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세무사 최용찬
용산 세무서를 완전히 나온 후, 삼성 세무서 출근까지는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다.
원래라면 이동하는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면 되지만 정상적인 이동이 아니다 보니 시간이 비는 것이다.
하루는 통째로 쉴 생각이었지만, 남은 하루는 어떻게 쓸지 바로 정했다.
[세무사 최용찬 사무소]
내가 공무원 면접을 준비할 때 삼성 세무서 이선균 과장이 소개해 준 세무사이다.
여기서 실무를 배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금전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당장 돈이 급할 때 알바비를 쏠쏠하게 줬을 뿐더러 주급으로 해 줬으니까.
솔직히 내가 한 달 반 일하긴 했지만, 최용찬 세무사는 일손이 부족해서 나를 고용한 건 아니었다.
이선균 과장의 부탁으로 쓴 거지.
-저벅저벅.
오랜만에 오르는 계단이다.
지은 지 몇 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의 5층.
보통 세무사 사무실은 접근성이 좋은 1층에 있기 마련이다.
그래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슬쩍 들어오니까.
그러나 세무사 최용찬은 5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건 굳이 오가던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로 고객이 확보되어 있다는 뜻이다.
알음알음 소개로 오는 곳이라는 뜻이고.
“안녕하세요!”
“어! 신재현 씨! 아니지, 조사관님!”
세무사 사무실 직원들은 우리 세무공무원을 모두 조사관이라고 불렀다.
우리 공무원이 일반인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어우, 그럼요. 이제 부가세도 끝났고 상반기 시즌 다 지나서 한가한 참이에요. 휴가도 갔다 왔거든요.”
세 명의 여직원들이 벌떡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나는 양손 가득 들고 온 간식거리를 손님용 테이블에 올렸다.
“뭘 이렇게 잔뜩 사 오셨대.”
“세무사 사무실에 빈손으로 오는 건 예의가 아니죠.”
여기에 있으면서 놀란 것이 있다.
이들은 간식을 매우 자주 먹는다.
거의 매일.
저들 말로는 머리를 쓰다 보니 당이 떨어져서라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작년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막내 여직원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세무사님 안에 계세요. 들어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안쪽 방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 지긋한 영감님이 실무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 나이쯤 되면 직원들에게 다 맡기고 놀러 다니는 세무사가 허다한데, 이 사람은 조금만 한가하면 책부터 들여다봤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물론 그래서 이선균 재산세과장이 소개해 준 거겠지만.
“어서 와요, 신 조사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하시네요.”
내가 실무서를 가리키자 최용찬이 허허 웃었다.
“세법이라는 게 매년 바뀌잖습니까.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제 머리가 굳어서 공부라도 안 하면 젊은 세무사들한테 금방 뒤처져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직도 신고서에 손으로 숫자 채우시는 분이.”
아니나 다를까 테이블 위엔 여러 가지 자료가 널려 있었다.
한쪽에는 손으로 쓰다 만 신고서도 놓여 있다.
요즘에는 프로그램에 넣으면 자동으로 계산되어서 나오던데 최용찬 세무사는 자신의 손을 믿었다.
“양도세입니까?”
“네. 한번 보시겠어요?”
양도세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심한 세목이다.
같은 집이라도 몇 년 보유했는가, 재건축을 했는가, 지분을 나눠 가졌는가 등 변수가 너무 많았다.
세무사들이 양도세로 돈을 버는 이유다.
“아. 컨설팅 중이셨군요.”
최용찬의 멋들어진 필체로 A4용지에 쓰여 있는 것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였다.
이미 양도한 것이 아니다.
갖고 있는 주택 3채 중 어느 것을 몇 월에 팔고, 또 다른 것을 몇 월에 팔고.
그렇게 1안, 2안, 3안을 적어 두고 각각 세금을 계산하고 있었다.
“서울권에 3채라 중과세 대상이고…… 이건 매매 사례가가 점점 오르고 있군요.”
