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이상한 장학재단(1)
“말도 안 되는 소리!”
과장이 뾰족하게 소리를 지르며 여직원의 말을 일축했다.
“불러주신 거 다 열어봤어요. 진짜예요.”
여직원의 억울한 표정에 과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비켜 봐요. 내가 볼 테니까.”
여직원을 일으켜 세운 후 과장이 거친 동작으로 자리에 앉았다.
능숙하게 프로그램을 조작해 문서를 확인했다.
확실히 여직원보다는 보는 눈이 빨랐다.
“이럴 리가 없는데.”
과장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붉게 바른 립스틱이 엉망으로 지워졌다.
“아니면 빠뜨렸을 수도 있지…….”
누군가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어서 하는 혼잣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적법하다’라는 뜻으로 체크해 둔 서류를 열람했다.
순서는 무작위.
손에 닿는 대로 열고 결산서와 신고서를 주르륵 훑었다.
그렇게 십 분 정도 흘렀을까.
과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한 작업 모두를 훑어볼 기세였다.
“어!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근데 왜 이 자리에서…….”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한 법인세과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쉿!”
과장에게 자리를 빼앗긴 여직원이 급히 검지를 세웠다.
혹여나 과장에게 목소리가 들릴까 봐서였다.
그러나 과장은 화면을 보는 데 열중하느라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싶었다.
“왜? 무슨 일인데.”
막 출근한 직원이 귓속말로 물었다.
여직원은 흘끔 내 눈치를 보다가 대답했다.
“어제 진짜로 리스트 만들어놓고 퇴근했대.”
“뭐어? 누가?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짜더라.”
여직원이 정색했다.
농담으로 치부하며 웃어젖히던 직원이 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진짜라고? 너 몇 년 차인데 그런 얘기를 믿어? 아오 씨, 장난이면 너 죽는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직원이 대여섯이다.
나는 아직도 믿지 못하고 화면을 들여다보는 과장 뒤에서 여직원과 함께 나란히 서서 사무실 풍경을 구경했다.
-다각다각.
조용하다.
아침 인사도, 업무 지시도 없이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했다.
“근데 진짜 어떻게 했어요? 재산세과 사람들 불러서 도와달라고 한 거 아니죠?”
“제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거기 사람들도 바빠서 야근하는데. 부탁한다고 와서 도와주겠어요?”
“그건 그렇네.”
여직원이 끄덕였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과장의 손이 멈춘 것이 보였다.
시간도 꽤 흘렀고 볼 만큼 봤으니 믿을 순 없지만, 마음으로는 인정했을 것이다.
내가 진짜로 검토를 끝냈다는 걸.
그러나 일반 직원이라면 몰라도 과장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이다.
쉽사리 인정하긴 어렵겠지.
어쩌다 보니 근무 첫날부터 과장을 망신 주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이건 좀 난감한데.
나는 일하러 온 거지 멀쩡한 남의 사무실 콧대를 눌러주러 온 것이 아니다.
굳이 과장을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나는 곤란한 듯 우물쭈물하는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슬쩍 도와주기로 했다.
“직원분들이 미리 정리를 잘 해 놓고 가셨더군요. 덕분에 금방 볼 수 있었습니다.”
정리는 개뿔, 정리할 시간이 있었으면 하나라도 더 검토를 했겠지.
이것이 되도 않는 포장이라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마 저 아니었어도 며칠 내로 끝내셨을 겁니다.”
입바른 소리를 더하자 직원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과장을 주시했다.
지금이 아니면 일어날 기회가 없다.
과장은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수고했습니다. 신재현 씨도 수고 많았어요.”
짧은 공치사였지만 거기에 담긴 과장의 인내심이 얼마나 깊은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머릿속에선 무엇이 휘몰아쳤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 과장의 표정은 평온했다.
직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보자 그녀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올해는 검토가 빨리 끝났으니 조사할 시간이 나겠군요. 신재현 씨의 리스트를 기준으로 조사 계획을 세웁시다. 법인 종류별로 나눠서…….”
리스트를 훑어보던 과장이 휙 뒤를 돌았다.
