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어느 중간 관리자의 고백(2)
“푸헉! 콜록콜록!”
그분이라는 언급에 차장검사가 기침을 내뿜었다.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넘기다 사레가 들린 듯했다.
이선균은 놀란 얼굴로 차장검사를 바라보았다.
“뭘 그리 놀라고 있어. 아주 경기를 일으키네.”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 눈을 둥그렇게 뜨는 이선균을 구해 준 것은 국장이었다.
그는 호들갑 떠는 동갑내기 친구를 나무라듯 타박했다.
“커흠. 아니 갑자기 그렇게 얘기하니까 놀라지. 이 과장, 미안해요.”
“아니, 아닙니다.”
아직 당혹스러워하는 이선균과 차장검사를 대신해 국장이 입을 열었다.
“청장 생각이에요. 전임 청장 흔적도 지워볼 겸 그분 눈에도 들 겸 자기 임기 중에 뭐라도 해보겠다는 거지요.”
“전국 세무서에 체납 세금이 많긴 하지.”
차장검사가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국장이 찌릿 눈을 흘겼다.
“안 내고 배 째도 처벌을 못 하니까 그런 것 아냐! 누구는 징세하기 싫어서 봐주는 줄 아나!”
“아이고, 그걸 왜 나한테 그러나? 저어기 여의도 가서 따질 일이지.”
“국회 탓인 걸 아는 놈이 체납 세금 얘기를 해?”
“사실인 걸 어떡하나. 체납액 점점 늘어난다고 술 먹을 때마다 노래를 부르는 양반이.”
“이놈이?”
국장과 차장검사가 투덕거리기 시작하자 이선균이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국장님, 저희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나도 궁금한데.”
차장검사가 약 올리기를 멈추고 진지하게 물었다.
국장은 여전히 차장검사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답했다.
“청장이 하는 걸 이용해야지요. 차라리 잘 됐습니다. 단번에 밀어붙이면 잡음이 나기 마련인데 청장이 그 전 단계를 밟아 준 거나 다름없어요. 나중에 더 큰 권한을 가진 전담팀이 생겨도 큰 반대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징세팀에 우리 사람을 최대한 넣어야겠군요.”
이선균의 말에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사람, 항상 그것이 문제였다.
“어디 쓸 만한 사람은 보이던가요?”
“봐둔 사람이 몇 있긴 한데…….”
“눈에 차는 사람은 없나 보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선균이 시무룩하게 답했지만, 그것은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참, 섣불리 우리 쪽으로 들일 수도 없고 사람이 이렇게나 없을 줄이야.”
“원래 사람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키우는 걸세. 싹수 있는 놈들 여럿 골라서 키워 봐.”
차장검사가 자신의 빈 잔에 새로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것이 국장은 또 고까웠는지 냅다 주전자를 빼앗았다.
“자네는 쓸 만한 놈 구했다고 기고만장한가 본데! 당장 시간이 없단 말이야! 우리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사람이나 키우고 있으라고?”
차장검사 역시 인재에 목말라하던 비슷한 처지였다.
그러던 것이 몇 달 전 패기 넘치는 검사 하나를 줍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졌다.
“어허, 이 친구 성격 급한 건 여전하구만. 누가 그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랬나? 일단 지금 후보는 있는 거잖나. 각자 일을 맡겨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거지. 그리고…….”
차장검사가 입꼬리를 끌어올리자 음흉한 얼굴이 되었다.
이것이 자신만만한 무언가가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이라는 걸 안 국장이 찜찜해 하며 물었다.
“뭐야. 또 뭔데. 설마 또 자네 집무실 박차고 들어와 땡깡 부린 검사가 더 있어?”
“우리 지 검사가 언제 땡깡을 부렸다고 그러나. 국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말 좀 가려 하게. 이 과장도 있는데. 커흠, 항의를 하러 온 거지.”
“차장검사실 창문을 깨 먹었으면 항의가 아니고 땡깡이 맞지. 그래서 뭔데 그러나.”
