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임원 상여금이 너무 많아(5)
전장은 마련되었다.
이 자료들이 내 총알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방어하는 측, 세무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내 말을 기다렸다.
“임원에게 상여금을 줄 땐 무조건 결의서가 있어야 하는 거 아시죠?”
“네. 당연하죠. 거기 이사회 결의서에 있잖습니까. 특별 공로금.”
“제가 대충 보니 작년에만 임원들이 각자 1억씩 가져가셨더라구요? 지대한 공을 세우셨나 봅니다.”
“대표이사님께선 중국과의 거래에서 비율을 높게 책정해 계약하셨고, 마 이사님께선 재정 감축을 실행하셔서 비용을 절감하셨습니다. 최 상무님은 새 거래처를 뚫으셨고…….”
이봉한 세무사의 입에서 이사진의 공로가 술술 흘러나왔다.
공로라는 게 세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법인의 판단에 맡긴다는 뜻이다.
외부인인 우리가 공로네 아니네 밝힐 수도 없고.
세무사의 방어를 본 임원진들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무조사 통지서가 미리 나가다 보니 이런 준비까지 막을 순 없다.
그래서 내가 이걸 가져왔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죠, 제가 사무실에서 이런 걸 발견했는데.”
나는 핸드폰에 사진을 띄워 내밀었다.
‘이사회 결의서’ 한글 파일 정보가 적혀 있다.
작성 일자는 일주일 전.
정상적이라면 상여금이 나가기 전에 결의서가 작성되었어야 한다.
“그…… 직원이 실수로 파일을 날려 먹어서 새로 작성한 겁니다. 저 서류 자체는 5년 전에 만든 거예요.”
“이미 만들어서 도장까지 찍은, 필요 없는 파일을 새로 만듭니까? 뭐 그럴 수도 있다 치죠.”
나는 원본에 찍힌 도장을 손으로 쓸었다.
손에 선명히 인주가 묻어나왔다.
“도장도 새로 찍으셨나 봐요?”
“이보세요, 조사관님. 지금 그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과세 근거가 됩니까?”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손을 펼치자 황민우가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세무조정계산서>
태일기업
표지에 적힌 글귀를 본 세무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결산서잖아!”
“30억 이상 법인은 세무서에 결산서 제출하잖습니까. 그리고 이 뒤에 보시면…….”
촤르륵 종이를 넘겨 맨 뒷장을 보여주었다.
“이사회 소집 기록입니다. 이 해에 신주 발행이 있어서 이사회 결의 하셨죠? 근데 임원 상여금에 대한 규정은 없네요?”
“하, 미치겠네. 그걸 찾아오냐…….”
세무사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결의서 작성된 날짜 전에 지급된 상여금은 법인의 업무 무관한 과다 비용으로 보고 비용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법인의 비용에서 제외한다.
즉, 법인세를 과세하겠다는 뜻이다.
세무사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마 이들에게 있어서는 허용 범위일 것이다.
법인세는 기껏해야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에 불과하다.
진짜 타격은 세율이 42%까지 치솟는 소득세다.
나는 자리에 앉아 우리의 공방을 경청 중인 이사진들을 둘러보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숫자가 빠르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저 숫자대로 과세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다음은 손익계산서 항목을 보죠.”
이번엔 황민우가 테이블 위에 잘 보이도록 손익계산서와 계정별 원장을 펼쳤다.
“복리후생비에 노래방하고 룸살롱이 있네요? 와, 룸비가 300만 원? 이건 뭡니까. 안마기 천만 원. 엄연히 횡령 아닙니까.”
보통 조사 나가면 가장 먼저 훑어보는 것이 비용 항목들이다 보니 이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과연 세무사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을 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하긴, 이건 반박할 거리가 없다.
“부인할 비용들은 제가 나중에 따로 정리해서 리스트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황민우가 대차대조표를 꺼냈다.
그걸 본 세무사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조사관에게 먹잇감으로 양보할 수 있는 선을 이미 지난 것이다.
“조사관님. 여기까지 하시죠?”
“그 말투는 협박처럼 들리는군요.”
세무사가 황민우의 손에 든 핸드폰을 흘끗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조사관님을 걱정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말 여기까지만 하셔야 합니다.”
“이봉한 세무사님. 조사과 회식 듣고 오신 걸 보니 소식에 밝으신 것 같은데 다른 건 아직 못 들으셨나 봅니다.”
“예?”
