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어느 중간 관리자의 고백(1)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장 동료 직원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세무조사? 검찰수사?
같잖은 소리다.
높으신 분이 얽혀 있으면 모든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위에서 덮고 밑에서 덮어주고.
겉핥기식으로 깨작거리며 건드리다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 이건 우리 과세관청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공무원이 그렇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만족한다.
적어도 내가 털고 싶은 놈을 못 털게 막은 적은 없었고, 지원해 주기까지 했다.
공무원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는 일을 하며 항상 느끼고 있다.
물론 왜 검사가 아니라 세무서 공무원이 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때 내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으니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나는 솔직하게 한 말이었는데 뜬금없이 지현석 검사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생각이 많아진 얼굴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설렁탕이 한 그릇씩 놓였을 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지현석 검사가 침묵을 깼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신재현 씨는 냉철합니다.”
“제가요?”
크게 한 숟가락 퍼 올리던 내가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아니, 피도 눈물도 없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뭐라 말해야 하나. 이상이 없는 것도 아닌데, 현실이 어떤지도 잘 아는 것 같습니다. 절대 20대에서 나올 만한 관록이 아닌데. 가끔 보면 저보다 더 어른 같다니까요.”
“현실은 현실이죠. 제가 지금 상황에서 무작정 고위 공무원이 되고 싶다, 다 쳐부수고 싶다고 마음만 먹는다고 해결되겠습니까?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능력을 증명해 나갈 겁니다.”
“그거예요!”
지현석 검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숟가락 끝으로 날 가리켰다.
“그게 젊은이답지 않다는 겁니다. 저도 아직 한창 나이긴 합니다만, 초임 검사 때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정의감 넘치는 검사처럼 날뛰고 그랬거든요. 그 덕분에 저희 차장검사님 눈에 든 거긴 하지만…… 저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한참이 걸렸습니다.”
“저도 날뛰고 있습니다. 위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절대 선은 넘지 않잖습니까.”
지현석은 집요했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왜 자기 사람을 키우고 싶어도 못 키우는지 아십니까? 사욕 없이 정말 마땅한 놈만 물어뜯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선을 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판단이 가능해야 써먹을 수 있는 인재가 되는 건데, 그게 가능해지려면 수없이 굴러 봐야 하고요.”
그렇게 말해도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나한테 무슨 출생의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 걸까.
오늘은 꼭 궁금증을 풀겠다는 듯 설렁탕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 검사님. 어떤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저는 남들처럼 시험 봐서 공무원 붙은 것뿐입니다.”
“여기가 사회 첫 직장입니까?”
“아니요. 그 전에 일반 중소기업 다니긴 했습니다.”
“어떤 회삽니까?”
직업이 검사라 그런지 평범한 질문인데도 심문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 게 느껴졌는지 지현석 검사가 서둘러 눈에 힘을 풀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직업병이라. 그냥 제가 순순히 궁금해서 그래요.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이 튀어나왔는지.”
그는 시선을 내리더니 그제야 설렁탕을 발견한 사람처럼 아차 했다.
멋쩍게 웃으며 내게 밥을 먹으라고 권한 뒤 자신도 숟가락으로 크게 퍼서 입에 넣었다.
“평범한 상품 도소매 회사였습니다. 총무과에 있었는데 거기가 이런저런 문제가 많았어요. 부장에게 보고했더니 잘렸죠. 그래서 확 경찰에 신고를 해 버렸습니다.”
“…… 예?”
“내부고발이죠. 그걸 계기로 세무서 시험을 쳤네요.”
괜히 옛날얘기를 하다 보니 머쓱해졌다.
그러나 지현석 검사는 아니었나 보다.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곧 잔뜩 화가 난 표정이 되었다.
“어떤 회사입니까? 횡령에 인사보복까지. 털면 꽤 나올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제가 이미 엎었습니다. 꽤 많이 때려 맞았죠.”
“아, 그랬습니까?”
한결 부드러워진 지현석 검사가 다시 숟가락을 들어 올리다가 주춤했다.
“응?”
“무슨 일 있습니까?”
“이 얘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요.”
“내부고발 얘기야 흔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고 윗분들 회의 때 그런 얘길 들어본 것 같은…… 어!”
지현석 검사의 눈이 더없이 크게 떠졌다.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다.
“혹시 주식회사 태일기업이라는 회사입니까?”
“그걸 어떻게 아세요?”
너무 정확하게 짚어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부당함을 짚었다가 잘려나가는 일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데, 얘기만 듣고 어떻게 딱 회사 이름까지 짚어낸다는 말인가.
서둘러 자세한 내용을 물었지만, 지현석 검사는 넋 나간 얼굴로 ‘아…….’ 하는 감탄사만 내뱉었다.
“검사님. 검사님?”
“예? 아, 죄송합니다……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군요.”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혼자만 알지 말고 나도 알려 달라.
나는 무언으로 재촉했다.
그는 아까보다 더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공무원 시험 보기 전에 이쪽 라인 사람 하나 만났죠?”
“……예.”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검사의 반응을 보면 뭔가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질문일 뿐이다.
“이선균 재산세과장, 지금 제 상사를 만났습니다.”
잠수교에서의 만남.
모든 걸 포기할 뻔했던 그 날의 만남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 사건으로 내부고발 한 사람을 눈독 들였거든요. 분명 세무서 쪽 라인에서 포섭하러 간다고 했었습니다.”
기억을 되짚고 있는 내게 검사가 고백하듯 말했다.
***
-사락.
삼성 세무서 재산세과의 과장 이선균은 항상 바빴다.
웬만한 과장급이 평소엔 놀다가 결재만 찍는 것과는 다르다.
