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납세자 보호실(1)
서장과 나의 눈빛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잠시 나를 살피듯 말없이 바라보던 서장이 곧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핫! 재밌어. 역시 재밌단 말이지. 윗대가리들은 알려나? 발밑에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다는 걸.”
한참을 신나게 웃어젖힌 서장이 다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가장 위에 놓인 결재서류 하나를 가져오더니 내 앞에 가볍게 던졌다.
“열어봐요.”
나한테 올 만한 서류가 뭐가 있지.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발령이 나올 리는 없고.
또 다른 사건인가 하고 서류를 열었다.
[이의 신청서]
“조세 불복입니까?”
세금이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면 가장 먼저 내게 되는 신청서다.
이의 신청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다음은 심사 청구와 심판 청구를 거치게 된다.
그러고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드디어 행정소송, 법원으로 가게 된다.
“신청자를 봐요.”
[신청자, 이장문.]
제대로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의 신청서가 들어온 걸 보면 고지서를 받자마자 준비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증여세 과세 건에서 미비한 점은 없었습니까?”
서장의 질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이 건을 맡게 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자신 있게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내 당당한 태도에 서장이 표정을 풀었다.
그러더니 뭘 떠올렸는지 진저리를 쳤다.
“원래 세무사는 변호사와 행동거지가 똑같습니다. 승산이 없더라도 의뢰인이 원하면 일단 불복을 밀어 넣고 보죠. 성공보수야 못 받는다 쳐도 대행료를 받으면 되니까.”
“그래도 일은 귀찮아지겠군요.”
“응? 귀찮을 것까지야. 어차피 기각할 건데요.”
서장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미비한 점 없다고 했잖습니까? 그럼 당연히 기각 아닙니까.”
“그래도 그 사람이 여기서 끝내겠습니까? 이의 신청 다음은 심사 청구 또는 심판 청구입니다. 자신의 정치 꿈을 막아 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끝까지 귀찮게 굴겠죠.”
이번 기회에 정계 데뷔라도 노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 때문에 출셋길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든 안 받아들여지든 그의 관심사는 나를 괴롭히는 데 있을 것이다.
서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세심판원을 거쳐서 행정 소송까지 가려고 들겠죠. 그래서 말입니다.”
서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뭔가 흉계를 꾸밀 때 나오는 웃음이다.
“재산세과 다음은 법인세과에서 일해 봤죠? 다음은 납세자 보호실로 가면 되겠네요.”
납세자 보호 담당관 산하에는 두 개의 실이 있다.
하나는 민원봉사실, 즉 1층에서 사업자등록을 해 주는 민원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납세자 보호실이다.
조세 불복과 과세전적부심사를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즉, 나더러 이장문 건을 맡아서 대응하라는 뜻이다.
“제가 당사자인데 직접 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세무서에 들어오는 이의신청은 담당자가 반박서류 초고안 만들어서 제출하잖습니까. 일손이 부족하니까요. 거기다 보호실장이 붙을 텐데 무슨 상관입니까.”
서장의 시원한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던 일 마무리하고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좋아요. 실장에겐 내가 말해 두죠.”
기존 과의 입장에선 있던 사람이 빠지는 것이니 내가 하던 것은 사고 나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는 것이 좋다.
급한 마음에 서장에게 묵례하고 일어섰다.
서둘러 서장실을 나가려는 내게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납세자 보호실도 재밌을 겁니다. 거기서도 잘 해보세요.”
기대감 어린 서장의 눈빛에 나는 정중히 인사하고 서장실을 나섰다.
***
삼성 세무서의 대부분 과는 5층과 6층에 모여 있다.
그러나 민원실은 1층에, 납세자 보호실은 10층에 따로 동떨어져 있었다.
삼성, 역삼, 서초.
세 개의 세무서가 모여서 한 건물을 쓰다 보니 민원실을 하나로 통합해 쓰는 건 그렇다 치고.
납세자 보호실까지 한데 모여 있는 건 좀 의외였다.
10층에서 내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여느 과보다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다른 과도 바쁘다지만 여긴 더 심했다.
