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눈 먼 재산(4)
저런 놈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본능적으로 혐오감이 든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법을 다뤄야 할 변호사라는 놈이 앞장서서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 그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
저 얼굴을 볼 때마다 숫자가 뇌리에 파고드는 것이.
남의 불행을 짓밟고 서서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
미치도록 역겹다.
“지금 뭐라고……?”
“못 들었나? 개처럼 으르렁거리지만 말고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따가운 시선이 꽂히듯 느껴졌다.
등 뒤, 서장이 앉아 있던 책상에서 책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 참…….”
고문 변호사가 맥 빠진 얼굴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호랑이 새끼인 줄 알았더니 분수도 파악 못 하는 여우 새끼였군. 서장님, 직원 관리 잘못하신 책임은 서장님도 지셔야 할 겁니다.”
서장이 뭐라 대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의 책임부터 지게 해 드리죠.”
“이 사람이 아직도…….”
-탁
나는 손바닥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아, 신재현 씨. 오랜만입니다. 이번에야말로 같이 밥 먹자는 전화인가요?
예전에 도박장 주인을 잡으려고 했을 때 나눴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도 용건은 그것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 가능하실까요?”
-신재현 씨 부탁이면 언제든 가능하죠. 뭡니까?
“최만희라는 변호사가 있습니다. 탈세뿐 아니라 차명과 자금 세탁에도 관여했지요. 탈세는 제가 조사하려고 합니다만 그 외의 불법적인 일은 검사님께서 털어 주실 수 있을까요?”
-주민등록번호 보내 주세요. 바로 가능합니다.
전화를 끊자 침묵이 흘렀다.
여기서 검사가 등장할 거란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아니, 변호사는 방금 그 통화가 진짜인지 아니면 겁주기인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다.
고뇌가 눈에 선히 보였다.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장 내일부터 수사가 시작될 테니까.”
“지금 대체 무슨…….”
“보셨죠? 칼은 이렇게 휘두르는 겁니다.”
변호사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블러핑이라기엔 내가 너무 당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계신 상속인분들. 소명하시겠습니까?”
말이 소명이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소명할 수도 없겠지만.
과세가 부당하다며 끝까지 질질 끌면 변호사 다음은 그들 차례라는 걸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럼 과세 예고 통지서는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상속인분과 변호사님의 협조로 정당히 과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심병철에게 고개를 숙이자 그가 몸을 덜덜 떨며 마주 숙였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고문 변호사만이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서장님. 이름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속인과 변호사들을 보낸 후 나는 서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옆에는 잔뜩 긴장한 장세훈이 함께였다.
황민우야 내가 그간 해 온 행동을 봤으니 무덤덤한 반응이다.
서장은 여전히 책상에서 하릴없이 책을 읽는 척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책이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다.
“재미있는 구경을 했습니다.”
서장이 책을 탁 덮었다.
“서장님 덕분에 깔끔하게 한 방에 해결했습니다.”
“이름을 값지게 썼으면 된 겁니다. 어떤 인간은 빌려줘도 써먹지 못하거든요.”
서장은 말 그대로 즐거워 보였다.
“근데 의외군요. 세무서의 영역 내에서만 칠 줄 알았는데.”
변호사를 친 것은 확실히 내 업무 밖이다.
게다가 서장실에서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외부인에게 도움을 청했으니 어떻게 보면 서장을 무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변호사는 직업 윤리를 저 버렸습니다. 단순히 제가 아는 것만 해도 조사감입니다. 제가 모르는 불법이 몇 건이나 더 있을지 알 수도 없죠. 하지만 저런 사람은 정공법으로 접근하면 어떻게든 빠져나갑니다.”
“정공법이 아니더라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서장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지금의 대답은 무척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당연합니다. 잡을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 합니다.”
서장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권한 밖의 일을 해서라도요?”
“그것이 제 손에 힘이 쥐어진 이유일 테니까요. 그리고…….”
나는 서장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칼은 휘두르라고 배웠습니다.”
서장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이 더욱 인상을 험악하게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피식, 하는 힘 빠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과연 이 과장이 안달 날 만하군요.”
“과찬이십니다.”
능글맞게 웃으며 받아치자 서장이 완전히 얼굴에서 힘을 풀었다.
웃음을 참는 모양새다.
“어떻게든 데려오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길래 대체 뭐 하는 놈인가 궁금했습니다. 오늘 그 의문을 풀었군요.”
“그래도 평소엔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누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 내가 어떤 사건을 들쑤시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조용히 철밥통 생활만 할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 얼마나 재밌는 걸 보여 줄지 기대는 됩니다만, 이 기회에 미리 말해 두죠.”
서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그쪽 사람이 아닙니다.”
그쪽 사람이라.
아마 나와 이선균 과장이 속해 있는 ‘국세청 조사국장 민치호 라인’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다른 파벌의 사람도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중립이지요.”
“……!”
나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전국의 모든 서장과 과장들이 파벌에 속해 있을 리가 없다.
당장 용산 세무서장만 해도 아무 라인도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었으니까.
파벌 싸움은 극히 상층부의, 일부만의 일인 것이다.
“그러니 처음 만났을 때도 일만 잘하라고 말한 겁니다. 이 서에서 뭘 하든 상관없어요. 과세 잘하고 소송 안 걸리고, 세금만 잘 걷어 오세요. 그러면 됩니다.”
“걱정하실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중립인 사람을 공연히 긁어 부스럼 만들 일은 없다.
사고 없을 거란 장담은 못 하지만 삼성세무서의 다른 직원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겠다.
