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3화 (43/500)

43화. 삼성세무서(1)

-뚜르르르.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푸하!”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한숨을 토해냈다.

출퇴근 시간의 2호선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러다 압사당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밀도였다.

지옥철, 지옥철 할 때는 몰랐는데 정작 겪어 보니 알겠다.

‘대학교든 직장이든 2호선을 타라.’는 말을 하는 놈은 일단 맞아야 한다.

게다가 지하철에서 내리니 나온 지하상가는 또 미로였다.

이 시간에 내리는 걸 보면 다들 직장인일 텐데.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1번 출구로 나왔다.

첫 출근의 긴장은 출근 인파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훌훌 날아가 버렸다.

지옥철에 두고 온 모양이다.

1번 출구의 대로변.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빌딩에 삼성, 서초, 역삼 세무서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후줄근했던 용산 세무서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강남 한복판 빌딩 숲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맣고 아늑한 동사무소 같은 건물을 상상했는데.

“오셨습니까, 주사보님.”

세무서 건물 앞, 게시판 근처에 서 있던 황민우가 반갑게 인사했다.

평소보다 굳은 얼굴인 걸 보니 그도 긴장했나 보다.

“생각보다 크네요, 그쵸?”

“네. 민원실이 두 개나 있더군요.”

“맙소사.”

빌딩 입구에 회전문도 있다.

나와 황민우는 서울에 상경한 촌놈이 된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섰다.

깔끔한 로비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민원실, 왼쪽은 서류 신청실이다.

중앙 엘리베이터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5층이었죠?”

“네.”

우리가 가게 될 곳은 재산세 1과 재산 2팀.

2과 2팀까지 총 4개의 팀이 있으니 삼성 관할구역에서 처리하는 건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간다.

지옥철 때처럼 겨우 엘리베이터에 몸을 구겨 넣고 5층에서 내려서 왼쪽.

내릴 때까지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막상 문을 눈앞에 두자 다시 긴장되기 시작했다.

정기발령도 아니고 불시에 오게 되었으니 구설수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 뒤를 따라오던 황민우도 안색이 굳었다.

“긴장되십니까?”

“조금 그렇네요.”

우리 둘은 얼굴을 마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황민우의 어깨를 꾸욱 짚었다.

“용산 때처럼만 합시다. 여기도 다를 게 뭐 있겠어요.”

“그렇죠?”

정당한 과세를 한다.

탈세범을 잡는다.

당면한 내 목적을 상기한 후 문을 힘주어 열었다.

“안녕하……!”

크게 외치며 들어선 나는 사무실 안을 보자마자 인사를 삼켰다.

아무도 없다.

“……너무 빨리 왔나 본데요.”

어리둥절하며 입구에 붙은 자리 배치표를 확인했을 때였다.

구석 자리 의자가 덜컹 움직이더니 남자 하나가 일어섰다.

“흐어어. 새로 온다는 분들인가요?”

산발로 뻗쳐 부스스한 머리에 꾸깃꾸깃한 셔츠.

넥타이는 반쯤 풀어헤쳤고 단추도 한두 개 풀려 있다.

그는 뽀득 소리가 나도록 눈을 비비더니 옆자리를 가리켰다.

“7급 직원은 제 옆자리고 8급 직원은 그 옆자립니다.”

배치표를 흘끔 보니 그의 말대로다.

배정된 책상으로 다가가 보니 의외로 그는 키가 작았다.

정수리가 훤히 보일 정도였으니.

“우리 과는 야근이 많아서 아침에는 늦게 옵니다. 앞으로 일찍 안 와도 돼요. 오고 싶어도 못 오겠지만.”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 남자는 그대로 책상 위에 있던 칫솔을 챙겨 복도로 향했다.

“아무리 봐도 밤샌 것 같습니다.”

황민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오자마자 기선제압 제대로 하는군요.”

용산에 있을 때와는 업무량부터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직장인이 야근이 많다고 할 때는 일주일에 3~4일 이상 야근이라는 거니까.

남자가 자리를 비운 동안 슬쩍 배치표를 확인해 보니 그 역시 7급이었다.

