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7화 (17/500)

17화. 공격과 공격(3)

내가 웃음기를 보였기 때문인지 하성필 검사의 눈매가 가늘게 찌푸려졌다.

내가 먼저 소속과 이름을 댔는데도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이것도 기선제압의 한 종류인가.

나는 문가에 선 채 사무관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잘못 찾아왔나 보군요. 하성필 검사님이 안 계신가 봅니다.”

“예?”

멀쩡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니 당황스러울 것이다.

사무관이 검사를 쳐다보았다.

사무실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자 도로 나를 바라보더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사람을 부르셨길래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럼 돌아가 볼 테니 나중에 검사님 계시면 다시 불러 주세요.”

“네? 아, 아니…….”

경력이 짧은 사무관인지 예상치 못한 상태에 허둥댔다.

사무관이 어쩔 줄 몰라 하자 검사가 싸늘한 눈빛으로 수사관에게 눈짓했다.

용산 세무서에 찾아왔던 수사관, 민종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오시죠.”

“네, 감사합니다.”

드디어 안내받은 자리는 한가운데의 테이블이었다.

그러나 역시 기선제압은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들 역시 온갖 종류의 험한 범죄자들을 다뤄본 사람들이다.

내가 용의자인 건 아니니 대놓고 기를 죽이진 못하지만, 꽤 노골적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바로 방치다.

-후룹.

-다각다각다각.

차를 마시는 소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한 실내를 메웠다.

검사와 수사관끼리의 대화도 없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아무도 내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것도 일부러 하는 짓인 건 나도 잘 안다.

이 분위기에 짓눌리길 원하는 거겠지.

그러나 제대로 된 검사도 아니고, 탈세액이 1억이나 되는 놈이 무슨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테이블 밑에 쌓여 있던 서류를 꺼내 들춰보기 시작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사무관이 기겁해서 소리 질렀다.

지금껏 없는 취급하던 검사와 수사관의 눈길도 단숨에 내게 집중되었다.

“제가 안 보이시나 해서요.”

“수사 기밀 정보예요. 내려놓으세요.”

“네, 그러죠.”

사무관의 뾰족한 목소리에 나는 순순히 서류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안을 들여다볼 생각은 없었다.

읽는 척만 했을 뿐이다.

다시 조용한 분위기로 돌아갔지만, 검사실 내, 세 명의 신경이 내게로 쏠려 있는 건 느낄 수 있었다.

흘끔거리는 눈동자와 몇 번 마주쳤으니까.

다시 내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리자 수사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재현 씨, 지금 무슨 혐의로 와 계시는지 모르시죠?”

“네, 모릅니다. 제가 뭘 잘못한 게 있던가요?”

민종혁은 서류 몇 장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아직도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였다.

“어디 보자, 과잉 세무조사로 민간 영업장에 지대한 피해를 끼치셨다고요? 권력 남용하신 거 아닙니까?”

“절차에 따라 정당히 진행된 세무조사입니다. 함께 간 조사관에게 물어보시죠. 일부러 둘이 다니는 거니까.”

“당연히 조사할 겁니다. 그 전에 당신부터 제대로 조사에 임하세요.”

“제대로 된 질문부터 하시죠.”

이놈이?

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수사관 민종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윽고 그가 서류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지금 신재현 씨한테 걸린 혐의가 몇 개인 줄은 알아요? 직권면직이 가능한 수준이라고요.”

“아, 혐의가 많군요. 다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이 자리에서 설명해 드리죠.”

수사관이 거칠게 의자를 빼 정면에 앉았다.

“신재현 씨는 과거 민간 기업에 있을 때 회사 내의 정보를 빼돌린 적이 있으며, 그로 인해 회사에 지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공익 제보는 죄를 묻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요.”

“공익 제보가 아니라 복수할 생각이었던 것 아닙니까? 제가 신재현 씨의 생각을 한번 맞춰 보죠.”

내가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수사관은 말할 틈도 주지 않았다.

사람을 많이 다뤄 본 느낌이 났다.