“이론상이라면 가장 금액이 큰 주택을 남겨 두는 것이 이득이죠. 1세대 1주택은 비과세니까. 그럼 신재현 씨라면 어느 걸 가장 먼저 팔겠습니까?”
나는 세 채의 주택을 훑어보다가 하나를 쿡 짚었다.
“이겁니다.”
“호오, 왜죠?”
“1번 주택은 가격이 오르고 있으니 나중을 기약해야 하고, 3번 주택은 가격이 너무 높습니다. 1세대 1주택 비과세 혜택을 받아야겠지요. 저라면 2번을 팔겠습니다.”
세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정부에서 긴급 완화 정책을 내놨다고 뉴스에 나오더군요. 이번 연도 말까지 양도하면 다주택자에게도 장기 보유 공제를 적용하겠다고 했죠. 올해 말까지는 팔아야겠군요.”
“모범 답안입니다.”
세무사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나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았다.
아까 언뜻 증여세 계산식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범답안이라는 말씀은…… 세무사님은 다른 견해가 있으십니까?”
최용찬 세무사가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다른 견해는 아닙니다. 다만 공무원과는 다르게 세무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요. 이번 의뢰인의 경우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고려해 보라고 조언했지요.”
“그럼…….”
“자식에게 부담부증여를 하라고 추천할 겁니다.”
“아!”
나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지금 부모가 집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나중에 상속세가 나올 것도 생각한다.
극히 세무사다운 사고방식이었다.
“또 하나 배웠군요.”
“세무 공무원이 이런 컨설팅을 고려할 필요는 없지요.”
세무사는 씨익 웃으며 책을 덮더니 자료를 몰아서 한쪽으로 치웠다.
마침 막내 직원이 커피와 다과를 갖고 온 참이었다.
종이컵이 아닌 찻잔을 내온 걸 보니 나름 신경 써 준 모양이다.
간식은 내가 사 온 롤케이크다.
“신재현 씨도 요즘 잘 지내시나 봅니다.”
“이래저래 사고치고 다녔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던 세무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사고는 사고였죠. 뉴스에 그 난리가 났으니.”
“아. 보셨군요.”
“그 난리가 났으니까요. 우리 쪽 업계에도 소문이 파다합니다. 슬슬 싸움이 격화되는 것 아니냐고. 내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요. 저야 그냥 세무서 직원이라서요. 해야 할 일만 할 뿐이죠.”
“현명한 대답입니다.”
아마 일부러 알면서도 대답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물론 짐작은 하고 있지만 내가 함부로 입을 놀릴 상황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해야 할 일만 하겠다는 건 진심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직원 하나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안에 손님이 있는 걸 알고도 들어오는 거라면 급한 일일 것이다.
“저, 세무사님…….”
“네. 말씀하세요.”
나와 세무사 눈치를 보던 직원이 냅다 종이 한 뭉치를 내밀었다.
“자꾸 여기서 연락 오는데요. 빨리 결정해 달래요.”
직원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서류를 건네받은 세무사도 덩달아 눈썹을 찌푸렸다.
“여긴 아직 더 고민을 해 봐야 하는데…… 거기 대표가 뭐라 하던가요?”
“월 기장료 55만 원이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요.”
“허 참, 기장료 올려 달라고 시위하는 게 아닌데요.”
세무사가 한 장 한 장 서류를 넘겼다.
언뜻 보아하니 재무제표다.
“세무사님. 무슨 일 있습니까?”
“아. 별일은 아닙니다. 그냥 기장 의뢰가 들어왔는데 상담하다 보니 좀 껄끄러워서 재무제표를 갖고 오라고 했거든요.”
“뭔가 이상한 곳입니까?”
“음…….”
세무사가 고심하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
적당한 말을 찾고 있는 듯했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이쪽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느껴지는 감이라고 할까요. 업종이 부동산 컨설팅인데, 뭐 지난 2년간 매출 없는 건 이해가 간다 쳐요. 근데 가지급금, 가수금 금액이 심상치 않아요.”
