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13화 (13/500)

13화. 임원 상여금이 너무 많아(4)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미리 공문 보내 드렸을 텐데요. 이건 정당한 조사권 행사입니다.”

“아, 네.”

부장 눈치를 보던 직원들이 슬금슬금 문가로 이동했다.

매의 눈으로 그들을 훑어보던 황민우가 대뜸 한 직원을 가리켰다.

“지갑 내려놓으세요. 아무것도 갖고 나가시면 안 됩니다. 거기, USB 내려놓으시구요.”

“이건 제 개인적인 물건인데요?”

“안 됩니다. 내려놓으세요.”

단호하게 대답하자 직원들이 한층 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부장이 남았다.

그는 애써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아니, 정말로 이렇게까지…….”

“비켜 주시죠.”

부장의 입가가 푸들푸들 떨렸다.

마지못해 부장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조사과 회식 때 식당으로 들어와 대신 결제하려던 세무사 이봉한이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입에 걸고 들어와 사무실 안을 슬쩍 훑었다.

상황 파악을 끝낸 것이다.

“아이고, 제가 좀 늦었습니다. 조사관님들 너무 부지런하신 거 아닙니까? 하하.”

세무사는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내게 두 손 받쳐 명함을 건넸다.

“두 분 조사관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세무사 이봉한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내가 미심쩍게 바라보았지만, 그의 미소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더욱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명함을 들이미는 통에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내 명함을 꺼내 건네자 부장이 도로 기가 살아났다.

“세무사님 오셨네! 여기 이 친구가 예전에 우리 회사 다닌 친구예요. 아주 유능한 친구지.”

부장이 은근슬쩍 나를 띄웠다.

그 의도를 눈치 채지 못할 내가 아니다.

내가 찌릿 부장을 노려보자 세무사가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금세 분위기를 파악했다.

“부장님. 조사관님이십니다. 공사가 다망하신 분인데 이렇게 붙잡으시는 건 좋지 않아요.”

“네? 아니, 세무사님.”

세무사가 제 편을 들어주지 않자 부장이 서운한 표정을 했다.

세무사는 부장을 질질 끌고 문가로 데려다 놓았다.

“찾으시는 자료 있으시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 갖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회계 프로그램부터 보도록 하죠.”

“네. 이쪽 자리로 오시면 됩니다.”

“아, 황민우 조사관님은 이사회 결의서랑 주총 의사록 확인해 주세요.”

“예.”

황민우와 내가 요청하는 자료를 찾아 세무사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회계 프로그램을 켜는 순간 찌릿, 하고 머릿속에 수많은 숫자가 스쳐 갔다.

이번엔 좀 더 명확했다.

숫자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이건 이 회사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탈세가 얽힌 것이다.

나는 급여대장이며 분개장 등, 세무서에서는 볼 수 없는 자료들을 열람하고 출력했다.

“이사회 결의서 찾았습니다. 한번 보시죠.”

그때 황민우가 파일을 들고 왔다.

법무사의 도장이 찍힌 정관, 등기부 등본, 주주총회 의사록, 이사회 결의서…….

내가 원하는 모든 자료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빼 들었다.

“제18조 임원 상여금. 회사에 지대한 공을 가져온 경우 그 이득의 10%를 해당 임원의 특별 공로금으로 지급한다.”

“확실히 있지요? 상여금에 관한 규정.”

세무사가 안심하며 던진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세무서에 갖고 오시라고 해도 안 가져오시기에 서류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랬습니까. 제가 분명히 세무서 갖고 가시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세무사가 부장을 흘겼다.

나는 그사이 옆자리로 옮겼다.

세무사가 안내한 자리가 아닌, 아까 USB를 갖고 가려고 했던 직원의 자리에 앉았다.

흘끔, 안색을 살폈다.

직원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나는 탐색기를 켜 ‘이사회’를 검색했다.

과연 한글 파일 여럿이 나왔다.

그중 가장 최근의 파일을 열자 바로 방금 전에 파일에서 본 이사회 결의서가 나왔다.

작성 일자를 보니 일주일 전이다.

그럼 그렇지.

원래 없던 서류를 뒤늦게 만들어 도장 찍어 둔 것이다.

내가 서류를 유심히 들여다보자 세무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조사관님.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우리는 세무사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경력 있는 황민우는 아마 앞으로 어떤 협상이 시작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이후에 대해선 말로만 들었다.

“어디까지 과세하시겠습니까?”

한 번 조사를 나온 이상 세무 공무원은 절대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든 과세를 해야 하고 그것이 곧 실적인 것이다.

만약 과세 없이 돌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선량한 납세자를 괴롭혔다는 뜻이 된다.

세무조사란 조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타격을 주는 것이니.

그래서 세무사들은 조사관과 합의를 본다.

“털면 터는 만큼 나오는 게 세무조사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완전히 기업을 주저앉힐 생각은 아니실 테고…….”

“그래도 조사는 해야죠. 나오는 대로 과세할 생각인데요.”

“물론 과세는 하셔야죠. 다만 제 말씀은 접대비, 소모품비 같은 손익계산서 항목에서만 과세하시는 게 어떠하신지 여쭙는 겁니다.”

회사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면 그것도 과세 대상이다.

다만 그 경우 세금을 내는 것은 법인, 즉 회사다.

지금 이봉한은 임원진은 건들지 말고 회사에만 과세하라고 돌려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글쎄요. 가지급금도 10억이나 되던데요.”

가지급금.

회사에서 돈이 빠져나갔는데 명백히 무슨 이유인지 밝힐 수 없을 때 쓰는 계정이다.

한 마디로 임원진 호주머니로 들어간 돈이라고 봐야겠지.

