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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7화 (47/500)

47화. 눈먼 재산(3)

테이블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폭탄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폭심지가 공기를 빨아들이듯 잠시 서장실은 침묵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곧 폭탄이 터졌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아니, 이 사람 뭐예요? 이봐요, 우리가 낸 세금이 얼만지 알아요? 얼만지 아냐고!”

“총 75억도 아니고 플러스 75억? 75억을 더 내라고? 이거 미친 거 아냐!”

옷차림은 고상하고 귀족적이었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

시장통의 호객 행위처럼 세 명의 남녀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에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진정하세요, 선생님.”

황민우가 아우성치는 세 남녀를 말리고 나섰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 너희들끼리 떠들어 봐라.

나는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다리를 꼬았다.

황민우도 나를 보고는 말리던 행동을 멈췄다.

정작 불안해하는 것은 장세훈이었다.

“어,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래.”

귓가에서 소곤소곤 말하던 장세훈이 겁에 질린 눈으로 서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서장은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듣기 싫으신 것 같으니 저도 말씀 안 드리려고요.”

일부러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장세훈이 덜컥 놀라며 황민우 옆까지 물러났다.

주먹다짐하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럴 땐 참 소심하다.

“말을 하라고, 말을! 답답해 미치겠네, 한 세무사!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따져 봐요!”

부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서장실이 조용해졌다.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사람을 향했기 때문이다.

그는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으며 헛기침을 했다.

“조사관님, 하나씩 따져 보고 싶습니다. 얼마 기준으로 하셨습니까?”

상속세는 고인이 죽은 당일, 그의 이름으로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상속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죽기 전에 미리 재산을 옮기면 된다.

물론 국회와 국세청이 바보는 아니다.

최근 10년 이내에 통장에서 이유 없이 빠져나간 금액이 있으면 국세청은 이렇게 판단한다.

‘이 돈은 가족이 미리 빼돌린 돈이로구나! 네 이놈들 상속세를 내거라!’

나는 황민우에게 손짓했다.

그는 이제껏 들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구멍을 뚫고 철끈으로 묶은 종이 뭉치로 족히 수백 장은 되는 것이었다.

세무사가 긴장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 공방전의 시작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제가 상속재산에 포함한 출금액의 기준은 500만 원입니다.”

흔히 업계 관행이라 불리는 금액이다.

요즘에 빡센 세무서는 200만 원 이상이면 무조건 상속재산에 포함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 월에 500만 원 이상 출금이면 포함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생활비로 쓸 수도 있는 거고, 급히 사용할 곳이 생겼을 수도 있는 겁니다.”

역시나 세무사는 내가 예상한 대답을 했다.

왜 통장에서 돈을 뺐습니까?

생활비로 쓰려구요.

가장 쉬운 변명이다.

“고 심경환 씨는 부인과 세 자녀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의 가족이었습니다. 식비만 따져도 단순 계산으로 300만 원이 넘게 나옵니다. 거기에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면 500만 원은 최소치입니다. 간혹 더 사용하는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죠.”

부인이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무사님. 요즘 누가 현금 씁니까? 다 신용카드 쓰지. 세무사님 지갑 한번 까 보시겠어요?”

“크흠, 아니 그야 신용카드가 편하지만 이런 분들의 생활은 다릅니다.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할 수도 있지요.”

세무사의 필사적인 방어에 나는 다시 황민우에게 손짓했다.

그는 아까보다 조금 더 얇은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다만 이번엔 뒤집은 채였다.

무엇이 서 있는지 보이지 않도록.

“이게 뭔지 아십니까?”

흰 종이에 손을 올렸다.

세무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이 불리한 자료라는 건 안 봐도 알 테니까.

“신용카드 사용 기록입니다. 고인과 여기 계신 가족분들의 신용카드 내역이죠.”

“그런 것까지…….”

과하다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나오기 전에 나는 손바닥으로 종이를 탕 쳤다.