어리둥절한 세무사에게 씨익 웃어주었다.
“소득세과 과장과 계장을 날린 게 접니다. 제가 무서워서 과세 못 할 것 같습니까?”
세무사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요, 용산서 상또라이…….”
“감사합니다. 자, 그럼 계속하죠. 주임종 단기채권 10억 원 중 9억이 퇴직금 땡겨 받으신 거네요?”
“그, 그건 불법이긴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받을 돈 아닙니까. 나중에 받을 거 미리 땡겨받은 것뿐입니다!”
“이 경우엔 사정이 다르죠.”
나는 테이블 위의 서류를 쿡 짚었다.
“퇴직금 계산서입니다. 임원 퇴직금은 1년 치 총급여액에 일한 연수를 곱하죠. 그런데 상여금이 비정상적으로 많군요. 상여도 받고, 퇴직금도 부풀리고. 세팅 잘하셨습니다.”
내 칭찬에도 세무사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자산 항목에 숨겨 놓으셔서 그동안 안 걸린 것 같은데, 이거 다 상여금으로 봐서 소득세 나올 겁니다.”
“아, 아니 잠깐!”
“반박하실 근거 있으시면 하세요.”
충분히 시간을 주었지만 반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대놓고 법을 피하려다 걸린 것이니.
“그, 그럼 세금이 얼마야.”
“다음은 가지급금과 단기차입금입니다. 둘 다 이사님들께 빌려준 돈이더군요. 근데 이자도 안 내시고 갚지도 않으시네요? 회사에 돌려주실 겁니까, 아니면 이것도 상여로 볼까요?”
“소득세는 안 돼, 소득세는! 법인세로 끝내요!”
“그럼 횡령으로 고발할까요?”
“그, 회삿돈을 좀 쓸 수도 있는 거지…….”
“이사님!”
불평을 터뜨리는 이사를 향해 세무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평소 어떤 생각으로 돈을 썼는지 알 만하다.
나는 계속해서 읊었다.
“다음은…….”
아직도 더 남았어?
그런 비명이 들린 것 같았다.
***
그 시각, 용산세무서 조사과 사무실.
황민우와 나이가 같아 친하게 지내는 한 조사관은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힐끔거렸다.
지나가던 팀원이 그걸 보더니 쫘악 등짝을 때렸다.
“차지훈 조사관님. 일 안 하세요?”
“아!”
“무슨 연락 기다리는데, 여자친구야?”
등짝을 얻어맞은 조사관, 차지훈이 억울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업무라고요, 업무! 이거 보세요!”
핸드폰에는 영상통화가 연결된 채로 방치 중이었다.
카메라 부분은 테이프를 붙였고 마이크도 음소거해 두었다.
저쪽에서는 이쪽 사무실의 상황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일방적인 영상통화였다.
왼쪽에는 신입 조사관이 종이를 툭툭 치며 뭐라 항변하고 있었고 정면에는 이사진들이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그 광경을 들여다본 동료 조사관이 눈을 반짝였다.
“이거 소리 좀 키워 봐.”
“일하라면서요?”
“아, 얼른.”
“네네.”
구시렁거리며 볼륨을 올렸다.
신입 조사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뭐야, 결산서도 가져갔네?”
“저건 또 언제 찾아갔대요?”
“황민우 저거 보좌 잘하네. 우리 차지훈 조사관님도 척척 손발이 맞아야 할 텐데, 그치?”
“아, 왜 또 그러세요.”
잡담을 나누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자 주위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신입이야? 진짜 신입 혼자 공격하네?”
“아직 뭐가 뭔지 모를 때라 황민우가 다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더라구요. 이거 봐 봐요.”
핸드폰의 중심이 세무사에게로 옮겨갔다.
이사진들의 거듭된 실추와 신재현의 공격에 세무사는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크하하! 세무사한테서 이런 표정 이끌어내기 힘든데.”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저번에 세무사한테 된통 당해서 그래.”
“내가 언제 당했다고 그래! 법 해석에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그, 근데 이거 왜 켜 놓은 거야?”
화제를 돌리는 것 치곤 꽤 어색한 말투였다.
더 놀릴까 하다가 주위에 어느새 사람이 많이 모인 걸 본 차지훈은 모르는 척 설명했다.
“거기 임원진이 악질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랫사람 쥐어 패는 건 예사고 입원까지 간 적도 있다고.”
“설마 공무원을 패겠어?”
“아까 진짜로 팰 것 같던데요.”
