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동물도 재산입니다(3)
“거래소가 있습니다. 워낙 좁은 업계다 보니 웬만한 승마공원은 서로 다 알아요. 중개인도 있고요.”
“가격은 어떻게 측정됩니까?”
“아무래도 생명체다 보니까 가격 측정은 꽤 어렵습니다. 나이, 윤기, 보행 정도, 순응 정도 등등 매우 세부적인 항목을 나눠서 채점하듯 검사하죠.”
이렇게 보니 일반 시장과 다름없어 보였다.
이번 건을 낯설게 여긴 이유는 재산의 종류가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재산의 가격만 안다면 나머지는 일반 증여세와 똑같다.
종류만 다를 뿐, 세금 체계는 언제나 똑같이 적용되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한 가지만 더요, 마주와 실제 시승자가 다른 경우도 존재하지요?”
지나가듯 툭 던진 질문이었지만, 매니저는 내 말투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그는 슬쩍 날 살펴보더니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빌려서 탈 수도 있는 거죠.”
그는 내 질문의 의도를 몰라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만, 나에겐 충분한 해답이 되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힐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진심을 담아 그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당한 과세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예? 예…….”
매니저가 자신이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곱씹는 듯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은 준비할 서류도 있고…… 형, 내일 제가 재산세과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본방은 내일이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내가 활기차게 인사하며 재산세과로 들어서자 직원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재산세과 내에서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황민우에게 들어 알고 있다.
폭풍의 중심, 걸리면 과세.
또라이.
용산 세무서에서 들은 것도 아닐 텐데, 별명을 똑같이 짓는 걸 보면 여기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인 것 같다.
“뭐야, 완전히 돌아오는 거야?”
가장 먼저 내게 말을 건 것은 장세훈 주사보였다.
처음 삼성 세무서에 오자마자 싸웠던 상대인데,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보다.
“아니요. 일 때문에 잠깐 들렀습니다.”
“에이, 뭐야. 언제 돌아올 건데?”
“뭡니까, 이 반응은? 제가 재산세과로 돌아오길 바라는 것 같네요.”
싸우다 못해 때리려고 했던 사람이 이런 반응이라니.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장세훈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네가 오면 일이 줄어드니까 그렇지. 우린 이러고 야근하는데 법인세과 가서 걔네 일 싹 처리해 줬다며?”
“아, 그거요.”
역시 서 내의 소문은 빠르다.
“파견이고 뭐고 일하러 갔으니까 했죠. 문제 있습니까?”
“문제? 당연히 있지! 재산세과 소속인데 재산세과 일은 안 해 주고!”
거듭된 야근으로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다.
나는 격분을 토하는 장세훈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은 재산세과 일 때문에 온 겁니다.”
“뭐야, 우리 과 일이었어? 그럼 들어가야지.”
순순히 앞길을 비켜주는 장세훈이 슬쩍 내 손에 든 서류를 훔쳐보았다.
“또 귀찮은 거 하네. 어떻게 너는 이런 것만 맡냐?”
“그럼 장세훈 주사보님이 하시겠습니까?”
“어우, 아냐. 저리 치워.”
질색을 하는 장세훈을 지나쳐 이선균 과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바빴다.
“납세자에게 다녀올까 합니다.”
“준비는 다 됐나 보군요.”
한 손에 펜을 들고 시선은 책상에 고정한 채 과장이 물었다.
나는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서류의 이름을 본 이선균 과장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철저하게 준비할 생각인가 보군요. 좋습니다.”
과장은 하던 것을 내려놓고 서류를 들고 일어섰다.
“바로 서장님 도장을 받아 오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과장이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가자 장세훈이 또다시 슬그머니 다가왔다.
“뭔데? 서장님 도장까지 필요해?”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안 되는 상대거든요. 언론에서 떠들어댈 테니까.”
“누군데 그래?”
나는 서류 맨 앞장의 납세자 칸을 가리켰다.
