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0화 (40/500)

40화. 물밑에서 (2)

송무국장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이 미친……! 아예 대놓고 힘을 실어 달라고 하지 그러십니까?”

세 파벌 중 하나의 수장, 민치호 조사국장이 아끼는 칼이 일선 서에서 휘둘러졌다.

그것만으로도 어떤 의도가 있나 신경이 곤두설 만한데, 거기에 청장이 나서서 아는 척을 한다면.

민치호에게 실릴 힘은 가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둘이 손을 잡은 것을 넘어서 청장이 민치호를 다음 청장으로 점찍었다는 소문이 돌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하셔서 답을 드렸을 뿐입니다. 누가 저한테 힘을 실어 달라고 했습니까? ‘청장님의 혜안으로 세무서 조사과 직원이 비리 공무원을 성공적으로 적발했다.’ 청장님께 공을 드리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청장님의 공입니까! 조사과 직원에게 힘을 실어 주는 거고, 나아가서는 민 국장님의 힘이 될 게 아닙니까!”

송무국장이 테이블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나 민치호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그럼 송무국장님은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우리 공무원은 아래에서 일이 터지면 위가 옷을 벗는 법입니다. 알았냐 몰랐냐는 중요하지 않죠. 여기서 비난을 받지 않는 방법은 하나, 청장님의 깊은 뜻이 있는 것뿐입니다.”

“……일리가 있어.”

청장이 언제 화냈냐는 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본 송무국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청장님! 깊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민치호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실 수도…….”

“그럼 송무국장이 직접 가서 윗분들한테 설명할 거야?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송무국장이 입을 다물었다.

청장의 안위를 책임져 줄 게 아닌 이상 더 이상 반대하면 청장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꽉 다문 입가가 푸들푸들 떨렸다.

“당장 기자 불러. 내일 아침 헤드라인으로 ‘세무서, 비리의 온상?’이 뜨기 전에 ‘국세청장이 비리 공무원에게 칼을 뽑다.’ 이런 걸 띄워야 할 거 아냐.”

“예. 처리하겠습니다.”

국장급 일원들이 이때가 기회다 하고 일제히 일어섰다.

청장도 일부러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리의 모두 알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웃고 있는 조사1국장이 승리자임을.

이 회의실을 나가는 순간부터 권력의 추가 크게 기울게 될 것을.

***

해가 하늘에 떠 있을 때 집에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다.

어머니와 함께 노을을 보는 건 더더욱 오랜만이었다.

자리에 몸져누웠던 어머니는, 이제 집안일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되었다.

현대 의학이란 매우 놀라운 것이어서 적절히 약을 쓰자마자 기적처럼 상태가 호전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약을 달고 살아야 하지만 이게 어딘가.

“아들이랑 해지는 것도 보니까 좋네. 진즉에 이럴걸 그랬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형이 있을 적에는 듣지 못했던 목소리다.

부모님의 모든 기대와 애정은 형, 신우현에게 향했으니까.

형이라는 놈이 집을 뛰쳐나간 지금, 남은 자식인 내게 모든 애정을 쏟는 것은 죄책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죄책감이라도 상관없었다.

어머니가 드디어 나를 봐주게 됐으니까.

모든 면이 형에게 부족한 둘째 아들.

지금도 어머니는 형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마음이 심란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그동안 피해 왔던 화제를 꺼냈다.

“나 몇 주 전에 형 만났어.”

“……우현이를?”

어머니의 시선은 여전히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눈동자가 정신없이 떨렸다.

애써 담담한 척하지만 애환과 불안감이 옆모습에 떠올랐다.

내가 말해 놓고도 후회가 들었다.

“잘 먹고 잘살고 있더라. 기업인 대상으로 하는 자선 경매에 왔더라고. 비서까지 데리고.”

“비서를 데리고 다니는구나.”

집 나간 자식인데도 어려움 없이 잘살고 있다는 얘기에 안도감이 먼저 드는 것은 부모 마음인가 보다.

어머니는 한결 편안해진, 그리고 씁쓸한 얼굴을 했다.

“또 싸운 건 아니지?”

어머니가 본 우리 형제의 가장 마지막 모습은 코피가 터질 때까지 서로 주먹다짐하는 것이었으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도 나이 먹은 사회인인데 설마 그런 자리에서 쥐어 팼을까.”

