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삼성세무서(2)
회의실로 향하는 서장과 이선균 과장을 배웅한 후, 황민우와 함께 재산세과로 돌아왔다.
뭐가 그리 바쁜지 벌써부터 재산세과 사무실은 부산스러웠다.
나도 슬슬 일을 시작할 때다.
자리에 앉아 배정된 신고서를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벌떡 고개를 들어 사방을 훑어보다가 저 멀리 건너편의 웬 젊은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번뜩.
보통 눈이 마주치면 피하게 마련인데 저놈의 시선은 더욱 강렬해졌다.
“아, 장세훈 씨네요. 똑같은 7급 주사보입니다.”
내가 일하다 말고 일어서서 노려보는 게 신경 쓰였는지 옆자리의 키 작은 남자, 윤지성이 슬쩍 끼어들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습니까? 저분이 절 째려보는 것 같은데요.”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이유나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 온 지 30분도 안 됐는데 뜬금없이 미움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윤지성은 아, 하고 입을 다물더니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별 이유는 아닙니다. 장세훈 씨는 자기 실력에 자부심이 있거든요.”
“그게 저와 연관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이선균 과장님이 밀어주는 거 아니었나요?”
“……?”
나는 잠시 윤지성과 저 멀리 건너편의 장세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1년 차가, 그것도 정기 발령도 아닌 임시 발령으로 삼성에 왔습니다. 중간에 뛰어넘은 과정이 몇 개인지 상상도 안 갈 겁니다. 이선균 과장님이 대놓고 밀어주는 거나 다름없죠.”
틀린 말은 아닌데…….
나는 입맛을 다시고는 고개를 돌렸다.
장세훈이 씩씩대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잔뜩 화난 얼굴로 내 자리까지 오더니 다짜고짜 내뱉듯 말했다.
“나는 정치질하는 새끼들이 제일 싫어.”
첫마디부터가 대놓고다.
그는 내가 낙하산으로 들어온 것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너 이번 기수잖아. 고작 반년 경험 갖고 무슨 실무를 알고 세법을 해석해? 여긴 삼성 세무서야. 전국에서 날고 기는 새끼들이 오는 곳.”
어느새 주위에 감돌던 소란이 쥐죽은 듯 사라져 있었다.
타자 치는 소리도, 전화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사무실 안의 모든 직원이 지금 이 대화를 듣고 있다.
“삼성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군요.”
“당연한 것 아냐? 여기 있는 놈들은 싸가지가 없긴 하지만 실력은 인정해. 피 터지게 경쟁해서 자리 따서 왔으니까. 그래서 너는 뭘 했냐?”
장세훈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의 뒤에 있던 황민우가 발끈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어 황민우를 제지한 후 장세훈의 손가락을 잡아챘다.
“할 말 없으니까 뭐 싸움이라도 해보자는 거냐?”
“싸움은 당신이 먼저 걸었습니다만, 첫날부터 힘 빼긴 싫으니 간단히 말씀드리죠.”
나는 장세훈의 손가락을 쥐고 힘을 주었다.
꺾일 정도는 아니지만, 꽤 아픈지 장세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제 앞에 있는 게 공무원이든 기업가든 제 상관이든 신경 안 씁니다. 당신이 저한테 뭐라고 하든 그것도 제 알 바 아닙니다. 지금 제가 당신 손가락을 부러뜨리지 않는 이유는 하나, 탈세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힘으로 붙잡고 있던 장세훈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가 반대쪽 손으로 손가락을 감싸 쥐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아까보다도 거친 눈빛이다.
“열렬한 환영식 감사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타겟을 잘못 잡으신 것 같군요. 싸우고 싶으면 혼자서 싸우세요. 저는 조질 이유가 있는 놈만 조집니다.”
“조질 수는 있고?”
장세훈이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문득, 피식 실소가 나왔다.
“웃어?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냐?”
“당신이 지검장보다 조지기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서요.”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사람 놀리나.”
