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진짜인데요
비영리법인이라.
법인이 추구하는 것에 따라 영리, 비영리를 나누는데 비영리는 보통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가 많았다.
자선사업, 즉 사회복지는 본래 국가의 몫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생기기 때문에 비영리 단체가 그 일을 대신한다.
국가는 비영리 단체를 지원한다.
그것이 원래의 의도였을 것이다.
“기부금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겁니까?”
“요즘은 기부금에서는 깔끔한 편입니다. 기본 재산이라고 해서, 비영리 단체에 들어오는 돈은 강제로 묶이게 되거든요.”
재산세과가 있는 5층.
그 건너편에 법인세과가 있었다.
과장은 나를 데리고 가더니 법인세 2과로 향했다.
그중 2팀이 현재 비영리 법인의 검토를 맡은 과라고 했다.
“여러분이 사람 모자란다고 노래를 불러서 재산세과에서 한 명 빼앗아 왔습니다. 이번 달 안에 끝낼 수 있죠?”
“예에? 과장님, 무슨 그런 말씀을…….”
퀭한 눈으로 컴퓨터를 들여다보던 여직원 하나가 기겁하며 대답했다.
“재산세과에서 오셨다고요? 힘든 데서 힘든 곳으로 오셨네…… 공무원이 다 그렇죠, 뭐. 일단 여기 빈자리 앉으세요.”
자연스럽게 여직원이 내 사수를 맡았다.
인사이동이 잦은 세무 공무원 특성상 인수인계는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했다.
세무서 전용 프로그램을 켜자 법인 목록이 주르륵 떴다.
이름을 눌러 보니 각각 메모가 붙어 있었다.
“비영리법인은 2월 말이 많군요.”
소득세의 경우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벌어들인 수입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그러나 법인은 그 기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의 영업 기준은 7월입니다. 7월에 시작해서 6월에 끝내는 거로 하겠습니다.]
극단적으로 이것도 가능했다.
“아, 학교 법인은 무조건 3월부터 다음 연도 2월까지가 1개년이에요.”
“혹시 3월에 개학하기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학교는 3월이 기준이잖아요. 2월에 졸업하면서 하나의 학년이 끝나죠. 업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학교 하나를 열어보았다.
토지 80억, 건물 50억.
수입은 턱없이 부족하다.
처음엔 기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최소한 건물과 땅은 있어야지.
돈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니 수입은 학생의 등록금이 대부분이었다.
“초중고등학교는 대부분 깨끗해요. 문제가 있다면 대학교랑 기타 등등 재단이죠.”
여직원이 흘끔 내 화면을 보더니 덧붙였다.
“공익 법인은 세무 확인서라고 해서 총자산 5억이 넘으면 세무사 두 명이 사인한 검토 보고서를 제출해요. 즉, 세무 확인서 붙으면 좀 규모 있는 곳이란 뜻이죠. 거기 위주로 검토하시고…….”
인수인계해 줄 시간은 없으니 속성으로 때려 박으려는 듯했다.
여직원이 빠른 말투로 다다다 설명하려는 것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막았다.
나는 굳이 일일이 검토할 필요가 없다.
그저 켜고, 보고, 고르고 끝.
“이미 골랐습니다. 여기를 파 보면 되겠네요.”
“……예? 지금 무슨 말이에요?”
여직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하는 눈초리다.
“재단법인 선우 장학회. 어디 보자, 출자한 사람은 선우건설하고 거기 대표네요.”
“선우건설이요?”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윽, 거기 진상이에요.”
“개인도 아니고 법인에 무슨 진상이 있어요?”
세법에 대해 잘 모르는 개인이라면 실제로 세무서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멱살을 잡는 일이 종종 있다.
세금이 왜 이렇게 많냐,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 이런 사람들은 설득이 굉장히 어렵다.
반면에 법인은 세무조사의 두려움을 아주 잘 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회사는 없다는 것도.
일부러 난동 부려서 긁어 부스럼 만드는 회사는 없는데.
