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공격과 공격(2)
서장까지 직접 나서서 으르렁대는데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고 온 것도 아니니.
구성준은 일단 용산 서에서 물러나 밖으로 나왔다.
서장 대신 현관까지 배웅 나온 재산세과장이라는 놈이 퉤, 하고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이 보였다.
“싹 갈아 버리고 싶네.”
구성준의 말에 수사관이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큰소리치신 것 치고는 순순히 물러나신 것 아닙니까? 오늘 바로 조질 줄 알았는데요.”
“보통 말단 직원을 저렇게 감싸고 돌진 않으니까요.”
구성준은 말하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가뜩이나 용산 서에서 비리 혐의로 과장급이 아작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승진도 없고 영전도 없이 은퇴만 기다리는 서장 입장에서 서의 분란을 원치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직원 하나쯤은 내줄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직원만 조지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같이 오긴 했지만, 검찰 수사관이 큰 그림을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다.
구성준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쪽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검사님 지시사항만 제대로 이행하세요.”
현장을 뛰지 않는 검사 대신 파견된 수사관, 민종혁은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급수로 봐도 구성준이 높았고, 수사관은 검사의 손과 발일 뿐이다.
모시는 검사와 구성준이 누구의 라인을 타고 어느 선에서 명령을 받았는지.
그건 수사관인 자신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 저는 지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검사님께 좀 세게 압박해 달라고 전하세요. 아무래도 이쪽에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수사관이 주차장을 나가는 걸 확인하고 담배를 꺼내 물었을 때였다.
들어간 줄 알았던 재산세과장이 현관에서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배웅이 아니고 감시하러 나온 거구만. 갑니다, 가요!”
투덜대며 도로 담배를 집어넣고, 구성준이 차에 탔다.
서 내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재산세과장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그 뒤를 지켜보았다.
***
“갔습니다, 둘 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산세과장이 서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세 쌍의 눈길이 쏠렸다.
서장과 조사과장, 그리고 나였다.
“죄송합니다.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상사들만 모인 자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리 나 스스로는 잘못한 게 없다 해도 간접적으로 때려 맞는 것은 이들이다.
“됐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네가 고개를 왜 숙여? 쟤들이 고개를 숙여야지.”
재산세과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저 때문에 파란이…….”
아까부터 조용히 앉아 있던 조사과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재현.”
“예, 과장님.”
“근거과세의 원칙. 몇 번 말했지?”
“예.”
조사과장은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멍한 눈동자가 정처 없이 테이블 위를 맴돌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조사 모두 돌이켜 봐. 네가 잘못한 게 있나?”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없습니다.”
“그럼 됐어. 잘못한 게 없는데 뭘 쫄아.”
그 누가 말한 것보다 조사과장의 말이 가장 힘이 되었다.
“예!”
“허허. 그래, 김 과장이 말 잘했네. 지들이 백번 찾아와 봤자 잘못한 거 없으면 장땡이지. 앉아, 앉아.”
호들갑을 떠는 재산세과장의 말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분위기가 정리된 것 같아 보이자 조사과장이 꾸깃꾸깃하게 접어 온 종이를 펼쳐 내려놓았다.
“아까 그놈이 가져온 공문입니다. 조사 대상 기간이 최근 1개월이에요.”
“한 달이면 조사과 이동하고 바로 아닙니까.”
“이 기간 동안 신재현 주사보가 손댄 조사가 뭐 뭐 있죠?”
서장의 질문에 내가 답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조사과장의 대답이 빨랐다.
“탈세 제보 한 건, 부가세 세 건, 법인세 한 건입니다. 마지막에 법인세가 좀 컸지요.”
탈세 제보는 내가 맨 처음 조사과에 오자마자 맡았던 마트 건이다.
부가세는 태일기업 정리하는 동안 처리했던 자질구레한 건.
그리고 법인세는 태일기업이다.
