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임원 상여금이 너무 많아(3)
태일기업 회의실.
급작스럽게 소집된 회의에 임원진들이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랍니까. 세무조사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괜찮을 거라면서요?”
“이제 좀 회사가 원래대로 굴러갈 만하니까 또 이 난리네요.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겁니까?”
급히 모인 사람은 대표이사를 포함해 총 다섯.
그러나 회의실 안에는 총 여섯 명의 사람이 있었다.
의자에 앉지 못하고 입구 근처에 서 있는 남자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입을 꾹 다물고 눈치만 살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고개를 숙인 이 남자는 총무부 부장, 박인철이었다.
“이번엔 어디, 조사과?”
“조사과면 그 뭐냐……, 악질인 놈들 때려잡는 과 아냐? 왜 우리한테 그런대. 박 부장, 얘기 좀 해 봐요.”
지목당한 부장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임원진 회의에 자신이 불려왔을 때부터 짐작한 것이었다.
“세무서에서는 임원진 분들의 상여금에 대해 트집을 잡아 왔습니다. 상여금과 퇴직금 지급 규정이 표시된 이사회 결의서 원본을 달라고 합니다.”
“상여금? 아니 월급 받아 가는 것도 나라가 참견을 하나.”
한 이사가 욕을 하기 시작하자 이때다 싶었는지 다른 임원진들도 덩달아 한 마디씩 보탰다.
“그놈들 아주 돈 떼 가려고 작정한 놈들입니다. 국가 기관이다 뿐이지 일수 업자랑 다를 바가 없어요. 우리처럼 깨끗한 회사가 어디 있다고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깨끗했다면 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렇듯 회의를 소집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부장은 차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순 없었다.
잘못하면 자신에게 화살이 오는 것이다.
그럴 바엔 같이 세무서를 욕하는 게 나았다.
“이사님, 이건 정당한 조사가 아닙니다.”
“그야 당연하죠. 우리 회사가 얼마나 깨끗한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1년 반쯤 전에 전 상무님이 곤욕 치른 거 기억하십니까?”
“전 상무? 아, 멍청하게 빼먹다 걸려 들어간 그놈이요?”
“크흠, 전 법원장님의 조카분입니다. 말조심을 좀…….”
“그전 법원장님도 자기 얼굴에 먹칠했다고 버린 조카입니다. 상관없어요. 하여튼 그 상무가 왜요?”
부장이 테이블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오며 목소리를 낮췄다.
“전 상무님 건을 제보한 배신자 놈이 바로 이번 조사를 맡은 세무 공무원입니다.”
“뭐요?”
박 부장의 의도대로 파급력은 엄청났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성질 급한 이사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그놈이 지금 우리 엿 맥이겠다는 거 아니야! 이건 사적인 복수라고, 복수!”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 우리 사에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답니까?”
“그 직원 박 부장 부하 아니에요? 박 부장 야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허당이네. 부하 관리를 못 해.”
난데없이 화살이 날아오자 부장이 허둥지둥했다.
“이사님! 이건 기회일 수 있습니다!”
“기회라뇨. 세무조사 한 번 받을 때마다 휘청하는 거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그놈은 우리가 세무서, 하면 껌뻑 죽는 줄 알고 있을 겁니다. 무슨 대단한 힘을 얻은 양 구는데, 사실 그놈 본질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이사들이 더 말해 보라는 듯 부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해고당하고 바로 공부해서 붙었다 해도 경력이 채 1년이 못 되었을 겁니다. 지금이야 기세등등하지만 막상 실무에 나오면 쪽도 못 쓸 겁니다.”
“흐음. 그건 일리가 있군.”
“원래 평생 바닥만 기면서 살아온 놈들은 위에서 누르면 찍소리도 못하는 법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경험이기도 했다.
부장은 지금도 임원진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부하 직원이었잖습니까. 이사님들 지나가실 땐 90도 각도로 인사하던 놈입니다. 한 번 몸에 밴 습성은 쉽게 고칠 수 없죠. 잘 타이른 후에 돈이라도 쥐여 줘서 우리 사람으로 만들면…….”
“세무서 조사과에 우리 끈이 생기는 거로군!”
박 부장의 말을 이해한 이사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일반과도 아니고 조사과라!”
“따로 줄 댈 필요도 없이 협력자 하나가 생기는 거네요.”
“역시 박 부장이야. 괜히 우리 회사 총무부에 있는 게 아니지.”
전화 통화에서는 기선제압에 실패했지만, 박 부장은 걱정하지 않았다.
얼굴을 직접 맞대고 한 대화가 아니라 세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아마 예전처럼 고분고분한 부하 직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위기에서 구하고 공을 세운 대가로 자신에게도 뭔가 떨어지는 게 있겠지.
박 부장은 특별 공로금을 받는 자신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과거에는 근로 계약을 맺은 상사와 부하 관계이기에 고분고분했을 뿐.
지금은 탈세 의혹을 받는 기업과 조사관의 입장이라는 것을.
***
북적북적한 지하철.
나는 오늘 세무서로 출근하는 버스 대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몸을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빽빽이 사람이 들어차 있다.
1년 반 만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출근길이기도 했다.
겨우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외마디 감탄사가 들렸다.
“어! 신재현 씨 아니에요?”
익숙한 목소리에 뒤로 돌았다.
태일기업에 있을 때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여직원 김주희다.
