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동물도 재산입니다(4)
나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한 교수와 나의 시선이 엇갈렸다.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할 거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지금 이런 태도인 거면 다음엔 지방 섬으로 날려갈 테니까.”
야당이라지만 인맥이 있고 언론이 들러붙는다면 충분한 가능한 일이지.
그의 협박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조심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겠다는 뜻의 고갯짓이다.
“아주 간단한 얘깁니다. 말 한 필 갖고 계시죠?”
교수의 날 선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
별것도 아닌 걸로 찾아왔다는 듯한 비웃음이 흘렀다.
“난 또 뭔가 했네. 증여세 신고 들어간 것 때문인가? 자문 세무사가 말도 증여세 신고하라길래 했는데 뭐가 문제지?”
교수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럴 만도 하다.
신고를 아예 안 한 것도 아니고, 증여세 신고와 함께 세금도 냈다.
그로서는 내게 큰소리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따님한테 증여한 거 맞으시고요?”
“글쎄, 맞다니까. 지금 겨우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건가? 바쁜 사람 붙잡고 할 말이 그거야?”
“그런 거였으면 제가 직접 오겠습니까?”
나는 의자를 끌어당겨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교수가 나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됐지만, 여유를 가진 사람은 누가 봐도 나였다.
“아까 말씀드렸죠? 따님한테 증여세 과세하겠다고.”
“그러니까 증여세는 다 냈잖아! 나는 말이야, 정직한 사람이야. 세금이고 뭐고 깔끔하게 정리도 다 했고…….”
“아, 그건 저도 확인했습니다. 체납내역 없으신 건 알아요. 3년을 안 내고 밀리던 건강보험도 1달 전에 한꺼번에 납부하셨더라구요.”
교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세무서 공무원이 별 시답잖은 것까지 조사를 하네?”
“교수님 비대위원 되신 게 3주 전이죠? 그럼 1달 전쯤에 물밑에서 얘기가 오갔겠네요? 증여세 내신 것도 1달 전이잖아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교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누가 보냈어! 나 낙마시키라고 보낸 거냐?”
비대위원은 사실상 국회의원이 아닌데, 낙마 소리가 나오는 걸 보니 국회에 입성할 생각이었나 보다.
“교수님. 머리가 그렇게밖에 안 돌아갑니까?”
“뭐야? 여당이 보냈어? 아니면 청와대야? 대답이나…….”
“교수님이 어디의 누구든 난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교수의 얼굴이 역광에 가려서인지 어두워졌다.
“여당? 야당? 개나 주세요.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잖아요, 더 높은 놈도 잡을 자신이 있다고. 교수님이 국회의원이든 아니든 난 관심이 없어요. 내가 보는 건 단 하나, 교수님의 탈세입니다.”
“탈세, 탈세라니. 그거야말로 억울한 야당 위원 트집 잡는 게 아니고 뭐야! 내가 무슨 탈세를…….”
“교수님 말 못 타시잖아요.”
“…….”
교수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했다.
“내가 말 못 타는 거랑 대체 무슨 관련이…….”
“3년 전에 말 사셨죠? 그거 사실 그때 바로 따님 주려고 사신 것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내 돈 주고 샀으니 내 말이야. 계속 보유하고 있다가 이번에 주기로 마음먹어서 딸에게 준 것뿐이고.”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는 지금도 교수는 오른쪽 다리에만 체중을 싣고 있었다.
모르고 보면 삐딱하다고 할 것이다.
“그 다리.”
나는 교수의 다리를 가리켰다.
“5년 전에 큰 사고를 당하셔서 다리가 불편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은 몰라도 말을 타실 상황은 아니죠.”
“그게 뭐? 못 탄다고 소유도 못 하나?”
“서류상 마주는 교수님이지만 실제 말을 탄 사람은 따님이잖습니까.”
교수가 조용해졌다.
그도 평생 학문과 함께 한 사람이다.
법 전공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말실수 하나가 치명적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교수가 입을 다물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더 떠들어 주마.
