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전관예우(3)
차명이 있을 거라는 건 내 추측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추측이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였던 백혜영은 지검장 재직 시절에 대놓고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모으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 이름으로 하자니 재산 공개 대상에 걸린다.
그럼 남은 건 친인척이다.
너무 멀면 믿을 수 없으니 대충 4촌쯤 되는 범위에서 재산을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차명이라는 것 자체는 위험도가 크다.
명의인이 ‘내 겁니다’ 하고 꿀꺽 삼켜 버리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꿀꺽해 버린 재산을 되찾으려면 차명으로 맡겼다는 것까지 밝혀야 한다.
실제 주인임을 밝히면 도로 찾아올 수는 있겠지만 뜯길 세금은 한두 푼이 아니다.
백혜영은 아마 몇 년을 그런 불안감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변호사님. 다른 사람을 믿으십니까? 오랜 세월 검사로 재직하시면서 온갖 더러운 인간들을 많이 보셨을 텐데, 혈육이라고 서로 배신이 없던가요?”
“…….”
백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상책인 걸 아는 것이다.
“변호사님은 지금껏 완벽한 성채를 쌓았다고 생각하시겠죠. 차명으로 돌린 부, 은퇴했지만 손꼽히는 로펌에 초빙될 정도의 명예.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시겠죠? 과연 그게 단단한 성채일까요?”
나는 인상을 찌푸린 백혜영을 향해 위협하듯 말했다.
“조금이라도 변호사님이 흔들리는 순간, 변호사님의 재산은 갈기갈기 찢겨나갈 겁니다. 충실한 조력자라고 생각했던 자들은 하이에나로 돌변해 고기조각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고 발버둥 칠 거예요. 그런 사람 많이 보셨잖아요?”
“……나가.”
“변호사님의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까?”
“나가라고!”
백혜영이 드디어 소리를 질렀다.
좋은 징조다.
감정이 이성보다 앞섰다는 뜻이니.
나는 진심으로 웃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만…… 사람의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볼 수 있지요. 변호사님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꺼지라고!”
새된 비명과 같은 고함에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아 백혜영의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본 백혜영은 분을 못 참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황하며 수군거리는 로펌 직원들을 뒤로하고 복도로 나왔다.
“이거 잘하면 생각보다 쉽겠는데요.”
그러나 황민우의 표정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오늘 왜 오신 겁니까? 쓸데없이 경계만 살 뿐이잖아요.”
백혜영의 방에서는 내 뒤에 조용히 서 있기만 했던 황민우였다.
이제 말문이 트인 것처럼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마 백혜영은 자기 연줄을 총동원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전쟁이에요.”
“백혜영은 우리가 그동안 상대해 왔던 중소기업 사장이 아닙니다. 절대 그냥은 이길 수 없어요.”
“그걸 잘 아는 분이 대체 왜…….”
“스스로 무너지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한 대로다.
저런 부류의 인간은 더 큰 힘으로 눌러야만 이길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수로 지검장보다 큰 힘을 갖고 온단 말인가.
검찰총장을 데려올 수도 없고.
그러니 흔들어야 했다.
백혜영은 그간 쌓아 온 것을 남의 손에 맡겨 두었다.
항상 마음속에 불안을 담고 살았을 테고 절대 남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자신만만하게 웃자 황민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사보님. 대체 왜 전 지검장을,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을 치겠다는 생각을 하신 겁니까? 정말 이길 수 있을 거라 보세요?”
“승산 없는 싸움은 안 겁니다.”
당당하게 답하자 황민우가 우뚝 중간에 멈춰 섰다.
뭔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럽습니다. 저는 서 있는 게 고작이었는데…….”
황민우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섞여 있었다.
어떻게 보면 황민우는 나다.
만약 다리 위에서 이선균 재산세과장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뒷배를 얻지 못했다면 되었을 내 모습이다.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건드리지 못하고, 상대가 힘이 있기 때문에 못 본 척 넘어갔겠지.
그리고 지금 황민우처럼 속만 끓였겠지.
“저런 놈들한테 주눅 들고 굽실거릴 필요 없습니다. 우리랑 똑같은 인간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다독이자 황민우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자, 가시죠. 다음번에 만날 땐 찍소리도 못하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잡해 보이는 황민우를 애써 이끌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의 말대로 상대가 거물인 만큼 준비할 것이 아주 많았다.
***
나는 책상 위에 종이들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우리 백 지검장님 친인척 관계 오케이.
그 친인척들 앞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들 목록 오케이.
계획은 짜 놨다.
자료를 추려 파일에 담을 때였다.
-덜컹.
과장실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직원들의 시선이 단숨에 모였지만 과장의 검지는 방황하는 일 없이 날 쿡 짚었다.
“예?”
과장의 손이 접히며 이번엔 엄지손가락이 과장실을 향했다.
들어오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지.
어리둥절하며 일어섰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인지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황민우의 시선만이 날 따라왔다.
“부르셨습니까.”
“이리로.”
문을 닫고 돌아서자 과장의 무표정한 얼굴에 긴장이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데.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도저히 묻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신재현. 지금 누구 캐고 다니나?”
“아.”
그러고 보니 과장에겐 내 다음 표적이 백혜영이란 걸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 내가 하성필을 잡은 시점에서 일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는 그간 나 때문에 조사과가 통째로 갈려 나갈 뻔한 게 미안해서 혼자 수습해 보려고 한 것이고.
둘째는 이번 건은 내 라인에서 내려온 지시사항, 즉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혹여 전관을 잡겠다고 하면 과장이 반대라도 할까 봐서였다.
