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59화 (59/500)

59화. 동물도 재산입니다(2)

의외의 발언이었다.

물론 나도 무조건적으로 원칙만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내는 것이라지만 이왕이면 납세자들이 기분 좋게, 납득하고 내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안 그래도 징세꾼이라는 말까지 도는 마당에.

과세관청과 사채업자의 차이점은 우리가 국가의 공무원 신분이라는 데 있지 않다.

아무리 공무원이라고 해도 하는 짓이 사채업자와 같으면 이름만 공무원인 일수꾼일 뿐이다.

“대체 어떤 서류길래 그렇습니까?”

공무원이라도 봐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황민우의 가벼운 말투를 보아하니 봐줄 수 있는 것이겠지만…….

“공익법인은 세무확인서 내잖아요. 그겁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비영리법인 중 사회에 헌신하는 공익법인은 규제가 느슨하다 보니 악용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세무사가 작성한 세무확인서가 필요하다.

“세무확인서 주요서류 아닙니까? 가산세가 최소 100만 원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맞습니다. 원칙은 홈택스에서 신고하는 건데, 결산서 제출로 대신할 수도 있거든요.”

결산서란 법인세 신고 후 관련 서류를 모두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결산서로 들어오면 공무원이 직접 전산에 입력해야 하니 귀찮긴 하지만, 그것도 정당한 제출이다.

“설마 책으로 냈다고 퇴짜 놓은 건 아니죠?”

아무리 원칙주의 공무원이라고 해도 그걸 빠꾸 먹일 리가 없는데.

역시나 황민우는 고개를 저었다.

“세무사사무실 직원이 등기로 부쳤는데 중간에 소실됐습니다. 세무서 내에서 잃어버린 건지, 안 보냈는데 보냈다고 거짓말한 건지는 모르지만요.”

“등기면 등기번호가 있을 것 아닙니까?”

“등기번호로 조회하니까 세무서에 도착했다고 뜨긴 하는데 그게 진짜로 결산서 보낸 건지는 이제 확인이 불가능하잖습니까.”

요즘은 우편물 분실이 거의 없는 일이지만, 간혹 가다 이런 일이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우편이 아닌 홈택스 전자 신고를 권하는 것인데.

이미 잃어버린 서류를 진짜 보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실무상 이런 경우 저희 귀책이 없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다시 제출해도 받아주는 편입니다. 솔직히 전자로 제출해도 서버 오류로 없어지는 경우도 있거든요.”

“모든 게 완벽하진 않으니까요.”

“그런데 담당 공무원은 자기 손에 들어온 적 없으니 무조건 안 된다, 가산세를 내라.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사무실 직원은 억울하다고 울면서 무릎을 꿇었구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중간에 잃어버린 서류.

누구 잘못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광경을 눈으로 그려보자 안타까운 마음만 생겼다.

윤지성이 어떤 심정으로 징계를 올렸는지도 이해가 갔다.

“윤지성 씨는 정이 많은 분인가 보네요.”

“글쎄요. 그 법인세과 직원이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로서는 그걸 굳이 징계위원회에 올렸어야 하는 마음도 드네요.”

일선 공무원의 동료애는 돈독하다.

황민우는 담당 공무원이 봐줬어도 된다 말하면서도 징계감까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린 결국 납세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납세자는 돈을 쥐어짤 대상이 아니라 협력을 구할 대상입니다. 납세의 의무를 가졌다고 해서 그들에게 갑질해도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법인세과 직원이 과했다는 말씀이군요.”

“제 결론은 그렇습니다. 가산세는 납세자가 잘못을 했을 때 매기는 세금이니까요. 납세자가 명확한 잘못이 없다면 매기지 말았어야 해요.”

내 말에 황민우가 입을 다물더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무언가 시원한 얼굴로 말했다.

“가끔 정말 놀랍습니다.”

“네?”

무슨 말인지 되물었지만,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가 따르는 거지만요. 나이에 상관없이.”

“…….”

황민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괜히 쑥스러워진 나는 말을 돌렸다.

“그 법인세과 직원 이름 혹시 아십니까?”

“조지시게요?”

“제가 뭐라고 조치합니까. 그냥 이름만 알고 있으려고요.”

나한테 무슨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치까지는 무리다.

그래도 어떤 생각으로 갑질을 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주시하고 있다가 또 갑질하려고 들면 이번엔 막을 생각이고.

“이름은 문영순, 부가세과에 있습니다.”

“부가세과라.”

아직 가보지 못한 과다.

서장은 내가 모든 과를 돌기 원했으니 앞으로 가볼 확률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설명이 일단락되자 황민우가 용건을 꺼냈다.

“그럼 이선균 과장님이 맡기신 건은 언제 외근 나가실 겁니까?”

“아, 생물자산 증여요?”

평소라면 그냥 나가서 부딪혀 보겠는데 이번 건은 자신이 없다.

애초에 말을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조사하고 과세하는 입장인 이상 전문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지식은 쌓고 나가야 했다.

괜히 어물어물 고개만 끄덕이다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내 고민을 이야기하자 황민우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저도 말은 처음입니다.”

나보다 경력이 많은 황민우라 혹시나 했는데, 그 역시 말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농가나 축산업이 많은 지방이라면 생물자산의 예가 많을 텐데 여긴 서울이다 보니…….”

“강남 쪽 부자들은 말 가진 사람이 꽤 되지 않을까요?”

“말이 사치 자산이긴 한데 막상 공무원 중에 다뤄본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나와 황민우는 잠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다.