안달 난 표정의 국장을 놀려먹던 차장검사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우리 서부 관할에 재밌는 건이 하나 들어왔어. 중소기업 회계 쪽에 있던 사회 초년생 친구인데, 회사 임원의 횡령을 발견했다가 잘렸다네. 그런데 경찰에 횡령을 신고했더구만!”
“뭐야?”
“그 친구 어떻게 됐습니까?”
둘의 반응이 강렬하자 차장검사가 주전자를 슬쩍 가리켰다.
아까 빼앗긴 주전자는 아직 국장의 앞에 놓여 있었다.
“크흠흠. 우리 이 과장이 궁금해 하잖나.”
-쪼르륵.
국장이 손수 차를 따라 주자 차장검사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횡령 신고 들어간 임원은 처벌 받았나 본데 회사하고 다른 임원들은 멀쩡해. 뭐, 원래 그렇지 않나.”
“회사 말고 그 친구!”
“아, 얘기하려고 했어! 그 친구가 경찰서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 ‘중소기업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그럼 백수야?”
국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국장님. 나이도 젊을 테고 정의감과 강단도 있습니다. 키워 볼 만합니다.”
“이 과장.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과연 우리 쪽으로 올까요?”
“제가 가서 세무 공무원 시험 보라고 권해 볼까요?”
“이 과장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국장과 이선균에게 차장검사가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 검찰로 사건이 넘어오고 내가 결재를 봤단 소리는 이미 사건이 마무리됐다는 뜻이지. 저 횡령 사건이 있었던 건 반년 전이야.”
“아니! 그걸 늦게 말해 주면 어떡하나!”
“거참. 그렇게 화내지 말게. 더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그 친구 세무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네. 원서 접수했더구만.”
“뭐야!”
이번에야말로 국장은 뛸 듯이 놀랐다.
그리고 입이 절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하늘이 정해 주신 인재다. 우리가 데려와야 해.”
“일단 데려와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국장님.”
이선균의 눈빛은 강렬했다.
국장은 그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준비하는데 괜히 마음 쓰이게 하지 말고, 필기시험 끝나면 이 과장이 한번 만나 봐. 그다음에 조금씩 알아보자고.”
“예, 국장님.”
“아, 한 명한테만 공들이지 말고 이 과장이 봐둔 다른 후보들한테도 여러 가지 가르치고 키워 봐. 또 쓸 만한 놈이 나올지 모르니까.”
“걱정 마십시오, 국장님.”
그리고 대망의 필기 시험일이 다가왔다.
전국의 수많은 공무원 응시생, 가족, 그리고 두 명의 공무원이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다.
한 응시생이 시험지에 그간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을 때, 두 공무원은 벽에 걸린 시계를 하염없이 눈으로 좇았다.
한 응시생이 기분 좋은 예감으로 시험장을 나섰을 때, 한 공무원은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
한 응시생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공무원은 북쪽으로 올라가는 서초대로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선균이 막 잠수교에 남쪽 로터리에 들어섰을 때.
그는 후줄근한 차림새의 한 청년이 잠수교 한복판에 서서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설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다.
갈 길이 바빴다.
그러나 다리 한가운데 서 있던 청년의 뒷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잠수교가 자살의 명소는 아니었지만 어딘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선균은 멀찌감치 차를 대고 슬그머니 청년에게 다가갔다.
“나도 살고 싶다고, 이 빌어먹을 세상아! 무단횡단 한번 안 하고 살았는데 대가가 이거냐! 공무원 그까짓 거 하면 뭐 하냐! 개새끼들은 탈세하고도 잘 사는데!”
청년의 처절한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세상에 외치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나 오고 가는 자동차 소리와 강물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젊은이도 오늘 공무원 시험을 봤나…….’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았나 보다, 하고 젊은이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이선균은 헉하고 숨을 들이 삼켰다.
원서 접수 서류에서 본 그 얼굴.
지금 그가 만나러 가던 사진의 그 얼굴이었다.