“뭐야? 악질이네.”
가만히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직원들의 낯빛이 싹 변했다.
반쯤 재미로 보던 사람들도 이제는 주먹을 쥐고 뚫어져라 액정을 보고 있었다.
[조사관님. 여기까지 하시죠?]
“저거 지금 협박하는 거 맞지?”
“맞네. 협박이야.”
“얼씨구. 잘못한 놈이 더 당당해, 아주.”
한탄하던 공무원 하나가 문득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 세무사 청 출신이야?”
세무사는 합격 방법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하게 시험을 봐서 합격한 시험 출신.
1차는 객관식, 2차는 주관식 논술이라 이론은 빠삭하지만, 인맥이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전문직이다.
다른 하나는 공무원 출신.
예전엔 세무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일하면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줬다.
지금은 혜택이 줄어들어 1차 및 2차 시험 일부만 면제해 주지만 그들의 주된 힘은 인맥이다.
특히 국세청 출신의 세무사들은 아직도 과세관청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종의 전관예우다.
“잠시만요. 세무사 관리번호 좀 볼게요.”
개업한 세무사들은 자격번호와는 별개로, 국세청에 등록해 관리번호를 부여받는다.
차지훈은 신고서를 열어보더니 번호의 맨 앞에 붙은 알파벳을 확인했다.
“T로 시작하네요. 시험 출신이에요.”
질문한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왜 저런 협박을 하지?”
“따로 인맥이 있나 본데요.”
“무슨 개나 소나 인맥이야…… 혹시 모르니까 내가 과장님께 말씀드려 놓을게.”
일말의 불안감이 직원들 사이에 흘렀다.
영상 속 신재현은 끝도 모르고 몰아치고 있었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직원들은 양손을 불끈 쥐며 신재현을 응원했다.
***
발칙한 세무 공무원 두 명이 돌아가고 난 후, 회의실 안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너무나 무거워서 혹시 공기에 무게가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박인철 부장.”
“네, 대표님.”
대표이사의 나직한 목소리에 부장이 흠칫 몸을 떨었다.
중간에 들어오긴 했지만,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 도저히 끼지 못하고 서 있던 참이었다.
부장은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표이사의 눈에 번질거리는 살기 때문에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타앙!
“윽!”
덕분에 부장은 대표이사가 던진 결재판을 피하지 못했다.
아니, 만약 봤더라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했다간 얼마나 화를 낼지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 거야! 뭐? 부하 직원? 네가 어떻게 했길래 태도가 저따위야!”
“죄송합니다!”
부장이 바닥에 털썩 엎드렸다.
화를 참지 못한 대표이사가 벌떡 일어나 부장에게 다가왔다.
“내가 대단한 걸 요구했나? 떨거지 하나 치우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꽈아악.
대표이사가 부장의 머리를 꾹 밟았다.
“끄아악!”
“소리 지를 입이 있으면 아까 써먹었어야지, 무능한 새끼가!”
“대표, 대표님! 죄송합니다, 대표님!”
한참을 씩씩대던 대표이사가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던 세무사에게 눈을 돌렸다.
“이봉한 세무사.”
“예, 대표님.”
세무사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한테 많은 돈을 들였을 때는 만일의 경우 회사에 도움이 되라고 들이는 겁니다.”
“……예.”
“그렇게 하나도 못 막아낼 거면 제가 돈 주고 당신을 쓸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대표님, 잠시만요.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또 헛소리면 가만 안 둡니다.”
대표 손이 던질 물건을 찾는 듯 움찔거리자 세무사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제가 전 지검장님께 큰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금융 관련 컨설팅으로 절세를 해 드렸죠.”
“전 지검장에게 청탁을 하겠다?”
“예. 그 공무원이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세무조사를 했다고 말씀드리죠. 과세가 부당하다고 읍소해 보겠습니다.”
실제로 정상적으로 조사했더라도 그들에겐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뒤집어씌우면 될 일이다.
“그리고 차후에 제대로 된 사람에게 다시 조사를 받으면 됩니다.”
세무사 이봉한도 처음 세무조사를 겪은 게 아니다.
보통은 어느 정도 선을 긋고 과세를 때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렇듯 작정하고 탈탈 털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무대는 세무조사가 아닌 검찰 조사와 세무서 감사로 옮겨갈 것이다.
“좋아요. 한 번만 더 믿어 보겠습니다. 이번에도 헛짓거리면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세무사는 얼어붙은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