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53화 (53/500)

53화. 이상한 장학재단(3)

세무 공무원 생활만 6년 차.

법인세과 정혜원은 당황스러웠다.

수도권을 돌다 삼성 세무서로 올라온 승진의 이력이다.

6년이라면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볼 건 다 봤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 건 처음인데.’

상무라는 놈이 돈 봉투를 갖다 줄 때만 해도 이런 놈이 아직도 안 없어졌구나, 했다.

얼마나 공무원을 무시했으면 해결방법이랍시고 떡하니 돈을 갖다 주는가.

금액이 좀 커 보이긴 했지만, 자신도 나름 자긍심 있는 공무원이다.

게다가 어떻게 탈날지 모르는 돈 몇 푼에 인생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저 사람들도 설마 이걸 받지는 않겠지.’

멀쩡한 사고방식이라면 이 상황에서 넙죽 봉투를 가져가는 것이 올가미라는 건 안다.

그런데 신입 직원이 봉투에 척하니 손을 가져가 내용까지 확인해보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정신 못 차리는 놈이네.’

말릴까, 말까.

잠시 고민하던 때 그 돈이 바닥에 고스란히 뿌려지는 걸 보고 정혜원은 멍해졌다.

‘이런 또라이도 가끔 있지.’

뇌물을 준다는 것 자체가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그만큼 공무원 중에서 다혈질인 사람은 간혹 깽판을 놓다가 징계를 먹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회장실을 쳐들어가는 놈은 못 봤다.

“저, 저기. 잠깐만요. 신재현 씨!”

정신없이 남자의 뒤를 따라가던 정혜원이 허겁지겁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난 건 이해하는데 잠깐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해 봐요. 무작정 쳐들어간다고 회장이라는 놈이 눈 하나 깜짝하겠어요?”

신재현은 가만히 정혜원을 쳐다보기만 했다.

자신의 설득이 먹힌다고 생각한 정혜원의 말이 더욱 빨라졌다.

“이런 일 익숙하지 않겠지만 사실 흔한 일이에요. 똥 밟았다 생각하고 돌아가서 자세히 자료 갖춘 다음에 다시 오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신재현 씨!”

이대로 보내면 앞날은 훤했다.

악성 민원인인 저 건설사는 주구장창 민원과 불복 청구를 걸어올 것이다.

자신은 그것 하나 못 말렸냐며 과장에게 깨질 것이다.

여기서 막아야 한다!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지려는 순간 신재현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잔뜩 독이 올라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눈은 차분했다.

결코 이성을 잃어 쳐들어가는 눈빛이 아니었다.

“첫째로 저는 화가 난 게 아닙니다. 회장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가는 거죠.”

신재현의 목소리가 빈 복도에 나직하게 울렸다.

“둘째, 무작정 가는 게 아닙니다. 저는 장학회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일어났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낮지만 논리 정연한 목소리에 정혜원이 빨려 들어가듯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

“이런 일 익숙합니다.”

“예?”

무슨 말인가 생각하던 정혜원은 자신이 마구 쏟아내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경악했다.

‘1년 차라고 하지 않았나?’

***

회장실이 어디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에 붙어 있었으니까.

나는 8층 복도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두 명의 남녀를 보았다.

법인세과 여직원과 이 회사의 상무다.

그는 필사적으로 들러붙었지만 결국 막지 못하고 따라오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니, 진짜 안 계신다고요.”

상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흘끔흘끔 눈동자가 회장실 쪽을 향하는 걸 보니 일부러 목소리를 키운 것이 분명했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무실이다.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전화기를 들고 다급히 말했다.

“여기 8층 회장실에 난동 부리는 사람 제압하세요.”

전화를 끊은 비서가 서둘러 뛰어나와 내 앞을 막았다.

“삼성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회장님은 안에 계시죠?”

“회장님은 안 계십니다. 출장 가셨거든요.”

“그럼 경비실에 전화는 왜 한 겁니까?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아까도 그랬지만 이 회사의 공무원 취급은 험했다.