“신재현 씨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억울한 거예요. 부당하다, 어떻게든 회사에 엿을 먹여 주고 싶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신고하면 걸릴 건덕지가 있었던 겁니다!”

수사관이 의자를 당겨 앉더니 낮은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솔직히 태일기업은 좋은 회사가 아니잖아요. 털어 볼 만하죠. 게다가 신재현 씨는 총무부에서 일했으니 회사의 치부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죠?”

“…….”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맞다고 대답하자니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수사관은 왠지 내가 잘못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었다.

“정곡입니까?”

수사관이 은근히 재촉했다.

이 정도는 대답해도 되겠지, 하고 수사관과 눈을 마주친 순간 껄끄러움이 훅 치솟아 올랐다.

몇 달 되진 않았지만 나 역시 여러 종류의 사람을 다뤄 보았다.

뭔가를 바라는 사람, 숨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눈빛은 은근한 기대감과 불안함을 품고 있다.

그 느낌이 수사관에게서 풍겼다.

함정이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뭡니까, 설마 묵비권 행사하겠다 이겁니까? 별것도 아닌 얘긴데…… 뭐 찔리는 거라도 있어요?”

다시 수사관이 자극했다.

그러나 이젠 명확히 느껴졌다.

그는 나를 떠보고 있다.

“제가 그렇다고 하면 회사에 고의로 손해를 끼친 걸 인정하게 되는 겁니까?”

“좀 더 솔직해지자는 거죠. 신재현 씨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싶은 거 아니었습니까?”

나는 그제야 그의 속셈을 깨달았다.

이들은 나를 엮을 구체적이고 뚜렷한 혐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놓고 취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함정을 깔고, 내가 말실수하도록 유도한다.

한 발짝 디디면 그 뒤로 수많은 올가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저는 순수하게 공익을 위해 제보했을 뿐입니다.”

미약하게 혀 차는 소리가 났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세무조사 과정을 생중계하셨다고 하던데요.”

“조사 과정에서 신체적인 위협을 느껴 부득이하게 통화만 연결해 두었습니다.”

“총무부와 세무사에게 과한 요청을 하고 임직원에게 협박을 한 건 과잉 조사가 아닙니까?”

“모두 정상적인 절차를 따랐고, 제가 한 과세 모두 당사자가 소명하지 못했습니다. 과세 근거 역시 명확합니다.”

과세 근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수사관은 다시 방향을 틀었다.

“서류를 5분 안에 찾아서 보내라고 했다면서요. 이게 갑질이 아니면 뭡니까? 세무공무원이 기업체에 서류를 요청할 권한이 있다고 해서 갑은 아닙니다만.”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젠 그런 것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가.

“이미 있는 서류라면 꺼내서 팩스 보내는 데 3분도 안 걸립니다. 항상 상비하고 있어야 하는 서류였어요. 게다가 결국 그들은 서류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조사하러 가니까 주더군요.”

그 후로도 수사관은 건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엮어 볼 것을 찾는 게 분명했다.

오죽하면 임원진에게 소명하라고 말한 것도 협박 아니냐고 하겠는가.

“몇 번 물어보셔도 똑같습니다. 저는 절차대로 처리했습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지만 단 한 번의 말실수도 없었다.

다시 수사관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드디어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재현 씨, 횡령하셨죠?”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신재현 씨는 태일기업의 총무부 직원으로서 통장을 관리했습니다. 게으른 부장이 일 처리를 떠넘기고 잘 확인하지 않는 것을 이용해 법인 통장에서 현금으로 인출한 것 아닙니까?”

검사가 몇 장의 종이를 갖고 다가왔다.

수사관이 자리를 비켜줬지만, 검사는 앞에 앉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검사는 의외로 어려 보였다.

나보다 한두 살 더 많아 보인다.

왜 선제공격을 노련한 수사관에게 맡겼는지 알 법했다.

“신재현 씨가 근무하던 동안 직접 관리한 법인 통장입니다. 보시죠.”

뭘 물고 늘어지려는지 안 봐도 안다.