“이 중 가장 가능성 있는 건은요?”
“태일기업입니다.”
조사과장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내 업무만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설마 모든 직원의 모든 업무를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태일기업에 대해선 제 선에서 알아보지요. 신재현 주사보.”
“네, 서장님.”
“태일기업에서 일한 적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서장이 슬쩍 조사과장을 쳐다보았다.
과장에게서 들은 것이리라.
굳이 숨길 일도 아니고 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무원 공부하기 전 일했던 회사입니다. 횡령을 알아냈다는 이유로 잘렸죠.”
“그런 일이 원래 비일비재한 회사였습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무슨 대단한 권한을 맡았던 것도 아니고, 그땐 재무제표 볼 줄도 몰랐던 시절이다.
그래도 세법이고 뭐고 지식이 없던 내 눈에도 이상해 보일 정도긴 했다.
“네. 돈이 자주 빠져나갔다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경리 여직원은 그걸 차입금 상환으로 처리하더군요.”
“일시적으로 뺐다가 넣었다라…… 횡령은 맞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사과장이 내게 물었다.
“낙하산이 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를 임원진이 몇 있었습니다. 보통 2, 3년 정도 있다 간다고 했어요. 회사에 출근 하지도 않고 이름만 올려놓고 월급만 받아갔습니다.”
순간 세 명의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 모였다.
“그거로군.”
“줄 댈 때 가장 편하게 쓰는 방법이네요.”
“자녀나 친인척 취업 청탁이라는 뜻인데. 서장님.”
재산세과장이 턱을 문지르며 서장을 불렀다.
“취업 청탁 쪽이면 제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건 맡기겠습니다.”
“서장님.”
이번엔 조사과장이었다.
“서장님 아직 청에 아는 사람들 있으십니까?”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은퇴 직전의 한가한 사람들이라면 몇 있습니다.”
“그럼 어느 라인인지 알아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서장이 허허 웃었다.
“힘없는 서장도 써먹을 데가 있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장의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동기들과 술 먹을 때가 되긴 했죠. 그럼 오늘은 좀 일찍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아마 청에 들어가 볼 생각인 듯했다.
서울청은 종로에 있으니 지금 출발하면 5시.
돌아보고 잡담하고 밥 먹으러 나가기 딱 좋은 시간이다.
“그나저나 검찰에서 곧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장이 날아올 텐데요.”
“굳이 갈 필요 있습니까?”
재산세과장은 가지 말라고 했지만, 조사과장은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뇨. 수사 진행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질문을 들어보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수사하는지 보이니까.”
“그렇다고 1년 차 직원을 덜렁 보내? 검찰 애들 얼마나 무서운지 알잖아.”
“흠…….”
사방이 아군인 용산 서와는 다르게 검찰은 적지다.
게다가 조사 대상.
말실수 하나라도 함정이 되어 돌아오게 될 것이다.
“괜찮습니다. 가면 되죠.”
“검찰청을?”
“안 가면 불리한 거 아닌가요? 굳이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번 일이 내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걸 아는데 쳐져 있을 순 없었다.
오히려 치고 나가야 할 때다.
“가서 상황이나 보고 오죠.”
“거참. 간이 큰 건지, 부은 건지…….”
재산세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조사과장에게 말했다.
“김 과장이 직속 상사니까 책임이 큽니다. 일이 해결될 동안 잘 지켜주세요.”
“네.”
조사과장의 얼굴이 굳어 보이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더 경직되어 보였다.
***
서장은 그 길로 바로 서울지방국세청으로 떠났다.
재산세과장도 어딘가로 바삐 떠났다.
조사과장 김명중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질문 공세에 휩싸였다.
“과장님! 검찰이 대체 왜 옵니까?”
“혹시 저희 과 대대적으로 수사 들어가나요?”
과장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다들 불안에 떠는 눈빛이었다.
“별일 아냐. 잘 끝날 거다. 걱정할 거 없어.”