총무부에서 자금을 맡았던 나와 경리 여직원 김주희.
업무 특성상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직장 동료였다.
그녀는 당황과 반가움이 혼재된 얼굴로 후다닥 뛰어왔다.
“신재현 씨, 되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요?”
“네. 김주희 주임님도 잘 지내셨어요? 아직 태일에 다니세요?”
“옮기기가 좀 그래서요. 신재현 씨는 이 근처 회사에 다니시나 봐요. 출근길에 자주 볼 수 있겠는데요.”
김주희는 오늘 내 목적지가 태일기업인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의아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부장이 무슨 말 안 하던가요?”
“무슨 말, 아…… 안 좋게 그만두신 거 들었어요. 내부 자료 유출하셨다고.”
말단 직원한테까지 세무조사에 대한 이야기하진 않은 것 같다.
그보다 방금 이상한 소릴 들은 것 같은데.
“내부 자료요? 제가?”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자 김주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네. 부장님이 그러시던데…….”
“그 양반, 직원한테 모든 책임 미루는 건 여전하네요.”
“신재현 씨가 잘못한 거 아니죠? 저도 부장님 말은 안 믿었거든요.”
김주희가 두 손을 불끈 쥐고 눈을 반짝였다.
내 편임을 어필하는 듯했다.
“주임님. 회사 분위기는 어때요?”
“음…… 그냥 평소랑 똑같아요. 맨날 회식 가자면서 껄떡대는 부장이랑, 눈도 못 마주치게 하는 이사들이랑.”
김주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세무조사가 들어가면 부장이 직원만 들들 볶을 텐데.
오늘 있을 사건을 알려 주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였다.
김주희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인상을 구겼다.
“부장 전화네요.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잡아먹을 듯 액정을 노려본 그녀가 급한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저 먼저 가 볼게요. 미안해요. 다음에 또 봐요!”
“아, 주임…….”
김주희는 헐레벌떡 회사를 향해 달려가며 핸드폰을 귀에 댔다.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출근 전에 직원 부리는 것도 여전하네.”
느긋하게 걸어 태일기업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 건물 5층부터 7층까지가 태일기업의 사무실이고 총무부는 6층에 위치했다.
1년 반 전에는 하루하루 출근이 지옥 같았는데.
그땐 이 회사가 전부인 줄 알았다.
퇴사할 생각도 못 했으니.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니 이 회사 역시 한국에 있는 수많은 회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세무조사는 팀이 기본.
나는 건물 안에 들어가 황민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편에 서서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지나가며 나를 한 번씩 가리키고 있었다.
나야 워낙에 말단 직원이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보다 높은 직급이었던 사람이다.
노골적인 눈빛에 나는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 저!”
왠지 눈길이 더 강렬해졌다.
“주사보님, 뭐 하십니까.”
“아, 오셨어요? 눈빛이 너무 열렬해서 인사 좀 하고 있었죠.”
황민우가 나와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주사보님. 괜찮으시겠어요? 옛날에 다니시던 회사라면서요.”
“왜요? 옛 식구들 목 치는 거라서요?”
“뭐,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날 알아본 몇 명이 혀를 찼다.
“배신자 놈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기어들어 와.”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려고 그런 거 아닐까요?”
대놓고 하는 뒷담에 황민우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내가 그리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건 알게 되었을 것이다.
“황민우 서기님. 괜찮으니까 그냥 갑시다.”
“왜 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까?”
황민우가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서류가방에서 조사 결정문 하나를 꺼내 건넸다.
“재작년 거네요. 태일기업이고…… 임원에 의해 매입 자료가 과대 계상된 정황?”
“그거 알아내서 제보한 게 저거든요.”
“내부 고발자!”
황민우가 큰소리로 외쳤다.
“뭐야. 걱정한 제가 바보 같습니다.”
안심한 표정의 황민우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나와 같이 타는 게 싫은지 아무도 함께 타지 않았다.
우리는 편안하고 넉넉하게 6층으로 향했다.
복도 가장 끝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러 갈래의 시선이 꽂혔다.
“어! 신재현 씨!”
막 커피를 타고 있던 김주희가 날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회사 다시 오세요?”
“그럴 리가요. 오늘은 업무 차 왔습니다.”
“거래처 취직하셨나? 그럼 다른 날 오시지. 지금 부장님 계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주희가 속닥거렸다.
“괜찮습니다. 부장님 만나러 온 거예요.”
“밖에 뭐 이리 소란스러워?”
안쪽에 있던 부장실 문이 열리고 넙데데한 얼굴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고집과 심술이 가득한 얼굴.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고 거만한 자세를 했다.
“신재현이 왔어? 왔으면 이 부장님한테 인사부터 해야지.”
나는 그에게서 눈을 피하지 않으며 한 발짝 뒤에 서 있는 황민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공문 주세요.”
“예.”
김주희가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나와 황민우를 번갈아 보았다.
분명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인데 마치 아랫사람처럼 수발드는 것이 이상해서일까.
황민우는 서류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부장을 똑똑히 응시하며 종이를 들어 올렸다.
“용산 세무서 조사1과 조사관, 신재현입니다.”
“같은 소속 조사관, 황민우입니다.”
얼어붙은 직원들의 눈동자.
그리고 애써 거만한 표정을 유지하는 부장의 눈에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부터 태일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세목은 법인세입니다. 자,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문 앞으로 나오세요.”