“쳐들어온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요, 조금만 과세 이상하면 바로 불복 청구하고 소송 건단 말이에요. 귀찮아 죽겠어요.”
“아.”
나는 바로 납득했다.
안 그래도 일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민원이다.
세무서에서는 내가 담당한 건이 세금 계산 잘못했다고 불복 청구 들어오는 것도 민원 만만치 않게 무섭다.
담당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면 상관없지만, 티끌만 한 실수라도 있어서 조세심판원이 납세자의 손을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건이 많아질 경우 담당 공무원의 인사 고과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도 보통 기각되지 않나요?”
“거기 실력 좋은 세무사가 있는지 인용되는 케이스가 종종 있어요.”
세법의 해석에 따라 물고 뜯고 싸우는 것이다 보니 마찬가지로 세법을 잘 아는 세무사라면 이길 확률이 있긴 하다.
“그래도 건드릴 만하면 건드려야죠.”
“선우건설 본사까지 파시게요?”
“상황 봐서요. 회사가 장학재단을 만든 거잖아요. 그럼 본사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죠.”
“아…… 추천하지 않는데.”
여직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나 굳이 말리지는 않는다.
“잠깐, 거기 뭘 조사하겠다고요?”
대화를 들었는지 과장이 뾰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우 장학재단입니다, 과장님.”
“일손이 모자라서 데려온 거지 일을 만들라고 한 게 아닌데요.”
과장의 목소리에 당혹이 섞였다.
왜 이렇게 반응하는가 싶어서 슬쩍 과장을 올려다보았다.
딱히 탈세액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선 선우건설과 이해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이 제대로 안 끝날까 봐 걱정되는 것뿐인가.
커넥션이라도 있는 거면 싸잡아서 치려고 했는데.
나는 독기를 풀고 대답했다.
“검토 말씀이시죠? 그거라면 금방 할 수 있습니다.”
과장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말로 하지는 않지만 어떤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신입 직원이라 일을 얕보는구나,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여러분 오늘 칼퇴하세요. 신재현 씨가 다 하신답니다.”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그런 뜻인가.
과장의 명령은 단호했다.
직원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곧 내게 측은한 눈빛을 던졌다.
“진짜로 퇴근해요, 과장님?”
“네. 진짜입니다. 모두들 업무 하던 것만 마무리하고 정시퇴근하세요.”
나이 어려 보이는 한 직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과장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난 후 여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왜 잘난 척해요. 어차피 도와주러 온 거니까 한사람 몫만 해도 감사 인사받을 텐데.”
나는 피식 웃었다.
“내일 와서 한 번 보세요.”
***
다음 날.
삼성, 서초, 역삼 통합 세무서 로비.
법인세과 직원은 찝찝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엘리베이터 앞에는 줄이 가득했다.
“일찍 나왔네요.”
“아, 과장님!”
법인세과 과장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울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과장이라는 호칭에 주변에서 줄을 서고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아무리 세 개의 세무서가 모인 곳이라 발에 채이는 것이 과장이라지만, 그래도 일반 직원들에겐 하늘과 같은 존재다.
“평소엔 9시 거의 다 되어야 나오지 않았나요?”
직원들 출근 시간까지 기억하고 있나.
직원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요. 어제 그렇게 놔두고 가도 되는 거였을까요?”
“다른 과에서 과장이 애지중지 기르는 사람입니다. 한 번쯤 기를 꺾어둘 필요도 있죠. 지금은 내가 일을 시키고 있잖아요.”
직원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같은 여자지만 법인세과 과장은 독했다.
이렇게 일해야 동기들을 제치고 과장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일까.
“저야 일찍 집에 들어가니 좋긴 했지만요, 어차피 그거 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 시간만 낭비한 게 아닐까요? 검토고 뭐고 아직도 많이 남았겠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공무원 사회는 집단생활이에요. 잘 끼워 맞춰진 톱니바퀴가 중요한 단체죠. 어긋난 한 사람을 방치해서 생기는 손해가 더 큽니다. 지금 바로 잡는 것이 더 나아요.”
