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전관예우(1)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실.
구성준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서류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기 전에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며 부하 직원들을 다그치고, 어디 쓸 만한 정보가 없나 기웃거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구성준 사무관님 오늘 방 밖에 나오셨나?”
“어,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안 나오셨네. 웬일이지.”
“안 나오면 좋지 뭘 그래. 나오면 꼬투리나 잡는데.”
“근데 저번에 어디 실사 나갔다가 씩씩대면서 들어오지 않았나?”
“저 인간이 어디 가서 지고 들어올 놈은 아닌데.”
직원들이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며 구성준이 뛰어나왔다.
“내가 얘기한 자료 멀었습니까!”
“예, 옙!”
“오늘 오후에 바로 나갈 거라고 했을 텐데요! 아직까지 안 끝난 겁니까!”
“금방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쯧. 급하다고 말했잖아요. 일의 우선순위도 모릅니까? 어제 남아서라도 끝냈어야지요.”
한심하다는 말투.
직원들의 안색이 훅 가라앉았다.
구성준이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방에서 군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한테 일 떠넘기고 칼퇴한 주제에 우린 야근하라 이거지?”
“아, 진짜 시원하게 망신 한번 당하고 왔으면 좋겠다.”
“야야, 들린다. 조용히 좀 말해라.”
“에이 씨…… 말도 못 하고 사나.”
투덜거리는 말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한껏 낮아져 있었다.
“근데 그거 들었어요? 저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던데.”
“저기? 저기가 어디야.”
“아, 어디겠어요. 저 위층이지.”
눈치 없는 직원이라도 위층이 뭘 가리키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방금 들어간 구성준의 방을 힐끔거리며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저 인간이 그쪽 라인 아니에요?”
“네. 그래서 이상해요. 아까 보니까 되게 어수선하던데.”
“무슨 놈의 파벌 싸움이야…… 에휴, 그냥 확 실각했으면 좋겠네.”
“절대 아닐걸. 구성준이 지금까지 무슨 짓 했는지 잘 알잖아.”
직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감사관은 내부에서 직원들을 감찰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강력한 칼이었다.
그리고 부하 직원인 그들은 상사인 구성준이 어떤 방식으로 적을 무너뜨려 왔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 코가 석 자인데 말해 뭐 하냐, 일이나 하자.”
지금 수집하는 자료가 또 누군가를 겨눌 구성준의 칼날이 될 것을 알면서도 작업을 계속했다.
직원들은 모니터 너머의 대상에게 애도를 표할 뿐이었다.
***
구성준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평소라면 몇 분을 이어질 잔소리가 단 몇 마디만으로 끝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동기 한 놈을 골로 보내 버릴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고, 겸사겸사 전 세무서장에게 은혜를 베풀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필 김명중 그놈이 있는 과에 타겟이 있다니.
하늘이 돕는 것이다.
“언제고 한 번쯤은 손봐주려고 했더니 이렇게 기회가 오네. 깔끔하게 옷 벗게 해 줘야지.”
예전에 같은 과에 있으면서 김명중이 어떤 인간인지는 파악했다.
구역질 나도록 깨끗한 척하는 위선자였다.
그때도 그랬다.
구성준이 일선 서에 있을 때, 웬 할머니 하나가 재산세과로 찾아와 난리를 쳤다.
“아이고!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 나 같은 사람은 뭐 먹고 살으라고!”
“아, 할머니. 저한테 이래 봤자 소용없구요. 불만 있으시면 불복 청구하세요.”
불복.
말 그대로 과세에 순응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신청이다.
어느 부분이 부당한 과세인지 조리 있게 써야 하는 것이라 세법 지식이 필요했다.
당연히 이 할머니는 불복이 뭔지도 몰랐다.
“그게 뭐여? 난 그런 거 몰러! 총각이 이거 한 번만 봐줘. 세금 이렇게 많이 못 내!”
“할머니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 줄 아세요? 근데 다 내야 되는 거 맞아요. 저는 법대로 한 거라서요, 불만 있으시면 국회의원한테나 따지세요.”
준법정신을 갖고 말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날린 고지서에 불만을 품고 이렇듯 찾아와 귀찮게 하는 것이 짜증 날 뿐이었다.
