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26화 (26/500)

26화. 5월 간담회(1)

-전 지검장 백혜영 씨가 난데없는 법적 공방에 휩싸였습니다. 백혜영 씨의 재산에 대해 친인척들이 각자 자신의 지분을 주장하고 나선 건데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취재했습니다.

핸드폰에서 세간을 뜨겁게 달구는 화제의 전 지검장, 백혜영의 재산 분쟁이 흘러나왔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이게, 네 작품이로군.”

책상 앞에 선 나를 보며 과장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일시 정지해 둔 영상은 카메라를 가리는 백혜영의 모습이 보였다.

내 설계 이상이다.

이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며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인정해야겠군. 너는 이미 내 그릇을 넘었어.”

과장의 말투가 시원섭섭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저야 어디까지나 1년 차 신입 조사관인데요. 과장님과 서장님께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지금보다 힘들기야 했겠지만 결국 해냈겠지. 내 말이 틀린가?”

틀리진 않다.

하지만 과장의 보호 없이는 압력에 바로 노출되었을 테니 먼 길을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의뭉을 떨고 있자 과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서장님도 나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니다. 본청에서 이런저런 얘기는 들어왔으니까.”

“얘기…… 요?”

응? 무슨 얘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순간 굳었다.

“국세청은 현재 세 개의 파벌로 나뉘어 있다고 했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먹으면 최대 파벌이 되기 때문에 셋은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해 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힘의 균형이 삐걱거리고 있어.”

파벌 싸움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귀를 곤두세웠다.

“현재 조사1국장 민치호의 칼날이 제법 날카롭다는 소문이 돌더군. 물밑싸움에서 중부청 라인이 졌다고. 조사국장이 쓸 만한 칼을 손에 넣었다고.”

이야기가 그렇게 퍼졌나.

과장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눈빛이 제법 매서웠다.

“네가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직 검사를 날려 버릴 때부터 짐작했다. 너는, 조사1국장의 칼이지?”

과장은 돌려서 물어보지 않았다.

나 역시 질질 끌지 않았다.

“네. 짐작하신 대로, 제게 힘을 주는 사람은 조사1국장 민치호입니다.”

과장의 표정이 대번에 안 좋아졌다.

“그럼 이번 백혜영 전 지검장도 그가 원했기 때문에 한 짓인가?”

그의 질문은 타당했다.

한층 더 험악해진 표정이 살벌했다.

내 대답 여하에 따라 칼이라도 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가 원해요? 반대입니다, 과장님. 저는 개새끼들을 때려잡을 힘을 원했고 그가 제 힘이 되어 준 겁니다.”

“반대라고?”

“파벌은 상관없습니다. 제 업무는 탈세 혐의가 있는지 조사해 타당하게 과세하는 것이고 그 대상엔 직위 고하가 없는 것뿐입니다. 이건 민치호 국장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과장이 입을 다물고 진득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인지 살피려는 것 같았다.

이내 과장이 가라앉은 눈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 끝에 핸드폰 화면이 걸리는 것이 보였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봐 온 너라면, 누군가의 앞잡이나 하고 다닐 놈은 아니니까. 하지만 설마 그 민치호를 뒤에 엎고 있을 줄이야.”

“민치호 국장님을 알고 계십니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능구렁이야. 서울청과 중부청이 물어뜯고 싸우느라 전국의 서가 들썩였던 때가 있었어. 그때 갑작스레 나타나 지금의 구도를 만들어냈지.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 양반의 힘이 커.”

과장이 액정을 가리키더니 불쑥 내게 들이밀었다.

거기엔 전국적으로 욕을 처먹고 있는 백혜영의 얼굴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딱 너랑 비슷하군.”

“예에?”

“아니, 됐다.”

과장은 책상 위에 놓인 결재판을 열더니 거침없는 글씨로 단숨에 싸인을 갈겼다.

“태일기업, 백혜영. 모두 마무리군. 다음 목표는 정했나? 설마 또 거물은 아니겠지.”

