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8화 (28/500)

28화. 유령회사 (1)

술잔을 든 채로 나는 굳을 수밖에 없었다.

“정기 인사 시즌도 아닌데, 이동이 가능합니까?”

“그건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정기 발령도 아니고 하반기에 사람을 쑥 뽑아가는 걸 무슨 부서 이동처럼 말하고 있었다.

“신재현 씨는 오기만 하면 됩니다. 준비는 우리 쪽에서 다 알아서 하지요.”

얼굴은 붉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술에 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뚜렷한 진심이었다.

나는 잠시간의 시간을 둔 후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 있습니다.”

“못다 한 일이라. 백혜영으로는 부족합니까? 더 증명할 필요는 없는데.”

이선균은 아마 내가 실적을 올려 내 가치를 올리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용산 세무서 내에 청소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시작한 일이니 깔끔하게 만들어 두고 가려고 합니다.”

“청소라…….”

이선균은 잔 안에서 술을 몇 번 굴리더니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군요. 요즘은 어딜 가나 벌레 같은 놈들이 섞여 있어요. 싹 박멸할 수 있으면 좋은데 말이죠.”

이선균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잘됐습니다. 더더욱 마음에 드는군요. 과세관청에 벌레들을 키울 순 없지요. 좋습니다. 깔끔하게 해결하고 오세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나는 잠시 말을 골랐다.

“삼성에 갈 때 한 명 더 갈 수 있습니까?”

다시 한번 이선균이 잔을 든 채 멈췄다.

그러나 이번엔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띤 채였다.

“벌써 사람을 만든 겁니까?”

“함께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직 몇 달 되지 않았을 텐데. 신재현 씨가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신중해야 합니다. 알지요?”

“아직 완전히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유능하지만,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사람보단, 평범하더라도 제게 마음을 내보이는 사람이 더 편합니다.”

이선균의 미소가 짙어졌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부터 용인술을 아는군요. 맞습니다. 위에 서는 사람은 항상 사람의 크기와 깊이를 잴 줄 알아야 하죠. 얼마나 써먹을 수 있는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 신재현 씨는 그 사람을 어디까지 믿습니까?”

“계속 시험해 보며 제 사람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선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지요. 남은 시간 동안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정기 발령이 다가왔을 때까지 나름대로 검증을 마치면 그 사람과 함께 삼성으로 오시죠. 자리는 마련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

확실히 뒤가 든든하니 마음도 편안했다.

“자자, 이제 재미없는 얘긴 그만하고 밥이나 먹읍시다.”

중요한 얘기는 거의 다 끝났다.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막 들려던 때였다.

“신재현 씨, 제일 좋아하는 세법이 뭡니까?”

나는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든 채 멈추고 말았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제일 좋아하는 세법?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간단히 대답했다.

“부가세 의제매입세액공제 제도를 좋아합니다. 면세로 인한 환수 효과와 누적 효과를 깔끔하게 계산해서 제거하는 과정이 아름다워요. 딱 짜인 퍼즐 같습니다.”

슬쩍 이선균을 쳐다보자 그가 아까보다 더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저는 말이죠, 금지금 부가세 납부 특례를 좋아합니다. 금도 부가세가 붙잖습니까. 근데 금은 현금과 다름없단 말이에요. 그걸 이용해서 부가세 환급금을 먹고 튄 사기꾼이 꽤 있었는데…….”

이선균이 흥분해서 과거 사건과 판례까지 끄집어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제가 세법이긴 했지만, 이선균은 꽤 입담가였다.

이선균이 겪었던 일까지 섞어서 얘기해 주니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는 겸사겸사 이선균의 주사도 알게 되었다.

그는 취하면 세법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

다음 날 숙취에 절어 주차장에서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황민우가 조용히 서를 나가더니 골목 안쪽 슈퍼에서 숙취 음료를 사 왔다.

정말 눈치가 빠르다.

“아, 감사합니다.”

“점심은 콩나물 국밥집으로 가야겠군요.”

맛없는 숙취해소 음료를 들이켜며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순식간에 미간이 펴졌다.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이 떠오르자 절로 침이 고였다.

“그럼 하던 일도 마무리되었으니 다음 조사 대상 고르시죠.”

