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눈먼 재산(2)
장세훈의 말은 타당했다.
일절 틀린 곳이 없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질 권한이 없다.
그것은 재판부의 몫이다.
심병철은 그 말을 듣더니 눈에 띄게 허둥대기 시작했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그, 그, 그렇겠죠.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는 얘기를 했네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심병철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심병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쓸데없는 얘기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끝났으니 이제 제 이야기를 드리죠.”
“예? 하지만…….”
“어이, 신 주사보님. 사연은 안타깝지만, 우리가 뭘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우린 공무원이야. 우리 권한을 넘어서는 일은 할 수 없어.”
장세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저도 압니다. 월권할 생각도 없구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심병철에게 말했다.
“선생님의 가족들, 상속인들은 탈세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걸 조사 중이구요.”
“예? 아니 탈세라니 무슨……!”
“자세한 건 저희가 금융 자료를 살펴봐야 알 수 있지만 거의 확실합니다. 혹시 고인의 재산을 누가 관리하셨습니까?”
“새어머니와 그 고문 변호사입니다. 아버지는 말년에 병이 깊어지면서 근 3년은 병석에 누워 지내다시피 했거든요.”
병석이라.
그러고 보니 상속세 부속서류에 유언장이 껴 있었지.
나는 번뜩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말했다.
“유언장 작성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까?”
“아니요.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로는 거의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임종도 지키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변호사가 입회했으니 아버지가 작성하신 건 맞을 겁니다.”
“유언장을 보긴 했습니까?”
“아니요. 나중에 변호사가 통보해 오길래 그것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세훈에게 소리쳤다.
“장세훈 주사보님! 가서 유언장 좀 뽑아 오세요!”
“으잉? 갑자기 무슨…….”
“빨리요!”
내 성화에 못 이겨 장세훈이 엉거주춤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내 반응에 심병철이 불안해했지만 나는 조용히 장세훈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장세훈이 숨을 헐떡거리며 손에 종이 두어 장을 들고 들어왔다.
-탁!
“가져왔다! 대체 뭐가 문젠데!”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슬쩍 보고는 심병철 앞에 내밀었다.
이것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선생님, 자세히 보세요. 아버님의 필적이 맞습니까?”
“예? 그야 당연히 맞겠…….”
-팔락
종이를 손에 든 심병철이 석상처럼 굳었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 아버지의 필체가 아니네요.”
유언장은 가짜였다.
***
-저벅저벅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장세훈은 앞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신입 직원의 등을 쳐다보며 팔짱을 꼈다.
무슨 영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유언장을 뽑아 오라길래 엉겁결에 갖다 주긴 했다.
그런데 그게 가짜라니.
‘애초에 그게 가짜인 건 어떻게 알았는데?’
장세훈은 복도를 걷는 내내 생각해 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자신의 건이라 배정받고 나서 쭉 훑어봤다.
평범한 상속 건이었고, 상속 재산 다툼이야 흔히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이 세무서에 근무하는 누구에게 보여 줘도 똑같을 것이다.
유언장이 가짜라는 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란 말이다.
-타다닥!
결국 참지 못한 장세훈이 앞서가던 신재현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 얄미웠다.
뻐기지도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소리를 질렀다.
“설명을 하라고! 내 건이고 내가 담당자야.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냐!”
신재현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등 뒤의 재산세과 사무실을 가리켰다.
“간단하잖습니까. 계모와 남매가 유언장을 조작해 재산을 빼돌렸고, 전 부인의 아들은 억울함을 당했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속세를 탈루했구요.”
장세훈은 답답해졌다.
“아니 그러니까! 계모가 유언장 조작한 거랑 상속세 탈루한 게 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있냐고!”
“아.”
아는 무슨 아야!
장세훈은 다시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신재현이 재산세과 문을 열고 성큼성큼 들어갔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신재현과 함께 이동해 온 8급 공무원 놈, 이름이 황민우라고 했던가.