그런 다짐을 새겼다.
서장은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책을 펼쳤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동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책을 읽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가라는 뜻이다.
나와 황민우, 장세훈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서장실을 나왔다.
“푸하! 죽는 줄 알았네.”
복도로 나와 문을 닫자마자 장세훈이 숨을 크게 토해냈다.
몇 번 숨을 고른 그는 곧바로 내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너, 너 대체 뭐야. 뭐 하는 놈이야?”
“뭐긴 뭡니까. 같은 7급 공무원이죠.”
“방금 그거 뭐냐고! 세상에 어떤 7급 공무원이 서장님한테 ‘납세자 좀 불러 주세요, 서장실도 빌려 주세요.’ 이런 말을 하냐?”
다시 장세훈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황민우가 들고 있던 두꺼운 서류철을 그의 손에 턱 올렸다.
“나쁜 놈들 잡는데 같은 편인 서장님이 무섭습니까? 저는 탈세범 못 잡고 놓치는 게 더 무섭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런데…….”
장세훈이 생각이 깊어지는 얼굴로 서류철을 받아들었다.
“제가 정리해 둔 겁니다. 돌아가면 엑셀본도 보내 드리죠.”
“응? 이걸 왜 나를 줘?”
“담당자시잖아요. 과세 결정서 보내셔야죠.”
“내, 내가?”
장세훈이 서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75억이라는 숫자를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곧 어둡게 침잠했다.
“아니, 이건 네 실적이지. 내가 아무리 출세에 눈먼 놈이라도 숟가락만 얹을 순 없어.”
그는 정리본을 다시 내게 내밀었다.
순순히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담당자 바꿔 달라고 할 테니까 네가 직접 결재 올려.”
“장세훈 주사보님.”
“마음 바뀌기 전에 갖고 가라.”
아까는 고민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후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져가죠.”
“참나, 신입 직원한테 일도 뺏기고 천하의 장세훈 다 죽었네.”
툴툴대면서도 그는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앞장섰다.
나와 황민우는 서로를 마주 보며 슬쩍 웃었다.
처음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지금은 깔끔하게 물러선다.
나름의 기준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막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을 때였다.
“조사관님!”
비상구 문 앞에서 움츠리고 서 있던 남자가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까 서장실을 나갔던 둘째 아들 심병철이다.
“아직 안 가고 계셨어요?”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심병철 역시 무언가 떨쳐낸 것처럼 속 시원한 표정이었다.
“감사는요. 상속세만 왕창 내시게 생겼는데요.”
상속세는 기본적으로 모든 상속인이 각자 상속받은 재산 몫만큼 부담한다.
소송을 걸어 재산을 다시 가르게 된 심병철 역시 새로 받는 재산 비율만큼 상속세를 더 내게 될 것이다.
최소 이십억은 되겠지.
“차라리 잘됐습니다. 어렵게 되찾은 부모님의 유산입니다. 정당하게 세금 내고 깔끔하게 물려받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아참, 잠시만 계셔 보세요.”
심병철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윽고 흰 봉투 하나가 딸려 나왔다.
꽤 두툼한 것이 뭐가 들었는지 안 봐도 알 법했다.
“감사의 뜻입니다. 이거라도…….”
심병철은 누가 볼세라 허둥지둥 조심스럽게 봉투를 건넸다.
“심병철 씨.”
“예, 예?”
강한 어조로 말하자 심병철이 우뚝 굳었다.
겁먹은 눈치다.
“이 돈을 받게 되면 저는 대가를 위해, 개인을 위해 행동한 게 됩니다. 저는 심병철 씨를 위해 한 게 아니거든요.”
금세 시무룩해진 심병철이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봉투를 들고 있는 그의 손을 가볍게 밀며 나직하게 말했다.
“저는 공무원이고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그 과정에서 선량한 국민이 권리를 되찾았다면 그건 제가 일을 잘했다는 뜻이겠죠.”
“아…….”
심병철이 뭔가를 깨달은 듯 감탄사를 흘리더니 도로 봉투를 집어넣었다.
“뭐라 인사를 드려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제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공무원분께…… 조사관님이 하셨던 것처럼 저도 언젠가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긴 소송, 부디 승리하십시오.”
“반드시 부모님의 유산을 되찾아서 보란 듯이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그게 부모님 앞에 당당한 아들이 되는 길이겠지요. 그리고…….”
심병철은 아까 했던 인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중하고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조사관님께 도움이 되겠습니다.”
***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서장실은 평소보다 더 적막했다.
서장은 여전히 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책장은 단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똑똑.
“들어오세요.”
노크 소리가 들리자 서장은 기다렸다는 듯 책을 내려놓았다.
“이 과장.”
재산세과장 이선균은 조용한 서장실을 보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제가 늦었군요.”
“허허헛! 맞아요, 늦었습니다. 재미있는 구경을 놓쳤어요.”
“그 정도였습니까?”
이선균은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서장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과장은 그 직원이 일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서장이 말하는 것이 책상머리에서 숫자와 씨름하는 것이 아님은 듣자마자 알았다.
오늘처럼 탈세범과 대면해 거꾸러뜨리는 걸 가리키는 것이다.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크흠흠, 막상 이 과장이 그걸 못 봤다니. 난 또 신재현의 그런 면에 반해서 끌어들인 줄 알았습니다.”
“서장님?”
이선균이 의아하게 물었지만, 서장은 기분 좋게 웃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속이 시원해서 말이죠. 이런 구경을 계속할 수 있다면 나도 민치호 밑에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진심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