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공격과 공격(5)
사무실로 들어가니 자리에 있던 조사과 공무원들의 시선이 온통 내게 쏠렸다.
내가 검사에게 소환당했다는 건 모든 직원이 다 알았다.
그래서인지 불안함과 긴장된 얼굴들이었다.
나는 짐짓 쾌활하게 소리쳤다.
“검사실 구경하고 왔습니다!”
“그럼 다음으론 과장실도 구경하시죠.”
황민우가 충혈된 눈으로 과장실을 가리켰다.
오른손에는 붉은 펜을 든 채였다.
내 개인적인 사정이 어떻든 간에 조사과 일은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덕분에 파트너인 황민우에게 일이 몰리고 있었다.
“얼른 다녀와서 제가 하겠습니다.”
“그럼 주사보님 하실 일은 남겨 둘 테니 다녀오시죠.”
조사과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가벼운 말투였다.
나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과장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는 서장과 재산세과장도 모여 있었다.
“오, 드디어 왔네.”
재산세과장이 반갑게 맞았다.
“두 분 다 여기 모여 계셨네요?”
“어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죠.”
서장이 허허 웃었다.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술 냄새가 아직도 진동했다.
“앉아봐. 서장님이 어제 재밌는 얘길 들어오셨어.”
재산세과장이 옆자리를 툭툭 쳤다.
“검사실에서 있었던 얘기가 먼저입니다, 과장님.”
조사과장이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자신의 책상에 앉아 분주히 펜을 놀리고 있었다.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조사를 맡은 건 검사 하성필입니다만 저에 대해 명확한 증거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리저리 끼워 맞추고 있었어요. 과잉 조사, 권력 남용, 횡령…….”
“그럴 것 같더라니까. 얘가 일을 하면 얼마나 했다고 털겠어.”
“뭐든 털면 나오는 게 이 바닥입니다.”
“어허, 김 과장은 너무 조심성이 많아.”
재산세과장은 툴툴거렸지만 나는 조사과장의 의견에 동감이었다.
내가 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협박이 있었습니다. 조사과를 엎어버리겠다구요.”
-콰직.
조사과장의 책상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바라보자 조사과장의 손에 들린 볼펜이 반으로 뚝 부러져 있었다.
“김 과장. 화난 건 이해하는데 그러다 손 다쳐.”
재산세과장이 가볍게 말했지만, 서장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재산세과장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서장을 바라보다가 분위기가 이상하자 입을 다물었다.
“김명중 과장. 어떻게 공격해 올지 과장은 알겠지요?”
“……아슬아슬한 건이 몇 개 있습니다. 그것부터 찌를 겁니다. 그다음 목표는 저구요.”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우리가 먼저 쳐야 합니다. 저쪽에서 손쓰기 시작하면 늦어요.”
조사과장은 무표정한 채로 부러진 볼펜을 치웠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와 표정이었지만 과장의 손은 볼펜 조각을 줍는 데 몇 번이고 실패했다.
“감사 나온 구성준은 제 동기입니다. 다른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누군가의 줄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쪽의 칼로 악명이 높다고 합니다.”
“내가 들은 것도 그렇습니다.”
서장이 거들었다.
“지금 국세청에는 크게 세 개의 파벌이 있어요. 서울지방청장, 중부지방청장, 본청 조사국장. 이렇게 셋입니다.”
조사1국장 민치호!
내게 힘을 실어 주겠다고 했던 그 사람이다.
내가 탄 라인이기도 했다.
뭔가 파벌싸움이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이렇게 내 상관의 입에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구성준은 그 세 파벌 중 서울지방청장의 칼입니다. 그간 쳐낸 과장급이 한둘이 아니죠.”
“칼이라면 그가 왜 움직이는 겁니까? 우리 용산서는 아무 라인도 없지 않습니까?”
조사국장의 질문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쩌면 이 모든 게 파벌싸움으로 벌어진 일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 상관은 억울하게 휘말린 게 된다.
나 혼자 덤비는 한이 있어도 이 셋은 파벌싸움에서 손을 떼게 만들어야 했다.