난동이고 뭐고 비서실에 들어온 것밖에 없는데 벌써 경비실에 전화라니.

“간혹 굳이 회장님을 뵙겠다고 빈 회장실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어서요. 자, 내려가시죠.”

비서가 한쪽 손을 들어 출입문을 가리켰다.

꺼지라는 뜻이다.

“거기 조사관님. 문 좀 잠가 주세요.”

“예? 예…….”

내게 지목을 받은 여직원이 얼결에 비서실의 문을 잠갔다.

곧이어 쿵쿵! 하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비서가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나는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황민우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믿으시죠?”

“네.”

대답은 짧았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회장실 문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막아 주세요.”

“네.”

“안 됩니다! 회장님은 안 계신다고요! 주인도 없는 방에 무단침입하시는 겁니다!”

비서가 매달렸지만, 여자의 힘으로 당해낼 수는 없었다.

“상무님, 뭐 하세요! 경비 들어오게 문 여세요!”

“아!”

얼빠진 상무가 비서실 문을 열자 경비원 둘이 뛰어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황민우가 뛰어나갔다.

-우당탕!

“으악!”

“공무원이 사람 잡는다!”

내던져진 경비원들의 비명과 상무의 호들갑 떠는 소리.

그리고 함께 온 법인세과 여직원이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꺄악! 신재현 씨, 이래도 되는 건가요!”

“예. 저는 됩니다.”

비서를 옆으로 끌어내고 힘을 주어 회장실 문을 열었다.

-끼익.

역시나, 20평쯤 되는 넓은 회장실 안에는 반백의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회장님. 경첩에 기름칠 좀 하셔야겠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회장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창문에서 들어온 햇빛에 그늘이 져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은 형형했다.

회장의 시선이 나를 지나쳐 비서와 상무에게 향했다.

“허억!”

“회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끌어내겠습니다!”

“그만.”

회장의 걸걸한 목소리는 작았지만, 이 안에서 못 들은 사람은 없었다.

한순간 경비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집도 못 지키는 개는 필요 없지. 나가 있어.”

“회, 회장님!”

“두 번 말해야 하나?”

울상을 지은 상무와 비서가 조용히 물러났다.

여직원 역시 반쯤 울먹이는 표정으로 회장실로 들어왔다.

황민우는 경비와 드잡이질 하느라 엉망이 된 옷을 정리하더니 내 한걸음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본 회장이 나직하게 감탄사를 지었다.

“몇 급이신지?”

“7급입니다.”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7급인데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라…… 그래 뭘 알고 싶으신지.”

나는 테이블 위에 서류 몇 장을 내려놓았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에는 통유리가 깔려 있었다.

“먼저 전화 좀 한 통 하겠습니다.”

나는 소파에 편안히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할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석 검사님.”

-네. 어떤 걸 도와드릴까요.

이젠 아예 내 목소리만 듣고도 부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자꾸 부려먹기만 해서 미안하네.

언젠가 한 번 찾아가 보긴 해야겠다.

“제가 불러드리는 주민등록번호로 신원조회 가능하실까요?”

-검사를 뭘로 보고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자, 불러 보세요.

나는 명단에 있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불렀다.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으며 누구의 자식인지도, 검사는 바로 알려주었다.

“자꾸 부탁만 드려서 죄송합니다, 검사님.”

-응? 그쪽 라인 윗분이 얘기 안 하시던가요?

“네? 어떤 말씀 말인가요.”

-신재현 씨가 물어다 준 걸로 또 대박 터뜨렸거든요. 으하핫!

검사의 웃음소리를 보아하니 빈말은 아닌 듯싶다.

그래도 대박이라니, 이런 상황인데도 궁금해졌다.

“저번에 변호사 건 말입니까?”

-어, 진짜 못 들으셨나 보구나. 크흠, 그럼 전화 말고 언제 놀러 오세요. 진짜로.

