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5화 (15/500)

15화. 공격과 공격(1)

실사 조사가 끝나고도 할 일은 많았다.

과세 근거는 나만 알고 끝나는 게 아니니 철저하게 자료를 만들어 두어야 했다.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반박이 나오지 않을 만큼,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결정문을 만들고 싶었다.

황민우가 계정별 원장을 뜯어보며 꼼꼼히 체크하는 동안 나는 낑낑대며 결정문을 작성해 나갔다.

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이선균]

삼성세무서 재산세과장이다.

잠수교에서 내게 기회를 줬던 사람이자 높으신 분과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 사람.

나는 주위를 슬쩍 살피고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조사과는 건물이 따로 있다 보니 나가기만 하면 주차장 구석이었다.

“예. 신재현입니다.”

“오랜만입니다.”

부드러운 존댓말이 귀에 착 감겼다.

여전히 조용조용한 말투의 아저씨였다.

“날뛰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날뛸 줄은 몰랐습니다.”

“잡아야 할 놈을 잡았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전화 너머에서 허허로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잘하고 있다고 말하려고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해 줄 거라 믿습니다.”

평범한 안부 전화일 수도 있지만 나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를 확인하려 하는 것 같다.

“뭔가 할 말이 있으십니까?”

쓸데없이 떠보는 건 좋지 않다.

나는 직접적으로 물었다.

과연 이선균 재산세과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전관 하나를 털게 될 겁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물어뜯으셔도 됩니다.”

“제가 말입니까?”

“예. 거는 기대가 아주 큽니다.”

전관이라면 청장이나 서장급이 은퇴한 후를 가리킨다.

은퇴 후 뭘 하느냐에 따라 대우가 갈리긴 하지만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마다할 내가 아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하하핫. 그렇게만 해 주세요. 조만간 삼성 서에서 보게 되길 고대하겠습니다.”

삼성세무서라.

영전시켜 주겠다는 남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손을 잡기로 한 이상 호의를 거절할 필요도 없지.

“아 참, 힌트를 하나 드리죠. 우리가 신재현 씨에게 쥐여 준 권한은 생각보다 큽니다. 많이 썰어 보세요.”

내가 지금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더 나아가길 원하는 느낌이다.

곁에 두고 쓸 인재가 되길 원하는지, 잘 드는 칼날이 되길 원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말씀드렸듯이 털 놈은 털 겁니다. 그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거물이 그 손에 죽어 나갈지 즐겁게 지켜보겠습니다.”

조용히 웃는 그 허허로운 얼굴이 눈에 선했다.

***

사무실로 돌아오자 황민우는 아직도 원장에 형광펜을 칠해 가며 분류 중이었다.

두께를 보아하니 50장 정도 끝낸 듯하다.

내 할 일은 얼추 끝났으니 작업을 돕기 위해 쌓인 종이를 한 뭉치 집어 들었다.

“아, 제가 해도 되는데.”

“같이 하면 더 빨리 끝나죠.”

“감사합니다.”

내가 잡은 것은 지급 수수료 항목이었다.

임원진 자녀들 학원비, 대표이사 부인의 요가 교습비, 임원진 자택 청소비…….

법인 비용이라기엔 많이 이상한 것들을 형광펜으로 열심히 그어 내려갔다.

“황민우 서기님. 다음에 발령 나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단순 노동을 할 땐 잡담이 최고다.

황민우는 날 흘끔 보더니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을 했다.

“삼성, 서초, 역삼. 당연히 이 셋이죠.”

“역시 그런가요.”

관할하는 구역에서 알 수 있듯이 납세자 수입 규모도 여기 용산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무서에서 상대하는 납세자도 다들 한가락 하는 기업들이다.

증여세와 양도세 등 재산 관련 세금도 상상 못 할 정도로 빈번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세무서 중 톱.

“근데 어차피 못 갈 테니까 그냥 집 근처로 발령 났으면 좋겠네요.”

“너무 빨리 포기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땐 1년 차 같은 소릴 하시네. 아차, 1년 차셨지. 오래 일한 것 같아서 착각했네요.”