“신재현 씨가 먼저 고르세요. 그 정도 권한은 받아야죠.”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제 말씀드린 장학재단을 파 보고 싶습니다.”
“어디였더라, 재단법인 선우장학회 맞나요?”
“네. 그 외에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사실 비영리 법인도 종류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 손대보고 싶긴 했다.
정말 동물을 돌보고 있는 건가 싶은 동물 단체.
받은 헌금을 어디에 썼는지 궁금해지는 종교 단체.
그러나 어제 가장 눈길을 끈 곳은 장학재단이다.
탈세액이 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숫자는 굉장히 무겁고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연필로 썼다 지운 후 그 위에 새로운 숫자를 쓴 느낌이다.
경험상, 이런 경우 분명 다른 무언가가 얽혀 있게 마련이다.
“어차피 신재현 씨가 아니었다면 전 직원이 아직도 검토에 매달려 있었겠죠. 신재현 씨가 만들어낸 시간입니다. 파고 싶은 대로 파세요.”
“감사합니다.”
허락은 떨어졌다.
본격적으로 업무를 나누기 시작하는 과장과 직원들을 보며 나는 선우장학회의 결산서를 출력했다.
***
“가자마자 한 건 하셨군요.”
세무서 구석에 마련된 흡연실.
나와 황민우가 나란히 서서 담배를 꺼내고 있었다.
서로 일하는 사무실이 달라지다 보니 이제는 이렇게 간간이 흡연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황민우는 내 얘기를 듣더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무슨 가는 곳마다 사고 치는 것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긴 하죠. 그만큼 깨끗한 곳이 없다는 뜻이겠지만.”
“법인세과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뒤엎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됐네요.”
법인세과 내에 탈세액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야근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일에 치여 사는 공무원이다.
이렇듯 망신 줄 생각은 없었다.
“송곳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게 자책하실 일인가요.”
황민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내가 하는 짓을 바로 옆에서 봐온 사람이다.
이젠 이 정도 일에는 눈도 깜짝 안 했다.
“그래서…… 기부금이 의심스러우신 겁니까?”
재단법인 선우장학회.
선우건설 회장이 만든 장학재단답게 갖고 있는 재산이 많았다.
강남에 위치한 건물에서 들어오는 임대료, 펀드에서 나오는 배당금.
간혹 기부금도 수천만 원씩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기부금도 물론 미심쩍어서 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걸리는 게 있어요.”
“재단이 흔히 돈세탁 루트로 이용된다는 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공익법인 관련 법은 까다롭지 않습니까?”
황민우의 말대로다.
부속서류 첨부도 그렇고 그동안은 일반 회사보다도 널널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높으신 분들이 이용해 먹으려고 일부러 규제를 안 했을 수도 있고, 국가 대신 복지를 담당하고 있으니 편의를 봐준 걸 수도 있다.
나야 뭐, 높으신 분들의 사정을 추측만 할 뿐이다.
“감사 규정도 있고 세무확인서도 도입됐죠. 그래도 겉으로 포장만 잘하면 알아보기 힘드니까요. 영리법인보다는 느슨한 게 사실이잖습니까.”
황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부터 파 보시려고요?”
“역시 직접 가서 원장을 전부 훑어야죠.”
“……직접 가신다구요?”
황민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번에 나 혼자 조사한답시고 나갔다가 병원 신세까지 진 적이 있다.
그 후로 내가 조사만 나간다고 하면 황민우는 기겁하며 반응했다.
“저와 같이 가시죠.”
가볍게 조사만 하는데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전에도 별것 아닐 줄 알고 혼자 갔다가 그 난리가 났으니까.
황민우가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데 도저히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근데 재산세과 일이 바쁜 것 아니었습니까?”
“어차피 저는 승진하러 온 게 아닙니다. 주사보님 곁에서 도와드리러 온 거죠. 이선균 과장님도 그걸 알고 계시니 허락하실 겁니다.”
황민우는 꽁초를 비벼 끄고는 서둘러 흡연실을 나가려 했다.
“아, 형! 잠시만요.”
나는 급히 황민우를 불러 세웠다.