“고인께서 병석에 누운 건 3년 전입니다. 잘 걸어 다니지도 못했죠. 그런데 신용카드는 전국 여기저기에서 사용하셨더군요. 누가 썼을까요?”

“조, 조사관님.”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세무사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상황이 심상찮게 흘러간다는 걸 눈치챈 부인과 가족들이 흘끔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신용카드를 한 달에 천만 원 넘게 쓰면서 현금을 수백만 원씩 뽑아갔다면…… 그게 생활비일까요, 증여일까요?”

세무사의 시선은 내 손바닥 밑의 하얀 종이 뭉치에 박혀 있었다.

그는 얌전히 내 말을 기다렸다.

“제가 이 카드 내역을 뒤집는 순간, 통장에서 뽑아간 현금은 200만 원 이상 전부 증여로 볼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뒤집어 볼까요?”

-촤르륵.

나는 종이의 한쪽 귀퉁이를 잡고 들었다가 한 장씩 놓았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세무사가 이윽고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500만 원 이상은 전부 증여로 보도록 하죠.”

세무사가 한발 물러섰다.

첫 공방은 나의 승리다.

“이것 봐요, 한 세무사! 이게 무슨 소리예욧!”

문외한이어도 세무사가 방어에서 실패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부인의 앙칼진 목소리에 세무사가 달래듯 말했다.

“사모님, 제가 미리 설명해 드렸잖습니까. 500만 원 이상은 증여로 볼 여지가 있다고요. 제가 사전에 세액 비교표도 뽑아 드렸을 텐데요.”

“그건 그거고! 그렇다고 이렇게 쉽게 인정한다는 거예요? 내가 그러라고 돈 준 줄 알아요?”

“사모님. 저 종이가 뒤집히면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진정하세요.”

세무사가 부인을 달래고 나서 다시 헛기침을 했다.

아직 그는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도 추가로 납부할 세액이 75억이라는 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사전에 뽑아본 바로는 추가로 10억만 더 납부하는 걸로 계산이 됐는데요.”

세무사는 자신이 가져온 종이를 꺼냈다.

깐깐한 세무 공무원이라면 이 정도는 할 거라 예상했다는 투다.

그는 표에 정리되어 있는 숫자를 가리켰다.

“500만 원 이상을 상속 재산으로 합산했을 경우를 예상해 산출한 상속세입니다. 월 출금액을 기준으로 삼으셨으니 좀 더 나오긴 하겠지만, 75억은 너무 많습니다.”

그는 역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싸움에서 진 것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회복이 빨랐다.

“밝혀진 재산만 따져보면 그렇겠지요.”

“밝혀진 재산이요……?”

세무사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그는 있는 자료만 갖고 상속세를 계산하고 전략을 세웠을 것이다.

이미 고인이 사망한 후에 재산 목록과 합의서를 갖고 오면 그걸 토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 세무사니까.

즉, 이후의 일은 변호사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세무사가 난감한 얼굴로 부인을 쳐다보자, 부인이 자신의 고문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마른 체형의 남자다.

그는 나와 세무사가 설전을 벌이는 내내 싸늘한 눈빛으로 날 관찰하고 있었다.

“조사관님이 하시는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군요. 밝혀지지 않은 재산이라도 있단 말씀입니까?”

“물론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정직하게 모든 재산을 밝혔고, 조사관님은 세법에 따라 과세해 주시면 됩니다. 뭐가 어려운 거죠?”

각종 법을 다루는 직업답게 그는 법대로 하라고 압박했다.

“가업으로 갖고 계신 회사가 상품 도소매던데. 그 회사가 부동산 임대 회사를 하나 갖고 있더군요.”

“그냥 투자를 했을 뿐입니다. 부동산은 불황을 타지 않으니까요. 남는 돈을 알맞게 투자하는 것 또한 자산 관리를 맡은 제 역할입니다.”

“그 회사가 페이퍼 컴퍼니라면 말이 다르죠.”

소파에 앉아 있던 네 명의 가족이 움찔했다.

나랑 1:1로 대화 중인 변호사도 두 눈 깜짝 안 하는데 댁들이 그러면 안 되지.

