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공격과 공격(6)
서부지검 뒤꼍.
추운 날씨임에도 하성필이 일부러 여기까지 나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한 그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들었다.
“지검장님께서 이렇듯 절 기억해 주시고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인재는 적재적소에 쓰라는 게 내 주의라서. 그나저나 미안하네, 은퇴한 이 늙은이가 귀찮은 일을 시켜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막 공무원 시작한 7급 애송이 하나 밟는데 무슨 수고가 있겠습니까. 더 어려운 일이어도 마다치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불러만 주십시오.”
-허허. 하 검사가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싹수가 있어.
“감사합니다, 지검장님!”
하성필은 정성스레 두 손으로 핸드폰을 받쳐 들었다.
상대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받들어야 할 상대니까.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 먹어도 검사 평생 연봉을 한순간에 벌 수 있다.
-그럼 계속 수고해. 일이 잘 마무리되면 같이 밥이나 한 끼 먹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하성필은 쾌재를 불렀다.
귀찮고 더러운 일에 휘말렸다고 불평할 때가 아니었다.
전 지검장에게 청탁한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서부지검의 부려먹기 편한 검사가 필요했고, 그게 자신이 되었을 뿐이다.
다른 검사가 이 역할을 채가기 전에 자신이 선택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크흐! 저번엔 꽤 짭짤했는데. 이번에도 뭔가 던져주려나.”
높으신 분들의 스케일은 과연 달랐다.
돈을 어떻게 찔러주나 했더니 현금으로 덜컥 7억 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7억으로 어떤 주식을 얼마 사라 조언해 준 것이다.
비상장 주식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깔린 레일을 나아가듯 모든 것이 이미 계획되어 있었다.
7억의 주식은 순식간에 27억이 되었다.
“이 기세로 한 50억만 더 벌어야겠다.”
하성필은 부푼 꿈을 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형사 3부 복도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늘따라 복도가 왠지 시끄러웠다.
평소라면 수레에 실린 서류들을 옮기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게 멈춘 채 직원들이 복도에 모여 있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누가 영전이라도 하나?
지검에서도 라인은 민감하다.
특히 하성필은 더더욱 라인에 민감했다.
주류로 올라가는 높으신 분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들어야 앞길이 편하니까.
그런데 반응들이 이상했다.
직원들이 하성필을 보더니 슬금슬금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자신의 방 앞이었다.
‘누구 대단한 분이라도 왔나? 딱 그런 분위기인데.’
높으신 분이 일부러 평검사 방에 걸음하셔서 격려하고 가는 건 꿈에서나 그려본 일이다.
평검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최고의 방법이자, 대놓고 자기 사람임을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에게 그런 기회가 찾아온 적은 없지만.
‘여기 지검장님이 한 번 들러주시면 좋은데, 쩝.’
하성필은 반쯤은 기대감을 갖고 자신의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막상 검사실에 들어와 있는 것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하 검사, 이제 왔어?”
자신이 직접 소환해 조사한 신재현, 그리고 같은 3부 검사인 지현석.
그 외에도 사무실에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다.
처음 보는 놈 하나는 신재현 뒤에 조용히 서 있고, 수사관들은 입구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성필은 단숨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부하 직원 둘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뭡니까? 지현석 선배님.”
“자자, 앉아 봐. 여기 신재현 조사관님이 공무 집행하러 오셨대.”
“뭐요?”
누가 뭘 해?
하성필은 귀를 의심했다
***
하성필 검사의 놀란 표정이 볼만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하필 쳐들어왔을 때 하성필 검사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덕분에 심리적 우위를 점하고 싸움을 시작하는 건 고마운 일이다.
“하성필 검사님, 증여세 과세하려고 왔는데요.”
“누가 뭘 해?”
하성필은 진심으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짚이는 데가 없다기 보단, 왜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나는 좀 더 친절하게 그에게 현실을 들이밀어 주었다.
