀장 쪽을 바라보았다.

팀장은 졸린 눈으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저 사람은 물어봐도 대답 안 해 줄 것 같고…… 의외네요. 우리 과가 경력 없이 오는 곳이 아닌데.”

그야 그렇겠지.

결국 다양한 종류의 세법에 통달해야 이의 신청이 맞는지 틀린지 판단할 수 있는 거니까.

직원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차분하게 설명했다.

“문영순 씨는 좀 까다로워서요. 거의 한 달에 한 건은 이의신청이 들어오는데 인용률도 높아요. 그런 주제에 인용 당하면 우리 쪽으로 와서 행패를 부리거든요. 그래서 미리 그 사람 자료를 받아서 정리합니다. 우리 책임에서 벗어나려고요.”

실무상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속물적인 이유였다.

직원은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책임 전가. 이거 중요합니다. 우리가 친 사고도 아닌데 괜히 덤터기 쓸 필요 없잖습니까? 원래도 우리 탓 잘 하는 사람입니다. 괜히 그 인간 대신 싸워 주고 욕먹을 필요 없어요.”

아니, 속물적인 이유가 아니다.

사회생활의 노하우였다.

직원이 진지하게 말할 만하군.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1년도 안 돼서 삼성으로 온 거면 앞으로 창창한 코스일 텐데 저런 사람한테 발목 잡히지 마세요. 문영순 씨의 귀책이라는 걸 꼼꼼히 정리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진심 어린 충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 자리로 돌아오자 이번엔 다른 종류의 고민에 빠졌다.

한 달에 한 건이라.

이런 실력으로 세무서 중 톱급이라는 삼성에 붙어 있는 것도 놀랍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납세자를 얼마나 고생시켰는지 눈에 선했다.

무조건 세금 때리고, 실수하면 어쩌라는 식으로 넘긴다.

어차피 아버지가 본청의 세무 공무원이니까.

인사고과가 올라가도 아버지 눈치 보느라 적극적인 조치는 없었을 것이다.

싸가지는 둘째 치고 납세자를 엿 먹이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결심했다.

나는 납세자 보호실에 넘어온 이의신청 건 중 문영순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모조리 찾기 시작했다.

***

부가세과는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웠다.

잡담 한마디 없는 분위기라 언뜻 보면 일에만 열중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그러나 실상 뜯어보면 달랐다.

-아, 진짜 가시방석이네.

-반년만 참아. 정기발령 나오면 다른 과 가겠지.

-다른 과 가서도 만나면 어떻게 해?

-2년 연속 문영순이랑 같은 과? 액땜 오지게 하네. 로또 사라.

-……제가 2년 연속 같은 과인데요.

-로또 사세요.

-매주 삽니다.

-ㅠㅠ

겉으로 말하지 못하는 만큼 메신저 대화창은 불이 나도록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부가세과 대부분의 직원이 들어와 있는 단톡방이었다.

“아이 씨! 세금 내라면 잠자코 낼 것이지 무슨 항의 전화야!”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화기가 부서질 듯 내리꽂혔다.

단톡방은 순식간에 ‘또 시작이네, 오늘도 조용하긴 글렀다.’라는 글이 가득 메웠다.

-쟤 진짜 왜 저런대요? 분노조절 장애 있어요?

-저 성격으로 공무원 면접은 어떻게 통과했을까요?

-아빠 입김이 있었겠죠. 그리고 높으신 분 앞에선 얌전한 척하잖아요.

-그만두고 싶다…….

직원들은 힐끔힐끔 문영순을 훔쳐보았다.

원래 납세자들의 억울한 항의 전화가 가끔 오긴 하는데, 오늘은 유독 심했다.

벌써 3통째.

신고철 직후라 그런 걸까.

덕분에 오늘 문영순의 기분은 언뜻 봐도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문영순이랑 한바탕 한 직원 있잖아요.

-며칠 전에 그…… 납세자 보호실에서 온 직원이요?

-패기 넘치게 문영순이랑 한판 붙으려고 하길래 대체 뭐 하고 살았길래 쟤를 모르나, 알아봤거든요.

-하긴, 삼성에서 문영순 유명하죠. 작년에도 있었고.

-네네. 근데 모르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삼성에 온 지 한 달 남짓이거든요.

-예? 어떻게 한 달 남짓이 돼요?

직원들이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서장님이 눈여겨보는 직원이라 다른 서에서 데려왔다는 말이 있어요. 엘리트 코스 밟는 중이라던가?

-그 직원도 뭐 백이 있는 겁니까?

-그런가 보죠. 근데 겪어본 사람들 말로는 문영순 따위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던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적이 화려해요. 삼성 오자마자…….

신나게 썰을 풀어나가던 때였다.

덜컹, 부가세과의 유리문이 열리고 소문의 주인공이 들어왔다.

단톡방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문가로 쏠린 것이다.

-또 왔네.

-뭐죠? 느낌이 싸한데.

남자의 당당한 태도와 도전적인 눈빛 때문일까.

직원들은 폭풍전야와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영순 씨. 납세자를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닙니까?”