점점 말이 거칠어지자 옆자리의 윤지성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어어, 장세훈 씨. 처음 출근한 직원한테 뭐 하는 겁니까. 진정하고 자리로 돌아가세요.”
“넌 빠져!”
“자꾸 그러시면 징계위원회에 밀고할 겁니다.”
윤지성은 가볍게 말했지만, 장세훈은 주춤했다.
겁먹어서라기보다 진심인지 살피는 모양새다.
“이 밀고자 새끼.”
장세훈은 이를 으드득 갈더니 나를 한차례 노려보고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은근슬쩍 이쪽을 주목하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각자 일을 재개했다.
다시 키보드 소리와 프린터 소리가 사무실을 꽉 채웠다.
“후. 아침부터 일이 막 터지네요.”
윤지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리에 앉았다.
나 역시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아까 장세훈이 한 말이 신경 쓰였다.
밀고자 새끼.
윤지성의 말은 딱히 협박도 아니었다.
말 안 들으면 이르겠다는 유치한 위협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저 반응이라는 건…….
윤지성, 그는 무엇을 밀고한 것일까.
***
첫날에 그런 일이 있든 말든 나는 업무를 계속했다.
우편으로 들어온 신고서는 민원실에서 담당 직원이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담당자가 배정된다.
국세청 전자 신고 사이트인 홈택스로 신고된 것들은 자동으로 담당자가 배정된다.
재산과에서 다루는 세목이라고 해봤자 크게 상속, 양도, 증여인데도 일은 많았다.
대체 무슨 재산이 이렇게 많이 왔다 갔다 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부속서류요. 네, 지금 비상장주식 양도하신 건데 그 회사가 또 다른 비상장주식을 10% 이상 갖고 있잖습니까. 그것도 평가를 하셔야…… 아, 수정 신고 하신다구요? 알겠습니다.”
세무대리인에게 서류를 요청하는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장세훈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이선균 과장의 자리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꽤 난감해 보이는 얼굴이다.
“과장님, 200억 규모의 상속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200억이면 우리가 아니라 서울청에서 조사하겠군요. 뭔가 특이사항이라도 있습니까?”
세무서마다 재산 규모가 큰지 작은지 정하는 기준은 달랐다.
어떤 세무서에서는 재산 100억을 상속하는 신고서가 들어올 경우 호들갑을 떤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삼성에서는 100억이면 작은 축에 속한다.
물론 그래도 50억이 넘어가면 일선 세무서가 아닌 서울 지방 국세청으로 이관되긴 한다.
“납세자들끼리 분쟁이 났나 봅니다. 신고서를 취소하네 마네 하고 있어서요.”
“신고서에 취소가 어딨습니까. 무슨 분쟁이길래 그래요?”
이선균 과장은 장세훈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결재 올라온 신고서를 검토하며 도장을 찍고 있었다.
간혹 틀린 것엔 형광펜을 긋기도 했다.
“자식이 셋인데 그중 하나가 재산을 일부만 받았다고 유류분 청구 소송을 내겠답니다.”
“유류분이라…….”
이선균 과장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는 형광펜을 내려놓더니 장세훈을 올려다보았다.
“상속인 주민등록번호 불러 보세요.”
“860913-1…….”
나는 얼른 창을 열고 장세훈이 부르는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다.
곧 상속세 신고서와 스캔된 부속서류 수십 장이 주르륵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 스파크가 튀듯 숫자가 지나갔다.
[7,319,082,350]
무려 73억이다.
숫자가 마치 소리를 지르듯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보자마자 이렇게 강렬한 이미지로 떠오른 건 처음이었다.
“상속 재산이 200억인데 차남이 받은 금액은 3억이군요. 소송은 거의 확실하겠네요.”
“네. 그래서 적당히 덮고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소송에서 재산 분배가 확정되어야 제대로 신고서 작성이 가능할 테니까요.”
장세훈의 말에 나는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적당히 덮는다는 얘기가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이 신고서에는 탈세액이 73억이나 된다.
적당히 덮을 건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이선균 과장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장세훈을 불러 세웠다.