“네. 이번 건 해결되는 대로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약속한 겁니다! 자랑할 얘기가 많거든요. 이번엔 꼭 밥 먹으러 오는 겁니다!

지현석 검사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실 아까 했어도 되는 전화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일부러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흐음, 검사와 아는 사이다. 이런 시위인가?”

정답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회장을 도발적으로 바라보았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밖에서는 모를 것 아닙니까? 아니, 모르는 척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말 굉장히 진부하지만 말씀드리지요.”

나는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고급이라 그런지 굉장히 푹신했다.

“저를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건드릴 수 없다라. 내가 누구랑 연이 있을 줄 알고?”

회장의 태도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그 역시 뒤에 믿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방금 전화 한 통으로 그 연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아까 제가 통화하면서 부른 이름들 기억하시죠?”

“…….”

“그 부모가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더군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중 내 눈에 뜨인 이름들.

그 이름들의 부모는 하나같이 정부 부처의 고위 공무원이었다.

대부분은 건설교통부의 공무원이었는데 간혹 다른 부처도 끼어 있긴 했다.

“장학재단에서 대상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식에게 돈을 준다…… 자식을 공략해 환심을 사려는 겁니까? 아니면 우린 이 정도로 안전한 돈세탁 루트를 갖고 있다고 홍보하는 겁니까?”

내 물음에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천천히 소파로 다가왔다.

역광에서 벗어나자 이제야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차갑고 날카롭다.

그는 1인용이 아닌 내 건너편 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늘어진 장학생의 명단을 들어 훑어보았다.

“둘 다지. 자식 띄워주면 싫어하는 부모는 없거든. 공부 잘해서 장학금 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리가. 그러다 우리 재단에 대해 알게 됐을 때는 이미 늦었지. 돈을 받은 것은 곧 그들의 약점이기도 하니까.”

의외로 회장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럼 나도 조사관님 흉내를 내 볼까. 분명 고위 공무원들 직급을 들었을 텐데도 이런 태도로 내 앞에 있다는 건 둘 중 하나겠지?”

나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회장과 나는 보이지 않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그는 내 목을 물어뜯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회장과 나는 그것을 알기에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나랑 연줄이 있는 고위 공무원들은 무섭지 않을 정도로 높은 놈을 알고 있다는 건가?”

나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흠, 역시 그렇군…… 그럼 지금 나랑 얘기를 나누는 이유는,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겠지?”

“그렇습니다.”

“돈인가?”

이 회사는 사람을 회유하는데 가장 먼저 돈부터 나오는구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겠지만, 반대로 돈을 내밀면 회유당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 된다.

공무원을 포함해서 말이다.

여직원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좋겠군요.”

“어떤 사람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느냐는 질문이면 대답은 못 들을 거야.”

“걱정 마세요. 그런 게 아니니까.”

자신의 뒷배를 알려주는 건 상대에 대한 위협도 되지만 반대로 자신의 목숨줄을 흔드는 것도 된다.

이 자리에서 듣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구조를 짠 게 누굽니까? 회사 사람인가요?”

법인세과 사무실에서 밤새도록 재단을 훑어보면서 느낀 게 있었다.

이건 세무 공무원이 알아낼 수 없는 내용이다.

나야 이 눈이 있으니 금방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일반 공무원은 사무실에 앉아 백날 훑어봤자 절대 이상함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공무원들이 바보라서는 아니다.

제출되는 서류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일일이 모든 회사를 발로 뛰어 파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즉, 법망의 구멍을 교묘하게 노렸다는 뜻이다.

“이 장학재단이 세워진 지 15년입니다. 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짰을 텐데요. 대체 누굽니까?”

어떤 질문이 나오나 귀를 기울이던 회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궁금하다는 게 그거였나? 공무원이라고 다들 멍청한 건 아니었군. 아니면 머리 좋은 놈들 사이에는 끌리는 무언가가 있나?”

혼잣말을 하던 회장이 재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업계에서 경영 컨설턴트, 설계자라고 불리는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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