“뭐예욧!”

들어오자마자 남자는 타깃을 문영순으로 잡았다.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이건 사건이다, 직원들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다시 가 볼까요?

-아니요, 잠깐만요. 어떻게 하는지 보고요.

저번에 남자가 왔을 때는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서둘러 막았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설마 또 싸움 걸러 왔을까요?

-눈치 있는 사람이면 안 오죠.

-그니까 지금 왔다는 건 뭔가 약점을 잡은 거죠.

-그럼 지켜볼까요?

직원들이 핸드폰 액정에서 시선을 돌려 문영순의 자리를 주시했다.

선공을 날린 건 남자였지만 역시 문영순은 참지 않았다.

“내가 누굴 괴롭혀요?”

“초보적인 실수로 과세해서 납세자들 고생하게 하잖습니까.”

-와, 돌직구다.

-저걸 면전에서 말하네.

-야야, 재밌다. 조용히 해봐.

단톡방이 조용해지고 누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문영순이 눈을 치켜뜨고 남자에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사람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당신은 실수 안 해요?”

“실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말 몰라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실수. 그리고 실수하지 않을 것을 저질러 버린 실수. 아까 내가 ‘초보적인 실수’라고 했잖습니까. 문영순 씨, 경력 몇 년입니까?”

“지금 경력 적다고 깔아뭉개는 거예요?”

“자꾸 주제가 엇나가네요.”

남자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무서 내에서 저보다 경력 짧은 사람은 없습니다. 제 경력은 8개월이거든요. 그러니까 깔아뭉개네 뭐네 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하세요.”

-뭐야. 1년도 안 됐네?

-어? 좀 특이한 직원 얘기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단톡방에 새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둘의 언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 경력도 없는 사람이 초보적인 실수가 어쩌고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1년 차 직원이?”

문영순과 조금 방향은 다르지만, 직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1년 차면 좀 신뢰성이 떨어지는데.

-쟤 무슨 과랬죠?

-납세자 보호실에서 왔잖아요.

-거기 아는 동기 없어요? 좀 물어봐요.

-납세자 보호실 들어간 지 며칠 안 됐대요.

-뭐야, 그럼 원래 어디 소속인데?

한동안 뜸하던 단톡방에 불이 난 듯 새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세무서, 한 건물에 근무하다 보니 웬만한 직원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다.

문자 몇 번 돌리면 어느 과에서 무슨 사고를 쳤고, 그 전엔 어느 서에 있었는지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정보가 금방 모이지 않았다.

그 사이 남자가 손에 들고 온 서류를 하나씩 문영순의 책상 위에 턱, 소리 나게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건 세금계산서 발행 예외인데 그걸 판단 못 해서 이의가 들어왔고.”

-탁!

“이건 원천세 종류도 구분 못 해서 세금 덜 낸 줄 알고 이중으로 과세 때린 거고.”

-터억!

“이건 전자 신고 들어온 신고서를 전산에서 만지다 실수로 삭제해 놓고 납세자 책임이라고 가산세 때린 거고.”

하나둘, 파일이 쌓일 때마다 남자의 입은 거침없이 문영순의 실수를 나열했다.

남자의 태도는 담담했고 조금의 막힘도 없었다.

명백히 파일을 보고 그 안에서 무엇이 잘못인지 읽어낼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적이었다.

-여러분! 대박! 나 방금 재산세과 직원한테 문자 받았어요!

-뭐랍니까?

-아, 빨리 말해 봐요. 지금 저쪽 흥미진진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요.

-과장이 직접 픽업해 왔는데 오자마자 75억 과세 때렸대요.

-75억??? 장난해???

-실화예요?

채팅창이 한동안 무수한 물음표로 도배되었다.

-그 후로도 까다로운 건, 남들이 기피하는 건을 도맡아서 하는데 처리가 깔끔하답니다.

-말도 안 돼요. 그런 공무원은 세상에 없다고요.

-아니, 잠깐. 근데 왜 재산세과예요? 납세자 보호실 직원 아니에요?

-첨에 재산세과 왔다가 서장님 명령으로 다른 과 돌고 있대요.

-헐.

채팅창이 시끄러워지는 동안, 부가세과 사무실 역시 시끄러워졌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문영순이 일방적으로 퍼붓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까짓 거 가지고 지금 나한테 면박을 주려고 온 거예요? 시간이 그렇게 남아돌아요? 그리고 왜 남의 과세 자료를 열어 봐요? 당신이 뭔데 내가 틀렸다는 거야!”

문영순의 목소리는 점점 높고 뾰족해졌다.

근처의 직원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남자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문영순의 발광을 들었다.

어디까지 하나 한번 보자는 식의 태도였다.

그것이 문영순을 더 화나게 했다.

“말을 해 보라고! 이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내가 하면 안 되는 짓이라도 했냐고!”

문영순이 제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자 남자가 팔짱을 풀고 책상 위의 서류철을 가리켰다.

“실수를 해서 타박하는 게 아닙니다. 이만큼의 실수를 쌓아 놓고도 당당한 그 태도를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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