조사 대상은 보통 시스템에 걸리거나, 다른 과에서 수상하다고 넘긴 것들을 과장이 추려 배분한다.

그러나 내 경우엔 조금 달랐다.

워낙에 내가 알아서 물어뜯을 놈을 주워오기 때문이다.

“이번엔 좀 다릅니다.”

나는 파티션 아래로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세무서 내에 탈세범 뒤를 봐주거나 탈세를 눈감아주는 놈들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정말 있으면 깔끔하게 털어낼 거예요.”

황민우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정말 가능할 거라 보십니까?”

“이런 건 오히려 안에서 살펴봐야 잘 보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서장님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서장님이요?”

황민우가 잠시 고민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예전에 재산세과에 있었거든요. 온 지 얼마 안 되신 주사보님보다는 제가 조사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황민우를 믿고 맡길 수 있느냐가 문제였지만 이건 오히려 그를 시험할 기회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보지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민우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본관 쪽으로 향했다.

어떤 정보를 가져올지 기대감이 들었다.

황민우가 막 본관 문을 열고 들어갈 때였다.

“엇!”

“아흑! 죄송합니다!”

급하게 뛰쳐나오던 여직원 하나가 황민우와 부딪혔다.

여직원은 부딪힌 상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인사하더니 다급하게 건물 뒤로 돌아갔다.

딱 봐도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으려는 모양새다.

그런데 슬쩍 본 옆모습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머리에 숫자가 떠오를 듯 말 듯…….

재채기가 나오려다 마는 것처럼 애매하고 간지러운 느낌이다.

저 직원이 직접 탈세에 끼어든 것 같진 않고, 뭔가 관련이 있을 때 이런 식으로 보이던데.

“설마?”

남은 숙취 음료를 한입에 털어 넣은 나는 여직원을 쫓아 건물 뒤로 돌아 들어갔다.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여직원이 등을 돌린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어흑…… 흐흐흑.”

애써 숨죽여 울었지만,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연신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 여직원은 가까이서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민원실에 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이다.

이름이 유지현이던가.

처음 세무 공무원으로 발령받고 나면 최소 한 달간 1층의 민원봉사실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온갖 민원인이 몰려들기 때문에 꽤 힘든 곳이었다.

민원실 근무가 끝난 후 나는 소득세과로, 옆자리 여직원은 부가세과로 가게 되었다.

그 후로 오며 가며 얼굴만 마주쳤지 제대로 말을 거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나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괜찮으세요?”

“흡!”

유지현이 화들짝 놀라며 숨을 들이켰다.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있다.

나는 괜히 말을 걸었나 잠시 후회했다.

휴지라도 있으면 건네주겠는데 아쉽게도 내 주머니엔 담배와 라이터뿐이었다.

“오랜만이죠?”

어색하게 말을 걸자 유지현이 눈을 피하며 애써 눈물을 닦았다.

“납세자예요?”

“네…….”

세무서에서 직원이 울며 뛰쳐나갈 일은 둘밖에 없지.

지방으로 발령 나거나, 납세자한테 갈굼당하거나.

오히려 상사에게 갈굼당하는 것보다 납세자한테 듣는 욕이 더 가슴 아프다.

아직 정기 발령 공고가 뜨지는 않았으니 남은 하나를 찔러 봤는데 정답이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더 애매해졌다.

우는 여자를 달래 본 적이 없어서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무원이 세금으로 월급 받는 건 맞지만 요즘 보면 너무 심해요. 가끔 보면 하인인 것처럼 대한다니까요.”

“흑…….”

큰일 났다.

그칠 생각을 안 한다.

분명히 탈세가 꼬인 일인데.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냥 지르기로 했다.

“탈세범 새끼는 사람으로 봐줄 필요 없습니다. 그건 납세자도 아니고 그냥 범죄자예요. 조지십시오.”

“흐끅.”

유지현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며 딸꾹질을 했다.

“……에요.”

“잘못한 건 그쪽인데 왜 유지현 씨가 괴로워합니까.”

“탈세 아니에요. 제 실수로 고지서 잘못 날린 거예요.”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먼 곳을 봤다가 다시 유지현으로 시선을 돌렸다.

뇌리에 찌르는 것처럼 지직거리는 숫자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엉겁결에 단언했다.

