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9화 (29/500)

29화. 유령회사(2)

오피스텔은 주택가에 있었다.

사무실이 밀집한 구역에서 더 안으로 들어간 곳이다.

대낮의 주택가라 그런지 인적은 드물었다.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6층짜리 자그마한 오피스텔의 꼭대기 층.

낡은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녹슨 철문이 나를 반겼다.

철문 옆에 자그마한 간판은 있지만, 손님을 맞이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괜히 혼자 왔나.

황민우는 나름대로 조사하느라 바쁘기에 내버려 두고 온 건데, 회사에 방문한다는 명분이니 별일은 없겠지.

나는 슬쩍 철문을 열었다.

-끼이익.

녹슨 쇳소리와 함께 남자의 험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절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남자는 날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잔뜩 인상을 썼다.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잠시 넋이 나갈 정도로 머리가 핑 돌아갔다.

저 숫자, 무려 20억에 달한다.

저게 매출도 안 나오는 회사에서 나올 수 있는 탈세액인가?

“당신 뭐냐고.”

멍하니 서 있자 남자가 다시 캐물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아~ 세무서!”

험상궂은 표정이 순식간에 풀렸다.

그러나 적의에서 시큰둥한 얼굴로 바뀌었을 뿐,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저희 쪽 직원이 부가세 납부 고지서를 보냈다고요. 그래서 확인할 겸 직접 방문 드렸습니다. 사장님 맞으시죠?”

“아, 예.”

살갑게 말하며 사무실 안을 빠르게 훑었다.

약 30평 정도 되는 탁 트인 공간에 소파와 커다란 테이블, 의자.

안쪽에는 분리되어 있는 방이 하나.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세무서 누굽니까? 왜 왔어요?”

“아, 실례합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안쪽을 더 둘러보고 싶으니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나는 명함을 천천히 뽑아 건넸다.

“조사과?”

남자의 기세가 한층 누그러졌다.

세무서 내부의 정확한 업무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조사과라는 이름만 들으면 수사 기관인 줄 안다.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무실로 쓰는 것 맞으시죠?”

“아, 당연하죠. 사진 보냈잖아요.”

“세무서에 보내신 사진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책상하고 의자가 찍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대놓고 남자의 어깨너머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책상은 어딨죠?”

“이쪽 벽에…….”

남자가 창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 하나를 가리켰다.

이것 봐라.

자그마한 철제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는 딱 봐도 옛날 모델이다.

책상 위엔 서류보다는 담뱃재와 음료수 캔 등 쓰레기가 많았다.

“스타트업이시죠? 뭘 연구하십니까?”

“모바일 앱 개발합니다.”

“제가 개발 쪽은 잘 모르지만 저런 걸로도 개발이 가능합니까?”

남자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건 아니어서요.”

“저야 잘 모르니 그건 넘어가겠습니다만.”

사무실에는 이 남자밖에 없었는데 사무 공간이라기엔 너무 휑했다.

아니, 사무실이라면 갖춰야 할 것들이 없다.

나는 성큼성큼 남자를 제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어!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왜요? 들어가면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 이렇게 멋대로 들어와도 되냐고요.”

남자가 항의했지만 나는 가볍게 끄덕였다.

“네. 됩니다. 조사과의 업무라서요.”

물론 정상적으로 넘어온 건은 아니다.

원래라면 내부에서 절차를 밟은 후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잘못된 게 없어서 ‘조사하겠습니다’ 하고 보고 올릴 명분도 없었다.

그래서 그 명분을 찾기 위해 직접 살펴보러 나온 것이다.

“평소 세무서의 일반 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저희 조사과로 넘어옵니다. 사장님, 제가 왜 왔을 것 같습니까?”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뭐야?”

남자가 큰소리를 쳤다.

나 역시 명확한 근거를 갖고 나온 게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야 했다.

먼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자.

“사장님, 바지사장 세워 놨죠?”

“뭐요?”

나는 법인의 등기부 등본을 꺼냈다.

거기에 쓰여 있는 대표이사의 주민번호 앞자리는 82로 시작한다.

30대 후반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남자는 딱 봐도 50대였다.

이 남자는 서류상 등록된 사장이 아니었다.