“아직입니다만, 상대를 가릴 생각은 없습니다.”

과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다 좋지만, 다음엔 미리 말부터 해라. 마음의 준비는 해야 하니까.”

“옙.”

“나가봐.”

복잡한 마음으로 과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파티션 위로 눈만 빼꼼 나온 황민우와 시선이 마주쳤다.

주인이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강아지 같다.

내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황민우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나와 함께하기로 한 이후로는 아예 대놓고 내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주차장 한쪽까지 나가 담배를 빼 물자 황민우가 빠르게 다가와 불을 붙였다.

“잠깐 담배 피우러 나온 건데요. 에이,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주사보님, 남의 의전 받는 거 안 익숙하시죠?”

당연하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도 일반 회사에 있을 때도 나는 준비하는 사람이었지, 준비된 걸 받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7급이어도 세무서에선 말단인데 무슨 의전을 받아 본단 말인가.

“익숙해지실 겁니다. 제가 해 드릴 거거든요.”

“아니, 형. 너무 앞서나가는 거 아니에요?”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황민우는 나름 진지했다.

“주사보님이 반년도 안 되어 잡은 게 누굽니까. 전 바보가 아닙니다. 절대 평공무원은 이런 짓 못 해요. 주사보님이 어디까지 올라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청장까지는 가지 않겠습니까?”

“7급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거기까지 가겠어요. 게다가 국세청장은 정치로 먹는 자린데.”

“주사보님은 최소한 국회의원 아들내미다, 그러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그게 제 결론입니다.”

“커흠, 쿨럭쿨럭.”

잘 나가다가 결론이 이상하게 빠졌다.

나는 급히 그의 오해를 정정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한 분 계십니다. 어디 재벌가나 고위 공직자 그런 분 아니구요. 진짜 어디에나 있는 흙수저니까 괜히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그래서 최소한, 이라고 단서를 달았잖습니까. 가족분이 아니면, 친척? 학연?”

“친척들끼리 연락 잘 안 합니다. 최종 학력은 고졸이구요.”

“그럼 더 말이 안 되는데.”

황민우가 진지하게 고심할 무렵 나는 세무서 주차장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차가 많다.

사람도 많다.

지금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본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뭐 있는 날인가요?”

“아, 저거요?”

우리 서는 평소에 굉장히 조용하다.

민원실도 사람이 거의 없고 신고철만 붐비는데, 오늘은 무슨 행사라도 있는 것처럼 외부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 간담회 있습니다.”

“간담회요?”

“곧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철이잖아요. 그 전에 용산 관할의 세무대리인들 대상으로 간담회 하거든요. 보통 법인세, 부가세, 소득세 철에 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얘기만 들었다.

내가 있던 곳은 소득세과라서 5월에만 간담회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내가 조사과로 옮겨 왔으니.

그러고 보니 새로 온 소득세과장이 용산서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맡는 대외 행사구나.

“형, 우리 급한 건 다 끝났죠?”

“그렇죠.”

“그럼 잠깐 구경이나 하러 갈까요?”

황민우의 눈에 얘가 또 뭔 사고를 치려나 하는 기대감과 우려가 깃들었다.

***

본관 건물 지하로 한 층 내려가면 자그마한 강당이 하나 있다.

오늘은 그 강당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물이랑 팸플릿 가져가세요!”

입구에 작은 테이블 두 개를 붙여 놓고 안내 책자와 생수병을 늘어놓았다.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눠 주는 사람은 내게도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어,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신재현 씨!”

같은 소득세과에 있었던 직원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리 별관으로 이사 갔어도 그렇지, 같은 서에서 근무하면서 얼굴 한 번 못 보는 게 말이 돼요?”

“저는 저번에 구내식당에서 뵀는데요.”

“그건 그거고. 사무실 좀 놀러 오시지.”

“죄송해요, 그동안 바빴습니다. 선배님도 잘 지내셨죠?”