“……예? 유지현 씨가 실수했을 리가 없는데.”

“저도 저를 못 믿는데, 신재현 씨는 저를 믿어주시는 거예요?”

유지현이 드디어 눈물을 그쳤다.

그런데 뭔가 단단히 오해를 산 듯했다.

***

잠시 유지현을 앉혀 두고 나는 아까 황민우가 그랬던 것처럼 헐레벌떡 서 밖으로 뛰어 나갔다.

골목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 비스무리한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 들고 다시 돌아왔다.

이젠 진정이 됐는지 숨소리가 한결 편안해진 유지현이 음료수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과세에서 면세로 바뀌면 부가세 뱉어내야 하잖아요.”

“네.”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쓰는 것 같길래 부가세 내라고 안내문 보냈거든요.”

처음 오피스텔을 1억 1천만 원에 구매했다고 치자.

1억의 10%인 1천만 원은 부가세다.

그리고 과세 사업자는 오피스텔을 사면서 1천만 원을 세무서로부터 환급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면세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면세 사업자는 부가세를 내지 않는다.

세금을 면제받는 혜택을 받으니, 이 경우엔 처음 환급받았던 부가세를 도로 뱉어내야 한다.

사업자 종류 하나 바꿨다고 세금을 내는 건 언뜻 봐선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종종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무용으로 쓰면 과세, 주거용으로 쓰면 면세다.

요즘엔 오피스텔을 집처럼 꾸며서 쓰는 사람도 많다.

주택으로 쓰면 부가세를 뱉어내야 하니 부가세과가 눈에 불을 켜고 보는 물건 중 하나다.

“과세로 환급받았던 부가세, 면세전용이면 당연히 회수해야죠.”

“그게…… 사무용으로 쓴다고 사진을 보내 줬어요.”

“아.”

사진이라면 빼도 박도 못하지.

가장 편한 증명 방법이기도 하다.

“근데 사무용으로 쓰는 거면 그 오피스텔에 회사 주소지 등록해 놨을 거 아닙니까. 그걸 확인 안 하셨을 리는 없고…….”

오피스텔을 사무용으로 쓰는지, 주택용으로 쓰는지는 거기에 전입 신고한 주소지를 보면 일차적으로 거를 수 있다.

회사 주소를 신고했으면 사무용이고, 개인이 전입신고를 했으면 주거용이니까.

“원래 다른 회사한테 임대 주다가 임대인 본인이 들어왔더라구요. 그래서 주거구나 싶어서 안내문 보냈어요.”

“그런데 사진은 사무용으로 쓰는 모습을 보냈다면서요.”

“스타트업이라 오피스텔에 사무실 차리고 거기서 숙식한대요.”

“임대인 회사 주소는요?”

“2평짜리 소호 사무실이요.”

닭장 같은 사무실에 책상만 빌려 놓고 쓰는 스타트업이 많으니 회사 주소를 거기로 등록한 건 이해한다.

근데 이상하네.

오피스텔로 회사 주소 이전하는 게 더 낫지 않나?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

“스타트업이라구요? 업종이 뭐던가요?”

“음. 앱 개발 서비스요.”

“몇 년 된 회사입니까? 매출은 얼마예요?”

“4년 됐고…… 매출은 아직 하나도 없어요.”

“……매출이 없어요? 한 푼도?”

내가 정색하며 묻자 유지현이 도리어 되물었다.

“앱 개발 회사면 원래 개발할 때까지 돈 안 벌리는 게 정상이라고 하던데요.”

아니, 4년이나 돈을 못 벌면 보통 회사를 접지. 이 사람아.

취미 생활로 앱 개발하는 금수저라면 몰라도 저런 식으로 시간만 흘리는 회사는 보통 유령회사가 많다.

“유지현 씨. 거기 주소 좀 알려 주실래요? 제가 직접 보고 올게요.”

“예? 사진까지 받았는데요. 도로 전화 와서 욕하면…….”

유지현이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얼마나 욕을 퍼부었길래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나.

미묘하게 탈세액이 보일락 말락 하는 것도 그렇고, 가장 설립하기 쉬운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4년이나 매출이 없는 것도 그렇고.

이번엔 이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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