“나이가 다르잖아요, 나이가. 아니면 주민등록증 보여 주시겠어요?”

남자가 주춤거렸다.

그가 뭐라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거기다 4년 동안 매출이 단 1원도 없으시더군요.”

“우리가 스타트업이라 그래요.”

“그래요? 그럼 지금 얼마나 완성하셨는지 과정이나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기업 비밀이라 보여 드릴 순 없는데요.”

“제가 언제 프로그램 전체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까? 4년이나 연구하셨으면 실패작이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남자가 말문이 막혔다.

나는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따졌다.

“그리고 매출이 없는데 회사는 어떻게 유지합니까? 설마 금수저라 취미 생활이다, 이런 건 아니시겠죠?”

“취, 취미 맞습니다. 진지하게 돈 벌 생각은 없어서요.”

일부러 취미라는 말을 꺼내 유도했더니, 그대로 걸려든다.

남자는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 못했다.

“지랄하지 마시죠.”

“……네?”

“이 회사의 대표이사와 등기이사 모두의 소득세 신고 내역을 보고 왔습니다. 희한하게도 신고된 것이 없더군요. 회사도 아무것도 없이 아주 깔끔해요. 그럼 대체 돈은 어디서 나서 생활하시죠?”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4년간 무실적, 사무실은 업무의 흔적 없음. 이것만으로도 이미 세무서의 직권으로 사업자 말소가 가능합니다.”

“그…… 에이, 모르겠네. 맘대로 하쇼. 회사 운영이 어려운 걸 갖고 너무 막 나가네. 까짓거 사업자 없애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남자는 대답을 포기한 듯했다.

어차피 매출도 없으니 낼 세금도 없고, 법인이 폐업된다 해도 또 다른 사람 명의로 회사를 세우면 된다.

의외로 남자가 시원시원하게 포기한 건 그런 계산일 것이다.

“법인은 직권 말소하기로 하고…….”

나는 남자를 제치고 들어가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다가갔다.

슬쩍 한 발짝씩 다가갔던 탓에 어느새 안쪽 방이 코앞이었다.

휑한 사무실은 봐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건축물 대장을 이미 보고 왔거든.

건축물 대장에 적힌 면적에 비해 지금 이 사무실은 너무 좁았다.

저 문 너머를 봐야 한다.

“잠깐! 공무원 양반, 잠깐만!”

남자가 급하게 다가왔지만 내가 더 빨랐다.

문을 열어젖히자 밖의 사무실보다 더 큰 방이 나타났다.

얼마나 환기를 안 했는지 자욱하게 낀 담배 연기가 매캐했다.

벌겋게 눈이 충혈된 사람들이 제각기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각자 손에 든 것은 다르지만 보자마자 알았다.

도박이다.

“와…… 기껏해야 페이퍼 컴퍼니일 줄 알았는데.”

남자들의 초췌한 얼굴 너머로 수십 개의 숫자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위험하다.

그냥 탈세범이라면 과세나 때리고 그만이겠지만, 이건 제대로 된 범죄였다.

문손잡이를 놓고 뒤로 물러서자 남자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기다리라니까.”

나는 뒤로 돌아 머리를 긁적였다.

“허. 참. 망했네.”

***

“기사님. 최대한 빨리 가 주세요.”

황민우는 조수석에 앉아 택시 기사를 재촉했다.

[잠깐 상황만 보고 올게요. 금방 들어올 겁니다.]

자신이 서 내를 돌아다니며 조사하는 사이에 파트너가 문자 하나만 덜렁 남겨 놓고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회사 하나만 보고 온다고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지만 어째선지 신재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냥 쓸데없는 걱정이면 좋겠지만…….’

택시가 내달리는 동안 몇 번을 더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불길함이 온몸을 내달렸다.

‘제발…….’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 상사.

처음 봤을 땐 분명 깔보는 마음도 있었다.

부서 이동하는 첫날부터 현장에 나간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7급이랍시고 어린 후배 놈을 모시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처음엔 돕지 않았다.

상사 놈쯤이야 현장에서 적당히 깨지다 보면 알아서 자신에게 기어들어 오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신재현은 달랐다.

굽히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유혹과 협박, 그것들을 뿌리치고 일어선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것이다.