“잘했어. 너랑 우현이랑 싸우면 네가 지잖니.”

“응? 저번엔 내가 이겼는데. 내가 최소한 5대는 더 때렸어.”

“경비원한테 네가 쫓겨난다고.”

어머니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묻어났다.

이젠 장난도 칠 심적 여유가 되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형은 엄마가 걱정 안 해도 마음껏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

“정말로 걱정 안 해도 될…….”

“정말이야.”

어머니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라앉아가는 햇빛에 반사된 눈동자는 세월의 흐름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그 눈길을 정면으로 받은 나는 말이 턱 막혔다.

“이미 떠난 놈, 굶어 죽지만 않으면 됐지. 내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후회만 남을 뿐이지.”

나는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결국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조용히 시간만 흘렀다.

건물 사이로 해가 넘어가고 사위가 어둑해지자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녁 먹자.”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한 마디였다.

***

내가 뉴스를 튼 것은 오후 10시가 지나서였다.

오래 움직이면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먹은 것을 치우고 집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막 TV를 틀었을 때 화면에 다짜고짜 기자회견이 나왔을 땐 깜짝 놀랐다.

[생방송 : 정상훈 국세청장 긴급 기자회견]

분명히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던 건 서장이었는데.

그새 청장까지 TV 앞에 끌려 나올 정도로 일이 커졌단 말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소리를 키웠다.

-저희 국세청은 자체적으로 감사기관을 두고 있으며 항상 투명하고 공정하게 과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리 공무원 적발 사건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공무원 말투다.

청와대 선임행정관직에 있다가 국세청으로 오면서 서울청장, 차장을 거쳐 청장에 오른 인물이다.

사내 정치에 능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러나 이번 비리 공무원 적발 건은 우연히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세무서 내에 일명 봐주기 식 과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저는 특별반을 편성하여 용산 세무서 전 직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게 되면 조사에 난항이 있을 수 있어 비밀리에 진행한 것입니다.

뭐라고?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청장은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정말로 원래부터 있었던 계획을 발표하는 것처럼.

-세법을 엄중하게 적용하되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우리 과세관청에 있어 비리 공무원의 존재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청장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호소하고 있었다.

-썩은 부분을 빠르게 찾아내어 즉시 잘라내는 것 또한 국가 기관의 소임일 것입니다. 이번 일례는 저희 국세청의 정화 기능이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국세청은 투명하고 엄정하게 유지될 것을 감히 약속드립니다.

내가 그 조사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나도 솔깃할 정도의 기자회견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웬 기자회견인가 했더니 이 정도면 왜 정치에 능하다는 평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이번 조사는 전부 청장님의 의도대로였단 말씀입니까?

-당연합니다. 모두 계획된 일입니다.

-왜 용산 세무서에서만 진행하셨습니까?

-이런 류의 조사는 일선 서의 믿을 수 있는 직원에게 맡겨야 합니다. 용산 세무서의 경우 마침 제가 믿을 수 있는 유능한 조사관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시범적으로 용산 서에서 먼저 자체 조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분명 급작스럽게 열린 기자회견일 텐데도 청장의 대답엔 막힘이 없었다.

기자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이 모든 일은 청장의 큰 그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켜고 뉴스 탭에 들어갔다.

[속보] 국세청장, 엄정한 정화의 뜻 밝혀.

[속보] 국세청, 깨끗하고 신뢰성 있는 조직 만들겠다.

[상보] 국세청 대대적인 개편 암시하나?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새로운 속보가 올라왔다.

그중 한 기사로 들어가니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밥값 하는 애들은 우체국하고 국세청이다. 얘네는 세금으로 월급 받아도 됨.

-고인물은 썩는 게 맞지. 그걸 처리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거고. 그런 의미에서 국세청장은 큰 건 한 거다.

-쟤 선거 나옴?

-솔직히 정부에 비리 공무원 존나 많지 않냐? 보고 좀 배워라.

-감사고 나발이고 세무 조사 좀 그만하라고 미친놈들아! 3억 때려 맞았다!

-그건 니가 탈세해서구연. 국세청 일 잘하네.