“귀가 안 들리세요? 검사는 어떻게 임용되셨어요? 돈 받으시고 증여세 안 내셨잖아요. 제가 일부러 과세하러 왔습니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과 방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하성필이 얼굴을 찡그렸다.
“이 새끼 뭐야?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와서 행패야?”
“검사님, 지금 소명하셔야 하는 건 검사님 쪽이에요.”
-탁.
나는 그가 훤히 볼 수 있게 통장 내역을 내밀었다.
이건 세무서 권한으로는 열어볼 수 없는 것으로, 특별히 내 옆에 앉아 있는 지현석 검사가 조회해 준 것이다.
“작년 10월, 하루에 1억씩 7회에 걸쳐 현금이 입금됐네요? 검사님, 임용되시기 전엔 알바고 직장이고 다니신 적 없잖아요.”
“이, 이걸 네가 어떻게…….”
“부모가 줬다 해도 증여인 건 알고 계시죠? 7억 어디서 났어요?”
하성필이 테이블 위의 통장 내역을 채가더니 손에 힘을 줘 구겼다.
“빌렸다. 문제 있나?”
“현금으로 입금한 걸 보니 은행에서 빌린 건 아닌 것 같고. 사채라도 쓰셨나요?”
“네까짓 게 알아서 뭐 하게?”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 차마 멱살은 잡지 못했지만, 그의 주먹이 푸들푸들 떨렸다.
나는 약 올리듯 물었다.
“혹시 태일기업에서 빌려줬습니까?”
정답인가.
하성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동요를 감추려는 듯 버럭 화를 냈다.
“쓸 데가 있어서 빌렸고, 그건 불법이 아닐 텐데! 지금 내게도 보복을 하겠다 이건가? 세무서 공무원이 감히 복수심으로 검사를 건드려? 뭣들 하고 있어! 당장 이 새끼 끌어내!”
“에헤이, 잠깐만 더 들어봐. 흥미로운 얘기가 더 있어.”
흥분하는 하성필을 지현석이 만류했다.
하성필의 뒤에는 수사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날뛰면 바로 제압할 기세였다.
그들 모두 지현석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현석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는 계약서를 두 장 꺼냈다.
“크흑!”
하성필이 숨을 들이쉬더니 우뚝 멈췄다.
하성필에게 소환되어 조사받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사람은 당하는 상황을 못 참는다.
자신이 당할 거란 생각을 못 해 봐서인가, 자부심이 강해서인가.
그가 공격자 위치에 있을 땐 꽤 날카로워 보였지만, 지금은 표정을 숨길 줄 몰랐다.
아니, 숨길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간략하게 설명드리죠. 하성필 검사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태일기업이라는 회사로부터 비상장 주식을 7억 원어치 샀습니다!”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설명했다.
복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탈세 혐의가 있네, 없네 만으로는 안 된다.
조사가 들어가고 혐의가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문이 나고 모두에게 알려져서 결국 이자의 상관의 귀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이자의 말이 설득력을 잃고 검사로서의 수사권을 잃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엔 뒷배와 실이 끊어져야만 조사과의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비상장 주식은 글쎄,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7억 원이던 주식은 무려 27억이 되었죠. 20억의 시세차익이 남은 겁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검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온갖 범죄를 봐 온 사람들이고.
당연히 이게 무슨 말인지 단숨에 알아들었다.
“20억? 잠깐 이거…….”
“상장 직전의 주식을 샀다고? 사전 정보 알아야 가능한 건데.”
“뭐야, 뒷거래야?”
복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상장할 거란 건 모르고 산 거고, 순전히 우연이야!”
“우연히 상장 직전의 비상장 주식을 살 수 있습니까?”
하성필 검사에게 물은 건 아니었다.
나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지현석 검사에게 물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방처럼 편안한 자세로 앉아 구경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방법 있으면 나도 좀 알려주지. 우연히 20억 벌게.”
“지 선배님!”
하성필 검사가 소리 질렀지만, 지현석 검사의 얼굴은 싸늘했다.