이름은 윤지성.

남자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한결 깔끔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9시가 되자마자 사무실 문이 열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왔다.

마치 문 앞에서 약속이라도 하고 들어오는 것 같다.

“어. 왔군요. 이쪽으로 와요.”

마지막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이선균 과장이 나와 황민우에게 손짓했다.

놀랍게도 과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넓은 사무실 가장 안쪽에 일반 직원이 쓰는 것보다 큰 책상을 하나 두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사무실 자체가 무척 넓다.

1팀과 2팀의 공간을 나눠도 될 법한데 벽조차 세우지 않았다.

용산 세무서처럼 오래된 건물도 아니니, 지을 때 분명 의도적으로 공간을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바로 깨달았다.

밀폐된 공간 자체를 두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강남의 중심부, 사건 하나에 몇 백 억 단위의 세금이 결정되는 곳에서 그 어느 직원도 홀로 두지 않겠다는 신념마저 느껴졌다.

“알겠지만 사건 배정은 랜덤입니다. 신고서 입력되면 자동으로 담당자 지정돼서 떨어져요.”

이선균은 매우 바빠 보였다.

아니 이 사무실의 모든 사람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나 이선균 과장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나와 황민우에게는 설명을 하면서 한쪽 손으로는 서류를 꺼내고 다른 손으로는 펜을 들었다.

“결정 기한까지 과세 결정해서 올리면 됩니다. 쉽죠?”

이선균은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임을 직감했다.

애초에 ‘재산제세’는 일반적으로 접하는 소득세, 부가세, 법인세와 다르다.

양도세, 상속세, 증여세를 묶어서 ‘재산에 관련된 세금’이라는 뜻으로 재산제세라 부른다.

보통 소득세나 법인세, 부가세는 납세자가 신고서를 작성해 세무서에 내면 그걸로 끝이다.

추후에 담당자가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소명을 요구할 뿐이다.

때문에 운이 좋으면 안 걸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재산제세는 신고로 끝나지 않는다.

들어온 모든 신고서를 검토하고 세무서 직원이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과정이 끝난다.

대충 보는 서류가 있을지는 몰라도 안 보는 서류는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주섬주섬 서류철을 챙긴 이선균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장님부터 뵈러 가죠.”

***

한 층 위인 6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에서 왼쪽으로 꺾은 이선균 과장이 두어 번 노크를 하더니 냅다 서장실 문을 열었다.

-벌컥

“서장님!”

“어이 씨, 깜짝이야!”

넥타이를 반쯤 푼 채로 의자에 폭 기대앉아 있던 서장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이 과장. 그렇게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서장실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인터뷰하신 분이 왜 그러십니까.”

“그건 나 말고 전 서장이지!”

“취임사에서 전 서장을 본받겠다고 하셨으니 그게 그 뜻입니다.”

이선균 과장이 느물거리며 받아치자 서장이 이마를 ‘탁’ 쳤다.

못 당하겠다는 투다.

“그래서 이 아침부터 무슨 일입니까? 지금 몇 시인지 알죠?”

“9시 8분입니다, 서장님. 22분 후에 월요일 과장급 회의가 있고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회의 들어가기 전에 뵈러 왔습니다. 회의 들어가면 오전 중엔 시간이 안 나실 것 같아서요. 여기, 오늘부로 삼성서 식구가 된 직원들입니다.”

“아!”

서장이 짤막한 감탄사를 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서장이 뚜벅뚜벅 걸어와 나와 황민우 앞에 섰다.

책상에서 내 앞까지의 짧은 거리였지만, 서장의 눈빛이 날 한차례 훑은 것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둘이 그…….”

“7급 주사보 신재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8급 서기 황민우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자 서장이 덥석 손을 내밀었다.

“이 시기에 날아와서 힘들겠네요. 깐깐한 이 과장이랑 같이 일하려면 마음고생도 많이 할 테고.”

“많이 배우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장과 이선균 과장이 친해 보이긴 했지만, 나는 정중한 인사로 답했다.

그는 흐음, 하고 턱을 쓸더니 시계를 보았다.