사업상 모든 지출에 증빙을 갖출 순 없으니 웬만한 회사는 가지급금이 존재한다.

그러나 보통은 1억을 넘지 않는다.

“아. 회사에서 좀 바쁘게 사업을 하다 보니 증빙을 제때 갖추지 못해서 이렇게 늘어났습니다.”

“애초에 회사를 위해서 썼으면 용도 불명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10억이면 심한데.”

“흐음. 그렇게 보시는군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가지급금까지는 과세하시죠. 단기차입금까지 파보셔도 됩니다.”

“차등배당도 있던 것 같던데요.”

“배당금은 법인세 과세 후 소득세가 증여세보다 높아서 어차피 증여세 문제가 안 나오잖습니까.”

공격과 방어.

줄다리기.

서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자 세무사가 흘끔 직원들을 보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이따 따로 모시겠습니다. 임원진 분들도 마음을 전달하실 겁니다.”

뇌물.

돈을 찔러주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표현하는 것이다.

나와 황민우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내가 비록 테이블을 엎어 버리진 않았지만, 황민우도 그간 내가 일하는 걸 봐왔다.

내가 받아들일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과 이사님들 계십니까? 이왕 왔으니 얼굴이라도 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심도 깊은 조사 없이 순순히 일어서자 세무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부장 역시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자, 안 그래도 모두 모여 계십니다. 상황을 궁금해 하실 테니 함께 가시죠.”

세무사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

7층.

대표이사실과 임원진의 방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 회의할 때 쓰는 중간 규모의 회의실이 있기도 했다.

우리를 안내해 온 세무사는 조심스럽게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너른 테이블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앉은 여섯 명의 임원진들이 보였다.

거의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오, 어서 와요! 이쪽으로 앉아요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반백의 이사 하나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빈자리를 가리켰다.

세무사 이봉한과 나, 그리고 황민우가 자리에 앉았다.

슬쩍 따라 들어온 부장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이사가 부장을 불렀다.

“박 부장은 손님들께 차 좀 내오세요.”

“예? 예…….”

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가 순식간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부장이 다시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 반백의 이사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저 작자가 원래 낄 데 안 낄 데를 몰라요. 박 부장이 주제넘은 소리를 했다면 미안합니다. 내가 대신 사과하지요.”

그는 먼저 부장을 욕하면서 내게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신재현 조사관님. 그간 잘 지낸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

“늦었지만 미안합니다. 전 상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우리가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늦었더군요.”

내가 여전히 말이 없자 이사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이런, 나도 늙었나 봅니다. 말로만 하는 사과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죠? 자, 우리가 준비한 사과의 뜻입니다.”

이사가 밑에서 서류가방 두 개를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나씩 가져가세요. 우리의 진심입니다.”

내 눈빛을 받은 황민우가 손을 뻗어 가방을 열었다.

“이건…….”

황민우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가방 안에는 5만 원권 지폐 다발이 몇 개 들어 있었다.

“모두 현금이군요. 얼마입니까?”

내가 묻자 이사가 흡족한 얼굴을 했다.

“모두 문제없는 것들입니다. 각 천만 원이지요. 어떻습니까. 우리 회사와 친하게 지내면 앞으로도 성의를 보여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내가 말이 없던 것은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 아니다.

이 방에 있는 이사들, 그 누구를 봐도 머릿속에 온통 숫자가 떠다니는 통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눈앞에 놓여 있는 지폐 다발조차 짜증이 났다.

저게 다 회삿돈을 횡령한 비자금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나는 정장 안주머니를 뒤적여 얇고 자그마한 기계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걸 본 세무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미친…….”

“이제부터는 말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녹음기거든요.”

“허억…….”

-쿠당탕!

날카롭게 생긴 이사 하나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녹음기로 손을 뻗었다.

“어림도 없죠.”

나는 이사보다 먼저 녹음기를 낚아채 보란 듯이 흔들었다.

손에 들린 녹음기를 따라 이사들의 고개가 움직이는 게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 새들 같았다.

일반적인 탈세 혐의에 뇌물까지 더해진다면 가산세 수준이 아니라 조세범 처벌법에 의해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상황 파악이 된 것인지 이사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어차피 폐쇄된 회의실.

공무원 두 놈쯤 때려눕히고 어떻게든 무마하자.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뻔히 보였다.

“어허, 이사님들. 지금 폭력을 행사하시려구요?”

때려눕히고 당장 빼앗고 싶을 정도로 절실하겠지.

하지만 이런 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예상은 했다.

나는 흘끔 황민우에게 눈짓했다.

황민우가 슬쩍 핸드폰을 들어 올려 무언가의 버튼을 눌렀다.

“같은 과 직원과 영상통화 중입니다.”

“아…….”

절망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주먹을 꾹 쥐고 나를 노려보던 이사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기가 사라진 듯한 모습이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이 회사에 있을 때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경비가 회의실에 불려가 입원할 정도로 얻어터지고 입막음 비용으로 깽값을 받았다는.

당연히 경비는 이사진을 고소하지 않았다.

공무원인데 설마 건드리랴 싶었지만, 벼랑 끝에 몰리면 뭐든 못하겠는가.

준비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조, 조사관님? 이러지 마시고 우리 대화로…….”

“예. 안 그래도 이제부터 대화하려고 합니다. 다행히 서로 고성과 폭력이 오가는 일 없는 대화의 장이 열린 것 같군요.”

비꼬는 것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이사진은 허탈감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두 명, 대표이사와 세무사만이 각오를 다진 얼굴이었다.

그들은 내 의도를 알아챈 듯했다.

“지금 영상통화를 연결해 둔 건 쓸데없는 방해를 막기 위해섭니다. 자, 그럼 소명을 시작해 보죠.”

나는 가져온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