상사고 부하직원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일벌레가 이선균이었다.
“과장님. 이 건은 어떻게 할까요?”
이선균이 자료를 검토하는 동안 책상 옆에 서서 기다리던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안절부절못하는 언동이 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이건 그냥 덮고 넘어가자.
“쯧.”
이선균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직원이 빳빳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담당자니까 말해 보세요.”
이건 화풀이나 다름없다.
직원의 겁먹은 태도가 이선균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유치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이선균은 직원을 마냥 몰아세웠다.
“상대가 유명인입니다. 금액도 크고 증여재산의 종류가 생물이라 감정이 까다롭습니다. 이건 저희가 아니라 조사과에서 맡아야 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요?”
이선균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러웠지만, 직원은 직감적으로 그가 화났다는 것을 느꼈다.
더욱이 서류를 넘기는 과장의 손이 거칠어졌다.
-탁.
마지막 장까지 넘긴 후 다시 서류를 원래대로 돌린 과장은 직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공무원이면서, 세금으로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떳떳하지 못하고 상대를 봐 가며 기는 것이.
이런 태도를 가진 직원이 전국에 수두룩하게 깔려 있는 것이.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후. 알겠습니다. 이건 다른 직원에게 넘기죠.”
“감사…… 예? 조사과가 아니라요?”
조사과로 넘기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같은 과의 다른 직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담당자를 바꾸겠다는 소리와 똑같으니까.
“그럼 본인이 직접 하겠습니까?”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 건을 맡는 건 싫은지 직원이 바로 꼬리를 말았다.
“그럼 그렇게 알고 계세요.”
“예, 과장님.”
잔뜩 주눅 든 직원이 자리로 돌아갔다.
이선균은 자신의 과를 슥 훑어보았다.
대부분 저 직원과 비슷하다.
안정적인 사건을 추구하고 불안한 것은 남에게 떠넘기거나 덮으려고 한다.
감사만 넘어가면 장땡, 실적만 올리면 승진이 가능하다.
그런 태도로 여기 삼성 세무서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다.
물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이렇게도 인재가 없나.’
이선균은 한숨을 쉬며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다른 과로 가고 없는 젊은 인재.
이전에도 직원들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와 비교하니 최근 들어 더더욱 고깝게 느껴졌다.
‘언제쯤 오려나.’
지금의 신재현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다.
상대방의 직위와 권력에 기죽지 않고 패기가 있는 건 좋지만, 그것은 정당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힘이야 자신과 라인이 뒷받침해 주면 되지만, 판단을 그르칠 경우엔 그에게 돌아올 역풍이 무척 세다.
그러니 경험을 쌓으라는 서장의 뜻은 일견 타당했다.
얼른 부르고 싶다.
과장은 그런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응?”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신재현을 발견했다.
그는 터벅거리는 걸음걸이로 과장에게 곧바로 다가왔다.
씁쓸한 기색이 얼굴에 묻어났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처음 보는 표정이라 덜컥 겁이 난 이선균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예상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잠수교에서 만났을 때 말입니다. 우연이 아니었지요?”
“아.”
이선균은 조심스럽게 신재현의 분위기를 살폈다.
다행히 분노나 배신감은 보이지 않았다.
이선균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뒷조사를 한 건 사실이다.
신재현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숨겼지만 지금 알게 된 시점에서 굳이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선균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부하직원인 만큼 그의 신뢰를 얻고 싶었다.
“잠깐 나갈까요?”
“네.”
이선균은 급한 모든 일을 미뤄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인재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없었다.
***
1년 전.
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날이었다.
서울지방국세청의 조사국장이던 민치호의 사무실에 세 명의 공무원이 모였다.
아직 서울청 조사국장이던 민치호.
삼성 세무서 개인납세과장 이선균.
그리고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 송대희.
“축하드립니다, 국장님.”
이선균은 진심을 담아 민치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방국세청에 있던 그가 본청인 세종시 국세청으로 가는 것도 모자라 조사1국장의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영전이라 할 만했다.
“고마워요. 이 과장도 축하합니다. 내년엔 재산세과장이군요.”
“국장님이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무슨 그런 소리를. 본인이 잘한 거지요.”
“감사합니다.”
같은 과장 직급이지만 개인납세과보다는 재산세를 더 높게 쳐주곤 했다.
이선균 과장 역시 승진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청장님이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신단 말입니다.”
“개인납세과가 세분화하는 것 말씀이십니까?”
민치호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소득세, 부가세, 법인세. 이렇게 세 개로 나뉘어 있다가 개인납세과, 법인세과로 바꿨잖아요. 장려금 담당 직원 늘린답시고 소득세랑 부가세 합쳤죠.”
“부가세도 세목인 이상 일선에서 벅찬 건 사실입니다.”
“나도 이번 세분화 자체는 찬성이에요. 근데 청장님이 또 뭘 계획하고 계시더라고.”
민치호는 목소리를 낮췄다.
남의 기관 일이라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차장검사도 귀를 기울였다.
“운영지원과를 체납징세과로 이름을 바꾼답니다.”
“이름을요?”
운영지원과는 그동안 잡다한 업무와 동시에 징세 업무도 해 왔다.
물론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환급금 처리와 고지서 발부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체납징세과 밑에 운영지원팀, 체납추적팀, 징세팀. 이렇게 세 팀이 있을 겁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다는 게 아니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의지에 이선균은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든 체납된 세금을 걷어보겠다는 거구만.”
가만히 듣고 있던 차장검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 역시 관리직이다 보니 청장의 의도부터 머리에 들어온 것이다.
“혹시 그분의 의지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청장의 생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