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63화 (63/500)

63화. 납세자 보호실(2)

나를 데리고 나온 직원은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마른 체격에 각진 턱을 가진 그는 복도로 나오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겁니까?”

두리번거리는 그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듣는 귀가 적을수록 좋은 건 당연한 거니까.

그도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는 금방 알았을 것이다.

복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영순 씨는 그래 봤자 8급 아닙니까? 직원들이 왜 꼼짝 못 하는데요?”

직원들의 얼굴에 드리운 걱정은 단순히 풍파가 싫어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나를 향한 연민이고, 누구에게 불똥이라도 튈까 하는 두려움이다.

나 역시 일반 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은 잘 알았다.

“너무 곡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문영순 씨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어째서죠? 성격이 더러워서입니까? 성격은 저도 더러운데요.”

공무원이 폭력을 쓰면 안 되는 건 당연하지만, 방금 직원이 막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한 대 나갔을 것이다.

나도 싸가지 없다고 자부하는데 적어도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대드는 싸가지다.

문영순은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해서 나오는 싸가지고.

“아까 말하는 것만 봐도 그쪽도 한 성격 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 종류가 아니고요. 아, 정말…….”

직원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민하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저 사람이 법인세과에 있었을 때 일입니다. 그때도 특유의 싸가지로 성질을 부려서 세무사사무실 직원 하나를 무릎까지 꿇렸는데…….”

익숙한 스토리가 흘러나오자 나는 말을 끊었다.

“아는 얘기네요. 징계위원회 회부했는데 별 징계 없었다면서요.”

괜히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징계할 만한 사유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다고 들었다.

“징계감이 아니긴 한데, 솔직히 8급짜리가 그런 물의를 빚었으면 다른 공무원들에게 본보기 삼아서라도 경고 정도는 주잖아요.”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죠.”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어요. 줄 만한데 안 준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소문은 그렇지 않던데요.”

윤지성이 밀고자 소리를 들은 것도 그렇고, 직원들 수군대는 걸 보면 그렇게 좋은 취급은 아니었다.

“그야 그렇게 퍼졌으니까 그렇겠죠. 공무원 업계 무지 좁은 거 아시잖아요. 저 사람한테 밉보이면 피곤해지니까 그냥 입 다문 거죠. 소문만 전해 들은 사람은 윤지성 주사보님 욕할 테고.”

그러고 보니 재산세과에서도 대놓고 윤지성을 왕따시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가까이 가지 않을 뿐.

“저 사람이 대단한 뭐라도 된답니까?”

“아버지가 본청에 있거든요.”

결론은 백이라는 거군.

나는 힘이 탁 풀어지는 걸 느꼈다.

이 좁은 공무원 사회에서도 백 가진 놈이 부당한 짓거리를 하면 힘없는 일반 직원들이 그냥 두고 보는 것도 그렇고.

겨우 알량한 아버지 하나 믿고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렇고.

“뭐, 대충 알겠습니다. 별거 아니었네요.”

“별거 아니라뇨? 윤지성 주사보님 아직도 평직원인 거 보면 모르겠어요? 이번에 진급 누락됐잖아요.”

세무서도 하나의 회사다.

직급을 숫자로 구분할 뿐.

6급은 계장급, 즉 중간 관리직이니 실무는 뛰지 않는다.

7급, 8급, 9급이 결국 실무를 맡게 되는데 9급은 주로 잡일과 정리, 8급은 일을 좀 아는 경력자다.

그리고 7급은 행동대장으로, 처음에는 평직원으로 일하다가 경력을 쌓게 되면 팀장이나 반장으로 올라가게 된다.

윤지성은 경력이 좀 되는데도 왜 팀장이 아닌가 했더니, 징계위원회 건으로 밉보였나 보다.

“어이가 없네요. 징계위원회에 찔렀다고 진급 누락된 겁니까?”

“원래 회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부당한 거 알면서 그냥 사는 거죠. 그쪽도 너무 열 내지 마세요. 화내는 사람이 손해인 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으면 화도 안 난다.

