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물밑에서(3)
“……과장님?”
내가 놀라며 물었지만, 이선균 재산세과장은 손가락 하나만 들어 내 말을 막았다.
당장 삼성 세무서에 있어야 할 사람이 대체 왜 여기에 왔단 말인가.
“5년 만인가요? 서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아, 이선균 과장. 인천에 있을 때 보고 처음이군요. 오랜만입니다.”
서장과 이선균 과장이 친근하게 인사했다.
공무원 사회가 발령으로 계속 돌다 보니 좁긴 하다.
그래도 이 둘이 안면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요즘은 어디서 일하나요?”
“삼성 세무서에 있습니다. 재산세과장을 하고 있지요.”
“아, 삼성. 실력에 맞는 곳으로 갔군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장과 이선균.
둘은 어딘지 닮아 보였다.
어딘지 사람을 방심하게 만드는 미소라든지, 부드러운 존댓말이라든지.
그러나 왠지 서장이 이선균 과장을 경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입니까? 혹시 다음 발령지가 여깁니까?”
“으잉? 서장님,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제가 나가야 됩니까?”
우리 용산서의 재산세과장이 과장된 몸짓을 했다.
그도 이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챈 것 같다.
“우리 과장이 나가는 게 아니고 제가 나가는 거겠죠. 아니, 이선균 과장 경력에 서장은 좀 이른가……? 하여튼 이 과장. 다시 묻죠, 여긴 어쩐 일입니까?”
이번엔 질문만 들어도 날 선 것이 느껴졌다.
청장의 기자회견과 저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때문에 그런가?
그렇다기엔 서장답지 않았다.
“제 사람을 데려갈까 해서 왔습니다.”
“제 사람이라…….”
이선균 과장의 말에 이 방에 있던 다른 과장들의 안색이 변했다.
용산 세무서에 와서 용산서의 과장들 앞에서 제 사람이라.
어떻게 봐도 싸움을 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서장님도 짐작은 하고 계셨을 겁니다. 제가 사람을 하나 키우고 있었다는 걸.”
“……계속하세요.”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서장을 보았다가 조사과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조사과장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공무원이란 조직이 폐쇄적이고 소문이 빠르구나.
“원래는 더 조용하게 소중히 키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죠. 숨길 수 있는 인재가 아니더군요.”
이선균 과장의 미소가 씁쓸하게 변했다.
미소가 무너지는 순간, 약간의 초조함이 비쳤다.
“윗분들이 눈독들이기 시작해서 말입니다. 좋게는 아주 윗선에서부터, 나쁘게는 서울청과 중부청까지요.”
“서울청과 중부청이라구요?”
서장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서울청장은 다음 대 국세청장에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한창 위만 쳐다볼 사람이 왜 일선 세무서에 관심을 가집니까?”
서울청장과 중부청장, 본청 조사국장.
이 셋이 권력을 쥐기 위해 대립하는 건 전국의 세무 공무원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 칼부림을 하든 권력다툼을 하든 그건 물밑의 일.
대다수의 일선 서 직원들은 관심도 없다.
서장이 물은 것은 그것이다.
왜 다른 파벌의 수장이 세무서 직원에게 관심을 가지냐.
“오늘 아침 우리 국세청장님께서 그런 사고를 치셨잖습니까.”
“아.”
“사실 그 아이디어는 저희 윗선이신 민치호 조사국장님이 내신 겁니다. 좋은 기회이니 큼지막하게 발을 내디뎌 보신 거죠. 여기 있는 신재현 씨는 우리 민치호 국장님의 사람이고 국세청장님께 직접 비밀 오더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당연히 국장님 어깨에 힘이 실리지 않겠습니까.”
내 직속 상관인 용산 세무서 조사과장 김명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럼…… 눈독을 들인다는 말은, 다른 두 파벌에서 공격이 들어올 거라는 뜻이로군요.”
“정확합니다. 기존에는 세 파벌이 적절히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와 다른 하나가 싸우면 남은 하나가 어부지리를 얻게 되니 서로 싸움을 자제하는 모양새였죠.”
“그런데 그 힘의 균형이 기울었으니 다른 두 파벌이 필사적이 될 것이다?”
“예.”
이선균 과장이 끄덕이자 서장이 침음성을 흘렸다.
“뭐 복잡한 건 윗선에서 알아서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직원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능력 있고 정신머리 똑바로 박힌 직원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무원 중에서 찾기는 더더욱 쉽지 않고요.”
“저희가 지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이선균 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위에서 날아오는 우박을 대신 맞아주는 게 중간 관리자의 할 일입니다. 서장님, 신재현 씨를 제 밑으로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이선균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도록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선균 과장의 말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서장과 과장 모두를 무시하는 것과 같았다.
너희들은 보물을 손에 쥐고 있어도 지킬 능력이 되지 않으니 내게 넘겨라, 라고.
무거운 침묵 끝에 힘겹게 입을 연 것은 역시 서장이었다.
“……속사정을 다 얘기해 준 이유는 뭡니까?”
이선균은 고개를 들고 난처하지만 분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간 저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죄송하지만 여기 있는 세 분의 경력 사항을 조사한 것이었지요. 세 분은 파벌과 연관이 없으며 매우 깨끗하시더군요. 그리고 그간 부하직원을 어떻게 보호하셨는지 봤습니다.”
이선균의 시선이 잠깐 내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런 분들이 더러운 파벌 싸움에 끌어들이는 건 원치 않습니다.”
서장이 묵묵히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확고한 눈빛이 되어 있었다.
“내년 정기발령까진 아직 반년 정도 남았습니다. 이동시킬 힘이 됩니까?”