“제1야당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위원인 이장문입니다.”
“누, 누구?”
장세훈이 숨넘어갈 듯 캑캑거렸다.
***
강남구 대치동.
있는 사람들만 산다는 동네다.
내가 사는 집이 용산에 있다 보니 부촌이라 손꼽히는 한남동을 왔다 갔다 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거기와는 또 분위기가 달랐다.
내가 평생 안 쓰고 모아도 살 수 없을 만큼 번듯한 집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동네 전체에 부촌의 느낌이 났다.
“골목에서부터 주눅 들게 하는 동네는 또 처음이네요.”
좌우로 늘어선 높은 담장과 잘 닦인 골목길을 보며 말했다.
황민우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주사보님. 상대가 당 비대위원입니다. 괜찮을까요?”
전 지검장도 잡고 공무원도 줄줄이 잡아보았지만 나도 당 관련자는 처음이다.
“그래도 과장님이 아무렇지 않게 보낸 걸 보면 별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선균 과장도 바보가 아닌 이상 뻗어도 되는 자리인지는 잘 따져보았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높으신 분은 잘못 걸리면 나뿐만 아니라 상사인 과장도 같이 발목 잡히게 되는 법이니까.
“그래도 국회 관련자입니다. 일반인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국회의원은 아니잖습니까.”
나도 미리 상대에 대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뉴스에도 나오는 거물이긴 하지만 금배지는 없는 사람이다.
흔히들 당을 쇄신하네 어쩌네 할 때 외부인을 끌어들여 보여 주기를 하는데, 거기에 초빙된 것이다.
원래는 서울대 교수였고.
“이런 건 명분 싸움이죠. 우리가 정당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이선균 과장 밑으로 들어간 이후, 한 가지 결심한 게 있다.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물어뜯겠다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저런 거물한테 과세해 보겠습니까. 자, 가시죠!”
나는 황민우의 등을 떠밀며 골목길을 올라갔다.
고급 세단이 몇 대 옆을 지나쳤다.
다들 차를 타고 다니나 보다.
이 길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이 집이네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높은 담장의 집이다.
옆에 차고도 붙어 있고, 커다란 대문 틈 사이로 넓은 마당도 보였다.
이런 집에 살려면 대체 얼마가 필요할까.
나는 잡생각을 떨치며 대문 옆에 붙은 벨을 꾸욱 눌렀다.
-누구시죠?
“삼성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과세예고통지서를 먼저 보내 드렸을 텐데요.”
-잠시만요.
일부러 절차를 제대로 밟아서 여기까지 왔다.
미리 통지서도 보냈고 오늘 여기에 방문하겠다는 안내도 했다.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은 대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5분, 10분.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엔 서로 대화라도 하나 보다, 하고 기다려 줬지만 이쯤 되면 무시가 틀림없다.
다시 벨을 눌렀다.
“미리 예고하고 찾아뵈었습니다만. 안에 계신데도 안 열어 주시면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인터폰에서 아까 대답했던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교수님께서 바쁘십니다. 나중에 자문 변호사와 세무사가 찾아갈 테니 돌아가라고 하시네요.
“아. 그러세요?”
인터폰이 뚝 끊어졌다.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돌아갈 수야 없지.
나는 인터폰에서 물러나 있는 힘껏 외쳤다.
“교수니이임! 야당의 비상대책위원회에 계신 분이이이이! 세금도 안 내고오! 이래도 됩니까아아!”
골목이 넓어서 그런지 내 목소리는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멀리 떨어진 집의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가 탁 닫히는 소리도 났다.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아아! 교수니이임! 이장문 씨이이!”
-삐익.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남의 눈을 신경 써야 하는 처지이니 내가 소리 지르는 것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시켜 쫓아내자니 시선이 더 쏠릴 테고.
“들어가죠.”
반쯤 넋 나간 얼굴로 보고 있던 황민우에게 눈짓했다.
이제는 호랑이 굴이다.