가지급금이라면 회사에서 이유 없이 나간 돈을 말하고, 가수금은 회사에 이유 없이 들어온 돈을 말한다.
그 둘의 금액이 심상치 않다는 건 이 회사가 견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뜻했다.
돈으로 장난을 치고 있다는 뜻이니.
세무사는 말을 이었다.
“매출 없는 회사가 돈을 융통하려면 가지급금, 가수금이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사장이 자기 돈을 밀어 넣기도 하고요. 근데 세무사 사무실을 자주 바꾼 건 기분이 나쁘네요.”
물론 세무사 사무실을 갈아치웠다면 그 첫째 이유는 세무사 사무실에 문제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세무사 사무실을 자주 바꾼다는 건, 회사에서 사고가 자주 터져서일 확률이 높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감당할 수 없어서 거래를 끊은 것이다.
“제가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세무사의 말대로 경험에 의한 감은 무시 못 할 능력이다.
그리고 능력이라면 나도 하나 내세울 게 있었다.
바로 내 눈이다.
2주간 수천 건의 신고서를 눈이 빠져라 훑어보았다.
처음엔 눈에 힘을 주고 집중해야 군데군데 지직거리는 숫자가 희미하게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천 건쯤 봤을 때는 숫자가 조금 진해졌고, 2천 건쯤 봤을 땐 지직거리는 숫자가 줄어들었으며, 3천 건쯤 되자 그다지 힘들이지 않아도 숫자가 떠오르게 되었다.
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 장부만 봐도 말이다.
“여기 있습니다.”
세무사는 자료를 내게 건넸다.
아까도 그랬지만 지금도 별다른 고민 없이 순순히 자료를 보여 준다.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세무사가 타인에게 이런 자료를 보여 주는 건 안 될 일이지만, 그만큼 날 믿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내가 아니라 이선균 과장을 믿는 거겠지만.
나는 재무제표를 받아들고 테이블 위에 한 장씩 펼쳤다.
과연 재무제표에는 교묘하게 숨겨두었지만, 합계 잔액 시산표를 보니 오고 간 가지급금이 많았다.
재무상태표에 안 나오게 숨긴답시고 끙끙댔을 전 세무사 사무실의 고생이 눈에 훤히 그려졌다.
-사락.
종이를 펼친 후 좌에서 우로 스윽 훑었다.
속독하는 사람은 스캔하듯 머릿속에 이미지가 박힌다고 하던가.
내 경우엔 이미지가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숫자가 붕 떠올랐다.
하나가 아니다.
두 개였다.
[5-8,43-,--0]
[9-,535,-1-]
하나는 5억이고 하나는 9천만 원이다.
둘 다 흐릿했지만, 직감으로 알았다.
이 회사의 탈세액과 사장의 탈세액이다.
“세무사님. 다행히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하지요?”
“예. 이 건은 안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종이를 다시 한데 그러모아 세무사에게 넘기며 또박또박 강조해서 말했다.
너무 확신해서인지 세무사가 물었다.
“혹시 명확한 근거가 있습니까?”
“아니요. 저도 감입니다. 하지만 저라면 머지않아 여기에 소명을 요청할 겁니다. 자료가 명확하지 않다면 세무조사로 넘어가겠죠.”
경력이 채 1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 세무 공무원을 믿을 것인가.
세무사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눈에 힘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조사관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혜림 씨, 이 건은 거절한다고 전해 주세요.”
“월 55만 원인데도요?”
“예. 다음에 전화가 와도 응대하지 말고 끊어 버려요.”
“네. 알겠습니다.”
여직원은 어리둥절하며 재무제표를 받아 갖고 나갔다.
감만 갖고 의뢰를 쳐내다니.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무사와 나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회사의 소식을 들은 것은 정확히 한 달 후, 세정일보 인터넷 뉴스에서였다.
[소규모 자금 세탁 회사 십여 곳, 세무조사 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