“아니요. 이번엔 파벌싸움은 아니었습니다. 태일기업이 친인척 청탁을 꽤 한다고 했죠? 청에서 들은 얘긴데 실제로 은퇴한 서장 중에서 태일기업 고문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답니다.”
“아, 저도 들었습니다. 반년 전엔가 전 중부세무서장이 태일기업에서 용돈을 탄다고 하던데요.”
서장은 친인척 청탁 상황을, 재산세과장은 태일기업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했다.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라 해도 역시 공무원 세계에서 몇 십 년을 일한 사람들이다.
저마다 알아온 정보를 맞춰 보니 모양이 잡혔다.
“네. 그 중부세무서장이 바로 구성준의 전 상사입니다.”
“아…….”
재산세과장과 내가 탄성을 내질렀다.
대충 감이 잡혔다.
태일기업은 한쪽에만 청탁한 것이 아니라 세무서, 검찰 양쪽에 부탁한 것이다.
세무서 쪽에는 전 중부세무서장을 통해 구성준에게 부탁하고, 검찰 쪽에는 또 누군가를 통해 하성필에게 부탁한 셈이 된다.
겨우 말단 직원인 나 하나를 조지기 위해서.
구성준의 경우에는 조사과장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낀 것 같긴 했지만.
“얼마나 제가 괘씸하다고 이렇게까지…….”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내가 감히 법의 철퇴를 내린 것이 그렇게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철저하게 짓밟을 정도로.
“원래 그런 놈들은 남을 착취하는 데 익숙해서 자기가 당하면 10배로 돌려주려고 하지.”
“신재현.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만약 네가 과세에 실수가 있었다면 이런 비열한 방식이 아니라 소송을 걸었을 거다.”
재산세과장과 조사과장이 위로했다.
나 때문에 이런 귀찮은 일을 겪고 있는데도 어떻게든 지켜주려 하는 그들이 고마웠다.
“그래도 파벌 싸움에 휘말린 건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만약 그랬다면 우린 손도 못 써 봤을 겁니다.”
서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의미론 파벌싸움이 맞다.
두 라인의 칼끼리 붙은 거나 다름없으니.
다만 구성준은 여럿 베어 본 검증된 칼이고, 나는 아직 벼리는 중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나는 아직 세무서의 7급 공무원이고 제대로 된 정보망도 재료도 없는 것이다.
“구성준은 치밀한 놈입니다. 하지만 손해는 안 보는 성격이에요. 라인의 윗줄에서 내려온 명령이 아니라 개인적인 청탁을 받은 이상 이득보다 손해가 크다 싶으면 빠질 겁니다.”
조사과장의 말에 머릿속이 번뜩했다.
“하성필 검사. 그 검사 뭔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탈세한 금액이 1억이었다.
하지만 이걸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돌려 말하기로 했다.
“제가 뇌물 받냐고 떠봤을 때 반응이 이상했습니다. 멱살까지 잡혔거든요.”
“……검사 얼굴에다 대고 뇌물 받냐고 물어봤어?”
재산세과장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별 개소릴 다 하길래요.”
“아, 조사과 엎어버린다고 그랬댔지. 그래도 간도 크네, 신재현.”
“거봐요.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서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하성필 검사라고 했나? 알아봐서 나쁠 건 없지. 뭐라도 해봐야 하니.”
“혹시 하성필 검사 이름으로 신고된 건이 없는지 한 번 보겠습니다.”
“아니, 이름 검색하면 기록 다 남아. 과장인 내가 하는 게 나아.”
조사과장이 일어서려는 날 만류하더니 자신이 컴퓨터를 조작했다.
잠시 과장실에 딸각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리고 과장의 눈빛이 변했다.
“이거 이상한데.”
“뭐 있어?”
재산세과장이 벌떡 일어섰다.
“주식 양도 신고서가 있는데 비상장일 때 사서 상장일 때 팔았어요.”
-드르륵.
서장, 재산세과장, 나.
우리 셋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헐레벌떡 조사과장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말도 필요 없었다.
상장 주식은 주식 시장에서 아주 쉽게 클릭 몇 번만으로 살 수 있지만, 비상장 주식은 다르다.