황민우는 현실이 어떤지 아는 어른이었고, 협박에 굽히고 말았다.

그렇기에 옆에서 신재현을 볼수록 신기했다.

자신이 이미 진즉에 잃어버린 열정을 갖고 있었고, 빛나 보였다.

절대 꺾이게 두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끼익.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잔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만 원짜리를 대충 던지고 서둘러 건물의 계단을 올랐다.

어디에나 있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 빛을 꺼뜨려선 안 된다.

“허억, 허억…….”

꼭대기 층까지 오른 황민우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막상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조여들었다.

자신이 위험에 처할까 봐가 아니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선 어떤 법도, 정의도 소용이 없다.

한 번 굴복한 자신을 거두어 준 사람, 자신의 어린 상사.

자신이 지키고 싶은 빛이 바랠지도 모른다.

‘아니,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야.’

한낱 세무서 공무원의 신분으로 검사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사람이다.

‘더더욱 위로 올라가 더 많은 개새끼들을 조져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황민우는 각오를 다지고 철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주사보님!”

그리고 난장판이 된 방 안을 발견했다.

“어? 마침 딱 좋을 때 오셨네요.”

의자를 들고 대치 중이던 신재현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

황민우는 사무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소파며 테이블이며 책상까지 제대로 서 있는 것이 없다.

테이블 위에 있었을 잡동사니들은 바닥에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현과 대치하고 있는 세 남자들은 질린 얼굴로 주춤거렸다.

언뜻 봐서는 이상한 광경이다.

3 대 1.

세 명의 남자가 왜 한 명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황민우는 핸드폰을 한쪽 손에 쥔 채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리고 이상함을 발견했다.

대치하고 있던 두 남자는 비교적 멀쩡한데, 한 명은 만신창이였다.

한쪽 팔은 부러졌는지 덜렁거리고 얼굴은 퍼렇게 멍들어 있다.

신재현은 다른 둘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그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만…….”

남자가 억울한 듯 중얼거리자 신재현이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올렸다.

“난 한 놈만 패거든.”

“그니까 왜 나냐고.”

“네 숫자가 제일 커서.”

“그게 뭔 개소리야, 미치겠네. 이거 또라이 아니야?”

“또라이 맞어. 내 별명이 용산서 개또라이거든.”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신재현도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다.

옷차림도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대치하던 남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더 해볼 건가? 난 상관없는데.”

“이야. 진짜 독종이네…….”

남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반인이면 사람 팰 때 어떻게든 주저하는 법인데. 당신, 공무원 맞아?”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 나쁜 놈들 상대하면서 어중간하게 하면 오히려 내가 다치더라고.”

신재현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황민우는 핸드폰을 꾹꾹 누르며 신재현에게 다가갔다.

“경찰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재현 앞을 가로막듯 섰다.

자신은 신재현처럼은 못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지킬 생각이었다.

“경찰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너도 공무원이냐?”

황민우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들은 엉망이 된 사무실을 바라보더니 자세를 풀었다.

“그만할란다. 야야, 빨리 정리해라. 짭새 뜨기 전에 튄다.”

“어디 갈려고?”

신재현이 의자를 들고 나서려 하자 남자들이 기겁했다.

“아, 좀 그만하자! 세무 공무원 양반이 무슨…….”

“주사보님. 저 안쪽에 사람이 더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중간에 낀 황민우는 죽을 맛이었다.

언제 남자들이 주먹을 휘두를지 몰라 땀을 뻘뻘 흘리며 필사적으로 신재현 앞을 가로막았다.

도로 남자들과 싸우게 되면 한 대라도 더 자신이 맞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신재현은 의자를 내려놓았다.

남자들도 그제야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하더니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중 가장 나이 많은 남자가 신재현을 스쳐 지나가며 아쉬운 얼굴을 했다.

“공무원만 아니었으면 딱 내 밑으로 거뒀을 건데.”

“잘됐네. 다음에 또 봅시다. 그땐 내가 세금 납부 고지서 들고 찾아갈 테니까 각오하시고.”

남자가 히죽 웃으며 급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방 안의 사람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하나둘 사무실을 나갔다.

경찰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10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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