그 눈빛에는 경멸마저 스며들어 있었다.
내가 이어서 질문했다.
“하 검사님. 아까 7억 빌렸다고 하셨죠? 어디서 빌리셨어요?”
“그…….”
하성필이 눈동자를 데록 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현석 검사가 내내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자, 여기 부채 내역.”
“그걸 왜…….”
“야, 하성필. 검사 망신 좀 작작 시켜라. 지금 당황스러우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넥타이도 풀어헤치고 셔츠 윗 단추마저 푼 헐렁한 모습이었지만, 순간 그에게서 칼바람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매년 2월에 정기 재산 변동 신고 하는 거 까먹었냐? 네 이름으로 주식 7억 잡히니까 돈 빌려서 산 거라고 그때 네가 직접 적어서 냈잖아. 실제론 재산 얼마 없다고.”
하성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입만 딱 벌린 채 입만 뻐끔거렸다.
나는 종이를 들어 올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읽어 내려갔다.
“부채 7억 진짜 쓰여 있네요? 어디 보자, 빌린 곳이 태일기업? 이 이름 많이 익숙하죠?”
나는 왼손으로 하성필의 이름이 적힌 주식 취득 계약서를 들어 올렸다.
“태일기업에서 빌린 7억으로 태일기업에서 7억 원 주식을 샀네요? 지현석 검사님, 이거 많이 수상하지 않습니까?”
“명색이 검사라면, 그리고 검찰 밥 좀 먹은 사람이라면 이 내용에서 사건 냄새 못 맡은 사람 없을 겁니다. 이렇게 증거를 들이밀었는데도 모르면 병신이지. 그렇지, 하성필?”
지현석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하성필에게 다가갔다.
하성필이 연신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다 검사실 밖의 직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수군거리는 목소리, 그리고 경멸에 가득 찬 눈길들.
그걸 본 하성필이 발작적으로 광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선배랍시고 까불지 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 지랄이야! 우연히 알게 된 회사 주식을 돈 빌려서 산 게 잘못이냐? 그게 대박 난 게 내 탓이냐고! 평생 평검사나 하다 옷 벗고 변호사나 할 새끼가!”
그가 이어서 시뻘게진 얼굴로 날 가리켰다.
“네까짓 게 날 비리 검사로 몰아? 네가 지금 누굴 건드렸는지 알아? 너, 그리고 너!”
하성필 검사의 손가락은 다음으로 지현석 검사를 향했다.
“너희들은 지방으로 날아갈 각오 해. 감히 누굴 건드려?”
“날뛴다. 붙잡아.”
지현석 검사의 명령에 뒤에 대기하고 있던 수사관들이 하성필의 양팔을 붙잡았다.
“놔! 어딜 손대! 너희도 날아가고 싶어? 옷 벗게 해줘? 놔, 개새끼들아!”
“하성필, 잘 들어라.”
지현석 검사가 바싹 다가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곁에 있는 수사관과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네 뒤에 백혜영 전 지검장님 있는 거 알고 있어.”
“너 이 새끼, 알면서도……!”
“멍청아. 알면서 널 건드린 건 그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지.”
하성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백혜영.
분명 이선균 재산세과장은 전화에서 ‘전관’을 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잡아야 할 진짜 목표는 눈앞의 평검사가 아니라 백혜영이 되는 건가.
“하 검사를 조사실로 데려가세요. 혐의는 뇌물수수입니다. 태일기업 쪽 대질심문할 준비도 하시고요."
태일기업은 이제 세금이 아니라 뇌물죄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지현석 검사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은 명백하고.
“아니야, 이럴 리 없어. 내 엘리트 코스가…….”
다리에 힘이 풀린 하성필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수사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쪽에서 팔을 잡았다.
하성필의 다리가 바닥에 끌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초라한 뒷모습에 직원들이 질린 얼굴을 했다.
승승장구하던 검사의 말로 치고는 처참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