그를 믿고 부탁할 것이 하나 있었다.
“재산세과에서 정보 수집 좀 해 줄 수 있어요? 제가 하려고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법인세과로 오게 돼서요.”
“물론 가능합니다. 어떤 걸 알고 싶으신 겁니까?”
용산 세무서에서 황민우는 여러 과를 뛰어다니며 주워들은 여러 정보를 전해 주곤 했다.
그때는 물론 나보다 먼저 용산 서에 온 황민우가 다른 과 직원들과 안면을 텄기 때문이었겠지.
삼성 세무서에는 친한 사람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대감이 있었다.
“재산세과에서 제 옆자리에 앉았던 윤지성 주사보님 있잖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밀고를 했던 건지 궁금해서요.”
“아, 처음 출근했던 날 했던 말 때문입니까?”
‘자꾸 그러시면 징계위원회에 밀고할 겁니다.’
‘이 밀고자 새끼.’
윤지성과 장세훈이 나눴던 말이다.
최소한 삼성 세무서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그걸 윤지성이 윗선에 보고한 것은 분명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알아보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황민우가 뒤돌아서 흡연실을 나갔다.
생각을 정리할 겸, 손에 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느새 다 타들어 가 꽁초가 되어 있었다.
얘기에 집중하느라 한 대를 그냥 날렸다.
-탁!
담뱃갑에서 새로 한 개비를 꺼내는 순간 흡연실 문을 열고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법인세과 과장이다.
“아.”
눈이 마주치자 서로 어색함이 감돌았다.
흡연실에서 상사와 만나도 어색한데, 하필이면 내가 망신을 준 상사다.
과장과 맞담배를 할 수는 없지.
꺼냈던 담배를 도로 집어넣으려는데 과장이 들어와 문을 닫더니 내게 손짓했다.
“그냥 펴요. 뭘 새삼스럽게.”
아까도 그랬지만 과장은 회복이 빨랐다.
아니,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자리는 피하는 것이 맞다.
조심히 사양하고 흡연실을 나가려고 했다.
-부스럭.
과장이 담배를 문 채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하, 내가 오늘 정신이 없네.”
혼잣말로 한탄하는 과장의 옆모습이 조금 서글퍼 보였다.
나는 결국 라이터를 들고 과장에게 다가갔다.
-치익.
과장이 문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후우…….”
깊게 한숨을 쉬는 것처럼 연기를 토해낸 과장이 입을 열었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봐. 옛날 같으면 이런 짓 안 했을 텐데.”
“…….”
“젊었을 땐 능력만 있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 했는데. 이 자리 앉고 보니 보는 관점이 달라지더라고요.”
과장은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단조롭게 이야기했다.
“개개인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주위와의 화합이 중요하죠. 한창 자만심에 넘쳐 있는 신입 직원은 독입니다. 내가 써먹을 수 있는 직원을 만들려면 현실을 보여 줘서 굴복시키는 게 가장 편하고요.”
나는 과장을 원망하지 않았다.
제 분수도 모르고 잘난 척 날뛰는 신입이 있었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능력이 될 줄은 몰랐죠. 나의 실수입니다. 미안해요.”
과장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덤덤한 눈빛이었지만 손에 쥔 담배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과장님께서 솔직히 말씀해 주시니 저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법에 따라 정당히 과세하고 탈세범을 잡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주제넘게 들리지 않도록 말을 골랐다.
짧은 시간 사이에 머릿속에선 온갖 단어가 휘몰아쳤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직설적인 것이었다.
“감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남은 것은 과장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과장의 표정에 황당함이 서렸다.
그러나 내 태도가 당당하기 때문인지 곧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자만심이 아니라 자신감인 건 알겠습니다. 말이 웃기긴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했어요.”
과장은 재를 툭툭 털더니 힘주어 말했다.
“선우장학회든 선우건설이든 파고 싶은 걸 파세요.”
“감사합니다.”
내 인사를 들은 과장이 한결 누그러진 분위기로 빙긋 웃었다.
“1년 차에게 절대 있을 수 없는 허락이지만, 어디 한번 믿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