한 번 말을 들어주면 계속 귀찮게 굴게 마련이다.
구성준은 자꾸만 주저앉는 할머니를 쳐다도 보지 않고 일에 열중했다.
같은 과 직원이었던 김명중이 지나간 건 그때였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이고! 이것 좀 봐요. 나더러 양도세를 이렇게 많이 내래!”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가 김명중에게 들러붙었다.
김명중은 할머니를 달래며 고지서를 들여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음, 좀 애매하긴 하네요. 할머니, 자녀분이랑 따로 사세요?”
“당연하지! 하나 있는 아들놈은 결혼해서 따로 나가 사는데.”
“혹시 아드님이 할머니한테 생계비 드리시나요?”
“에이, 나도 소싯적에 모아 놓은 게 있는데. 아들놈한테는 용돈 조금 받어. 지 처자식 먹여 살리기도 바쁜데 나까지 얹히면 쓰나.”
김명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할머니를 일으켰다.
“1세대 1주택 비과세 받을 수도 있겠네요. 할머니, 세무서 나가시면 요 앞에 세무사 사무실 쭉 있거든요. 아무 데나 들어가셔서 상담하시면 도와줄 겁니다.”
“그래요? 그럼 나 세금 안 내도 돼?”
“무조건 안 내시는 건 아니구요, 세무사 찾아가셔서 서류 작성하셔야 해요.”
“아이고, 고마워요. 고마워, 공무원 양반.”
할머니는 김명중의 손을 잡더니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재산세과를 빠져나가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나서 돌아서던 김명중이 흠칫했다.
구성준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나 엿 먹이냐?”
“무슨 소리야. 납세자한테 도움 되라고 있는 게 우리 공무원 아니야?”
“내 일은 법에 따라 과세하는 거고, 난 충분히 할 만큼 했어.”
“과세 때리기 전에 확인 한 번만 해보면 안 되는 거였냐? 생계를 같이 하고 있는지 아닌지 보면 되는 거였잖아.”
그 순간 김명중이 보인 경멸의 눈빛을 구성준은 지금까지 잊지 못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은근슬쩍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과세를 때린 것도, 귀찮아서 확인을 게을리 한 것도 이미 잊어버렸다.
김명중이 적이 된 건 그때 결정된 사항이었다.
“똑같이 실적하고 승진에 목매달던 새끼가 착한 척은…… 납세자? 하! 그럼 아예 공무원 때려치우고 세무사 하러 나가든가.”
김명중의 눈빛을 떠올린 구성준이 이를 갈았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서류만 끝나면 바로 용산 서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그 위선적인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근데 이 게으른 놈들은 아직도 자료를 안 올려?”
구성준은 직원을 닦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 도로 주저앉았다.
자신이 타고 있는 라인의 상관으로,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예, 국장님!”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구성준은 대번에 전화 상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몇 년간 모셔온 상사다 보니 목소리만으로 기분을 파악하는 건 쉬웠다.
“국장님이 전화 주셔서 그렇습니다.”
넉살 좋게 아부를 떨자 국장이 한결 가벼워진 말투로 지시했다.
-전 중부세무서장이 물어온 일, 어디까지 진행 중인가?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이면 보고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처리 안 했지?
“예? 그렇습니다만…….”
빨리 처리하라고 다그치는 말투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에 착수하지 않았기를 기대하는 느낌이었다.
-그 일 중단해.
“예? 실사만 나가면 됩니다.”
-아니, 똑같은 부탁이 검찰 측에도 들어갔는데 거기서 실수를 했어. 잘못하면 엮일 수 있으니 이쯤에서 접어.
예, 라고 대답해야 하지만 구성준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검사에도 청탁이 들어간 건 알고 있다.
애초에 검찰 수사관과 함께 용산 서에 찾아갔으니까.
그런데 검찰이 실수를 했다고?
구성준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실수라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쪽이 단순히 먹이를 잘못 꿴 거라면 저는 다른 방향으로…….”
-검사 하나가 뇌물수수로 잡혔어.
“헙.”
이번에야말로 구성준은 입을 다물었다.