“세법에는 이런 게 있습니다. 명의가 어떻게 되어 있든 실제 주인이 세금을 내는 거라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 아닙니까? 이름만 빌린 건 차명이에요. 속된 말로 바지사장이죠.”
여전히 교수는 눈만 데록 굴렸다.
뭐라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몇 번 입술을 뗐다가도 다시 입을 닫았다.
그의 모습을 보며 약 올리듯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용, 처분, 관리. 그 모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실 주인입니다. 그리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세금을 내는 것도 당연하죠.”
“내가…… 딸한테 빌려준 것뿐이야.”
가까스로 교수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급조해낸 변명치고는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교수의 말이 빨라졌다.
“내가 말을 못 타니까 딸이 대신 탄 거라고. 가족이니까 그 정도는 빌려줄 수 있지 않나? 집도 한 집에서 같이 사는데 그걸 딸한테 빌려준다고 하진 않지 않나.”
“집은 다 같이 사시잖아요. 말은 따님 혼자 쓰시구요. 애초에 따님에게 줄 목적으로 말을 샀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교수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증거라니. 관심법이라도 쓰나?”
“교수님이 다리가 불편할 정도로 큰 사고를 당하신 게 5년 전, 말을 산 게 3년 전입니다. 따님이 말 관련 대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도 3년 전이구요. 타지도 못할 말, 왜 샀습니까?”
“그, 그건…….”
교수가 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다.
“3년 전 말을 산 것은 따님에게 쓰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명의가 어찌 되었든 실제 주인인 따님이 말을 받은 것은 1달 전이 아니고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건…….”
“국세기본법 실질과세의 원칙에 따라, 3년 전 따님이 말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증여세를 과세할 겁니다. 그게 과세예고통지의 내용이고, 내셔야 할 세액은 4억입니다.”
구체적인 금액이 나오자 교수가 펄쩍 뛸 듯 놀랐다.
“4억이라니! 어떻게 증여세가 4억이나 나와!”
“그야 증여하신 재산, 말의 가액이 14억이니까요. 그리고 당시 따님은 미성년자였습니다. 미성년자는 증여공제 2천만 원인 거 아시죠?”
교수가 잘 걸렸다는 듯 삿대질을 했다.
“그러니까 말 가격이 왜 14억이나 나와! 내가 지금 세법 잘 모른다고 네 마음대로 가격 올려서 세금 뜯어가려는 수작 아니야! 너 말에 대해서 잘 알아? 네가 말 가격을 측정할 수 있냐고!”
살짝 낮은 눈높이에서 교수가 바락바락 악을 썼다.
“말 가격은 사실 저도 몰라요. 전문가가 아니라서.”
“어, 그래. 잘 걸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14억이 무슨…….”
나는 침이 튀도록 흥분한 교수에게서 살짝 떨어져 왼손을 내밀었다.
착, 하고 종이가 내 손에 쥐어졌다.
황민우에게 건네받은 것은 단순한 몇 장의 A4용지였지만,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제가 측정 안 합니다.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따로 있는데 왜 제가 그런 짓을 합니까?”
-팔랑
종이를 들이밀자 교수가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감정서입니다. 말은 나이, 자세, 온순함, 털의 윤기 등등 가격 매길 때 따지는 항목이 무척 많더라구요. 전문가분께서 3년 전 기준으로 감정 해주셨습니다.”
“마, 말은 생물이야. 3년 전 내 말을 본 것도 아니면서 대체 어떻게 당시 상태를 알아?”
“그야 간단하죠. 마방에서 관리를 맡았잖습니까. 말은 예민한 동물이라 마필관리사라는 자격사가 따로 붙더군요. 말만 다루는 전문가죠. 그 사람들은 기록도 꼼꼼하게 남겨요. 워낙 말이 고가라서.”
교수가 내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가더니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종이 뭉치가 아니다.
서장의 허가로 전문 감정가에게 돈을 주고 맡긴 정식 감정서다.
문외한인 교수가 아무리 살펴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사실 나도 봐도 모르겠거든.