그가 신재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장세훈을 노려보는 것이 어디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나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꼬리만 없을 뿐이지 거의 키우는 개 수준의 충성심이다.
‘대체 어떻게 살았는데 저런 놈이 따라다니는 거냐고. 혹시 어디 도련님인가?’
그렇다면 유언장의 조작을 의심한 것도 말이 된다.
부잣집의 집안 사정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암투가 벌어지는 법이니까.
‘부잣집 도련님이나 되는 놈이 이런 공무원을 하고 있을 리 없지. 혹시 자기가 겪어 본 일인가? 그래서 판단이 빠른 건가?’
장세훈의 생각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우주까지 진출할 때쯤이었다.
황민우가 두툼한 종이 다발을 내밀었다.
A4용지가 아깝다 싶을 정도로 두꺼웠다.
“고 심경환 씨의 20년 치 통장 기록입니다. 운영지원과에서 넘어왔어요.”
신재현이 요청해 둔 자료였다.
그는 눈 대강으로 서류를 3분의 1로 나누더니 그중 하나를 장세훈에게 내밀었다.
“뭐야?”
“상속세 조사 많이 해 보셨잖아요. 평소처럼 하시면 됩니다. 사전 증여 체크하세요.”
“네가 뭔데……!”
“장세훈 주사보님 담당 건이잖습니까. 어차피 하셔야 하는 일 아닙니까?”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기분은 한없이 나쁜데 반박할 수도 없었다.
‘진짜 생각할수록 줘패고 싶네…….’
그러나 장세훈은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황민우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스윽스윽
-사각사각
어느새 신재현과 황민우 둘이 자리에 앉더니 형광펜으로 거침없이 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근데 왜 20년 치야? 상속세 검토할 거면 10년분이면 충분하잖아.”
상속세 신고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훑어보는 것이 고인 명의의 통장이다.
그 이유는 미리 재산을 현금화해서 빼돌렸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도 10년 치만 본다.
상속 재산에 합산하는 기준이 10년이기 때문이다.
“10년 치면 되긴 하지만…… 상속인 심병철 씨는 꽤 이전부터 재산 관리에서 제외된 것 같아서요.”
“그럼 할 필요 없는 일을 대신 하는 거 아냐? 이건 변호사가 할 일이지.”
장세훈이 투덜거렸지만, 신재현은 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에이 씨, 일단 하긴 하는데 다 끝나면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좀 해! 내가 모르면 보고서를 어떻게 쓰라고!”
“그러죠.”
어쩐지 말려든 느낌이다.
장세훈은 찜찜함을 떨치지 못한 채로 작업을 시작했다.
양을 보아하니 오늘도 야근은 확정이었다.
***
준비는 만전이다.
나는 한 손에 정리한 자료를 들었다.
등 뒤에는 황민우가 철끈으로 묶은 20년 치 통장 내역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장세훈이 퀭한 눈으로 툴툴거리며 따라왔다.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요. 이건 말 그대로 공무원이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이라…….”
“안 해도 되는 일이면 왜 해? 탈세범 잡는 거야 우리 일이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돼?”
“어차피 하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 하나 돕는다고 어려울 것 없잖습니까.”
“수고가 들지.”
나는 투덜거리는 장세훈을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요 며칠 함께 자료를 검토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입으로는 불만을 말하면서도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졌다.
나를 인정하지 않을 뿐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함께 상속인에게 가는 것이긴 하지만.
“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서장실이요.”
“뭐야악!”
순순히 따라오던 장세훈이 기겁하며 벽에 들러붙었다.
“왜, 왜 서장실인데! 상속인들 만나러 간다며!”
“내부 자료를 들고 밖으로 나갈 순 없잖아요. 상속인들을 불렀죠.”
“그럼 회의실에서 보면 되지 왜 서장실이냐고!”