그래도 날 생각해서 일부러 끌고 나온 건 고마우니 그에겐 곱게 말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저 직원은 조져야 마땅하다는 거네요?”

“……예?”

직원이 입을 떡 벌렸다.

“왜 결론이 그렇게 됩니까? 잠시만요?”

직원을 뒤로하고 성큼성큼 걸어가 부가세과의 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러나 내 관심은 문영순에게만 있었다.

“아, 진짜 말 못 알아듣네! 기다려보십쇼!”

뒤늦게 따라 들어온 직원이 쏟아지는 시선에 몸을 움츠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영순의 자리로 다가갔다.

책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고개를 든 문영순은 날 보자마자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알량한 백 믿고 날뛰는 거였네요. 경고 하나 하죠.”

“뭐야, 또?”

“누구 뒤가 더 크냐, 하는 진흙탕 싸움이라면 저도 안 집니다. 다음에 올 때는 좀 동료직원에게 배려심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

도로 뒤돌아 부가세과를 나갔다.

뒤쫓아 온 직원과 스쳐 지나갈 때 그의 멍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똥 밟았다는 얼굴이다.

***

다시 10층의 납세자 보호실로 돌아가자 의외라는 눈빛이 나를 맞이했다.

“어? 벌써 왔어요? 포기가 너무 빠른데?”

“하나 빼고 다 가져왔습니다.”

양손에 든 서류철을 슬쩍 들어 보였다.

내 자리로 가 자료를 내려놓자 6명의 팀원이 수군거리며 몰려들었다.

“하나 빼고? 그럴 리가 없는데.”

“대충 돈 거 아냐?”

“대충 돈다고 자료를 갖고 오나?”

“근데 벌써 자료 다 수거할 리가 없잖아요. 각자 바쁘다고 안 주는 놈들만 골라서 명단 짠 건데.”

어째 오자마자 시킨다 했더니만, 귀찮은 일을 떠넘긴 거였나 보다.

“명단에 있던 곳은 다 돌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각자 담당하는 자료 가져가시면 됩니다.”

직원들이 모여들어 서류철을 훑어보더니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손으로 정리한 것도 줬네? 이런 건 보통 잘 안 주는데.”

“지도는 뭐냐? 아, 종부세구나.”

각자 자신이 담당하는 자료를 나누던 직원들이 슬그머니 나를 곁눈질했다.

“혹시 뭐 뇌물이라도 준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갔더니 그냥 주시던데요. 같은 공무원이잖아요.”

“그 명단은 잘 안 주는 사람일 텐데…… 뭐 다들 바쁜 건 이해하는데, 급한 일 처리하느라 우리 일은 후순위로 미루거든요. 큰 개요는 전산 자료로 넘어오니까.”

내가 만나본 직원들은 일부러 자료를 안 넘긴다기 보단 바빠서 미루는 예가 많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가니까 금방 챙겨 줬으니까.

“아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응? 삼성에서 얼마 일했는데 아는 사람이 많아요?”

“삼성에 온 지는 이제 한 달 좀 넘었습니다.”

“예?”

모여든 직원들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못 가져온 자료가 딱 하나 있는데, 부가세과 문영순 씨의 담당 건입니다. 혹시 어느 분 담당이신가요?”

“아, 접니다.”

작달막한 키의 남자가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쭈뼛거리며 내 눈치를 보더니 미안한 얼굴을 했다.

“그 사람 상대하기 어렵죠? 제가 갔을 때도 잘 안 주길래 팀장님한테 떠넘긴 건데, 오자마자 자료 받으러 가실 줄은 몰랐네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누가 하든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기분 좋게 웃어넘기자 남자가 안심한 표정을 했다.

“워낙에 안하무인인 사람이라 같은 과 직원들도 고생하는 것 같더군요. 꼭 그런 사람이 하나씩은 있어요.”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제가 갔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는데요.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저한테요?”

“문영순 씨의 부가세 이의신청 건, 제가 맡고 싶습니다.”

“예에?”