“누구 캐냐고 물었다.”
과장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이 정도라면 이미 과장은 답을 알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지막으로 내 입으로 말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고.
내가 라인을 타면서 몸에 배운 처세술이 하나 있다.
적아를 잘 구분하되 아군을 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과장은 내 편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배신감을 느낄 만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지금 여기서는 솔직히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전 서울서부지검장 백혜영을 쫓고 있습니다.”
“……왜 하필 전 지검장이지? 현직 검사도 잡고 보니 기고만장해졌나? 전직 지검장 따위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태일기업이 백혜영 전 지검장에게 사주했고, 백혜영이 하성필 검사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저를 잡으라구요. 백혜영을 잡지 않으면 또다시 작업을 벌일 겁니다.”
나로서는 당연한 처사다.
굳이 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더라도, 내가 당장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과장은 역시나 못마땅해 보였다.
“보복을 하자면 끝이 없어. 그렇게 하나하나 다 칠 건가?”
“예. 칠 겁니다.”
“……뭐야?”
나는 당당히 대답했다.
“뿌리든 이파리든 가릴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상대가 누구든 탈세를 했다면 조사하는 게 우리 업무 아닙니까?”
과장이 내게서 눈을 떼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형광등과 눈싸움을 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놈이 내 밑으로 들어왔는지.”
“죄송합니다.”
“말이라도 못 하면.”
도로 시선을 내린 과장이 평소와 같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서장님께 연락이 왔다. 우리 서 조사과에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뛰는 애송이가 있으니 간수하라고.”
“벌써 압력이 오는군요.”
내가 백혜영을 직접 흔들고 왔으니 당연한 처사다.
그렇게 납득했지만 과장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신재현. 조사 상황을 사방팔방에 떠벌리고 다니나?”
“그럴 리가요. 쉬운 상대가 아니니만큼 조용하고 철저하게 준비 중입니다.”
과장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친인척 재산 목록까지 손에 넣었다며.”
이건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에서 그걸 알고 있습니까?”
차분히 생각해 보자.
나는 지현석 검사에게 재산 목록을 부탁했다.
그 과정에서 현직 검사가 열람했다는 기록이 남을 수 있지.
그러나 누군가 열람 기록을 보더라도 지현석 검사가 백혜영을 칠 준비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한테 줬다는 걸 알 리가 없다.
“……쥐새끼가 있군요.”
“누군지 알 것 같나?”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입맛이 썼다.
***
“황민우 씨, 잠깐 봅시다.”
과장실을 나온 신재현이 책상을 스쳐 지나가며 작게 말했다.
직함을 붙인 것도 아니고 ‘씨’다.
황민우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올 것이 왔다.’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신재현을 착잡하게 뒤쫓아 나갔다.
주차장 한편,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리를 잡은 신재현이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탁, 타닥. 신재현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당겼지만,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져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황민우는 말없이 다가가 자신의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담배 한 대가 거의 타들어 갈 즈음, 신재현이 착잡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황민우 씨.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아니요. 주사보님은 잘못한 거 없으십니다.”
“그런데 왜 그랬습니까?”
역시 들켰구나.
황민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대답해 보세요. 이유는 알아야겠으니까. 저도 그 정도 요구할 권리는 있는 거 아닙니까?”
책망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섞인 말투였다.
황민우는 눈을 떴다.
그리고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주사보님. 저는 주사보님 존경합니다. 들어오신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저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을 해내셨구요. 현직 검사 앞에서 당당하게 밀어붙일 때는 솔직히 저도 시원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어요.”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늘어놓기 시작하니 담아두었던 말들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주사보님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협박하면 쫄고, 버티지 못하면 꺾이는 사람입니다.”
황민우의 말은 점점 한탄처럼 변해갔다.
“저도 처음엔 주사보님처럼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무슨 협박이었습니까?”
신재현의 말투가 살벌해졌다.
“처음엔 주사보님, 다음은 과장님. 그리고 조사과 전체를 갈아 버리겠다고요.”
협박은 내게만 들어온 게 아니었다.
나와 같이 일하며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황민우에게도 협박한 것이다.
그리고 나와는 다르게 황민우는 버텨내지 못했다.
“주사보님이 전 지검장 앞에서도 당당하신 걸 보고 제 자신이 초라해지더군요. 나이도 더 먹고 경력도 더 길면 뭐합니까. 저는 너무 쉽게 무너졌는데.”
황민우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주사보님과 조사과 동료들을 배신했습니다. 뭐라 욕하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니, 지금 일만 마무리하고 사직서 내겠습니다.”
나는 고민했다.
원래라면 그만두게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다.
과연 내가 평범하게 공무원이 되었다면, 이 사람과 같은 처지였다면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러니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은 그저 내 변덕이다.
“황민우 씨, 아니 서기님. 지금부터 물어볼 게 있으니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하세요. 제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여기서까지 거짓말은 하지 말구요.”
황민우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다 들켰는데 거짓말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말씀하세요.”
“뇌물 받았습니까?”
“예에?”
황민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죄인처럼 눈도 못 마주치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대답하세요.”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제 통장 내역, 전화 기록, 재산 목록 다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사보님을 동경했던 사람입니다. 절대 뇌물은 안 받았어요!”
양손을 내저어가며 필사적으로 부인하는 황민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긴 했지만, 그에게서 보이는 탈세액이 없으니 그 말은 맞을 것이다.
나는 황민우를 스윽 훑고 나서 꽁초 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서기님. 저랑 일 좀 같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