“여기 납세자 보호실입니다. 자료가 아직 안 올라와서요. 네? 담당자가 연가를 가요? 아니, 이 상황에 연가를 갔다고요?”
문에서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직원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의 신청 인용되게 생겼는데 담당자가 연가를 가면 나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뭐예요? 담당자한테 직접 말하라고요? 아이 씨, 없는데 어떻게 말해요!”
직원의 목소리가 온 사무실에 울릴 정도로 커지자 저 멀리 안쪽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손에 쥔 서류로 전화 중인 직원의 뒤통수를 세차게 갈겼다.
“아얏! 아, 팀장님. 아이고, 알겠습니다. 내일 담당자 나오죠?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직원이 뒤통수를 움켜쥐고 팀장을 올려다보았다.
“왜요, 팀장님! 이 새끼가 자료도 안 주고 휴가 갔다잖아요! 지가 잘못해서 이의 신청 들어오게 해 놓고 우리 과에 토스되니까 튄 거 아닙니까!”
“알았으니까 적당히 해. 손님 왔잖아.”
팀장이 날 가리키자 직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는 투덜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납세자 보호실에 손님은 무슨 손님.”
“한 대 더 맞을래?”
“아닙니다, 팀장님.”
팀장은 직원을 조용히 시킨 후 내게 손짓하고 등을 돌렸다.
나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서장님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일단 여기 짐 두고, 급하게 해 줘야 할 일이 있어요.”
“말씀만 하십시오.”
오자마자 납세자 보호실이 굉장히 바쁘다는 것은 알았다.
비장한 팀장의 표정에 나 역시 덩달아 각오를 다졌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게 쥐여 줬다.
“이것들 좀 수거해 주세요.”
“수거요?”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느라 구겨진 서류를 펼쳐 보니 각 과마다 이름이 몇 개씩 적혀 있었다.
[법인세과 이아연 - 주식회사 성진 2017년 법인세 조사 자료]
[소득세과 양지원 - 가정실업 2018년 경비 부인 내역]
[재산세과 정희원 - 이민석 종부세 부과내역 정리 자료]
각 담당자들이 갖고 있는 실물자료인 모양이다.
넘겨 받아와서 검토해야 하는데 아직 자료가 안 온 거고.
오자마자 심부름이라니.
원래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9급 신입이나 할 법한 일이다.
아무리 내가 경력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이라지만 7급에게 시킬 만한 일은 아니고.
그러나 군소리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그들이 내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은 잘 알아들었다.
반박해 봤자 이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7급이래 봤자 경험이 없다면 무용지물인 건 사실이고.
이후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일이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느닷없이 세무서 한 바퀴가 시작되었다.
“어? 왜 신재현 씨가 왔어요?”
“급한 건이라고 해서요. 자료 챙겨주실 수 있죠?”
“그럼요, 누가 오셨는데. 잠깐만요. 여기가 종부세가 되게 복잡하거든요? 제가 야근까지 해 가면서 손으로 그려 놨다구요. 지도도 있는데 그것도 같이 드릴게요.”
재산세는 겨우 몇 주 같이 있었을 뿐인데 그것도 식구라고 쉽게 자료를 챙겨 주었다.
“응? 신재현 씨네? 이번엔 어디로 갔어요?”
“납세자 보호실입니다.”
“민원봉사실은 아닐 테고. 아, 10층?”
“네.”
“힘든 데로 가셨네.”
“주무관님이 자료 챙겨 주시면 덜 힘들죠.”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원래 어제까지 보내 준다고 했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 깜빡했어요. 어딨더라…….”
법인세과도 아는 얼굴이라고 급한 일 미뤄두고 자료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몇 번 지나가면서 본 풍만한 살집을 가진 중년 여성이다.
늦게 합격해서 나이에 비해 직급이 낮았지, 아마.
발밑에 쌓아 둔 서류철을 뒤지더니 커피 흘린 흔적이 있는 주황색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신재현 씨가 도와준 거 고마워서 언제 갚나 했는데. 겨우 이런 걸로는 갚은 축에도 안 끼겠지만요.”
“제가 뭘 도와드렸나요?”
이름도 모르는 법인세과 직원이다.