“이, 이건 말도 안 돼. 누구 맘대로 말 가격을 측정해?”
감정서에서 그 어떤 오류도 발견하지 못한 교수가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논리 없는 억지라는 건 그도 알겠지만, 쓸 수 있는 수단이 이제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원래는 현금이 아닌 물질 자산이라는 게 측정이 매우 애매한 것들이라서요. 감정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까. 그동안은 납세자한테 맡겼거든요?”
핸드폰을 꺼내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을 검색했다.
“얼마 전에 개정됐어요. 세무서장의 요청으로 둘 이상의 감정기관에 감정을 의뢰할 수 있습니다. 그 둘의 평균가를 증여세 과세 기준으로 삼게 되어 있어요.”
일이 귀찮기는 했다.
서장의 도장과 공문, 그리고 예산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서장은 흔쾌히 도장을 찍어 주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의외라면 의외인 결정이었다.
교수가 손에 힘을 주자 종이가 와락 구겨졌다.
나는 살짝 다가가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교수님, 세금 빠른 시일 내에 내실 거라 믿습니다. 앞으로 큰일 하실 분이 체납액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이, 이익!”
교수의 손을 억지로 벌려 감정서를 빼어낸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그러나 교수는 분에 겨워 부들거릴 뿐 아무런 소명도 하지 못했다.
“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정치하신다는 분이 머리가 안 돌아가시네요.”
서재 문을 열고 뒤를 돌았다.
교수의 씩씩거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 걸 생각했으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죠? 교수님의 지위, 직함 아무것도 관심 없다고. 교수님, 저는 법대로 할 뿐입니다.”
싱긋 웃으며 서재를 나섰다.
“아아아악!”
뒤에서 교수의 분에 겨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거실에 서 있던 가사도우미가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우리와 서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며칠 내로 고지서 나올 겁니다. 교수님께 꼭 전달해드리세요.”
***
-오늘 오후, 제1야당인 창의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이장문 위원을 제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대해 김 비대위원장은 확실한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이장문 비대위원의 집 앞에서 일어난 소동이 관계가 있는 것으로…….
서장실.
내가 들어가자 서장은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던 뉴스의 볼륨을 줄였다.
갑자기 받은 호출이라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장문 위원 때문이었나 보다.
“아, 거기 앉아요.”
서장은 소파에 나를 앉히더니 스마트폰을 보여 주며 허허 웃었다.
“용산에 있을 때도 거물급들 마구 때려잡더니 여기서도 들이받는 건 여전하네요.”
웃는 낯이라 비꼬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내 요청은 다소 무리가 있어도 들어주는 사람이다.
일전에 상속세 사건 때도 서장의 이름과 서장실을 빌려 주기도 했고.
적어도 이번 건으로 압박을 줄 사람은 아닐 것이다.
“누구한테는 숙이고 누구한테는 과세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일관성 있는 모습 아주 좋아요. 적어도 믿음은 가니까. 그러면 이 영상은 뭔지 궁금한데.”
서장이 이번엔 핸드폰을 들더니 다른 영상을 틀었다.
고급 주택가 대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이다.
어느새 누가 찍었는지 올라온 이 영상은 거의 2주간 인터넷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오르지 않았더라도 몇몇 사이트에 돌았다.
아마 이장문 위원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제명당한 건 저 영상의 탓도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도 아닌 일반 위원, 조금이라도 구설수에 오르기 전에 미리 쳐내는 것이다.
“시끄러운 일을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소동이 된 것은 사실이니, 나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내가 경우를 모르고 들이받는다지만,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에게까지 들이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야, 아니에요. 오히려 재밌어. 내가 궁금한 건 따로 있어요.”
서장이 영상을 멈추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혹시 의도했어요? 이장문 위원 제명.”
“아니요. 이런 반응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금 시끄러워지면 위원도 무시하지 못할 거란 계산이 있었을 뿐이었죠.”
“하지만 제명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잖아요?”
나는 한 템포 쉰 후 서장을 바라보았다.
“네. 이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