분명 몇 시간 전 올라온 기사에는 세무 공무원은 다 밥벌레라느니, 징수하는 꼬라지가 일수꾼이 따로 없다느니 하는 부정적인 댓글만 달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세청을 칭찬하는 댓글이 순식간에 좋아요 수백 개를 받고 베스트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 조사반 누구임? 표창장 하나 줘라.

-그거 갖고 표창장 주는 거면 감사과는 표창장으로 체스 해도 되겠네.

내 신상을 알고 싶어 하는 댓글도 많았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뒤바뀐 여론.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소름이 돋았다.

이게, 정치구나.

-조사자의 신원은 밝힐 수 없습니다. 성실하고 실력 있는 세무 공무원입니다.

-다음 인사개편 때 승진 대상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모든 공무원들은 본인의 능력과 경험에 맞는 자리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TV에는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얼굴의 청장이 대답하고 있었다.

***

서장실.

혹여나 멀리 있는 건물에서 망원렌즈에 찍힐까 싶어 창문에는 블라인드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사태군요.”

소파에 앉은 서장이 지친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빳빳하게 다린 정장을 입은 채 소파에 축 늘어졌다.

아침부터 기자들에게 시달리느라 피곤해 보였다.

하긴, 세무서 밖의 기자들은 새벽부터 나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했다.

수도 어제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우리 능구렁이 청장님이 이런 감각은 참 좋아요.”

서장은 등받이에 고개를 푹 묻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설마 분위기를 그렇게 바꿔 버릴 줄은 몰랐네요.”

“덕분에 저희도 옷 안 벗고 넘어가잖습니까. 좋게 생각하세요, 서장님.”

재산세과장이 허허 웃으며 서장을 위로했다.

그러나 재산세과장도 정말 기뻐서 웃는다기 보단 허탈함이 더 강해 보였다.

“그래요. 어찌 되었든 서는 깨끗해졌고 높으신 분은 좋아하시고 저는 안 잘리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결말이니 순수하게 기뻐합시다.”

서장이 머리를 들고 자세를 바로 하더니 내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신재현 씨 덕분입니다.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캬.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소득세과 날려 먹을 때부터 얘는 해낼 줄 알았다니까요!”

재산세과장이 내 등을 펑펑 두드렸다.

등짝이 얼얼할 지경이었지만 슬쩍 쳐다본 재산세과장의 얼굴이 너무나 해맑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다. 다른 놈들에게 경고의 의미도 됐겠지.”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조사과장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용산서에서는 당분간 함부로 뒷돈 받는 놈들은 안 나오겠죠.”

뒷돈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11명의 비리 공무원들을 체크하면서 계속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뒷돈을 받긴 받은 겁니까?”

“물론 받았지. 대가 없이 탈세를 방조하면 미친놈 아닌가.”

그럼 더더욱 이상하다.

뇌물을 받았으면 내 눈에는 탈세액이 보여야 할 텐데.

“근데 파렴치하게도 가족 명의로 받았어.”

“가족이라구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렇게 고민했는데 직접 돈을 받은 게 아니라서 탈세액이 적은 거였다니.

가족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면 진즉에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잠깐, 백혜영 때는 차명도 전부 보였는데?

“본인이 직접 받은 것도 좀 있긴 한데 많진 않아. 불법 저지른 주제에 간은 작은가 보지. 몇십만 원 선이야.”

“가족 명의로 받은 것도 몇백에서 많아야 천만 원 선입니다. 이미 생활비로 다 썼다고 하고요.”

실질적인 소득이 가족에게 귀속된 걸로 됐나 보구나.

백혜영은 차명이 말 그대로 금고 역할이라 실질적 주인인 백혜영에게 보였고, 이번엔 같이 돈을 나눠 쓴 가족들에게 귀속된 것이다.

그래서 내 눈에 보인 탈세액이 50만 원 정도였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탈세액이 보이는 건 편한데 마냥 만능은 아닌 듯하다.

이 눈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벌써 조사한 겁니까? 어제 자료 넘겼는데요.”

“네가 다 정리해서 줬잖아. 그렇게 편하게 자료 받아먹고도 일 처리가 늦으면 옷 벗어야지.”

조사과장은 왠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그도 들뜬 걸까.

아직도 내 어깨에 손을 걸친 재산세과장의 팔이 슬슬 무거워지려는 시점이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허억!”

서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나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 전체적으로 호감 가는 인상을 한 남자.

삼성세무서 재산세과장 이선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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