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눈먼 재산(1)
“이건 또 뭐라는 거야. 이것들이 짜고 날 놀리냐?”
장세훈이 참지 못하고 재킷을 벗어 던졌다.
소매까지 걷어 올린 그가 황민우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황민우는 팔을 세워 간단히 막았다.
장세훈의 몸이 열린 순간, 황민우는 그의 발을 걸며 동시에 상체를 밀었다.
장세훈은 어어어,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무실입니다. 진정하시죠, 장세훈 주사보님.”
“너, 너 뭐야. 왕년에 좀 날렸다 이거냐? 어떻게 공무원 했어.”
황민우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상하시는 것처럼 껌 좀 뱉은 놈 아니고요, 평범한 문과입니다. 공무원은 시험 봐서 붙었습니다.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서 힘 좀 썼는데, 어디 다치진 않으셨죠?”
이건 나도 놀랐다.
방금 황민우의 움직임은 굉장히 능숙했다.
예전에 용산 세무서에 있을 때 도박장 오피스텔 찾아갔다가 싸움 났을 때도 황민우가 싸우는 모습을 못 봤는데.
“원래 잘 싸웠어요?”
“그 일 있었던 후로 도장 다니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이상 도움은 되어야죠.”
황민우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바닥에 넘어져 있던 장세훈은 멍한 얼굴로 나와 황민우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정작 때리려고 한 놈은 자신인데, 막상 자신이 당하자 저런 얼굴이라니.
웃음이 나왔지만 여기서 웃으면 정말 전쟁이다.
나는 장세훈에게 다가갔다.
“더 하실 겁니까?”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화도 가라앉은 것 같고 민망한 상황이 되었으니 이쯤 하면 되지 않았나.
그는 내 손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구기며 스스로 일어났다.
“대답은 해라. 왜 남의 사건 건드리냐고.”
이유는 간단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긴 좀 그랬다.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도 보고 있다.
대놓고 ‘네가 실수했다, 그냥 넘기면 안 된다.’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적막한 사무실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뚜르르르.
“어, 저기 장세훈 씨 자린데.”
“지금 받아보라고 할 수가 없잖아. 네가 땡겨 받아 봐.”
뒤에서 여직원들의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네, 재산세과입니다. 아, 네…… 지금요? 1층에요? 아…….”
여직원이 전화기를 붙잡고 난처한 얼굴을 했다.
“저, 장세훈 주사보님, 1층 민원실인데요. 웬 아저씨가 주사보님을 찾는다고…….”
“저를요?”
“네. 심병철 씨라고, 무슨 상속세 신고 들어간 건 상속인이래요. 그거 무효라고…….”
여직원은 수화기를 손으로 막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진상의 느낌이 나요.”
심병철?
그건 내가 보려던 상속 건인데.
지금 장세훈이 화가 난 원인이기도 했다.
장세훈이 다시 씩씩거리며 여직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내려오라고 합니까?”
여직원이 다시 전화기에 대고 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니요, 올라가셨다고 곧 도착할 거래요.”
나와 장세훈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장세훈의 당혹스러운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당혹감은 곧 분노로 변했다.
“너 상속인한테 연락했냐? 무슨 얘길 한 거야!”
“연락 안 했습니다. 저는 운영지원과에 통장 내역 요청만 했거든요.”
“통장 내역? 그니까 네가 왜 그걸 요청하냐고!”
장세훈이 다시 길길이 날뛰었지만 나는 생각에 잠겼다.
심병철이라면 혼자 재산 상속을 못 받아 유류분 청구 소송을 내겠다던 상속인이다.
어차피 찾아가 볼까 했는데 그가 왔다면 마침 잘됐다.
“음? 무슨 일입니까?”
고개를 들자 장세훈이 다시 내 멱살을 잡으려 들고 황민우가 그를 제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선균 과장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웃는 낯이지만 꽤 무서웠다.
“아, 과장님. 오셨습니까.”
“우리 과가 이렇게 활기가 넘치는 줄 몰랐네요. 다들 일이 부족한가 보죠?”
장세훈이 서둘러 손을 내리고 물러섰다.
곧 있으면 상속인이 올라올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과장에게 물었다.
“아, 과장님. 회의실 좀 쓰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음? 여기서 하기 어려운 말입니까?”
“아니요, 납세자가 오고 있다는데 둘이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납세자요?”
“예. 장세훈 주사보님이 맡은 상속세 건의 상속인 심병철 씨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장세훈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네가 왜 듣냐고! 과장님, 이건 월권입니다!”
“잠깐만 있어 보세요.”
과장이 장세훈을 제지하자 그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당연히 과장이 날 책망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유는요?”
“탈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몇 십 억 규모입니다.”
“허억.”
“탈세? 몇 십 억?”
“뭐야, 미쳤나 봐. 그걸 어떻게 알아?”
정작 대답은 과장이 아니라 주변의 직원들에게서 나왔다.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좋습니다. 상속인 데리고 잘 얘기 나눠보세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너무하십니다! 이건 제 건입니다!”
내가 감사 인사를 하고 종이와 펜을 챙기는 동안 장세훈이 소리 지르며 항의했다.
언뜻 억울한 기색도 보였다.
“장세훈 씨. 말했듯 당신의 건입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당신이 눈치 챘어야 했고요. 이건 당신이 놓친 겁니다.”
과장은 여전히 부드러운 낯이었지만, 말투는 차고 냉정했다.
의외의 일면을 본 것 같았다.
“여기는 삼성 세무서입니다. 1급지 세무서 중에서도 그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죠. 탈세를 놓친다?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이선균의 냉철한 말에 장세훈이 기가 죽어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전 직원 앞에서의 망신.
