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동물도 재산입니다(1)
“체납징세과라…….”
일부러 실력이라고 강조한 것은 여기서 내 능력을 증명하라는 뜻일 것이다.
지원할 때는 아낌없이 밀어주고, 끊임없이 실력을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가혹한 처사다.
하지만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공과 사를 칼 같이 갈라서 철저히 실력 위주로 대우한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내게 힘이 실릴 수 있는 이유다.
내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 한, 나는 끝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알겠습니다. 제 힘으로 체납징세과에 들어가도록 하죠.”
단호하게 대답을 내놓자 이선균 과장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나 보다.
“아, 그러고 보니 과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네. 어떤 거죠?”
흡족한 얼굴의 과장은 무엇이든 대답해 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슬쩍 선을 밟아보기로 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지현석 검사는 내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잘 구분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은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아 선 넘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러나 실수는 아니었다.
막무가내도 아니었고.
눈앞에 있는 선이 나를 어디까지 허락하는가.
슬슬 시험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과장님. 제가 과한 질문을 드린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답하지 않으시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내가 생각 없이 물은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운을 띄웠다.
“제가 올라탄 라인의 끝이 어디인가. 침몰하는 배인지, 순풍을 탄 배인지는 확인하지도 않고 올라탔기 때문에 관심 없습니다. 다만 제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그걸 언제쯤 알 수 있겠습니까?”
내 머리 꼭대기에 누가 있는지를 물은 게 아니다.
내 질문의 의도는 결국 ‘언제 내게 모든 걸 말해 줄 것이냐’는 시기를 물은 것이었다.
단순한 사냥개가 아닌, 진정한 그들의 동료로 받아들여질 날을 묻는 것이기도 했다.
과연 이선균 과장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한참을 갈등하는 듯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더니 나와 시선을 맞췄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신재현 씨를 못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게 그런 권한이 없을뿐더러, 지금 신재현 씨가 알게 되면 단점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여기서 확실히 약속드리겠습니다.”
이선균 과장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굳게 말했다.
“신재현 씨가 세무서나 지방국세청이 아닌, 세종시의 국세청 본청에 오게 되면 그때 반드시 말해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우리의 가장 위에 누가 있는지.”
그러니까 빨리 올라와라.
내가 있는 곳까지.
이선균 과장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도전을 제안받았으면 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세무서에서 서울지방국세청을 거쳐 본청까지.
길이 멀긴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과장의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가겠습니다, 과장님.”
내 대답에 과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일하러…… 아, 자꾸 붙잡아서 미안한데 신재현 씨, 한 가지만 더요.”
과장이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슬쩍 웃었다.
“혹시 법인세과 지금 바쁩니까? 일 하나 가져가서 할래요?”
***
“응? 뭐 해요?”
내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나 보다.
책상 옆을 지나가던 여직원이 슬쩍 내 앞의 서류를 들여다보며 아는 척을 했다.
이름이 정혜원이라고 했던가.
저번에 선우건설을 함께 다녀온 이후 동료애라도 생겼는지 종종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응? 생물자산이네. 어디 농업법인이라도 조사해요?”
“아닙니다. 제 원래 있던 과에서 좀 검토해 달라고 해서요.”
“원래 있던 과? 아, 재산세과…….”
정혜원이 금세 안타까운 눈빛을 했다.
법인세과에 처음 온 날에도 이랬다.
또 그런 걸 붙잡고 있냐는 뜻일까.
정혜원의 눈에는 내 일이 벅차 보이나 보다.
“생물자산 어려운데. 제가 좀 도와드려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하실 일이 밀려 있으신데.”
나는 슬쩍 정혜원의 책상을 건너다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서류 한 뭉치만 올라와 있는 내 책상과는 다르게 주황색 파일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아하하. 언제 이렇게 늘어났대. 금방 하고 올게요. 진짜 금방 해요.”
내가 보기엔 오늘 안에 안 끝날 것 같은데.
정혜원은 시퍼렇게 날이 선 얼굴로 뚫어져라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난생 처음 보는 종류의 증여 재산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였다.
“저, 신재현 주사보님.”
갑작스럽게 들려온 낯익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황민우가 곁에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남의 과라 조용히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만큼 집중한 것인지.
아니, 옆에 있던 정혜원이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걸 보면 후자인 것 같다.
“과장님한테서 들었습니다. 또 외부 나가실 일이 생길 것 같다고요.”
“아……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직접 보러 가야 할 것 같아요.”
내가 보고 있던 서류 한 장을 넘기자 그가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말……입니까?”
“네. 말이라네요.”
동물.
그것도 살아 있는 말이다.
도축하고 고기가 되면 시장에서 시세가 매겨지지만, 살아 있는 동물이면 사정이 다르다.
특히 말은 사치품에 속하는지라 개체와 특성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생각할수록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당분간 외부 조사는 빠져도 된다는 과장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니 나가실 때 꼭 말씀 주세요.”
“아, 고맙습니다.”
“그리고…….”
뭔가 할 말이 남았는지 황민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빤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정혜원이 눈이 마주쳤다.
“……?”
보통 엿듣다 들키면 시선을 돌리기 마련인데 이 여직원은 뻔뻔하다.
오히려 끼어들고 싶어 근질근질한 것 같았다.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어 쳐다보고 있자, 그게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정혜원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저도 가면 안 될까요?”
반사적으로 말한 것이 틀림없다.
정혜원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아차 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도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왜요?”
예상치 못한 대답일까.