과장은 전형적인 공무원이었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아 과장의 반감을 사느니 입을 다무는 것이 낫다.
직원은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좀 일찍 와서 도와주려고 했는데 글렀네.’
비영리법인은 특수하다.
그걸 법인세과 경험도 없는 직원이 하룻밤 사이에 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해봐야 뻔했다.
아마 밤을 새운 초췌한 모습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겠지.
아니면 못 버티고 곯아떨어졌을 수도 있다.
괜히 말실수해서 첫날부터 고생하는 신입 직원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응?”
없다.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직원이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 화장실에 갔나?
퇴근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여직원이 과장을 돌아보았다.
과장 역시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그러나 신입 직원 자리의 컴퓨터는 꺼져 있었다.
슬쩍 만져 보니 조금의 온기도 없다.
“퇴근…… 했나 본데요?”
여직원은 과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요즘 젊은 직원들이 이기적이라지만 이건 상상도 못한 사태였다.
과장의 얼굴이 차게 굳어가는 것을 본 여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감히…… 퇴근을 해?”
여직원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오늘 이 사무실에 불어 닥칠 피바람이 어떨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이선균, 이 개자식이 나를 뭘로 보고 이런 놈을 보내?”
불똥이 재산세과까지 튀게 생겼다.
뭐라 말리든 듣지 않을 것이다.
여직원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아, 일찍 나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느긋한 인사에 여직원은 기겁했다.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이 인간 진짜 또라이 아냐?’
실제로 눈앞의 신입 직원의 예전 별명이 또라이였지만, 그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든 생각이다.
“신재현 씨, 지금 뭐 하는 짓거립니까?”
“뭐라뇨?”
왜 그런 반응을 보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 더욱 신선했다.
차림을 보아하니 여기서 잔 것 같진 않았다.
최소한 집에 다녀온 모양새다.
“아, 생각보다 양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새벽에 들어가서 씻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밤을 새우긴 했구나.
여직원은 슬쩍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망했네. 과장 개빡쳤네.’
당분간 집에 가긴 글렀다.
어떤 불똥이 튈까 마음을 졸이며 여직원은 깔끔하게 퇴근을 포기했다.
“분명히 본인 입으로 얘기했죠? 검토 쉽다고.”
“아, 그것 때문이군요. 일찍 와서 나머지 끝내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다 못 끝냈습니다.”
못 끝낸 건 당연하지.
그런데 덧붙인 말은 귀를 의심케 했다.
“30건 정도 빼고 나머지는 다 했습니다.”
“뭐?”
“저 또라이가 미쳤나?”
여직원이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소리치고 입을 틀어막았다.
***
나는 보란 듯이 컴퓨터를 켰다.
과장은 아직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내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건은 체크 해 놨고, 더 조사가 필요한 건은 따로 리스트업 해 뒀습니다.”
예전에 용산 세무서에서 1년간 있었던 모든 신고서를 훑어본 적도 있다.
겨우 비영리법인 천 건 정도라면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보통의 법인과 다르다 보니 처음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조사해야 할 법인들 목록을 쭉 뽑아 내밀었다.
과장이 휙 낚아채듯 종이를 채 갔다.
“진짜 검토한 게 맞나요?”
여직원도 의심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흘끔 법인 목록을 보더니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키보드를 톡톡 두드려 직접 서류를 열어보았다.
“사회복지법인 다함. 음, 기부처 선정이…… 어 진짜네. 문제 있는데, 이거.”
“하나만 봐서는 모르는 겁니다. 재단법인 상율, 학교법인 회영, 동물복지법인 칸, 종교법인 세상. 다 열어보세요.”
과장이 리스트에 실려 있는 법인 이름을 눈에 뜨이는 대로 호명했다.
자연히 여직원의 손이 바빠졌다.
열어보고 닫고, 열어보고 닫고.
간혹 금방 알아보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첨언했다.
이윽고 여직원이 창에서 눈을 떼고 멍하니 과장을 쳐다보았다.
“그 리스트 진짜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