회삿돈을 자기 돈처럼 쓰는 버릇 나쁜 회사답게, 태일기업의 임원들은 회계 처리 없이 통장에서 돈을 꺼내 쓰곤 했다.

아무런 명목 없이 통장에서 마구 빼낸 돈을 내가 인출했다고 덮어씌우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이걸 내가 했다는 증거가 되진 않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검사가 테이블에 손을 짚으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신재현. 공무원 생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걸릴 거 없다고 생각하지?”

얼마 안 돼서가 아니라 깔끔하게 처리해서겠지.

조사과장이 누누이 강조하는 근거과세라는 것이다.

“횡령은 시작이야. 명령받은 이상 어떻게든 엮어 넣을 거다. 거기다 너 말고 너희 과 다른 놈들은 어떨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좀 마음에 드나 보네. 눈에 힘 풀어. 너만 잘하면 그럴 일 없으니까.”

“원하는 게 뭡니까?”

“네가 화나게 만든 사람들. 가서 무릎 꿇어. 정성을 다해 뉘우치면 선처해 줄지도 모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태일기업이 뭘 잘했다고 가서 빌란 얘기가 나오나.

어차피 검사도 태일기업의 사주를 받은 누군가 높으신 분에게 명령을 받은 것이겠지만, 너무 대놓고 나오는데.

내가 잠시 말이 없자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검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앞자리에 앉았다.

짧은 대화였지만 하성필 검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나를 깔아보는 눈빛과 한숨 섞인 목소리.

권력에 도전하지 말라는 듯한 말투와 그를 볼 때마다 머리를 스치는 탈세액.

권력에 빌붙어 힘을 누리는 사람인 건 알겠다.

“그러니까 함부로 건드리면…….”

“검사님.”

말을 끊자 검사가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네가? 하는 오만한 표정이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을 그대로 옮겼다.

“뭐 받으셨어요?”

“뭐야?”

“한 7억 정도 받으신 것 같은데…….”

무슨 개소리냐는 얼굴이던 하성필 검사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탈세액이 1억 3천이길래 대충 역산한 것인데 맞았나 보다.

제3자에게서 뇌물이나 스폰서를 받은 거라면 증여세니 계산은 쉽다.

“현금으로 7억을 받긴 힘들고, 자동차 받으셨어요?”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정곡을 찔리셨습니까?”

아까 수사관이 했던 말 그대로 돌려주었다.

붉으락푸르락 흥분한 검사와 눈동자만 데록 굴리는 수사관이 보였다.

좀 더 몰아세워 볼까.

“대한민국 검사라는 사람이 뇌물이라. 검사님, 저한테 충고하실 때가 아니었네요. 검사님이야말로 모가지 조심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네가 어디서 입을 놀리는지 알고 있나?”

“다른 검사님 앞이라면 겁먹겠는데, 하성필 검사님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서요. 어차피 금방 못 보게 될 것 같은데.”

“이 새끼가……! 야! 네가 지금 무슨 처지인지 모르고 지껄이나 본데, 지금 네가 누구 눈 밖에 난 건 줄 알아?”

역시 조금만 건드렸을 뿐인데 금방 터져 올랐다.

나도 공무원이지만 검사 눈에 내가 같은 국가에 봉사하는 동료로 보일 리가 없다.

공무원 직급도, 밟고 있는 레일도 까마득히 아래에 위치한 내가 조롱하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높으면 얼마나 높은데요. 하성필 검사님, 지금 저 겁주시려고 그러는가 본데 허세는 안 좋습니다. 뭘 대단한 척하십니까?”

“이 미친놈이! 야, 신재현. 잘 들어라.”

검사가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넌 무조건 죽어. 왠지 알아? 네가 건드린 놈들이 전 지검장님하고 연결되어 있거든? 은퇴 후 취직 금지 규정 때문에 쉬고 계신 거지 너 같은 건 순식간에…….”

“검사님!”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술술 흘러나오자 수사관이 다급히 말렸다.

그러나 이미 들을 건 다 들은 후였다.

잠시 사무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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