이번엔 남자뿐 아니라 주변의 직원들도 턱이 빠질 듯 놀랐다.

“오자마자 귀찮은 거 시켰다고 화난 건 아니죠? 아니 왜 하필 그걸?”

“그 직원 거는 골치 아파요. 일을 이상하게 처리해서 과세하니까 이의신청도 자주 들어온다니까요.”

“굳이 왜 그걸 맡으려고 해요? 쉬운 거 줄게요. 쉬운 거 하세요.”

직원들의 만류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사람이니 굳이 어렵고 귀찮은 걸 맡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새로운 것에 파고드는 도전정신도 아니고.

그저 내 목표는 하나.

문영순을 조지는 것이다.

“문영순 씨가 얼마나 잘난 과세를 했는지 꼭 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냅둬.”

창가에 앉아 있던 팀장이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끼어들었다.

“에이, 팀장님. 우리가 아무리 일손이 부족해도 그렇지. 어떻게 신입직원한테 귀찮은 일을 떠넘겨요? 팀장님은 양심도 없어요?”

“야, 이놈아. 누가 보면 내가 악덕 사장인 줄 알겠다.”

“악덕 사장 맞잖아요.”

“나도 월급쟁이야, 인마!”

버럭 소리를 질러 직원의 입을 막은 팀장이 서류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쟤, 서장님이 일부러 보낸 다크호스야. 우리 과가 아무리 10층에 있다지만 다른 과 소문 좀 듣고 살아라.”

“일하느라 바쁜데 다른 과 갈 틈이 어디 있다고…….”

“안 다물어?”

“예.”

직원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아까 처음 내가 여기 왔을 때 전화 받다가 팀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그 직원이다.

“하고 싶으면 가져가서 해. 거기 한주명, 불만 있나?”

“저는 없습니다. 귀찮은 거 가져가면 오히려 고맙죠.”

“들었지? 아무도 불만 없다. 한주명, 갖고 있는 자료 넘겨줘.”

“옙, 팀장님.”

한주명이라 불린 땅딸막한 남자는 건너편 책상으로 돌아가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왔다.

“혹시라도 궁금한 거나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요.”

“감사합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일을 빼앗아 간 셈이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응? 뭘 그런 걸로 죄송합니까. 빼앗아 가면 일 줄어드니까 나야 더 좋지. 더 가져가도 되는데.”

“한주명!”

팀장이 이름을 부르자 남자가 다시 목을 움츠렸다.

“그럼 고생해요. 물어볼 거 있으면 내 자리로 오고.”

팀장까지 단 일곱뿐인 팀이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꽤 돈독한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진 않지.

나는 자리에 앉아 얇은 서류철을 펼쳤다.

***

사업자명 : 주식회사 서랑스포츠

청구 취지 : 서랑스포츠 본점과 네 개의 지점 간 거래가 발생하였는데, 과세관청은 이를 세금계산서 발급거래로 보아 부가세 및 가산세를 고지처분 하였다. 이들 사업장은 주사업장총괄납부 신청을 한 것은 아니나 해당 재화는 수선과 진열에 사용되었으므로 공급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당초 과세관청의 처분의 취소를 구한다.

이의 신청서의 문구는 복잡했다.

딱 봐도 납세자의 솜씨는 아니고, 세무사가 작성한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간에 핵심은 명확했다.

1. 원래 지점 간 상품이 왔다 갔다 하면 세금계산서 발급 대상이다.

2. 예외로 그 상품을 수선에 쓰거나 진열 목적으로 쓰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아도 된다.

3. 그런데 문영순은 세금계산서 발급 대상으로 보고 세금을 때렸다.

4. 납세자는 ‘이거 예외에 해당합니다’라며 억울하다는 이의신청을 했다.

장장 10장에 달하는 서류에는 온갖 수식어구와 관련 세법, 그리고 판례가 총출동되어 적혀 있었다.

세금이 걸려 있으니 세무사가 관련된 자료는 모조리 쓸어 담아 적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이의 신청서를 훑어보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문영순이 실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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