직원들을 다독이고 과장실로 들어와 무너지듯 자리에 앉았다.
‘오늘부터 3계는 해체합니다. 3계원들은 발령 대기가 내려질 겁니다.’
‘이게 무슨 법입니까! 계 자체를 없앤다니!’
‘계원들 전부 한통속이니 당연한 일이죠. 아, 3계장은 직위 해제될 겁니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서초 세무서에서 나름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나가던 김명중이 레일에서 탈선한 것도 그때였다.
‘대체 어디서 유출된 거지? 일부러 회의는 밖에서 했는데.’
‘이러니까 여러분이 멍청한 겁니다.’
‘구성준, 너……!’
혼돈에 휩싸여 있던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웃었던 구성준.
동기로서, 친구로서 믿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상대는 정치인이에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도 강행한 여러분이 나쁜 겁니다.’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가 한 말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업무 정지 명령이 내려진 사무실을 뒤로하고 나가는 구성준.
그를 돌려세운 김명중 과장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비웃음이었다.
‘내가 경고했잖아. 그때 들었어야지.’
‘네가 왜!’
‘그래도 너는 쓸 만해서 데려갈까 했는데…… 계장한테 너무 물들었어. 세상에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아야지.’
김명중 과장은 감았던 눈을 떴다.
과거의 환상이 사라지며 목소리만 여운처럼 남았다.
‘고맙다, 그래도 덕분에 난 청으로 가게 됐어.’
-뿌드득.
김명중은 이를 갈았다.
영전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세종의 본청은커녕 서울청 문턱도 밟지 못할 것이다.
아마 현재 용산 세무서의 서장처럼 어디 적당한 세무서의 서장으로 은퇴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싹을 짓밟게 둘 순 없었다.
인맥도 끊어진 지 오래, 힘도 없다.
하지만 과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뭐라도 해 봐야 할 때였다.
***
검찰에서 출석 통지서가 날아오고, 마침내 출석하는 날이 다가왔다.
옷을 챙겨 입자 직원들이 다가와 한 마디씩 보탰다.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냥 다 모른다고 해. 묵비권 알지?”
“뭘 물어보든 다 매뉴얼대로 처리했다고 해!”
“야, 안 되면 과장님 팔아라!”
“차지훈, 미쳤냐?”
오히려 주변에서 호들갑이었다.
사지로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듯한 표정들이다.
“걱정 마세요. 별일 없을 테니까.”
“이럴 땐 어떻게 과장님하고 똑같냐.”
그야 정말로 걱정하지 않으니까지.
그렇다고 내 뒤에 누가 있네 없네 말해 줄 필요는 없다.
진짜 그들의 바로 밑으로 올라가기 전까진 그저 쓸 만한 인재 후보 중 한 명일 테니까.
이번 위기도 그들에겐 시험일 것이다.
걱정 많은 직원들을 뒤로하고 서울 서부지검으로 향했다.
용산구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이다.
1층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검색대를 통과해 형사 3부로 올라갔다.
하성필 검사실.
날 소환한 검사의 이름이 보이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굳이 오려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삼성 세무서의 재산세과장 이선균은 내게 ‘전관’을 치게 될 거라 했다.
즉 하성필 검사 뒤에도 사주한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용산 세무서에 앉아만 있어서는 그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타겟이 보이지 않으니 직접 와서 살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적지라고 해도.
-달칵.
불투명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명의 여직원과 세무서로 왔던 수사관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맨 안쪽 책상에 앉은 20대 후반의 꽤 젊어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눈을 번뜩였다.
-일렁.
[131,580,495]
먹이를 노리는 매 같은 눈동자의 검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를 바라본 나도 씨익 미소 지었다.
탈세액이 1억 3천만 원이라.
그는 나를 먹이로 보겠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용산 세무서 조사1과 1계 7급 주사보 신재현입니다.”
지금부터는 그도 나의 타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