“10분 정도 시간이 있군요. 우리 서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하죠.”

서장은 미리 대본이라도 쓴 것처럼 줄줄 삼성 세무서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대화 자체를 많이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무서의 장이고, 인터뷰나 연설할 일이 많았을 테니.

“우리 서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강남에 있는 인기 서들이 거의 그렇죠. 때문에 직원들의 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세수도 많이 걷혀요. 납세자의 수준도 여타 지역에 비해 규모가 크죠. 라인도 많습니다. 아, 국세청을 가르는 세 개의 거대 파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서장은 잠시 이선균 과장을 가리켰다.

“사람은 세 명만 모여도 편을 가른다고 하죠? 당연하게도 이 서 내에도 네 편 내 편 가르는 놈이 많습니다. 저는 그걸 반대하지는 않아요. 신재현 씨가 무슨 라인을 타든, 우리 서에서 이 과장이 얼마나 세력을 키우든 딱 한 가지!”

서장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힘주어 말했다.

“일만 잘하세요! 그거 하나면 됩니다.”

서장의 눈빛이 강렬하다.

나 역시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제 최우선 순위는 세무 공무원 본연의 업무입니다. 싸움은 윗분들의 몫이죠.”

“흐흠.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런 자세! 그렇죠! 싸움은 윗대가리들이 하는 겁니다!”

서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필요한 것은 힘이죠. 신재현 씨, 삼성세무서가 왜 강남역 바로 앞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서장은 여전히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꼈다.

슬쩍 이선균을 바라보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아까와 똑같이 사람 좋은 미소만 짓고 있다.

“이선균 과장! 삼성 세무서 관할을 말해 보세요.”

갑작스러운 서장의 질문에도 이선균은 일말의 틈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삼성, 개포, 율현, 자곡, 세곡, 대치, 수서, 일원동입니다. 서장님.”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삼성 세무서의 관할이죠. 자, 뭔가 이상한 거 없습니까?”

강남구의 일곱 개 동.

나도 아는 바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굳이 관할을 늘어놓은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일까.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지금 이 역삼빌딩에 들어서 있는 세 개의 세무서 중 역삼 세무서는 역삼동, 도곡동만을 관할한다.

서초 세무서는 서초구 대부분을 맡는다.

그제야 나는 눈치 챘다.

“강남역 1번 출구 앞에 세무서가 세 개나 있는데 막상 여기에 강남 세무서는 없군요.”

강남구의 신사, 논현, 압구정, 청담동을 담당하는 강남 세무서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강남역에 있지 않고, 홀로 떨어져 있었다.

물론 관할 구역인 청담동에 있으니 강남 세무서가 이상한 건 아니다.

강남역 1번 출구에 있는 삼성과 서초 세무서가 이상한 거지.

“맞습니다. 3개의 세무서를 통합해 한 빌딩에 들어오기로 했을 때 강남 세무서 얘기가 나왔었죠. 그런데 왜 삼성과 서초가 여기 오게 됐는지 압니까?”

서장이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 삼성, 역삼, 서초 세무서 서장 셋이 테니스 동호회 회원이었어요.”

들어본 적 있다.

골프는 부자들의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있어 공무원이 하기에 부적절하다.

자연스레 테니스나 배드민턴, 족구 같은 친서민적인 스포츠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심심한 공무원들이 모여서 만든 만큼 친목회가 되기 일쑤였지만.

“테니스 동호회에 국세청 본청의 결정권자가 있었던 겁니다.”

아, 그거였구나.

술자리에서 할 만한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였지만 반면 씁쓸했다.

세무서 자리를 정하는 데도 친목이 오갔다니.

“그런 얼굴 할 것 없습니다. 세상은 어느 집단이든 파워 게임이 따르는 겁니다.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그러니 배척할 것 없습니다. 도구는 다루기 나름이니까.”

처음 근무하는 공무원 실무자에게 하기엔 부적절한 말이지만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내가 이선균 과장의 라인인 것을 알고 내게 충고한 것이다.

말할 것도 없다.

이 세상엔 도둑놈이 너무 많고 그놈들을 잡는 데는 힘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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