이건 단순히 실수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검사가 뇌물수수로 잡혔다는 건 곧 그 청탁의 선을 타고 자신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음을 뜻했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자신의 자리까지 걸어가며 일을 진행시킬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이 모든 건 영전을 위해서였으므로.
“……알겠습니다. 일은 접겠습니다.”
-그래. 당분간 그쪽은 쳐다도 보지 마.
“예.”
전화가 끊기자마자 구성준은 책상 위의 서류를 내던졌다.
-촤르륵!
-콰앙!
기껏 보기 좋게 프린트해 정리해 둔 서류가 방안에 휘날렸다.
기세에 날려간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김명중, 이 새끼!”
이미 출셋길이 막힌 김명중이 이번 일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낚싯줄을 드리우면 바로 낚여 올 줄 알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 위선자 새끼가!”
용산 세무서에 대단한 뒷배를 가진 놈이 없는 건 이미 확인했다.
작업 치기 전에 상대의 파벌을 확인해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
분명 용산에는 떨거지밖에 없었는데.
-으득.
구성준은 인명록을 펼쳤다.
용산서의 조사과 직원들 이름이 주르륵 쓰여 있었다.
이번 일은 더 손해가 오기 전에 물러서는 것이 옳다.
그러나 구성준은 머지않아 또다시 용산의 조사과와 붙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다.
튀어난 못은 정을 맞는 법.
지금은 이렇게 놓아주지만, 다음엔 반드시 조져 주리라.
[조사1과 5급 과장 김명중…… 7급 신재현]
구성준은 인명록의 두 이름을 눈에 새겼다.
***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서울서부지검의 지현석 검사실.
방문을 닫자마자 나와 지현석은 나란히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떻게 잘 해결됐네요.”
나는 땀에 절은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잘난 듯 앉아서 하성필 검사를 몰아세우긴 했지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먼저 죽어 나가는 놈이 패배하는 싸움이었으니까.
의자에 털썩 앉자 지현석이 생수병 두 개를 가져왔다.
병 하나를 건넨 내게 지현석은 가까운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더니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생각보다는 잘하시네요. 별다른 수사 권한도 없었을 텐데.”
지현석이 반쯤 비운 생수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 없이 물을 마셨다.
그러나 지현석은 더 말을 이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아니요,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하성필의 그 약점은 세무서에서 알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어요.
검찰 내부에서 정보를 빼 갔든, 스스로 조사해 알아냈든, 과정은 상관없습니다. 방법이 어떻든 간에 단 하루 만에 반격의 준비를 마쳤고, 검사를 거꾸러뜨렸으니까.”
지현석은 참았던 말을 쏟아내듯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 입을 다물자 스스로 뭔가 이해한 듯 끄덕였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됐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군요. 그분이 괜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아닌 모양이에요.”
그분?
흘릴 수 없는 말이다.
나는 물병을 내려놓고 급히 물었다.
“그분이요?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제껏 나를 거둔 사람이 국세청의 조사1국장인 민치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국세청 국장이라도 검사가 ‘그분’이라 칭할 정도였던가?
“신재현 씨, 솔직히 말해서 중요 인물도 아닌 세무서의 일개 직원에 얽힌 사건 아닙니까?”
나도 그게 궁금했다.
현실적으로 내 위치에서 검사인 하성필을 누르기는 어렵다.
하성필이 실각할 단초는 내가 제공하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끌고 간 건 지현석 검사였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게 설마 권력인가?’
“그런데도 검사인 제가 전적으로 백업으로 붙을 정도입니다. 두 기관을 아우를 정도로, 뒤에 얼마나 쟁쟁한 인물들이 있을지 기대되지 않나요?”
지현석은 재밌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성필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데다 검찰의 그림자에 속하는 놈이라서요. 쳐낼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마침 이렇게 기회가 왔네요. 덕분에 쉽게 해결했습니다.”
누구에게서 지시가 내려온 건지 지현석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뒤에 둔 사람은 생각 외로 거물일지도 모르겠다고.
긴장감으로 입이 바싹 말랐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런 권력이라면 환영이다.
돈을 믿고 탈법을 저지르는 놈들을 후려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