장세훈의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선균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더라도 신재현 씨는 미리 담당자에게 말을 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합니다. 이건 장세훈 씨를 무시한 처사예요.”
이번에는 나를 향한 말이다.
나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장세훈 주사보님께도 죄송합니다.”
일이 일단락되자 이선균이 장세훈을 가리켰다.
“같이 가세요. 담당자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닙니까.”
장세훈이 흘끔 나를 보았다.
시무룩한 얼굴이지만 눈빛은 아직 형형했다.
“왔다, 왔어! 납세자분 오셨어요!”
문 앞에 앉아 있던 여직원의 호들갑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문가에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는 어수선한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금세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장세훈 주사보님, 가시죠.”
“저도 갈까요.”
황민우가 작게 물었다.
아마 장세훈과 둘이 보내기엔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아까부터 날 패려고 벼르고 있었으니.
“괜찮습니다. 과장님이 한소리 했는데요, 뭐. 납세자가 보고 있는 데서 주먹질하지는 않겠죠. 제가 잘 달래 보겠습니다.”
나는 심병철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뒤에서 헐레벌떡 장세훈이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
6층의 소회의실.
다목적으로 쓰는 곳이라 벽에는 캐비닛이, 중앙에는 테이블과 의자 예닐곱 개가 있었다.
나는 거기로 심병철을 안내했다.
“가, 감사합니다.”
심병철은 조심스럽게 앉더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어리숙해 보이는 사람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조금만 훑어봐도 알겠다.
어렸을 때 눈치를 많이 보게 되면 이런 인간으로 자라게 된다.
자신감 없고, 남의 분위기를 살피게 되는 사람으로.
“심병철 씨 맞으신가요?”
“네? 네. 그렇습니다.”
심병철은 이름만 불려도 과하게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이런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용기를 내는 데까지는 많은 부당함과 억울함이 있었을 것이고.
“일부러 여기까지 뭣 때문에 왔습니까?”
문 가까이에 있던 의자에 걸터앉은 장세훈이 뚱하게 물었다.
그는 일부러 내 옆을 비워 두고 멀찍이 떨어져 앉은 상태였다.
그야 방금까지 기분 나쁜 일이 있었으니 말이 곱게 나올 리는 없겠지만, 그로 인해 심병철은 단숨에 주눅이 들었다.
“어, 그……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아니라 오신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잠깐, 잠깐만요.”
답답해하는 장세훈을 제지했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날 쳐다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근처에 있는 정수기로 다가갔다.
회의 때 쓰는 방이다 보니 종이컵과 정수기, 커피와 녹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커피? 녹차? 어떤 걸로 드십니까?”
“아,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먹는 김에 타려는 겁니다. 편하신 대로 고르세요.”
“저, 그럼…… 커피로…….”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달그락거리며 커피를 타는 동안 심병철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는 것이 불안정한 것이다.
“자, 드세요.”
세 잔의 커피를 타서 심병철과 장세훈 앞에 한 잔씩 내려놓았다.
장세훈은 자신의 몫도 가져온 것이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말문을 틀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시간을 끌던 나는 가장 평범한 방법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상대를 달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심병철 씨, 민원실에서 많이 답답하셨죠?”
“예?”
“민원실은 말 그대로 각종 서류 신청을 받는 곳이라서요. 자세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 재산세과로 찾아오신 건 잘하신 거예요.”
“예에…….”
심병철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를 들이마셨다.
“여기 계신 장세훈 주사보님은 7급 세무 공무원으로 심병철 씨 관련 상속세 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7급 세무 공무원으로 이름은 신재현이라고 합니다. 필요하신 걸 말씀해 보세요. 저희가 듣겠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자 심병철이 종이컵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와 심병철을 번갈아 바라보던 장세훈이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영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군.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심병철의 입이 열렸다.
“돌아가신 분은 제 아버지입니다. 젊을 적에 악착같이 돈을 벌었죠. 그리 깨끗한 일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저의 어머니는 이미 20년도 더 전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다섯 살 때였습니다. 그 후에 아버지는 바로 새어머니와 재혼을 했지요. 그런데 새어머니는 이미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대충 머릿속에 구도가 그려졌다.
상속세 부속서류에 들어 있던 가족관계에서는 심병철이 둘째 아들이었다.
형과 여동생은 재혼한 새어머니가 데려온 자식이니, 전처의 아들인 심병철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제게 사업을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적자는 저라고요. 그런데 차남이다 보니…… 어느 샌가 형이 회사의 중역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옆에 있던 장세훈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왜 자신이 남의 비밀스러운 가정사를 듣고 있어야 하냐는 얼굴이다.
장세훈이 내게 시선을 돌렸지만 나는 조용히 들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도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후계다툼 이런 건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갖고 싶은 대로 다 가져가라. 이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속 재산을 나눌 때도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보셨겠지만…….
심병철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상속 재산 합의서와 상속세 신고서를 보니 제 앞으로 떨어진 돈은 예금 3천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갖고 오신 예물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신혼 생활을 하셨던 집. 그것들이 원래 제가 받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심병철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회사나 건물, 땅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 어머니의 흔적만이라도 제가 되찾고 싶습니다.”
심병철은 소리 없이 울었다.
나이가 찰 대로 찬 남자가 우는 것은 꽤 마음이 아픈 장면이었다.
“저, 그건 저희한테 말씀하실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자 장세훈이 끼어들었다.
“변호사를 찾아가셔야죠. 저희는 상속세 신고 들어온 걸 검토해서 세금을 법대로 부과하는 일을 합니다. 재산을 찾아 드릴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