“씨발, 이딴 거!”
막 청년이 던지려는 것을 본 순간 이선균은 저도 모르게 냅다 달려 나갔다.
손에 가려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무원 수험서 같았다.
그러나 막상 청년 바로 뒤까지 접근해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청년 역시 책을 추켜세운 채 우물쭈물했다.
‘시험을 잘 못 봤나? 떨어졌다면 뭐라 해야 하나.’
차장검사가 조회해 준 바에 따르면 그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었다.
소득은 거의 없다시피.
모아둔 돈으로 버텨온 모양인데 그런 상황에서 1년 더 수험공부를 한다는 건 힘들 것이다.
어떻게 도와준다고 해야 의심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청년이 이내 결심한 듯 손에 힘을 쥔 순간, 이선균이 그의 손을 잡아챘다.
저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청년의 고개가 이쪽을 향하고,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직 한창때의 젊은 나이었지만 그 눈동자엔 한없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포기가 어른거리는 반쯤 죽은 눈.
그걸 본 이선균이 단호히 말했다.
“공무원 하겠다는 사람이 한강에 쓰레기 버리면 안 됩니다.”
나무라는 마음과 안타까움을 담은 첫 마디였다.
***
이선균 과장의 이야기가 끝나자 테이블 위에는 깊은 침묵이 깔렸다.
과장이 데려온 곳은 근처 카페였다.
대충 세무서 건물 옆 골목으로 갈까 했더니 과장은 이야기가 길다며 앞장서서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날 찾아오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대낮의 강남, 와글와글한 소음이 주변을 메웠지만, 나와 이선균 과장이 앉은 곳만은 다른 세상 같았다.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과장은 말없이 커피를 홀짝이며 기다렸다.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어떻게 제게 그런 우연이 찾아왔는지.”
항상 마음에 걸렸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길까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역시 세상에 기연 같은 편리한 건 없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이 시원하군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과장이 당황하며 물었다.
“가시게요?”
“예. 일해야죠.”
“자, 잠깐. 신재현 씨.”
날 붙잡은 과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어렵사리 물었다.
“화 안 나신 겁니까?”
피식 웃음이 났다.
나보다 상사인 그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니.
“화날 게 뭐가 있습니까. 원인, 과장님과 국장님은 사람이 필요했다. 과정,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 조사했다. 결과,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였다. 원인, 과정, 결과 모두 그릇된 게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 되나요?”
“네.”
나는 평소 이선균 과장이 그러했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솔직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날 과장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잠수교에서 바로 한강으로 다이빙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고 싶은 걸 하고 있고, 그걸 지원해 주는 상사도 있고. 현재로서는 최고입니다.”
천천히, 굳어 있던 과장의 얼굴이 펴졌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습니다. 항상 제 마음의 빚이었습니다.”
“무슨 빚까지야. 과장님도 은근히 사람이 좋으십니다.”
“하하, 그런가요?”
과장은 얼음이 다 녹아 맹물이 된 아이스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한결 시원해진 얼굴이다.
아마 나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서 경험을 쌓고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갈 길이 멀어요.”
“지현석 검사님도 그런 말을 하더군요. 얼른 올라오라고.”
“그 검사님도 참. 말이 나온 김에 제 계획을 말해 두겠습니다. 아까 잠깐 지나가듯 말했는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체납징세과가 생깁니다.”
“아, 운영지원과가 바뀐다는 그거요?”
과장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는 시범 운영으로 몇 개 세무서에서만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내년엔 전국 세무서에 체납징세과가 도입될 겁니다. 물론 현 청장이 자신의 업적으로 밀고 싶어 하는 만큼 아무나 뽑지는 않겠죠.”
“실적이나 인사고과를 반영하겠군요.”
“예. 서장님도 그걸 알고 신재현 씨를 각 과로 돌린 걸 겁니다.”
“그 말씀은…….”
과장의 눈길이 매서워졌다.
“내년 신재현 씨는 체납징세과에 들어가세요. 실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