황민우의 눈빛이 또렷해지는 것이 보였다.
마당은 나무와 화단이 구분되어 잘 관리된 티가 났다.
바닥에 깔린 돌을 밟고 현관으로 다가가자 문이 열리고 중년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우리를 흘겨보고 있었다.
“이 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수님이 서재로 오라고 하십니다.”
가사도우미였나 보다.
우리 집의 몇 배는 될 법한 집안을 휘젓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서재가 보였다.
중년 남자가 한참 뭔가를 작성하고 있다.
“모셔왔습니다.”
남자의 대답은 없었다.
그게 익숙한 일인지 가사도우미 역시 답을 기다리지 않고 도로 돌아 나갔다.
“…….”
60대를 넘어서 희끗희끗한 머리칼을 가진 남자는 하던 일에 열중하느라 우릴 쳐다보지도 않았다.
앉으라는 말도 없고, 가사도우미는 물 한 잔 내다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건 거의 방해꾼을 넘어서 장식품 취급이다.
기를 죽이기 위한 방법이라면 야비하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것에 기죽을 놈도 아니지만.
-타악!
구석에 있던 작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 교수의 정면에 앉았다.
그러고선 책상 위에 있던 종이를 끌어다 한 줄 읽으려 하자마자 호통이 들려 왔다.
“이게 무슨 못 배워먹은 짓거리야!”
-착!
교수가 손에서 종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종이가 스친 손가락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전 받은 대로 한 것뿐입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교수님은 잘 아실 텐데요.”
피식 웃으며 손가락에 배어 나온 피를 빨아 삼켰다.
그게 비웃음으로 보였는지 교수의 얼굴이 벌게졌다.
“공무원이면 공무원답게 시키는 일이나 잘 할 것이지 어디 남의 집에 와서 행패야!”
“말씀하신 대로 ‘공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짜고짜 찾아왔나요? 아니면 담을 넘어서 무단침입을 했습니까?”
“무단침입이나 다름없지. 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들여보내 줄 거라 계산하고 한 행동 아닌가?”
“맞습니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에잉, 쯧쯧. 그게 못 배워먹었다는 거야!”
교수는 우악스러운 손길로 종이를 그러모았다.
대충 얘기하고 꺼지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말씀드렸을 텐데요. ‘공무 중’이라고. 미리 통지서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전박대하시니 이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어쭈. 아주 말대답까지 하네.”
방금 이 한 마디로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뼈저리게 느꼈다.
아니, 처음 대문 앞에 세워 뒀을 때부터 느낀 거였지만.
그는 나를 가르침을 내려줘야 하는 무지몽매한 아랫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많이 배운 사람 중에서 흔히 나타나는 지식인 병이다.
“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시작은 무슨 시작이야. 세금은 내 자문 변호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이만 돌아가도록.”
나는 뒤통수를 한 대 갈기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순히 일어서자 황민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잘 들으세요, 교수님. 지금 이 자리에서 들은 것 아니면 그 어떤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이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 저는 돌아가자마자 과세권을 행사할 겁니다.”
주눅 들지 않고 말하는 내 태도가 건방져 보였을까.
교수는 드디어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껏 짜증을 담은 교수의 눈빛이 나와 마주쳤다.
“증여세 4억. 따님에게 부과될 세금입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건 해명이 아닙니다. 하실 말씀 없으면 돌아가겠습니다.”
“허!”
올려다보는 것이 싫었는지 교수가 벌떡 일어섰다.
눈높이가 비슷해지자 그의 핏발 선 눈동자가 또렷이 보였다.
“이 건방진…… 너라고 무사할 것 같아?”
“네. 교수님보다 더한 사람도 건드릴 자신이 있으니까요.”
교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오냐, 이 정도 정성 어린 개소리면 들어줄 만은 하다. 어디 읊어나 봐.”
좀 거친 방식이긴 하지만 드디어 대화의 장이 성립되었다.
나는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