“상속인들 수준을 보세요. 겉으로 드러난 재산만 200억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이 부른다고 절대 안 와요.”
“그럼 설마…….”
“서장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장세훈이 뒤로 넘어갈 것처럼 꺽꺽댔다.
“서장님이…… 허락하셨어?”
“그럼요. 이용할 건 다 이용해야죠.”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나와 황민우는 6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잠시 기다리자 얼굴이 핼쑥해진 장세훈이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로 비상구에서 나왔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고뇌를 겪었는지 반쯤 혼이 나가 보였다.
“말은 제가 다 할 거니까 걱정 마세요. 구경만 하시면 됩니다.”
“서장님…… 서장님을 이용해먹어?”
힘없이 중얼거리는 장세훈을 끌고 서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서장님, 재산세과 신재현입니다.”
“들어와요.”
안으로 들어서자 낯선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아는 얼굴은 심병철 한 명이지만 이들이 누군지는 보자마자 알았다.
고 심경환 씨의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고문 변호사와 세무사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은 서장을 제외하고 4명뿐.
5인석 소파가 꽉 차 있었다.
남은 세 명은 각각 자신의 의뢰인 뒤에 서 있어서 누가 누구 편인지 극명하게 보였다.
“왔군요.”
서장이 날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세한 사항은 우리 직원이 설명할 겁니다.”
설명은 내 몫이다.
서장은 창가에 있던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뒷일은 내게 일임한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서장님.”
나도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삼성 세무서의 서장은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파라고 했다.
효율을 중시하고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능력주의의 사람이라고.
그렇기에 탈세 건을 해결하겠다는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이겠지.
물론 어떤 이유든 간에 나중에 정식으로 감사 인사는 해야 할 것이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 심경환 씨의 배우자 이현숙 씨, 장남 심재철 씨, 차남 심병철 씨, 삼녀 심미진 씨.”
인사를 한 후 서장이 앉았던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옆에서 장세훈이 ‘야야, 미쳤어?’라고 말리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서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중요한 일이라고 하길래 왔는데…… 이게 뭔가요?”
내 바로 오른편 자리에 앉은 60대 여자가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미망인이라기엔 그다지 슬퍼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시간상으로는 몇 달이 지났으니 슬픔을 다 떨쳤을 수도 있겠지만.
“상속 조사 통보서는 받으셨죠? 그 때문에 모셨습니다. 길게 끌 것 없으니까요.”
“아~ 실적이 필요하시다? 그럼 말씀을 하시지. 따로 찾아갔을 텐데.”
세무사에게 무슨 언질을 받은 것인지 부인 이현숙은 혼자서 납득한 얼굴을 했다.
“사모님, 이 자리는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더 이상한 소리가 나올까 두려웠는지 소파 옆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나섰다.
이 자리에 있는 정장 입은 남자는 총 셋.
그중 둘은 부인 편에, 나머지 하나는 심병철 뒤에 서 있었다.
심병철 뒤에 있는 것은 분명 변호사다.
내가 당장 변호사를 찾아가 선임하라고 언질을 줬으니까.
“조사관님, 상속 재산에 포함할 사전증여재산 때문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사모님과 형제분들을 다 부를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뭐 생각이 있으셨으리라 믿고, 얼마 이상 출금액을 기준으로 잡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정장 옷깃에 변호사 배지를 달지 않은 남자가 먼저 물었다.
아마 세무사겠지.
“보통은 500만 원 이상 출금액을 재산에 포함할 금액으로 잡으시던데요.”
그는 먼저 딜을 걸어 왔다.
내가 어려 보이니 경험이 부족할 거라 생각하고 업계 관례를 꺼낸 것이 분명했다.
“아우, 답답하네, 증말. 그래서 세금 얼마를 더 내라는 건가요?”
서로를 떠보는 느릿한 대화가 지겨웠던지 부인이 끼어들었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손에 든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산세 포함해서 75억을 더 내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