너무 티가 나잖아.

둘째 아들 심병철은 숨은 재산이라는 말에 놀란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제가 직접 사무실 가 봤습니다.”

-으득.

변호사가 이를 갈았다.

어찌나 살벌한지 장세훈도 슬쩍 옆을 쳐다볼 정도였다.

“페이퍼 컴퍼니를 보자마자 쎄하지 않겠어요? 변호사님 작품인가요? 역시 변호사님이라 다르시더군요. 차명 주주라.”

“차명 아닙니다. 뭘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그야 가족분께서 제보해 주셨으니까요.”

나는 한 손을 펼쳐 소파 끝자리에 웅크리듯 앉아 있는 30대 남자를 가리켰다.

심병철, 둘째 아들인 그는 시선이 모이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변호사가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심병철 씨!”

“어허, 소리 지르지 마세요. 서장실입니다.”

약 올리듯 변호사를 나무라자 그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차마 내겐 소리 지르지 못하고 대신 심병철을 향해 다그쳤다.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가족을 배신하고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 세금 75억을 더 물게 만들어요?”

“저, 저는…….”

심병철이 쪼그라들 듯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심병철 씨. 여기가 어딘지 기억하세요. 누가 옆에 있는지, 선생님 편이 누구인지. 그리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세요.”

나는 변호사가 아니고 공무원이다.

한 명의 개인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손에 재산을 쥐여 줄 수도 없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한 명의 국민을 위해 등을 떠밀어줄 수는 있었다.

그는 억지로 삐걱거리는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목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저의 부모님입니다. 어머니의 재산을 돌려주세요.”

“얘가 무슨 소리니? 너희 아버지가 직접 쓴 유언장이야. 네가 하는 짓이 얼마나 맘에 안 들었으면 그랬겠어? 참나.”

부인이 비아냥거렸다.

“선생님. 가만히 계세요. 지금 끼어드실 때가 아닙니다.”

“뭐야?”

부인이 눈에 쌍심지를 켰지만, 간단히 무시했다.

“새어머니, 제가 대단한 걸 바란 게 아니잖아요. 저희 어머니 것만 주시면 된다고, 그렇게 부탁드렸잖아요. 그게 그렇게 힘드셨나요?”

“너희 아버지한테나 물어봐라, 얘.”

“새어머니!”

심병철이 물기 어린 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저 소심한 남자가 이렇게 분노하다니.

“거기 변호사님.”

심병철 뒤에 있던 젊은 변호사가 내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언제 끼어들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타이밍을 못 재는 걸 보니 경험은 부족한 것 같지만…….

젊은 변호사의 눈 밑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을 보니 다른 조건은 충족한 것 같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기회인지 보기만 해도 아실 겁니다. 다 깔린 밥상이에요.”

젊은 변호사가 심호흡을 하더니 서류가방에서 종이를 줄줄이 꺼냈다.

“고 심경환 님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어떻게 돌아 차명으로 갔는지 증거가 모두 여기 있습니다. 이건 필적감정서입니다. 유언장이 가짜더군요. 그리고…….”

심병철의 젊은 변호사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자신이 조사해 온 것을 주섬주섬 꺼냈다.

하나같이 내가 원한 것들이다.

공무원 신분으로는 조사하기 어려운 것들.

직계 가족의 동의하에 변호사가 맞춰야 하는 퍼즐이 테이블 위에 늘어섰다.

자료가 쌓여 갈수록 부인과 고문 변호사의 얼굴은 구겨져만 갔다.

-빠득.

이젠 살기가 느껴질 정도다.

“조사관님. 지금 서장님이 뒤에 있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변호사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만큼의 증거가 나왔으니 다음 차례는 협박이라는 건가.

“나는 십 년 넘게 이 댁에서 온갖 일을 해 온 변호사야. 너 같은 놈은 순식간에 박살 낼 수 있어.”

나는 코앞까지 다가온 변호사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개처럼 으르렁 대지만 말고 할 수 있으면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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