정혜원은 정곡을 찔린 듯 어물어물하다 울상이 되었다.
“여긴 법인세과잖아요. 그리고 도와드릴 수 있는 인재도 여기 있고……?”
자기 입으로 인재라.
이 여자는 지금 당황한 나머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앞뒤가 안 맞잖아.
“제가 지금 법인세과에 있다 해도 잠시일 뿐입니다. 머지않아 다른 과로 갈 거구요. 이 일도 재산세과 일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럴 땐 솔직함이 먹히는 법입니다.”
정혜원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뭔가 생각을 하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곧 수줍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재현 씨랑 같이 가면 실적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
부끄러운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걸 보아하니 이건 진심이다.
그래도 이상한 고백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그나마 정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렇게 보지 말고요…… 미안해요, 내가 실적이 급해서.”
“얼마나 필요한데 그렇습니까?”
“한 1억…… 정도?”
1억이면 법인 하나 털면 금방이잖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혜원에게 넘겼다.
이선균 재산세과장이 ‘우리 직원이 겁이 많아서요. 한번 해볼래요?’라며 넘겨준 바로 그 서류다.
“이건 왜…….”
“증여 재산은 들었다시피 말입니다. 소유주가 청와대 공무원의 딸이구요. 그 어머니 소유였던 말을 딸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아 과세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검토해야 하는 건입니다.”
“처, 청와대요?”
정혜원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갈라졌다.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는 미세하게 떨리는 정혜원의 손에서 서류를 도로 빼앗아 왔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얻어맞고 저 멀리 지방 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냥 법인세 열심히 하세요.”
“이, 이런 걸 왜 신재현 씨가 하세요?”
잠시 무대 장막을 들추고 그 너머에 있는 걸 본 사람의 표정이 이럴까.
정혜원은 덜덜 떨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보통은 어떻게든 떠넘기려고 애쓴단 말이에요. 미쳤어요? 이건 폭탄이에요, 폭탄!”
딴에는 걱정해 주는 건지 정혜원이 극구 말리기 시작했다.
“전 괜찮습니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아직 신재현 씨가 1년 차라 잘 모르나 본데!”
말이 길어지려는 것을 내가 뚝 잘랐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괜찮다구요. 제가 선우건설에서 어떻게 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어…….”
정혜원이 입을 턱 다물었다.
이제야 조용해졌다.
“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수긍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혜원의 눈빛에는 아직도 걱정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정혜원의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주황색 서류철을 대충 눈으로 훑었다.
-스륵, 탁.
총 열다섯 건의 파일 중에 아래에서 두 번째와 위에서 세 번째.
두 개의 파일을 빼내어 정혜원에게 쥐여 주었다.
“이건 왜…….”
“실적 급하다면서요. 다른 거 말고 이것부터 보세요. 1억은 채울 수 있을 겁니다.”
“예…… 예?”
넋 나간 사람처럼 서류와 나를 번갈아 보는 정혜원을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민우가 아직도 조용히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 말 있으시죠? 나갈까요?”
“예. 잠시면 됩니다.”
뒤에서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
“말씀하신 윤지성 주사보 말입니다.”
세무서 건물 밖으로 나와 골목 쪽으로 돌자 황민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윤지성은 삼성 세무서 재산세과 내 바로 옆자리에 앉은 7급 세무 공무원이다.
‘밀고자 새끼’라는 말을 들었었지.
그게 궁금해서 황민우에게 조사를 부탁했었는데 벌써 무언가 알아낸 모양이다.
“작년에 법인세과에 있다가 올해 재산세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법인세과 직원을 징계위원회에 고발했다고 합니다.”
“징계위원회까지 갔어요?”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웬만한 잘못이 아니면 징계고 뭐고 없으니까.
오죽하면 9시 뉴스에 나와야 잘린다는 소리도 있다.
그런 공무원이 징계위원회까지 갔다는 말은 그만큼 심각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심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징계위원회라면서요.”
“상대가 막상 징계를 당하진 않았거든요.”
윤지성이 같은 법인세과의 세무 공무원을 내부 고발했는데 징계는 없이 끝났다고?
상대 공무원이 어디 백이 있었나?
추측한 것을 묻자 황민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더러운 일이 엮인 건 아닙니다. 진짜로 별일 아니었어요. 세무사사무실 직원이 실수로 결산서 제출을 깜빡했는데 법인세과 공무원이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이 좀 보기 안 좋았나 봐요. 세무사사무실 직원이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릎을 꿇어요?”
이건 말이 좀 다르지.
백화점 손님이 주차장 알바생 무릎을 꿇렸다고 저녁 9시 뉴스에 나오고 신상이 털리는 세상이다.
감히 공무원이 세무사사무실 직원 무릎을 꿇렸다면 그것 또한 갑질이다.
“그래서 보다 못해 윤지성 주사보가 징계를 요청했나 봅니다.”
“납세자도 아니고, 민원인도 아닌, 세무사사무실 직원이니까 당연히 징계까진 안 갔겠네요.”
“네. 경고만 주고 끝났습니다.”
입맛이 썼다.
공무원이 되기 전 잠시 세무사사무실에서 알바를 해서 그런지 직원들에겐 정이 갔다.
일하다 실수했고 가산세가 나올 것 같으니 직접 와서 무릎이라도 꿇었겠지.
“원칙상 안 봐주는 게 맞긴 하는데 그래도 마음은 안 좋네요.”
“아니요, 주사보님. 사실 봐줘도 되는 영역이었습니다.”
“응?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