“저희 조사국장님을 닦달해서라도 성사시키겠습니다.”
이선균이 힘주어 말했다.
서장은 나를 보내기로 결심한 것 같다.
“할 거면 가능한 한 빨리하세요. 기자들은 냄새를 잘 맡는 무서운 족속입니다. 저녁 뉴스에 우리 직원 얼굴이 나가는 건 서로 원치 않잖아요.”
“예. 최대한 빨리 조치하겠습니다.”
이선균은 다시 한번 깊게 고개를 숙였다.
서장에게 인사를 건넨 그가 이번엔 내게 말했다.
“그런 이유로 신재현 씨는 안심하고 이동 준비해 주세요.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예.”
솔직히 세무서의 중심부로 불리는 삼성 세무서는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좀 더 빨리 가게 된다고 해서 내가 거절할 리는 없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선균 과장이 나가자 서장실 안은 아까와는 다른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저…… 서장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잘됐군요. 삼성서라니.”
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삼성은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내가 걱정하는 것은 여기 있는 세 명의 상사였다.
괜히 나 때문에 찍히는 건 아닌가.
“제 걱정을 하는 게 아닙니다. 혹시 세 분께 피해가 올까 무섭습니다.”
서장이 놀란 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이거 너무 얕보였나 봅니다.”
“서장님, 그게 아니라…….”
“하하하. 압니다, 알아요. 신재현 씨 걱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것까지 포함해서 걱정 말라고 한 겁니다. 나도 공무원 밥 몇 십 년 먹은 사람이에요. 나야 내년까지만 일하면 되고.”
“저도 승진은 포기한 만년 과장입니다, 서장님. 으하하핫!”
재산세과장이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파벌 싸움에 관심 없는 우리 같은 일반 직원들은 불똥 튀고 말고 할 것도 없어.”
“과장님.”
내가 힘없이 재산세과장을 부르자 그가 탕하고 내 등짝을 쳤다.
“허리 좀 펴! 너는 잘했어! 이 서를 지켜가는 건 우리의 일이다. 우리를 좀 믿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걱정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나는 미련을 떨쳐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장님, 두 분 과장님. 그동안 도와주시고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우리야말로 고맙죠.”
“오냐. 수고했다.”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조사과장이 무심하게 한 마디를 남겼다.
“위로 올라가라. 끝까지 올라가. 너라면 국세청도 바꿀 수 있을 거다.”
***
암암리에 이동이 결정되었지만 나는 평소처럼 업무를 계속했다.
조사과의 일이라면 당연히 세무조사다.
소득세과에서 넘어온 1년 치 개인 경비 조사를 마무리했을 때, 과장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은 주지 않았다.
[9월 비정기 인사발령]
-7급 주사보 신재현 : 삼성 세무서 재산세과
-8급 서기 황민우 : 삼성 세무서 재산세과
마침 내부 게시판에 이동 공고가 뜬 날이었다.
미리 해 둔 내 부탁대로 황민우도 함께 이동이 결정되었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발령.
역시 조사국장의 힘이다.
이동은 3일 후.
세무조사는 보통 1주일을 잡으니 새로 일을 잡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결국 황민우와 나는 그간 했던 일의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개인 물건을 챙겨 조사과를 나왔을 때였다.
“신재현 씨!”
“아, 유지현 씨. 안녕하세요.”
부가세과 유지현이 조사과 유리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전에 봤던 같은 부가세과 동료 직원과 함께 있었는데, 유지현이 머뭇거리자 동료가 쿡쿡 찔렀다.
“뭐 해, 얼른 가 봐.”
뒤를 떠밀리듯 한 걸음 앞으로 나온 유지현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얼굴을 붉혔다.
잠깐, 얼굴을 붉혀?
이 분위기는 설마.
“신재현 씨, 삼성으로 가신다면서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너무 빠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고백하는 건데.”
“고백이요…….”
역시나였다.
유지현은 처연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거 알아요? 신재현 씨한테 눈독 들이는 여직원들 많은 거. 근데 연초에 소득세과 과장님하고 계장님 날려 버린 후로 무서워서 접근을 못 하는 애들이 많았어요.”
“그랬군요.”
“알고 보면 정의롭고 다정한 사람인데. 그래서 하반기에 천천히 꼬셔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네요. 신재현 씨,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랑 사귈래요?”
올 게 왔다.
도발적으로 날 바라보는 유지현을 보며 나는 고민했다.
결론은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솔직하게 말하자.
“유지현 씨. 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탈세범들도 때려잡을 거고 비리 공무원들도 같이 때려잡을 겁니다.”
유지현에게 말을 할수록 내 안에서도 생각이 정리되어 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앞으로 뭘 할 것인가.
명확한 목표가 열망이 되어 마음속에 뚜렷하게 피어올랐다.
“국세청을 세금 값하는 집단이 되도록 만들 겁니다. 상대를 봐 가면서 누구는 세금 때리고 누구는 봐주고, 그런 일 없게 만들 거예요. 그것이 가능한 자리까지 올라가서, 국세청을 깨끗하고 공정한 기관으로 바꿀 겁니다.”
미약했던 욕망이 점점 크게, 훨훨 타올랐다.
단순히 탈세범을 때려잡는 것을 넘어 국세청을 바꿔내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은 제 우선순위에 연애는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유지현을 지나치고 그녀의 동료 직원을 스쳐서 황민우에게 다가갔다.
“……그것도 합쳐서 좋아한 건데.”
뒤에서 자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가 났지만, 일부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건 유지현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황민우는, 그렇게 용산 세무서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