황민우는 소모품비 계정에서 대표이사 부인이 산 화장품과 명품 가방을 형광펜으로 칠하며 구시렁거렸다.

“T/O 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인가요, 거기가? 성적 좋아도 못 갈 걸요.”

서울권 세무서에 들어오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들지만, 강남 3대 세무서에 들어가는 건 실력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얘기는 들었다.

“아무나 못 가는 건 압니다. 그래도 엄연히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갈 수는 있겠죠.”

“주사보님. 저 강 건너에 서울지방검찰청 있죠?”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엘리트들만 가는 거 아시죠? 성적 좋아도 거기 못 가잖아요.”

“네.”

“마찬가지예요. 삼성, 서초, 역삼. 더 나아가서는 강남, 반포 세무서는 인사고과만으로는 못 갑니다.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인데요.”

황민우의 비유를 듣고서 새삼스레 감탄했다.

내가 가기로 예정되어 있는 삼성 세무서는 그런 곳이었다.

잠시 형광펜을 긋던 손을 멈추었다.

황민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근데 왜요? 설마 주사보님 강남 쪽 세무서 가시게요? 거긴 힘들 텐데…….”

“아, 그냥 궁금해서요.”

“혹시나 기회 되면 무조건 잡으세요. 가기만 하면 앞날이 피는데. 특히 거기 과장쯤 되면 차후에 본청 영전이 예정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엘리트 코스라면 당연 과장과 계장급도 거기서 끝나지 않겠지.

이선균 재산세과장도 더 올라가려는 걸까.

문득 이선균 재산세과장과 조사1국장 민치호의 라인에 또 누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줄을 잡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겠지.

사무실 안의 직원들을 슬쩍 둘러보던 때였다.

막 문을 열고 들어오던 김명중 조사과장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까딱.

그의 검지가 나를 가리켰다가 가볍게 흔들렸다.

따라 들어오라는 뜻이다.

“잠깐 과장실 좀 다녀올게요.”

성큼성큼 걷는 과장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과장이 직원을 찾는 거야 당연하지만 어쩐지 오늘은 기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무표정하지만 오늘은 눈에 띌 정도로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거칠게 서류철을 내려놓은 과장이 자리에 앉았다.

“과장급 회의 갔다 왔다.”

“예.”

“압력 들어왔어.”

“뭐 때문에요?”

진심으로 몰라서 물었다.

정확히는 왜 압력이 들어왔냐가 아니다.

하도 저지른 짓이 많아서, 어느 건 때문에 압력이 내려온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어느 선을 타고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는데 검찰 쪽에서 움직이고 있다.”

“예? 검찰이요?”

뜬금없는 이름이 나오자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감사관이 내려오겠거니 했지, 검찰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대체 혐의가 뭐랍니까?”

“그쪽에선 수사 정보라고 밝히길 꺼려했어.”

뭘로 엮든 간에 스케일이 참 크다.

“서장님도 당황하셨겠네요.”

“과장급이 날아간 지 얼마 안 돼서 들어온 조사라 더 그렇지. 그런데…….”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별로 동요하는 것 같지는 않군.”

그의 말대로다.

검찰 조사라니 귀찮은 일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반면에 아까 온 삼성 재산세과장 이선균의 전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해라.

용건은 그랬지만 그건 분명 격려차 전화한 것이 아니다.

분명 이 사태를 예견하고 미리 전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압력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전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탈세범을 잡았는데 그게 죄가 됩니까?”

“그 말도 맞군. 내가 괜히 걱정했어.”

“어, 걱정하셨습니까?”

조사과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직원을 지키는 건 내 의무지. 나가서 할 일 해. 서장님도 가만 있지 않을 거라 하셨으니.”

당장 이 서만 해도 든든한 상사들이 여럿 있었다.

내 예전 상사인 소득세과 과장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다.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이려던 때였다.

-똑똑똑.

누군가 거칠고 다급하게 과장실 문을 두드렸다.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상치 않다.

과장의 눈빛을 받은 나는 문을 열었다.

어딘지 급해 보이는 표정을 한 황민우다.

“주, 주사보님. 아니, 과장님! 검찰에서 왔어요!”

벌써?