“어쩔 수 없죠. 물어보러 갑시다. 지금 급한 일 없죠?”

“있어도 가야죠.”

황민우는 즉답했다.

***

모르는 것이 있다면 조사하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다짜고짜 찾아온 곳이 경기도의 모 승마공원이었다.

흔히 승마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일반인도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왜 마사회로 안 가시고 여기로 오셨어요?”

황민우가 잘 정돈된 잔디를 보며 물었다.

사실 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마사회와 서울승마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경마를 허락받은 곳이자 말 육성 산업을 주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기업인데도 얼마나 벌어들이는 돈이 많은지, 한 해에 납부하는 법인세가 거의 2조에 육박한다.

그렇기에 가지 않았다.

“돈 잘 버는 공기업이잖아요. 저희 같은 말단 공무원이 간다고 시간 내주겠습니까.”

마사회의 영업이익과 법인세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웬만한 대기업 뺨은 후려치고도 남았다.

경마라는 특성상 문화체육관광부가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축산이라는 이유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어떻게든 산하에 두고 있다.

매우 귀하신 몸이라는 뜻이다.

“여기도 협조해 줄까요?”

“여기는 세금 내는 일반적인 회사니 세무서 공무원 이름값은 먹힐 겁니다.”

거대 공기업은 청와대나 정부 기관 높으신 분이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하기 위해 내려가는 곳이고, 여긴 일반적인 회사나 다름없다.

말이 승마장이지 외부는 공원이나 다름없게 꾸며 놓았다.

일반인 손님도 많으니 거부감 들지 않게 조성한 듯했다.

덕분에 본관 건물까지는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서자 골프장에라도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로비가 고급스러운 호텔처럼 압도적인 분위기를 꾸며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예약하셨습니까?”

친절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직원에게 공무원증을 꺼냈다.

“손님은 아닙니다. 세무서 공무원이에요.”

“아, 세무서요?”

직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보통 이런 말 뒤엔 ‘세무조사 나왔습니다’가 자연스러운 수순이니까.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세무조사는 아니에요.”

“세무조사가 아니라고요?”

직원이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제가 말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디서 오셨다고요?”

“서울 삼성 세무서요.”

“……?”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당혹이 직원의 얼굴에 흘렀다.

웬 미친놈이지? 하는 눈빛이다.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직원이 잠시만 기다려보라더니 카운터 뒤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고급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대충 봐도 내가 입은 정장보다 몇 배는 비싸 보였다.

“매니저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감사합니다.”

나와 황민우는 눈빛을 교환했다.

첫 번째 관문은 통과다.

안쪽 문을 통과하자 직원들의 대기실로 보이는 곳이 있었고, 그 안에 하나의 방이 더 있었다.

매니저실이다.

직함이 매니저일 뿐, 아마 팀장이나 과장처럼 1층 로비의 총괄을 맡는 관리자급일 것이다.

보통 주어지는 방은 그 사람의 위치나 손님의 격을 대변하는 법이니까.

과연 매니저실은 전형적인 사무실이면서도 손님 접대를 위한 테이블을 갖추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가 권한 의자에 앉자 창 너머로 운동장이 보였다.

널찍한 공간에 말 몇 마리가 신나게 뛰고 있었다.

“삼성 세무서에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시죠? 혹시 저희 손님 중에 세무조사 대상이라도 있으십니까?”

매니저의 말은 정중했지만 날카로웠다.

부자 고객이 많은 승마장의 특성상 당연히 내 방문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공법을 택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승마공원 고객의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저희 세무서 관할에 마필 관련한 세금 분쟁이 있는데, 납세자분께서도 납득할 만한 과세를 해 드리려면 제가 기초 지식이라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내 말이 끝나자 매니저의 표정 역시 아까 접수대의 직원처럼 복잡 미묘하게 변했다.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웬 미친놈인가 하는 당혹감이 배어났다.

그는 잠시 날 멍하니 바라보더니 곧 표정 관리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괜찮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못 참는 또라이라 그렇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게 아니라…… 보통은 자문이 필요하시면 교수 같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공문으로 협조를 구하지 않나 해서요.”

“원래 실무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직접 와야 알게 되는 것도 있는 법이죠.”

“듣고 보니 맞는 말씀이네요. 직접 보시는 것과 듣는 건 다르죠. 그래서 뭐가 궁금하십니까?”

매니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보다는 훨씬 협조적인 태도였다.

“승마장이면 보통 말을 타는 곳이죠? 개인적으로 말을 가진 사람들도 옵니까?”

“아, 그것부터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그는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왼손을 흔들었다.

“여기 오시는 분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말이 워낙 비싸다 보니 개인적으로 갖지는 못하시되, 저희가 보유한 말을 빌려서 타시는 분이 계시고요.”

이번에는 오른손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았다.

“말씀하신 말 주인, 즉 마주도 물론 계십니다. 말이라는 동물이 굉장히 예민해요. 관리에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활발한 운동량을 맞춰 주기 위해서는 넓은 공간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개인 마장을 갖기가 쉽지 않죠.”

“땅이 좁아서 그런가요?”

“맞습니다. 외국은 부자들이 넓은 부지에 말을 키우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리 부자여도 그만한 땅을 마장으로 두진 않죠.”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했다.

“그럼 개인적으로 말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에 말을 맡기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승마장이니 당연히 관리 인력도 있을 거고 넓은 부지도 갖고 있다.

일정 요금만 내고 맡겨 뒀다가 말을 타고 싶을 때 와서 타는 방식인 것이다.

“거래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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