어느 회사가 몇 주를 발행했는지도 모르고 주주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
시장에 돌아다니지 않는 주식.
관계자끼리 알음알음 사고파는 주식이다.
“차익은?”
“20억입니다.”
“양도세는? 아니, 양도세가 문제가 아니지. 비상장 주식을 개인이 어떻게 알고 사?”
“누가 뇌물로 정보를 준 거죠.”
비상장 회사의 주식은 매우 싸다.
주당 100~200원인 곳도 있을 정도다.
애초에 시장 내에서 거래되지 않는 데다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아직 재야에 숨어있는 진흙 속 진주 같은 회사.
그런 회사가 상장하게 되면 주식 가치는 그야말로 몇 배 뛰어오른다.
투자자들이 신생 회사에 투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투자금의 이자를 받아먹어도 좋고, 회사가 성장해 상장이라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그 주식 누구한테서 취득한 거죠?”
내가 다급하게 묻자 과장이 첨부 서류를 눌렀다.
양도세 신고서라면 양도 계약서와 취득 시 매매 계약서, 둘 다 스캔본이 첨부되어 있기 마련이다.
[주식회사 태일기업은 ‘글린 바이오’의 주식 140만 주를 주당 500원에 하성필에게 양도하기로 한다. 하성필은 매매대금 7억을 즉시 지급한다.]
“태일기업이야.”
화면에 뜬 취득 계약서에는 파는 사람 태일기업, 사는 사람 하성필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이렇게 연결되네.”
“뇌물 맞죠?”
“시장에 나오지도 않는 주식을 어떻게 사겠어.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뇌물이지.”
재산세과장이 턱을 쓰다듬었다.
“근데 이건 수사권 없는 우리는 밝히기 힘들지 않나?”
그랬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과세관청.
탈세가 아니라 뇌물이라면 우리가 조사할 권한은 없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탈세가 보였는데.
공짜로 받는 증여라면 아마 뇌물 규모는 7억쯤 될 것이다.
잠깐, 7억?
주식 취득 대금이 7억인데?
“하성필 검사가 7억이 어디서 났을까요?”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서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사과장은 말없이 키보드를 두드려 여러 기록을 열었다.
“하성필 연봉은 4천이야. 검사된 지는 2년째군.”
“그 전에 직장 다니면서 모은 건 아냐. 학교 졸업하고 바로 검사된 케이스니까.”
직장인은 유리 지갑이다.
즉, 우리는 하성필이 어디서 일했고 얼마를 받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검사가 되기 전까진 알바한 기록도 없을 정도로 소득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명백하군. 이걸로 일단 걸고…… 뇌물도 엮어야 확실히 모가지 날릴 수 있을 텐데.”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의외라는 듯 재산세과장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라인을 들먹이며 같은 편임을 어필한 지현석 검사.
그가 누구 밑에 있던 지금 당장은 이용해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경찰이라도 있나?”
그리고 이건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에겐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라인을 탔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상대 파벌의 견제도 받을 것이고 없던 적도 생기게 된다.
나중에, 내게 힘이 쌓이면 그땐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사받으러 갔다가 만난 검사입니다. 현재 우리 서의 소득세과장과 계장을 조사하고 있죠. 그 검사가 하성필 검사를 노리고 있는 것 같더군요.”
“검사가 검사를?”
“네. 제게 어떤 조사를 받았냐고 캐물었습니다. 아마 뇌물 이야기를 던져 주면 좋아할 겁니다.”
못 미더운지 재산세과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서장과 조사과장은 반대로 평온했다.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과장실을 나가 황민우를 찾았다.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면지에 계산 과정을 적고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며 그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갑시다! 조지러!”
“예? 주사보님, 제가 조져지게 생겼는데요. 저 이거 얼른 해야 합니다.”
“지금 안 조지면 우리 과가 조져져요. 사전 통지 없이 과세할 때 쓰는 공문 있죠? 그거만 뽑아서 갖고 나오세요! 택시 잡아 둘게요!”
“주사보님? 주사보님!”
어쩔 줄 몰라 하던 황민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럼 갔다 와서 이거 꼭 도와주시는 겁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