얘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벼락같은 움직임이다.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인맥을 가졌지?

“허둥댈 것 없어. 내가 가지.”

“나오실 것 없습니다, 과장님.”

얇은 넥타이를 맨 새카만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약간 가볍게 세미 정장을 입는 세무서 공무원과는 차림새부터가 달랐다.

“서부지검 형사 3부 하성필 검사실에서 나왔습니다. 수사관 민종혁입니다.”

수사관이 이름을 밝혔으니 과장이 답할 차례다.

그러나 과장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왜 그러지?

뒤돌아보니 과장이 어느 한 곳을 응시하며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수사관 뒤에 따라 들어온 껄렁한 인상의 한 남자를 향해서다.

“오! 오랜만이네, 김명중! 아직도 세무서 전전하고 있냐?”

“……구성준.”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조사과장치고는 극명한 적의였다.

나는 검사실에서 수사관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조사과장이 저토록 흔들린다는 게 놀라웠다.

“뭐 하러 온 거냐.”

“오랜만에 본 동기한테 섭섭하게 무슨 소리야. 네가 친한 척 해 봤자 달갑진 않지만 말이지.”

“닥치고 무슨 일인지나 말하라고. 네가 날 보러 올 리는 없으니까.”

이번엔 옆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던 황민우조차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둥그렇게 뜬 눈동자가 과장을 향했다.

나보다 더 오래 근무한 황민우에게도 과장의 저런 반응은 놀라운 것인가 보다.

“거참 삭막하네. 그래서 내가 널 싫어해.”

원수를 보는 것 같은 말싸움은 갑작스럽게 끝났다.

구성준, 그는 방 안의 우리를 향해 피식 웃더니 공문을 꺼내 내밀었다.

“서울지방국세청 청장 직속 감사위원회에서 나왔다. 검찰 측에서 조사과 직원한테 혐의를 찾았다고 해서.”

우리가 공문을 들여다볼 새도 없었다.

조사과장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공문을 휙 낚아챘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식구인데 검찰에 잡혀가게 둘 순 없잖아? 어때, 네가 부탁하면 내가 잘 말해 볼 수도 있는데.”

식구는 개뿔.

감사관 구성준이 과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명백히 과장의 곤란한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챘다.

“잘 말해? 계 하나를 통째로 박살 냈던 네가?”

서류를 확인한 과장은 대충 탁자 위에 던졌다.

평소 봐 왔던 과장의 절제된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동작이었다.

“야. 그래도 동기인데. 안 그래도 용산에서 두 명이나 유착으로 잡혀갔다며. 검찰에 소환 안 되고 서울청 조사로 끝나게 해 줄게.”

감사관의 얼굴이 비릿한 웃음이 흘렀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과장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날 선 신경전이 중단되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서장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방안을 훑더니 구성준에게 고정되었다.

“용산 세무서의 서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 서장님이셨군요.”

서울청의 사람이라지만 서장은 4급이다.

구성준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서장님, 이건 감사 권한입니다.”

“뭐가 잘못됐는지부터 말씀하시죠.”

“감사 대상이 이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씀드릴 수야 없죠.”

“그건 이상하군요.”

서장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편하게 은퇴하고 싶었다는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박력이었다.

“탈세 방조나 유착, 뇌물 같은 중범죄가 아닌 이상 감사는 투명하게 진행될 텐데요. 납세자에게도 소명 기회는 줍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한테는 해명 보고도 안 받을 셈입니까?”

나도 감사는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했지만, 서장 말을 듣고 보니 이상했다.

먼저 서면으로 나에게 통지가 오고 해명을 요구하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려면 필수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감사가 들어온 건지 알아야 했다.

게다가 1년 차인 내가 맡았던 일이라고 해봤자 몇 개 없다.

“검찰에 넘기길 원하시는 겁니까?”

“납세자에게 권리헌장 안 줬다고 절차 문제 삼아서 징계 먹이는 곳이 감사관실 아닙니까.”

“권리헌장 안 준 건 중대 문제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서장이 힘주어 말했다.

“절차 지켜서 오세요. 그 전엔 내 직원 절대 못 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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