“적당히는 없습니다. 넘기게 되더라도 검토는 해 보고 넘기세요.”
“……예.”
뒤돌아서는 장세훈의 얼굴에 귀찮음이 스쳤다.
일이 많아서, 어차피 국세청에서 조사할 테니까, 어차피 재판 결과가 나오면 다시 검토해야 하니까.
이런 이유는 변명일 뿐이다.
나는 조용히 서류 하나를 뽑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찾아간 곳은 한 층 위, 6층의 운영지원과였다.
“안녕하세요. 재산세괍니다.”
담당자 책상 위에 서류를 내밀자 그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금융 정보 제공 신청서]
“이걸 왜 직접 뽑아 가지고 오셨대. 전자로 신청하시지. 잠시만요, 재산세과라고 하셨죠?”
“네.”
“거기 과장님한테 연락 좀 해 볼게요.”
“네, 그러세요.”
담당자가 이선균 과장 자리의 내선을 누르더니 짧게 몇 마디를 나눴다.
그리고 내게 수화기를 넘겼다.
“이선균 재산세과장님입니다. 바꿔 달라고 하시는군요.”
“……네, 전화 바꿨습니다. 신재현입니다.”
전화기를 들자 이선균 과장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부터 이상한 게 보이던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한번 훑어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알아서 할 테니 저야 믿습니다만, 직접 안 가도 됩니다. 저한테 오면 제가 전자결재 넣어드릴 텐데.
“제 건이 아니라 장세훈 주사보 건이라 그랬습니다.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요.”
전화기 너머에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자기 건이라면 자기가 이상한 점을 알아챘어야죠. 이곳은 실력 좋은 직원이 살아남는 곳이니까요.
짓밟아도 된다, 이선균 과장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화가 끝난 후 수화기를 돌려주자 담당 직원이 서류를 가져가며 물었다.
“원하는 금융 자료는 뭡니까?”
“거기 써 있는 피상속인의 통장 내역을 원합니다. 근 20년 치요.”
“의외로 평범한 요청이네요. 직접 들고 오셨길래 저는 특이한 건 줄 알았는데.”
한 마디를 덧붙인 직원이 내가 낸 신청서에 사인하더니 시계를 보았다.
“요청 넣고 통장 내역 오는 데 좀 걸립니다. 오는 대로 올려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
다음 날, 재산세과에서 평소처럼 배정된 건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장세훈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곧바로 내 자리로 향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씩씩대며 쿵쿵거리는 소리에 주위 직원들이 한 번씩 돌아볼 정도였다.
“야아악! 신재현!”
역시 타겟은 나다.
그리고 왜 화났는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뭐야, 장세훈 씨. 또 왜…….”
내 옆자리의 윤지성이 지겹다는 듯 말리려고 했지만 그 전에 먼저 장세훈이 내 멱살을 잡아챘다.
“어어, 장세훈 씨. 이러면 진짜로 내가 밀고 안 해도 징계감이에요.”
“징계고 나발이고 이 새끼가 내 사건에 손댔다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는 통에 귀가 얼얼했다.
자연히 다른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남의 건에 손대?”
“그건 좀…….”
“이번엔 장세훈이 화낼 만하네.”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들은 장세훈이 더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너 이 새끼 뭐야. 뭔데 내 건에 손을 대? 내가 일 못하는 것 같았냐? 아니면 뭐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이 새끼야, 대답을 하라고!”
장세훈이 내 멱살을 잡은 채 양손을 흔들었다.
보고 있던 황민우가 서둘러 다가와 힘으로 장세훈의 손을 풀어냈다.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주름진 옷깃을 다듬었다.
“너는 또 뭔데! 아, 이 새끼랑 같이 들어왔지? 너도 연줄 있냐, 새끼야?”
황민우는 장세훈을 막아서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꽤 화가 난 것 같다.
“저야 실력이 아니라 이분 따라서 들어온 게 맞지만, 이분은 연줄로 들어온 거 아닙니다. 신재현 주사보님이 손대셨다면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장세훈 주사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