혹시 내가 잊어버린 게 있나 싶어 기억을 뒤져봤지만, 눈앞의 여직원과는 말도 나눈 적 없었다.
“처음 오자마자 법인세과가 다 달라붙어서 해야 할 일은 해치워 주셨잖아요. 그때 덕분에 칼퇴했어요. 직장인한테 칼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아. 칼퇴는 인정이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직원이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손에 쥐여주었다.
사탕이다.
“당 달릴 때 드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챙겨드릴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내려오시고.”
“아…… 감사합니다.”
여자들은 서랍에 먹을 걸 넣어 두나?
지나가다 만난 동네 이모에게 간식을 얻은 느낌이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법인세과를 나섰다.
생각보다 자료 수집은 쉬웠다.
다음은 어디더라…….
“부가세과 문영순…….”
익숙한 이름에 와락 이마를 찌푸렸다.
재산세과 옆자리 윤지성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는 바로 그 직원.
세무사사무실 직원을 무릎 꿇렸다는 그 직원이다.
하필 걸려도 이렇게 걸리나.
언젠가는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나야 업무 중인데 무슨 일이 있겠냐, 싶어서 당당하게 부가세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만난 문영순은 내 상상 이상으로 미친년이었다.
“제가요? 왜요?”
“……예?”
내가 웬만하면 ‘예?’라고 되묻는 것을 싫어한다.
말귀를 못 알아들은 멍청이 같아 보이니까.
그런데 이번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정말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자료를 넘겨주셔야 보호실도 일을 하죠.”
“그러니까 왜요. 전산 자료 다 있잖아요. 그거 열어 보면 되지.”
“……실물 자료 있잖습니까. 정리하신 거. 그게 필요한 겁니다.”
“그니까 그걸 왜 내가 줘야 하냐고요. 어차피 보호실에 넘어가면 끝 아닌가요?”
이 미친년이?
살다 살다 같은 회사 동료한테까지 협조 안 하는 놈은 처음 봤다.
심지어 다른 누구의 일도 아니다.
자기가 하던 일에 대해 들어온 이의신청이다.
“이거 담당자 문영순 씨 아닙니까?”
내가 묻자 문영순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어머, 지금 나이 차이가 몇인데 씨에요?”
“그게 중요합니까?”
“허 참나. 이래서 금방 들어온 7급은 안 돼. 급수 높으니까 막 명령해도 될 것 같고 그렇죠?”
“명령이라니요? 자료를 주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거기서 왜 명령이 나옵니까? 그리고 명령이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진즉에 빼앗아 갔죠.”
문영순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아, 그래요? 저한텐 안 당연한 일이거든요. 안 줄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뭐 이런 년이 다 있어?
같은 공무원만 아니었으면 한 대 후려치고도 남았다.
나는 참을 인을 새기고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자료 미비로 인용 당해도 상관없으십니까?”
인용이라면 세무서의 패배를 의미했다.
청구인의 주장이 타당하니 받아들여 세금을 취소하겠다는 것.
소송으로 치면 패소다.
“어머?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납세자 보호실로 넘어갔으니 거기 책임이죠.”
글렀다.
이년은 글렀다.
“문영순 씨 공무원 맞습니까? 일 그따위로 할 거예요?”
자연스럽게 내 목소리가 높아지자 부가세과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따위라뇨? 말이 너무 심하시네. 어디의 누구라고 했죠?”
이젠 관등성명까지 요구하네.
“소속 과 없습니다. 신재현이고 지금 납세자 보호실에 있어요. 문제 있습니까?”
“뭐야, 발령 대기예요? 아니면 자리가 없어서 붕 뜬 상태? 어찌 됐든 별것도 아닌 놈이 잘난 척은…….”
“와, 답이 없는 년이네. 야, 너 공무원이라는…… 읍!”
본격적으로 싸우려는 때 누군가 다급하게 다가와 내 입을 막았다.
돌아보니 부가세과의 남자 직원 하나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 말라는 뜻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합시다.”
직원은 손을 떼고는 사무실 밖을 가리켰다.
문영순을 보호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부가세과 직원들은 오히려 불안과 걱정이 서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좋습니다. 나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