인사를 나누면서도 직원들은 손님들을 안내하느라 바빴다.

“이제 지옥의 5월이잖아요. 신재현 씨는 좋겠다. 5월 안 겪고 조사과 가서.”

여직원이 푸념하듯 말하자 옆에 있던 소득세과 직원이 기겁했다.

“조사과는 1년 365일 내내 지옥일걸요?”

“아, 그랬지.”

소득세과 동료들과 황민우까지 인사를 나누고 나자 나는 슬쩍 궁금한 것을 물었다.

“과장님 새로 오셨죠? 어떻던가요?”

“과장님이요? 음, 뭐 평범하죠. 어차피 여기 오시는 분은 그냥 거쳐 가려고 오는 건데.”

특이한 점 없이 2년 임기 채우고 떠나갈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직원들을 도와 생수병과 책자를 날랐다.

어느덧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차자 나와 황민우도 안으로 들어가 맨 뒷자리에 섰다.

세무 대리인이라고 해서 세무사들이 올 줄 알았는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직원들을 보낸 것 같았다.

예정된 시각이 되자 서장과 소득세과장, 소득세과 직원들 몇몇이 순서대로 들어왔다.

선배가 말한 대로 새로 온 과장은 평범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얼마 전 우리 서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걸 다들 아실 겁니다. 굉장히 부끄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깨끗한 용산서, 일 잘하는 용산서가 될 것을 서장으로서 약속드립니다.”

서장의 짧은 인사가 끝나고 소득세과 직원이 이번에 새로 바뀐 세법을 간략히 설명했다.

간담회라고 하기에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채 3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5월 말이 되면 다들 아시다시피 홈택스 서버가 폭주합니다. 재작년에는 서버가 터져서 6월 1일까지 신고서 받은 적도 있잖습니까. 이번엔 제발 좀 일찍 일찍 신고해 주세요.”

소득세과 막내 직원이 한 마디 덧붙인 순간이었다.

벽을 따라 쭉 앉아 있던 직원들의 낯빛이 변하더니, 마이크를 잡은 막내 직원에게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늦게 신고하시면 서로 불편하잖습니까. 5월 말에 서버 느리다고 문의 전화 주지 마시고 미리 좀 신고하세요.”

“아이고…….”

내 옆에 서 있던 황민우도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보다 먼저 강당 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거래처에서 자료를 늦게 주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거래처를 독촉하셔서 자료를 미리 받으시면 되죠.”

아, 이번엔 좀 심했다.

벌떼 같이 일어선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사장님들이 독촉한다고 자료 줍니까? 조사관님이 직접 전화해서 받아보시던가!”

“사장한테 쪼이는 건 우리니까 알아서 쪼여 보라 이거예요? 아니 그럼 홈택스 서버를 업그레이드하든가! 전국에서 몇 명이나 접속한다고 그게 터져!”

우리는 세무 대리인을 흔히 완충재라 부른다.

직접적으로 납세자에게 전화해 봤자 세법 얘기를 꺼내면 못 알아듣고 설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웬만한 세금은 거의 납세자가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걸 대신해 주는 것이 세무 대리인이다.

아마 세무 대리인이 없었더라면 세무서 일은 백 배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지금은 서버에 들어온 신고서를 검토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저런 말투를 하면 당연히 들고 일어나지.

“야! 너 무슨 과야!”

“야라뇨. 그러는 당신은 세무사십니까?”

중간 중간 욕설도 섞이자 막내 직원이 덩달아 흥분했다.

그나마 서장이 인사만 하고 나가서 다행이다.

직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나는 냅다 통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내가 뛰기 시작하자 벽을 따라 앉아 있던 소득세과 직원들이 아차 하며 일어서서 달렸다.

단상에 먼저 도착한 것은 나였다.

“어, 어?”

마이크를 빼앗긴 직원이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아무리 몇 년 안 했다고 해도 나보다는 오래 일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쓰나.

나는 마이크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세무 대리인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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